멀미가 심해 멀리 여행도 가지 못하는 학원 강사 사카에와 철학과를 나와 꽃집을 운영하는 지우. 이 나이 먹은 소년 소녀 들이 마흔두 살에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이들은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천하태평, 건들건들,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태평함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돈이 없어 오히려 홀가분한, 마치 걸작의 미진한 부분을 메우는 삼류 소설 같은 연애.
대담하고 감각적인 묘사,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틀을 허무는 과감한 시도로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손꼽히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마흔두 살 남녀의 조금은 철없고 유쾌한 사랑을 그린 새로운 연애 소설이다. 외국인과의 연애, 이국적 배경, 젊고 폭발적인 사랑 등 야마다 에이미가 지금까지 그려 온 전형적인 주제들에서 탈피해, 이 작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하고 따뜻한 연애를 그리고 있다. 사랑, 연애, 일상의 시시콜콜함을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야마다 에이미의 입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짜 태평함은 우아하다.”
멀미가 심해 멀리 여행도 가지 못하는 학원 강사 사카에와 철학과를 나와 꽃집을 운영하는 지우. 이 나이 먹은 소년 소녀 들이 마흔두 살에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이들은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천하태평, 건들건들,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태평함은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나이도, 돈도, 사회적 의무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돈 냄새를 풍기는 남자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우, 거리에서 ‘할망구’ 소리를 듣고 충격 받은 지우를 다독이는 희끗희끗 사카에. 마흔두 살에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린 조카에게 무시당해도, 좁은 세계밖에 모르는 아이 같은 어른이라도, 이들은 태평함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돈이 없어 오히려 홀가분한, 마치 걸작의 미진한 부분을 메우는 삼류 소설 같은 연애.사카에는 오래되고 어수선한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지우는 사카에의 집에 드나들며 어수선한 집을 조금씩 정돈하고, 집 구석구석에 자기 냄새가 스며든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사카에는 건물이나 그림을 복원하듯, 기운이 없어 너덕너덕 늘어진 지우를 정성을 다해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으며 충실감을 느낀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사카에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무정부주의 소설가 ‘쓰보이 사카에’가 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지우’라는 사실에 크게 의미를 둔다. 두 사람은 작가와 여주인공의 관계인 셈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사카에는 “죽음의 기운은 연애에 불을 지른다.”라며 오히려 멋지다고 생각한다.사실, 죽음의 기운은 두 사람 사이에 이미 만연하다. 사카에는 부인이 집 기둥에 목 매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실은 사카에가 수영장에 빠진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지우의 아버지가 일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하지만 이들에게 죽음은 연애에 불을 지르는 것, 생을 뒤흔드는 고통을 동반하는 성숙의 과정, 삶의 의욕을 돋우는 아픈 계기이기도 하다.둘째 조카 이쿠코와 함께 사카에의 집에서 식사를 하던 날 한 소년이 나타나 그가 한심하다고 외치고 도망간다. 뒤쫓아 가 보니 그는 사카에의 아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친해진 조카 이쿠코를 통해, 지우는 사카에가 그동안 가족, 신상에 대해 거짓말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인이, 혹은 고양이가 죽었다고 둘러댔지만, 죽은 사람은 딸이었고 이 일을 계기로 친지들도 그와 인연을 끊었던 것이다. 사카에의 거짓말로 인해 혼란에 빠진 지우는 한동안 그를 피하지만 생활은 엉망진창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가족과의 마찰…… 힘들게 버텨 온 지우를 구원해 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지우가 사카에의 집에 도착하자 사카에는 고타쓰에 발을 넣은 채 누워서 자고 있다.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깬 사카에는 태연한 목소리로 “지우, 왔네.”라고 중얼거린다.지우가 돌아올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카에. 방금 꿈에 돌아가신 지우 아빠가 나왔다고 말하자 지우는 오열이 끓어올라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는다. 한바탕 울고서 문득 정신을 차리니 사카에도 똑같이 아빠라고 부르며 울고 있다. 내가 울 때 같은 이유로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받으며 지우는 한없이 깊고 아득한 잠에 빠져든다.
여유가 돋보이는 성숙한 연애 소설
야마다 에이미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 단편소설 하나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연애란 삶의 가장 강렬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시각, 후각, 촉각 등의 오감이 모두 살아 움직이며 기쁨부터 아픔까지, 뜨거움부터 서늘함까지 감각의 향연을 벌인다. 그녀는 삶의 조건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연애라는 삶의 한 순간을 말하기 위해 연애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담한 표현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이 소설에서는 ‘죽음’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같이 죽을 거지? 내일. 그리고 내일이 오면 또 내일 같이 죽을 생각이지? 매일, 매일, 그렇게 계속하면서 가짜 등불을 바라보고 웃을 거지? 난, 그러고 싶어.” —본문 중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야마다 에이미는 “죽음의 기운은 연애에 불을 지른다.”라는 말로 이 같은 사랑의 진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경험은 사람에게 배움을 선사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하지는 않는다. 강한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할 뿐.”, “단언한다. 사랑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물리적 조건이다.” 같은, 소설 곳곳에 박혀 있는 통찰적인 아포리즘들도 작가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소설을 한 편 한 편 발표함과 동시에 차츰 나이를 먹어 가는 야마다 에이미의 자의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섹스보다 일상, 둘만의 허접한 유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야마다 에이미가 생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사랑, 인생은 여전히 쿨하고 당당하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이제 열등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젊음이 가치 있는 것은 요절했을 때뿐이다.”라는 것. 이전 작품들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세상을 품에 안은 작가의 여유가 더욱 돋보이는 성숙한 연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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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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