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 야마다 에이미

느즈막히 찾아온 사랑을 대하는 한 남녀의 솔직담백하고 닭살스러운 사랑이야기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모자라서 결혼에도 사랑보다 상대방의 돈이나 능력이 먼저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결혼=상대방의 돈과 능력’이라는 공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물질(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 없으면 결혼 생활이 비참해진다거나 능력없는 남자를 만나면 생고생만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능력있는 남자를 잡기에 바쁘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이 백프로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혼 생활이 돈만으로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다면 수긍하겠지만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이혼서류에 도장 찍는 세상에 돈만 가지고 5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돈도 있어야겠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신뢰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 백년회로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연애의 공식적인 룰을 깨는 커플 한 쌍이 있다. 돈 없어도 우아한 게 좋고, 돈 냄새를 풍기는 남자에게선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사랑을 갈구하며 애교부리는 남자에게 끌리고, 밤에 잠자리를 하고 나서야 남자의 속내를 파악하는 마흔 두 살의 철부지 지우. 그리고 지우와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3년을 떠들어 댄 남자이자 지우가 감기에 고열이 나면 밤낮으로 정성껏 간호할 생각에 기뻐 날뛰고, 여자 머리가 길었다 싶으면 삐뚤빠뚤이긴 하지만 가위로 서슴없이 잘라주며, 사랑을 갈구하며 투정부리고 애교부리는 남자 사카에, 이 둘의 가슴 뜨거운 사랑이야기가 야마다 에이미의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긴 일본 작가가 쓴 ‘일본 남녀의 느지막한 사랑이야기’란 생각을 애써 해봤지만 결론적으로 되돌아 오는 건 과연 대한민국에 지우(사카에)같은 생각을 가진 여자(남자)가 있을까?라는 거였다.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주인공을 찾는다는 게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지우(사카에)란 여자(남자)에게 무한매력을 느꼈고 내 남자(여자)다 싶으면 애교부터 시작해서 투정, 닭살행각, 대담한 애정표현 등을 서슴지 않는 그녀(그)의 행동들이 내 마음을 훔쳐갔기에 ‘대한민국에도 이런 남녀가 있을까?’ 라는 미련이 남는 것이다.

 

내게는 반려도 자식도 없으니 그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네, 말씀하신 대로 그 가르침을 지켜 왔지요.남자에게 편리한 여자로 이 한 몸 다 바쳤어요. 그런데, 잘 풀린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문제는 상대가 내게는 편리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그러니깐 늘 내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골랐다는 거겠지. 내 쪽의 편리함과 남자 쪽의 편리함이 합치될 때 비로소 연애는 발전한다. 그런 행운이 좀처럼 없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즈음에 사카에를 만났다. (본문 99쪽 中)

 

내 쪽의 편리함과 상대방의 편리함이 합치될 때 비로소 연애는 발전한다는 지우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지우도 마흔 두 살에 편리함이 합치되는 사카에를 만났듯이 편리함이 합치되는 남녀를 만나려고 했다간 평생을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지우와 사카에의 어린아이같은 사랑놀이가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지우나 사카에같은 삶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어도 우아한 게 좋은, 연애의 복잡함보다는 편리함을 꿈꾸는, 그 편리함이 상대방과 맞아야 한다는,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편리함은 상대방이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지우의 삶을 통해 생각해보면서…. 마지막에 나오는 지우의 대사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이야기 속에 살았던 나와 이름이 같은 여자아이는 어느날, 열차 안에서 짓눌려 홀로 외로이 죽었다.’(책 본문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