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상

1977년 1회 수상자 한수산을 시작으로 이문열, 정미경 등 한국문학의 거장의 탄생을 함께했고, 2차 개편으로 통해 구병모, 조남주 등의 젊은 작가를 주목한 <오늘의 작가상>이 부분 개편을 통해 오늘의 담보할 수 있는 젊은 작가에게 보다 너른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이는 한 작가의 문학 세계가 시작됨을 알리는 ‘첫’ 성과에 박수를 보냄으로써 시대의 정신을 예민하게 수렴하는 상의 취지를 분명히 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한국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생애 첫 단행본에 수여하는 <오늘의 작가상>이 젊은 작가에게는 따뜻한 격려가 되고, 오늘의 독자에게는 겸허한 안내자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당선작: 정은우 장편소설 『국자전』

국자전-표1

〈오늘의 작가상〉은 한 해 동안 출간된 작가의 첫 소설 단행본에 주어지는 상이다. 수많은 한국문학 상훈 가운데 독특하고 빛나는 지점은 작가가 작업한 첫 단행본에 주어진다는 점일 듯하다. 장편과 단편을 망라해 다양한 작품을 본심에서 다룰 수 있었고, 그간 지나쳐 버렸던 그야말로 빛나는 첫 책들을 만나서 기뻤다. 작품은 혼자 쓸 수 있을지언정 출판은 결코 혼자 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책임편집자와의 내밀한 협업과 출판 산업 현장을 몸소 체험하는 첫 번째 기회다. 지난 한 해 동안 첫 책을 출간하신 모든 작가들께 응원을 보낸다.

그간 꽤 여러 번이나 예심에 참여했지만 본심 진출작을 심사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기명으로 작성된 수많은 출판 관계자들의 추천평을 읽고, 본심에 함께 참여한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내게 유별나게 소중했던 작품은 우선 뒤로 미뤄 두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기가 어려웠다. 본심에 올라온 모든 작품들은 복수의 출판 관계자의 추천을 받을 만큼 이미 수작임을 인정받은 작품들이었다. 특히 내겐 몇 년간 발표해서 묶어 내는 형태의 단행본, 과장을 보태 말하면 한 작가의 인생에 혁명적인 충격을 남기는 사건과도 같은 단행본인 단편집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이 자리를 빌어 『브로콜리 펀치』를 쓰신 이유리 작가, 『유령의 마음으로』를 쓰신 임선우 작가, 『빛을 걷으면 빛』을 쓰신 성해나 작가, 『방어가 제철』을 쓰신 안윤 작가께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왜 이 작품은 나를 붙들고 뒤흔든 걸까. 『국자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풍진 세상에 대한 지독한 정념은 한국문학의 보편적 정서를 그대로 따르는 것 같고(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나는 그런 한국문학의 전통을 좋아한다.) 한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상처받은 능력자를 보는 것 같은 캐릭터라이징과 구성은 이른바 ‘넷플릭스 이후의 소설 쓰기’를 목도하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 고독한 히어로들이 목숨을 걸고 인생을 바쳤던 1980년대 후반은 희생자­영웅을 만들어 냈던 한국 국가주의의 관습이 절정에 이르렀을 시점이다. 그러나 또한 내게는 그 무대가 현대사에 실재했던 그 무대, 전두환­노태우가 해 먹던 공간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부모 세대의 뜨거운 젊음을 회고하는 이 소설이 다만 후일담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다. 상당히 많은 이슈를 다루고 있고, 여러 장르의 작품에서 등장한 서브플롯이 빼곡하게 등장하는 이 작품이 내게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진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제맛을 내는 비결을 당장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듯 이 작품에 부려진 마법이 천천히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회자되며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박민정(소설가)


 

신인은 언제나 두 가지 상충하는 요구를 받는다. ‘얼마나 신인다운가, 혹은 얼마나 신인답지 않은가.’ 어느 영역에서든 신인에게는 관성에 반기를 드는 도도한 정신을 요구하기 마련이지만, 특히 문학상 심사장에서는 어떤 작가의 도전이 새로운 시대 혹은 세대의 선전포고로 읽히기까지 하니, 여기만큼 새로운 것에 후한 곳이 또 있을까. 그러나 심술궂게도 그게 어설퍼도 된다는 말은 아니어서 통제된 재능과 숙련된 기량을 보여 줄 때 차라리 그 신인답지 않음의 경이로움이 수상의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신인에게만 적용되는 이런 잣대가 부당하다고 느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눈치 보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써 보라는 것 같기도 하고, 선배들의 훌륭한 작품을 닮아 보려 애쓰라는 말 같기도 하고, 도대체가 애매모호한 주문이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 〈오늘의 작가상〉을 심사하는 동안, 나 역시 저 기준을 줄곧 떠올리고 있었다. 신인의 열정과 베테랑의 실력을, 무모함과 완미함을, 용기와 절제를 두루 갖춘 작품이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그렇게 예민한 독자가 되어보니 어쩌면 저 기준은 수많은 독자들의 요구를 간추린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독자에게는 빤한 이야기를 또 읽어야 할 이유가 없고, 작가의 시행착오를 견뎌 줄 인내심도 없다. 그러니 낯설고도 훌륭하게 써내야만 하는 것이다.

심사 기준에 대해 장황하게 적은 것은 본심 대상 작품 중에서 마지막까지 경합한 두 권의 일독을 권하기 위해서다. 정은우의 장편소설 『국자전』과 임선우의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두 작품 모두 신인의 첫걸음으로서 응원과 지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굳이 나누어 말해 본다면 『국자전』은 신인다운 패기가, 『유령의 마음으로』는 신인답지 않은 성취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는 사례였다. 나는 둘 중 어느 하나가 수상작이 된다면 이번 심사에 아무런 미련이 없겠다는 마음이었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터라 심사는 대상작들에 대한 독후감을 즐겁게 나누고 자신이 발견한 작품의 빛나는 부분을 앞다퉈 꺼내 놓는 환한 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작은 『국자전』이 되었지만, 『유령의 마음으로』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조금 호들갑스럽게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임선우는 우울한 주체의 내면을 전달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동화적 환상, 함축적 이미지, 건조한 대화, 덤덤한 묘사, 능청스러운 유머 등을 핵심 성분으로 하는 그 방식에는 실패가 없다. 나는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감정에 전염돼 버렸고,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시공간에서 쓰인 개별 단편들 모두가 일정한 수준의 미감을 갖춘 데서 더 나아가 작품집 차원에서 화음을 이루며 일관된 정서를 품을 수 있게끔 조율해 낸 덕분에 이 소설집은 ‘임선우표’ 이야기의 매력을 여실히 입증하게 됐다. 나는 이 책이 임선우의 첫 책이 아니라고 들었어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유령의 마음으로』가 수상작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지만, 『국자전』이 수상작이 돼야 할 이유는 비교적 명확했다. 정은우 작가는 단편으로 등단했으나 첫 단편집을 엮기 전에 장편을 쓰는 모험을 감행하고, 그 일을 만족스럽게 완수해 냈다. 글쓰기는 힘겨운 노동이니까 이 작가의 ‘장편 노동’에 일단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수상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내가 놀란 것은 『국자전』이 배후에 거느리고 있는 서사 장치의 다채로움이었다. 전(傳)의 전통, 국가나 역사에 관한 음모론, 비범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등장하는 대중영화의 문법, 여성 서사의 활력, 로맨스물의 감정선, 동화적 상상력과 블랙 유머, 재난이라는 시의적 소재 등을 얽어 놓은 이 소설은 얼핏 보기에 난삽한 데가 있지만, 그 구성적 미진함을 문제 삼기도 전에 재미에 먼저 압도되고 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기는 꽤 오랜만이었고, 이런 드문 경험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패치워크를 연상하게 하는 ‘정은우식’ 이야기 제작 방식이 앞으로 어떤 세계를 그려 낼 것인지, 그의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곳이 어디든 주저 말고 가 보시라는 격려의 의미로 이 상을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다른 본심 대상작들은 저마다 장단점과 인상적인 고유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신중한 숙고와 토론이 있었으나, 여기에 그 세부를 열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자기 작품의 단점을 파악해 보완할 능력은 모두가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본심에 오른 모든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식의 말을 따분하고 관습적인 것이라 여기고 경계했던 때가 분명 있었지만, 아직 첫걸음을 떼지 못한 아기를 기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새삼스러운 진심과 응원을 담아 덧붙이게 된다.) 모든 첫걸음은 귀하다. 모든 존재의 첫걸음은, 다른 이의 그것과 비교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귀하다.

―신샛별(문학평론가)

 


 

국내 여러 문학상 중 〈오늘의 작가상〉이 갖는 의미는 소중하고, 그래서 독보적이다. 이 문학상은 그 어떤 상업적 고려가 개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한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의 저작물에 대해서 상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가의 첫 책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말하자면 오로지 ‘문학성’만 본다는 뜻이고, ‘신인’을 앞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상은 그 자체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말도 꼭 하고 싶었다.

 

시인이 낸 첫 소설을 읽는 마음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다른 문법에 대한 기대가 하나이고, 어쩔 수 없는 불안이 그 나머지이다. 올해 〈오늘의 작가상〉 본심에는 두 명의 시인이 펴낸 첫 소설이 나란히 올라왔다. 박연준의 『여름과 루비』와 심민아의 『키코게임즈』. 이 두 작품에 대한 감상을 짧게 말하자면 기대는 충족되었고, 불안은 그저 나만의 괜한 시기와 질투였다는 것. 박연준의 소설은 ‘성장담’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았다.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현재’는 ‘순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시인이 쓴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간다.

심민아의 소설은 판교의 게임회사가 주 무대이다. ‘겜알못’이자 ‘불문학과’ 출신인 ‘유라’의 실패담으로 읽힐 수 있는 이 소설의 백미는 사실 주인공이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극장, 그곳의 극장장실에서 받았던 ‘스파크’에 있다. 예술이든 게임이든 ‘스파크’가 일어나는 순간, 이야기는 우리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는 전언. 이 전언을 고스란히 시뮬레이션한 소설이었다.

성해나의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은 일종의 ‘선 긋기’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하지만 이 ‘선’은 선과 악처럼 선명한 이분법이 아닌, 뒤돌아보면 언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금’ 같은 것이다. 성해나의 인물들은, 특히 ‘나’는, 그 ‘금’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래서 도달한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 문학적 의제에 대한 순발력과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집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의 핵심은 ‘아무렇지 않다.’가 아닐까, 싶다.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든 죽은 아빠가 화분에서 쑥쑥 자라나든,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 작가의 정념이고 태도이다. 이 정념과 태도가 ‘유머’로 연결된다. 그래서 내게 이 작가는 ‘유머’ 작가이다. 자신의 ‘유머’를 아직 십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까지 주는 ‘유머’ 작가. 한국 문학판에선 흔치 않은 작가의 출발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임선우 작가의 출발 때부터 팬이 된 독자이기도 하다. 이 작가 역시 『유령의 마음으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 내에서 ‘유령’이나 ‘해파리’처럼 낯선 소재가 등장하지만, 이 소재들은 인물들의 ‘마음’을 독자에게 이어 주는 매개체일 뿐, 도드라지는 오브제가 아니다. ‘마음’을 더 선명하게 전달해 주는 ‘마음’들일 뿐. 나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유령’의 존재 때문에 울지 몰랐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임선우 작가의 팬으로 남을 작정이다.

올해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은 정은우의 『국자전』이다. 다른 긴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이 작품이 연재될 때부터 줄곧 따라 읽었는데, 그때의 내 마음은 늘 같은 것이었다.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장편은 단편과 달리 그 준비 과정이 지난하고 복잡하고 고독하다. 정은우는 그 과정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통과했고, 그 결과물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정치적이고 상징적이고 이분법을 거스르는 긴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상을 축하드리며, 자신의 입담을 더더욱 믿으시길! 그건 무엇보다 소중한 재능이니까.

―이기호(소설가)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소설가의 첫 책이라는 것과 다수의 추천을 얻은 좋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들은 새로움과 좋음을 모두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들 중 한 편을 선정하는 것은 어떤 책이 더 좋은지 논하거나 판단하는 것 보다는 〈오늘의 작가상〉이 갖는 상의 의미를 고민하고 그것에 맞는 작품과 작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유령의 마음으로』 『브로콜리 펀치』 『빛을 걷으면 빛』은 모두 훌륭한 소설집이었다. 작가의 개성과 자유로운 상상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소설에 대한 그리고 나와 타인 나아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태도가 분명했다. 어떤 소설에서는 아름다움을 어떤 소설에서는 자유로움을 어떤 소설에서는 힘과 용기를 읽을 수 있었다. 『여름과 루비』와 『키코게임즈』는 시인이 쓴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결이 완전히 달랐다. 하나는 언어와 사유가 곧 소설일 수도 있다는 개인적 믿음을 다시 확인 혹은 확신하게 해줬고 다른 하나는 좋은 이야기는 재미와 부드러운 흐름이라는 기본 요소 바깥으로 톡톡 튀거나 빠져나가는 의외의 상황과 문장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깨달았다. 『국자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가 넘쳤다. 상상력도 좋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문장과 전개도 좋았다. 작가는 꿈과 욕심이 많은 이야기꾼이었는데 그에 걸맞는 부지런함과 능숙함까지 갖고 있었다. 부분 부분 의하한 점도 있었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아쉬운 지점에 그저 멈춰설 수 없게 만드는 빛나는 지점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긴 시간 각각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좋았던 부분 혹은 아쉬운 부분을 나누고 이야기했다. 논의 끝에 『국자전』을 읽을 때 느꼈던 좋음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의견으로 모이게 됐다. 수상한 작가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다른 작가들에게는 앞으로도 좋은 소설 많이 많이 써달라는 부탁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정용준(소설가)


드물게 운 좋은 심사였다고 생각한다. 한 작품을 추켜올리기 위해 다른 작품을 불가피하게 깎아내리는 심사가 아니라, 충분히 각 작품의 장점을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심민아의 『키코게임즈』는 게임맹인 인문주의자가 판교의 개발자로 근무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수다스러운 화자의 필력이 대단해서 예견된 실패가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다. 안윤의 『방어가 제철』에서 작가가 그린 다정한 디테일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가에게는 특별한 미각과 후각, 연대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박연준의 『여름과 루비』는 여름이라는 계절처럼 밝고 루비처럼 붉게 빛나는 소설이다. 성장의 파동에 대해서라면 이미 충분히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름과 루비』 같은 소설을 만나면 이런 성장을 겪을 수 있다는 데 새삼 감탄할 뿐이다. 익숙한 설정과 상황임에도 잘 세공된 문장이라면 이야기가 새로워진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박연준이 갖다 댄 유년의 셀로판지 때문에 읽는 동안 마음이 자주 일렁였다.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가 흥미로웠던 것은 비존재로서의 변신담이나 변화 자체가 아니라, 이종을 대하는 무심하고 시큰둥하면서 심드렁한 시선 때문이었다. 자못 익숙해 보일 수 있는 변신담이지만 무신경에 가까운 태연한 태도가 이야기의 새로움에 일조했다.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은 믿음직한 소설집이었다. 또래의 젊은 작가들이 일상에 천착하며 위로와 조용히 견디는 법을 모래처럼 세공한다면, 이 작가는 몽돌을 모아다 커다란 집을 짓는 느낌이었다. 겪지 않은 일이나 잘 모르는 마음이라도 이야기로 거리낌 없이 취하는데, 이런 믿음직한 시도 때문에 성해나 작가의 첫 책 이후를 훨씬 더 기대하게 되었다.

본심에 오른 소설을 읽으면서 내심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나 정은우의 『국자전』이 수상작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심에서 최종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가운데 비교적 수월하게 이 두 작품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두 소설은 기질적으로 다른 작품이었다.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적인 소설이라면, 『국자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의 행방을 뒤쫓는 동적인 소설이다.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고, 내게도 유령이 나타나서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내민 유령의 흔적을,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상실을 건너게 하는 위로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정은우의 『국자전』에 마음이 근소하게 기울었다. 임선우의 소설이 나를 위로했다면, 정은우의 소설이 가진 패기는 나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장황하다 싶을 정도의 입담은 최근 한국 장편에서 경험한 적 없는 날것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끌어들여 이야기의 면적을 넓히려는 시도 때문에 다소간의 작위성이 염려되기는 하지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한 시대를 구성하고 증언하는 솜씨가 어지간했다. 활력 있고 생동감 넘치는 한국판 여성 히어로의 등장이 반가웠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입담이 어지간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을 계기로 정은우 작가가 더 신나고 활달한 이야기로 미지(未知)의 미래와 만나기를, 그리하여 한국문학의 미래가 좀 더 새로워지기를 기꺼이 응원하게 되었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편혜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