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우고 뜨겁게 사랑한 청년 괴테
그 무엇도 자기완성을 향한 그의 쉼 없는 걸음을 막지 못했다
‘질풍노도 운동’이라는 문학적 혁명을 일으키며 30년전쟁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독일문학을 다시 꽃피우고 문화사에 ‘괴테시대’라는 이름을 남긴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 그의 자서전 『시와 진실』이 괴테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전영애 교수와 이화여대 최민숙 교수의 공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와 진실』은 말년의 괴테가 환갑을 앞둔 1808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한 해 전인 1831년 사이에 집필한 자서전이며,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는 1811년에, 2부는 1812년에, 3부는 1814년에 출간하였고, 4부는 초고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1833년에 유고로 출간한 것이다.) 스물여섯 살까지의 생애를 담고 있는 자서전 『시와 진실』은 괴테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훗날 대문호로 칭송받은 그의 삶과 작품의 토대를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
괴테의 생애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자기완성에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괴테는 어린 시절, 독일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배우고, 프랑스 연극을 보며 프랑스어를 익히는 등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여덟 살에 조부모에게 신년시를 선물할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그였지만, 자기완성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망은 타고난 재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7년전쟁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할 때도 괴테는 모든 혼란을 배움의 자극으로 여겼고, 복잡한 사회상과 인간사를 바라보며 다층적인 배움을 얻는 기회로 삼았다. 한편 그런 열망만큼이나 뜨겁고 진실했던 그의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반복되며 창작열을 드높이는 근원이 되었다. 프리데리케와의 만남은 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서정시를 낳았고, 샤를로테와의 만남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작품을 낳게 했다. 『시와 진실』은 누구보다 깊은 배움을 추구했고 누구보다 열렬하고 진실한 사랑을 한 청년 괴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기완성을 향한 열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랑의 일화로 가득 차 있는 『시와 진실』은 괴테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치밀한 기록으로서 그 자체로 문학사의 한 시대를 전달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서 문학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소설과 기록의 경계,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자서전
괴테는 작품 첫머리에서 친구로부터 받았다는 가공의 편지글을 통해 집필의 동기와 의도를 밝힌다. 또한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격동적 사건들을 우선적으로 유의”하여 집필하겠다며 “인간을 그 시대 연관 속에서 그리는 것, (……) 즉 그가 거기서 어떻게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갔는지, 예술가나 시인이나 작가인 경우, 그 세계관과 인생관을 어떻게 다시 외부적으로 되비추어 냈는지 보여주는 것”이 전기의 과제라고 덧붙인다. 괴테는 처음부터 허구적인 장치로 자신의 집필 의도를 드러낸다. 작품 첫머리에 밝힌 집필 의도에 맞춰 자서전을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여 “반쯤은 역사적으로” 기술하지만, 동시에 “반쯤은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기록과 픽션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이러한 구성은 부분적으로 드러나며,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실제로 프리데리케를 방문한 시기를 살짝 옮겨 좀 더 극적인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괴테의 이러한 의도는 제목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에서 그는 ‘진실’을 외적 진실, 즉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시’를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는 내적 진실을 담아내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단순한 사실 이상의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문학이라는 예술 형식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결국 『시와 진실』은 하나의 치밀한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소설의 성격을 지닌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서,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전기문학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당대의 정신사이자 사회사이자 문화사로서의 섬세한 기록
자서전 집필을 결심하기 전까지 열두 권의 작품을 완성했던 괴테는 전집 출간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난날을 돌아보고 작품의 재료가 되었던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려 했다.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자서전을 집필함으로써 한 인간이 형성된 과정을 치밀하게 밝히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 자신이 받은 교육, 자신이 읽은 책, 자신이 만나고 영향을 받은 인물들,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문학과 미술품과 건출술 등을 상세히 기록하며,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계의 흐름 그리고 문화계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또한 7년전쟁, 요젭 2세의 화려한 대관식 등 자신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풍속에 대해서도 잘 알려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와 진실』은 독일의 문학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질풍노도 운동’에 대한 문학사로서 큰 의미가 있다. 클롭슈톡의 서정시 「스케이트 타기」가 떠올라 얼어붙은 마인 강으로 향했던 일화나, 루소의 강령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실천하기 위해 나체로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돌멩이 세례를 받은 일 등 일상 속에서도 늘 문학과 함께였던 괴테의 청춘 시절 에피소드와 함께, 괴테가 호머와 오시안, 특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고, 헤르더와 어떤 교류를 하여 질풍노도 운동을 이끌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탄생 과정이나 이 소설이 소멸할 뻔했던 일화와 같은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
■ 번역 정본을 향한 오랜 노력의 결실
『시와 진실』의 번역본이 처음 나오던 시절에는 일부만을 번역했거나 중역을 하는 등 온전하지 않은 번역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여러 권의 완역본이 나와 있다. 하지만 『시와 진실』은 자서전이면서도 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어린 시절의 가벼운 일화 속에서도 노년의 괴테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만큼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완벽한 번역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요구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괴테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전영애 교수와 이화여대 최민숙 교수가 공역을 하고 민음사에서 출간한 『시와 진실』은 하나의 정본을 만들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또한 한국독어독문학회와 한국괴테학회의 오랜 숙원인 괴테 전집 번역의 일환이기도 하다. 섬세한 주석과 해설로 일찍이 괴테 전집의 결정판으로 인정받아 온 함부르크 판(1981)을 번역 대본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물론이고, 함부르크 판 못지않게 중요한 연구 자료인 뮌헨 판(1985)과, 최근 괴테 연구에서 중요한 비판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판(1986)도 참조하여 원전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번역을 하고자 했다.(프랑크푸르트 판은, 1~3부는 초판본에 기반을 두고 4부는 유고 처리 과정에서 괴테의 비서들이 가필한 부분을 제하여 원본을 살린 아카데미 판본(1970~1974)을 다시 비판적으로 검토한 판본이다.) 또한 괴테의 자서전인 만큼, 문학작품으로서의 감상을 넘어 괴테를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한 방대한 자료를 각주와 작품 해설에 담았다. 『시와 진실』의 함부르크 판, 프랑크푸르트 판, 뮌헨 판, 인젤 판(1965)과 함께 『괴테 사전』, 『킨들러 문학사전』 등을 참고하여 각주를 달았고, 이 중에는 국내에 최초 공개하는 괴테의 짓궂은 풍자시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7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