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브릭

한 가닥 실에서 탄생한 인류 문명의 모든 것

원제 The Fabric of Civilization (How Textiles Made the World)

버지니아 포스트렐 | 옮김 이유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4월 19일 | ISBN 978-89-374-5642-8

패키지 반양장 · 46판 128x188mm · 536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네안데르탈인의 식물 섬유에서
실크로드, 리바이스 청바지, 섬유 배터리까지
기능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문명을 엮어 낸
인간의 독창성에 관한 이야기 

오늘날 우리는 직물과 관련된 말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계획을 짜고, 셔틀버스를 타며, 스핀오프 드라마를 본다. 모임을 조직(組織)하고, 실력을 쌓아 성적(成績)을 거둔다.
아주 친숙한 기술은 자연과 구별하기 어렵다. 우리는 햇빛과 비만큼이나 직물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명의 탄생을 논할 때도 농경, 바퀴, 문자 등을 중요하게 여길 뿐, 직물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업은 식량뿐만 아니라 섬유를 수확하는 과정에서도 발전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바다를 누빈 유럽인들에게 직물과 염료는 금과 향신료만큼이나 귀중한 상품이었다. 산업혁명은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기계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직물의 이야기는 인류의 이야기 그 자체이며, 모든 곳과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전 지구적 이야기다.
『패브릭』은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낸 직물의 문명사를 조망한다. 이 책의 여정은 직물이 그런 것처럼 섬유, 실, 직물, 염료와 같은 생산으로 시작해 상인과 소비자에게로 넘어갔다가 직물에 혁신을 일으킨 사람들, 직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달한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탁월한 저널리스트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문명이라는 구조(fabric)에 새겨진 직물의 이야기를 파헤쳐 인류 공동의 경험과 기억으로 끌어올린다.

편집자 리뷰

섬유를 채취하다 ― 천연섬유라는 환상과 우유 섬유

라니탈은 우유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기반으로 1935년에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섬유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구겨지지 않아 처음에는 울을 대체할 수 있는 섬유로 기대받았다. 하지만 물에 젖으면 상한 우유 냄새가 났고, 다림질을 하면 가는 실들이 녹은 치즈처럼 붙어 올라왔다. 이 우유 섬유는 자급자족을 장려하던 파시스트 정부가 무너지면서 인기를 잃었다.
섬유를 얻기 위한 노력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을 짤 만큼의 실을 만들려면 야생식물에서 채취한 섬유로는 부족했다. 초기 인류는 동물과 식물의 번식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 결과 양은 두꺼운 털을 지니게 되었다. 아마는 섬유질이 풍부해졌다. 목화는 한해살이작물이 되어 추운 지역에서도 자라게 되었다. 천연섬유로 불리는 울, 리넨, 면은 수천 년에 걸친 개량과 혁신의 산물이다.
섬유를 얻기 위한 노력은 역사를 바꾸었다. 1806년, 한 미국인 모험가가 멕시코시티의 목화씨를 인형 안에 숨겨 미시시피로 밀수했다. 이 새로운 품종을 시작으로 급성장한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들은 노예노동력을 빨아들였다. 유럽에서는 누에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파스퇴르 같은 학자들이 실크 생산량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로 말미암아 크게 발전한 미생물학은 인간의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하는 길로 이어졌다.


실을 뽑아내다 ― 방적기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청바지 한 벌을 만들려면 10킬로미터에 가까운 면실이 필요하다. 인도의 전통 물레인 차르카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실을 잣는다고 가정해 보자. 약 12.5일을 일해야 그 정도 길이의 실을 만들 수 있다. 면실을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청바지는 사치품이 될 것이다.
섬유를 모으고 연결해 실의 형태로 뽑아내는 작업을 방적이라고 한다. 지난 200년간 우리는 실이 풍족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기에 실은 항상 부족했다. 방적은 직물 생산 과정에서 병목 구간이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직물을 짜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그 직물에 들어갈 실을 잣는 사람은 스무 명이었다. 산업혁명이 방적기계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물을 짜다 ― 최초의 이진법과 뜨개질의 시대

아폴로 우주 계획에 참여한 프로그래머들은 로프 메모리를 활용해 코드를 짰다. 구리선이 코어를 통과하면 1을 의미했고,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면 0을 의미했다. 이 코딩 작업을 실제로 수행한 사람들이 방직공이었다.
실을 잣는 방적이 손에 익히는 작업이라면, 직물을 짜는 방직은 그에 더해 머리도 써야 하는 작업이다. 직물의 길이와 면적을, 직물에 넣을 패턴(무늬)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학적이다. 씨실(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과 날실(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 교차하는 직조는 최초의 이진법이기도 하다.
직조는 1000년이 넘게 직물의 세계를 지배했지만, 오늘날은 뜨개질의 시대다. 속옷, 셔츠, 스웨터, 양말, 운동화까지 의류의 대다수가 뜨개질로 만들어진 편물이다. 편직물은 유연한 구조로 신축성이 뛰어난 데다, 2차원인 일반 직물과 달리 3차원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색으로 물들이다 ― 완벽한 빨강과 티리언 퍼플

코치닐은 선인장에 붙어 자라는 작은 벌레다. 1553년, 틀락스칼라 의회는 소작농들이 코치닐로 너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현실을 우려했다. 멕시코산 코치닐은 “완벽한 빨강에 가장 가까운 색”을 내는 염료로, 값나가는 수출품이었다. 바다 건너편의 고객들은 아름다운 색을 열렬히 원했다.
로마 황제들의 옷을 물들인 티리언 퍼플은 어떤 색이었을까? 파스텔 색조의 보라색은 확실히 아니었다. 당대의 기록은 은과 같은 값으로 여겨졌던 이 귀한 염료가 “응고된 혈액”, “핏빛 암흑”과 같은 색을 냈다고 묘사한다. 색은 사회적 지위였다. 망토 하나를 염색할 만큼의 티리언 퍼플을 얻으려면 수천 마리의 고둥을 잡아야 했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염색법은 레시피에 가까웠다. 염료 제조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면서 염색 공정은 화학 발전에 영감을 주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근대 화학을 바탕으로 한 염료 제조 기업들이 사업 분야를 살충제, 합성고무, 고정 질소, 제약 등으로 다각화해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중개인입니다 ― 복식부기와 환어음

2019년 4월, 파크 애비뉴 아머리에 운집한 뉴요커들 앞에서 연극 「리먼 3부작(The Lehman Trilogy)」이 상연되었다. 연극 속 한 장면에서 리먼 형제의 막내 메이어는 자기 직업을 중개인(middleman)으로 소개한다. 전설적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창업자들은 주식 중개인이 아니라 직물 중개인이었다.
금속을 녹여 동전을 만들던 시절에는 화폐가 항상 부족했다. 게다가 동전은 무거웠다. 장거리 무역에 적합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직물에 주목했다. 튼튼하고 휴대하기 쉬우며 나누기가 좋았다. 그 자체로도 일상에서 쓰이는 상품인 데다 품질이 균일한 편이고 생산에 시간이 걸려 물량 부족이나 인플레이션의 위험도 낮았다.
직물은 가장 가치 있는 상품 중 하나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직물 상인들은 정확한 거래를 위해 가족 중 여성도 문자를 익히게 했다. 중세 이탈리아의 직물 상인들은 복식부기와 아라비아 숫자를 채택해 널리 퍼뜨렸고, 마침내 “중세 성기(盛期)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혁신”으로 불리는 환어음을 만들어 냈다. 푸거 가문을 필두로 직물 상인들은 점차 은행가로 변신해 갔다.


욕망을 드러내다 ― 켄테 천과 소비자들

1772년에서 1780년까지 리처드 마일스라는 이름의 상인은 황금해안에서 서아프리카 부족들을 상대로 1308건의 물물교환을 했다. 마일스는 노예를 받았고, 그 대가로 서아프리카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상품을 건네주었다. 바로 직물이었다.
직물을 향한 욕망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다. 에도 시대의 일본에서는 홀치기로 염색한 시보리 무늬가 금지되자 실크에 손으로 무늬를 직접 그렸고, 밝은 색상의 옷이 금지되자 안감에 밝은 색상을 숨겨 대응했다. 1300년에서 1500년까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300개가 넘는 사치 금지법을 내놓았지만, 자기표현의 욕망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을 막지는 못했다.
직물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것도 소비자다. 유럽의 직물 제조자들은 아프리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서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의 직조 기술에 외국의 실과 새로운 직기를 더해 켄테 천을 탄생시켰다. 가나 최초의 대통령이 입으며 유명해진 켄테는 “범아프리카주의를 상징하는 유니폼”이자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기적의 섬유를 입다 ― 나일론 스타킹과 요가 바지

1939년, 화학 기업 듀폰은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나일론 스타킹을 선보였다. 그해 10월에 생산한 스타킹 4000켤레는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동이 났다. ‘기적의 섬유’ 나일론은 2년 만에 여성 양말 시장에서 30퍼센트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거듭된 성공은 그 성취를 흐리게 한다. 지금도 연구실에서는 새로운 합성섬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땀을 흡수하는 티셔츠에, 놀라운 신축성의 요가 바지에 별다른 놀라움을 느끼지 못한다. 모달 팬티를 추천받으면서도 정작 모달이 어떤 소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눈여겨볼 부분은 마감 공정의 발전이다. 얼룩 방지 기능과 구김 방지 기능은 주부들을 세탁과 다림질로부터 해방해 주었다. 방수 코팅은 땀을 방출하면서도 빗물은 막아 준다. 환경보호를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19년 6월, 패션 브랜드 샤넬은 친환경 실크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여 이미지를 쇄신했다.

추천평

석기시대에서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직물은 세계사에서 중심 역할을 해 왔다.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이 주제에 관한 지식을 페넬로페가 직조하는 것처럼 경쾌한 손길로 전달한다.
— 배리 스트라우스(『로마 황제 열전』 저자)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물인 직물을 통해 매혹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써 내려간 기술·경제·문화사.
— 맷 리들리(『혁신에 대한 모든 것』 저자)

목차

서문 문명의 구조
1장 섬유
2장 실
3장 직물
4장 염료
5장 상인
6장 소비자
7장 혁신가
후기 왜 직물인가?

감사의 말
용어 해설

작가 소개

버지니아 포스트렐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설가. 《블룸버그 오피니언》, 《월스트리트 저널》, 《디 애틀랜틱》, 《뉴욕 타임스》, 《포브스》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미래와 그 적들』, 『스타일의 전략』, 『글래머의 힘』의 저자이며, 탁월한 저널리스트에게 주어지는 바스티아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 전반의 혁신, 과학, 기술, 무역 등을 직물이라는 렌즈로 살펴본 책 『패브릭』으로 다시 한번 찬사를 받았다.

이유림 옮김

대학교에서 영어통번역을 전공했다. 글밥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 수료 후 바른번역에 소속되어 있으며, 쉽고 편하게 읽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고민하며 번역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자연처럼 살아간다』와 『숨을, 쉬다』, 『걷는 존재』, 『조셉 머피 마음의 법칙』, 『빅맥 & 버건디』,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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