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와 그, 둘 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선사하는, 가장 슬프고도 희망 어린 러브 송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픈 이별을 겪어 본 적 있는 이 세상 모두에게…….
목숨보다 사랑하던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낸 한 여자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아낸 진정한 구원을 그린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장편소설 『스위트 히어애프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몸의 일부를 잃는 것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상실의 나날 가운데, 위로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눈이 시릴 정도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시는 갓 내린 커피, 단골 바의 카운터에서 딱 2000엔어치의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시원한 밤길, 떠나간 연인이 남긴 아틀리에 바닥에 앉아 데운 컵 수프와 두부로 차린 따뜻한 점심, 그리고 내가 잃은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잘 아는 친구들과 나누는 한두 마디의 다정한 말, 그런 작지만 빛나는 것들과 조우하면서 영원히 딛고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실은 조용히 치유된다. 사랑하는 예술가 연인을 교통사고로 잃고 그 자신은 내장의 일부를 잃은 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온 여자 사요코, 그녀가 다시 찾은 희망 가운데 모두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한 마디는 과연 무엇일까.
도후쿠 대지진을 겪으면서 느낀 ‘갑작스러운 상실’에 대한 단상을 소설로 풀어낸 요시모토 바나나의, 슬픔 너머 희망이 반짝이는 러브 송.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아픔까지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고요하지만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위트 히어애프터
작가의 말
■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이여, 내게 돌아오기를……
지금 내게 목숨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마저 전부 그에게 줄게요. 이 목숨으로, 이 눈으로 많은 것을 보아 왔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요이치는 살아 있기를.
― 본문 중에서
미래를 약속한 사랑하는 사람과 온천 여행을 즐기고 돌아가던 차 안, 그날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고 레너드 코헨의 「Lover, Lover, Lover」가 감미롭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차가 교각 아래로 전복하면서 사랑하던 이와 함께 내장의 일부를 영원히 잃은 사요코는 온통 무지갯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떠돌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다. 기묘한 임사 체험 후 이 세상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에는 원래라면 보여서는 안 될, 조금 곤란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령들의 모습이 단골 술집에서, 빵가게 가는 길가 아파트 창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보고 싶은 연인만은 야속하게도 꿈에서조차 모습을 나타내 주지 않는다.
상실,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상실은 한 사람을 순식간에 180도로 바꾸어 버리곤 한다. 디저트 카페와 극장과 갤러리를 좋아하던 평범한 미대생 사요코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죽음 너머를 보고 죽음보다도 적막한 고독을 경험한 뒤 몸과 마음에 뚫린 ‘공동’을 느낀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만 같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의 의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해 준 것은 다만 일상이라는 소박한 축복이다.
지금의 내 눈에는 약간 다른 것이 보인다.
옛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요이치의 조그만 작품에 촛불처럼 예쁜 빛이 뽀얗게 깃들어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와 오자키 씨의 가슴 언저리에도 같은 빛이 빛난다.
다만 그 빛은 녹색이고 아주 연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무언가의 생명임에 분명하다.
― 본문 중에서
새로운 방을 빌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옛날 추억을 조금씩 치우고, 닦고, 정리하며 사요코는 그렇게 조금씩 이 세상의 빛을 되찾아 간다. 세상의 끝에 선 듯한 아픔을 겪고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그녀가 본 녹색의 아름다운 빛, 그것은 책을 읽는 우리의 아픔까지 낫게 해 줄 ‘생’의 빛일 것이다.
■ 사랑을 위하여,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하다
이 작품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강렬한 개인적 체험이 담겨 있다. 첫 페이지를 여는 갑작스럽고 참혹한 전락 사고, 그에 따른 상실과 살아남은 자의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바로 그녀가 지난 도호쿠 대지진에서 느낀 단상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어린 아들과 남편과 함께 마침 차를 타고 가다가 격심한 진동을 느낀 그녀는 그 순간 이 작품을 써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지진은 피해 지역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쿄에 사는 나의 인생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감지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 소설은 온갖 장소에서 이번 대지진을 경험한 사람,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향해 쓴 것입니다.
만약 이 소설이 마음에 와 닿아,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엄습해 온 지진처럼, 죽음은 그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슬픔은 남은 사람 모두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그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향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살며 사랑한 그 모든 추억의 가능성, 앞으로도 추억을 쌓아 나갈 수 있으리라는 빛나는 희망일 것이다.
잊고 싶은 추억이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이건, 당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이별의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하고 싶다면, 이 봄 이토록 ‘달콤한 앞으로의 시간’을 이 책과 함께 꿈꾸어 보시기를.
■ 줄거리
‘내 목숨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에게 주고 싶어.’ 무엇보다 사랑하던 그가 죽음을 맞는 순간, 불현듯 떠올린 그 간절한 소원은 혼자 살아남아 버린 나에게 오래도록 희망의 증표로 남았다…….
조형 예술가인 남자 친구 요이치와 온천 여행에서 돌아오는 차 안, 반대편 차선의 트럭이 덮쳐들면서 혼자만 배에 쇠막대기가 꽂힌 채 살아남은 사요코, 그녀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돌아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이 보이고 삶보다는 죽음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남자 친구가 죽은 후 처음으로 사요코를 설레게 한 단골 바 ‘시리시리’의 신키치 씨, 아들을 잃고 사요코를 새로운 딸로 맞이해 준 남자 친구의 부모님, 어머니의 유령이 보인다는 사요코를 친구로 받아들인 아타루 씨까지. 삶을 향해 사요코를 이끌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이다.
예기치 못한 슬픈 헤어짐과 그 아픔을 극복하게 해 주는 삶의 빛나는 힘을 그린 요시모토 바나나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별 소설’.
■ 본문 중에서
배에 쇠막대기가 푹 꽂혀 있는 것을 봤을 때, 이런 틀렸네, 이제 죽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아직 스물여덟 살, 인생이 거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심정이었는데, 그 압도적인 광경은 모든 것의 기본에 있는 ‘죽음은 바로 가까이에 있다.’라는 진실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뭐야, 바로 코앞에 있었잖아, 그렇게 느꼈다.
- 12쪽
절망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그럴 수가 없는 나날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백지가 되는 기회를 얻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그가 없다는 사실은 물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의 시기를 지나자 돌연, 투명하고 텅빈 느낌이 찾아온 것은 예상 밖이었다.
- 33쪽
그 아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와 그, 둘 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늘 맞이하는 아침, 지금까지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아침이었다.
이제 곧 그가 일어나 커피를 끓이겠지, 하는 데까지 여느 때와 똑같은.
창밖의 미니 장미에 그 계절답지 않게 꽃이 소복하게 피어 있었다. 파란 하늘에 그 빨강이 유난히 또렷하게 비쳐, 나는 분명하게 생각했다. 이 세상의 끝 같다고.
- 53쪽
아타루 씨가 컵도 두 개 들고 있기에, 우리 둘은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제 먹고 남은 마늘 바게트를 조금씩 먹으면서. 아침 해는 어느 거리에도 고루 아름답고 하얀 빛을 뿌리고, 온갖 것을 싹 쓸어 어제의 세계로 가져갔다. 또 아침이 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