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거부로 이어진 자유와 치열한 양심의 시인 김수영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은,제1회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제2회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제3회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비롯하여,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그리고 1990년대의 유하 <세운 상가 키드의 사랑>,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에게 활발한 시작 활동의 장을 열어주었다.2006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은 기성 시인은 물론 미등단의 예비 시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놓기로 하였다. 넘치는 패기와 신선한 개성으로 한국 시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많은 시인들의 관심과 응모를 바란다.
당선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기혁
남성적 정서의 굵직한 고백들, 목소리들, 유행 따위는 무시하는 시적 진행, 뜬금없지만 나름대로 장소나 현상을 해석하고자 하는 진술들이 흥미로웠지만 이 진행 속에서 “내 외로움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둠이다”처럼 센티멘털 우주가 우수수 쏟아지는 순간들도 있었고, 그 센티멘털 우주를 뒤집어 “타인의 우주를 받아든 사람들”로 감정을 변모해 유머러스한 정황을 가동하는 순간도 있었다. 시집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시 스타일을 끝까지 견지하고, 한 편 한 편에서 긴장을 놓지 않은 시들을 창작한 이 시집을 당선작으로 선했다. -김혜순(시인)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는 냉소의 유머가 돋보인다. 이 시집은 말의 의미가 발생하는 차이들을 지워버리는 일상, 무반성적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삶의 관성적인 힘을 직관적으로 잡아채는 데 능하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들의 위치를 바꿀 때 인형과 포유동물의 차이, 동생과 강아지의 차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왔던 존재와 하찮게 여겨왔던 사물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맥락만 있고 뜻은 없는 공간의 놀이와 웃음이 생겨난다. -김기택(시인)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는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는 듯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더라도 감성적 리듬과 두뇌의 노동을 동시에 요구하는 잘 짜인 견고한 구조물이 발견된다. 이 성실한 구조물은 시편들 전체를 가로지르며 모든 작품들을 팽팽한 빨랫줄에 걸어 놓듯이 들볶는다. 에피소드, 사변적 성찰 등등이 수없이 시적 리듬에 개입하지만, 그것이 시적 긴장감의 발목을 잡기 보다는 다변이라는 우회로를 거치는 제스처를 만들어 내며 시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과녁들을 명중시키도록 만든다. 오랜만에 지성과 감성적 재치를 높은 단계에서 조화시킬 줄 아는 시인을 만나 기쁘다. 겨울에 어울리는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가 터져도 좋을 것이다. -서동욱(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