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문학상

시대의 거부로 이어진 자유와 치열한 양심의 시인 김수영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은,제1회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제2회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제3회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비롯하여,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그리고 1990년대의 유하 <세운 상가 키드의 사랑>,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에게 활발한 시작 활동의 장을 열어주었다.2006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은 기성 시인은 물론 미등단의 예비 시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놓기로 하였다. 넘치는 패기와 신선한 개성으로 한국 시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많은 시인들의 관심과 응모를 바란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의 결정적인 매력은 이상한 균형감에서 나온다. 정직하되 거칠지 않고, 섬세하되 나약하지 않은 정서에서 올라오는 언어는 어두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밝으면서도 슬픔을 놓지 않는 이상한 풍경 앞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그만큼 많은 표정이 누적된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내면 풍경의 시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결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시의 의지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고 해도 좋겠다.
김수영 문학상의 역사에서 최초로 비등단 시인이 수상하는 결과를 앞두고서, 걱정과 염려보다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더 힘껏 보내고 싶다. 시집 출간과 동시에 시인으로서 첫발을 떼는 이기리 시인이 더 용감하게, 더 힘을 내어, 자기 목소리에 충실한 시 세계를 펼쳐 나가는 데 이 수상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 김언(시인)


이기리의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외 55편을 자꾸만 돌아보았다.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는 시였기 때문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망각하려는 나’와 ‘기억하려는 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그 고요가 우리를 숨죽이게 만든다는 말로도 충분치 않다. 단단히 봉인해 놓은, 과거의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의식의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 자체로 고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가 뒤로 물러서지 않고 현재의 삶에 적재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현재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다시 눈을 뜨고 끝까지 다 보”아야만 하는 과거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인에게 그러한 용기를 보았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이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나’ 사이 행간을 벌려 놓고, 여전히 ‘진행 중인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태도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지금 우리는 마주볼 용기가 가장 어렵고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 유계영(시인)


이기리의 시는 화자의 처지와 고통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때 시는 분위기와 이미지만이 아니라, 분위기와 이미지를 포함한 ‘육체성’을 확보한다. 언어는 달리고 부딪치고 흔들리느라 세련을 구사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대신 요철 가득한, 살아 있는 목소리를 갖는다.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끝까지 읽었을 때, 이상하게도 이 사람을 변호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가 그리는 시 속 화자는 세상에서 늘 져 온 사람이라고. 세상에서 ‘납작해지느라’ 온 시간을 쓴 사람이라고. 멀끔한 꼴은 아니지만 비범한 구석이 있다고. 시 자체가 거칠고 뭉툭한 무기처럼 작용한다고. 그가 시를 들고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고. 열변을 토하고 싶게 하는 데가 있었다.
— 박연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