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
원제 Ethan Frome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8월 14일 | ISBN 978-89-374-6367-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12쪽 | 가격 11,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67 | 분야 세계문학전집 367, 외국 문학
수상/추천: 퓰리처상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낡은 폐선’처럼 살아가는 이선 프롬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억압해 버린, 우리 내면의 슬픈 자화상
최초의 여성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튼의 자전적인 작품
▶ 워튼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다. ─ 《옵저버》
▶ 나는 이 책이 뿜어내는 암울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혼자만 즐기고 싶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 톄닝(소설가)
/“그는 가난한 농부였고, 자기가 버리면 고독과 가난 속에 남게 될 병든 여인의 남편이었다. 설령 아내를 버릴 배짱이 있더라도 그를 동정하는 인정 많은 두 사람을 속이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선 프롬』에서 /
이디스 워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이선 프롬』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번으로 출간되었다.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이선’이 내면의 욕망을 자각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도덕과 인습이라는 집단적 억압에 맞선 개인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잉글랜드의 가난한 농부이자 병든 아내의 남편인 이선은 사회적 의무를 대변하는 아내 ‘지나’와 개인의 자유를 상징하는 ‘매티’ 사이에서 그동안 자신이 ‘죽음 속의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1911년 출간과 동시에 도덕적 논란에 휩싸인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이 투영된 자전적 소설이다. 유서 깊은 뉴욕의 상류층 가문 출신이었던 워튼은 일찍 사교계에 데뷔해 결혼한 뒤 애정 없는 결혼 생활과 작가적 야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고, 파격적인 결말이 오랫동안 회자되며 수차례 연극과 영화로 재탄생했다.
∎ 미국 문단의 우뚝 솟은 봉우리, 이디스 워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활약한 이디스 워튼은 미국 여성 작가들 중에서 순수 문학의 길을 걸은 최초의 작가다. 이 무렵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대중 소설을 쓰는 여성 작가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대다수 작품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혔다. 하지만 워튼의 소설들은 미국 문학사에서 정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대표작 중 하나인 『순수의 시대』는 1921년 워튼에게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안겼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이디스 워튼이 재조명되면서, 자전적 요소가 짙은 『이선 프롬』과 미국 본격 문학 최초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여름』 등이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1993년 전미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고어 비달은 “미국 문학이라는 산에서 이제까지는 헨리 제임스가 이디스 워튼보다 약간 위쪽 봉우리를 차지했지만 이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사랑 없는 결혼 속에서 방황하는 ‘이선 프롬’
/“이런 달콤한 정신적 교감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때는 바로 두 사람이 농가를 향해 함께 밤길을 걷는 동안이었다. 그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흥에 예민했다. 도중에 그만둔 학업이 이런 감수성에 형체를 부여했다. 심지어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하늘과 벌판은 그에게 깊고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 말고 또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 애처로운 특권의 유일한 희생자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영혼이 똑같은 경이의 감정으로 떨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의 옆에, 같은 지붕 밑에 살면서, 그가 제공하는 음식을 먹는 생명을 지닌 존재였다.” ―『이선 프롬』 중에서/
주인공 ‘이선’은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로 과거에 일 년 남짓 공과 대학교 실험실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병이 깊어지자 엔지니어가 되려는 꿈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다. 친척 누이 ‘지나’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뒤 그녀마저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면서 이선은 완전히 마을에 발이 묶이지만, 짧은 공부가 유산처럼 남아 마을 너머의 삶을 상상하거나 일상사의 이면에 있는 구름처럼 크고 막연한 의미를 깨닫도록 돕는다. 한때의 공부가 권태로운 삶의 해방구가 되어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친척인 ‘매티’가 아픈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 주러 부부의 집에 고용된다. 매티는 일을 돕는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살림 솜씨가 엉망이지만,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별의 이동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다. 이선은 매티의 이런 면모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삶의 활기를 맛본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인정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가 아내와 주변 사람들을 배신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갈 만한 용기가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한편 병이 깊어진 지나는 의사를 만나러 일박의 여정을 떠나고, 한겨울 시골집에 두 사람만 남겨진다.
∎ 결혼 생활과 글쓰기 사이에서 갈등했던, 워튼의 자전적 작품
워튼이 태어난 존스 가문은 뉴욕의 명문 중에서도 명문으로 이른바 ‘400’이라고 일컫는 엘리트 집단으로서, 이 무렵 상류 사회에서는 “존스 가문과 발을 맞춘다.”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였다. 당시 상류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어머니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일찍이 독서에 눈을 뜬 워튼은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열네 살 때 중편 소설을 썼고, 열여섯 살에 이미 시집을 출간했으며, 《애틀랜틱 먼슬리》에 시를 싣기도 했다. 그러자 딸이 문학에 빠지는 것을 걱정한 어머니가 그녀를 일찌감치 사교계에 데뷔시켰고, 결국 스물세 살 나이에 열세 살 연상의 남성인 에드워드 워튼과 결혼한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불행했는데, 급기야 남편 에드워드가 외도를 하자 워튼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질식할 것 같은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미국의 젊은 저널리스트인 모턴 풀러턴과 삼 년간 연인으로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선택은 아직 청교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여성인 그녀에게 불리한 스캔들로 남았다. 우울한 결혼 생활과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맞서는 방법으로 작가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만, 작가로서 명성을 얻을수록 이를 질투했던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도시로 나가 공부하려는 꿈을 품었던 이선이 시골 마을에 고립된 뒤 아내 지나와 또 다른 여성 매티 사이에서 갈등하는 줄거리의 『이선 프롬』은 남녀가 살짝 바뀌었을 뿐 자전적 요소가 충실히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쌍둥이 소설의 탄생 ― 『이선 프롬』과 『여름』
/“왜 네가 나 같은 폐인을 쳐다보겠어? 다른 친구를 원하겠지…… 넌 네가 본 것 중에 최상의 것을 택했어…… 하기야 그건 나도 언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여름』 중에서/
1911년과 1917년에 출간된 『이선 프롬』과 『여름』은 작가 워튼에 의해 자매편으로 간주되면서 흔히 문학적 쌍둥이로 불린다. 특히 두 소설 모두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 남녀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이선 프롬』의 주인공 ‘이선’과 『여름』의 주인공 ‘채리티’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이라는 점도 중요한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지리적 한계 때문에 두 사람은 도시로 나가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고 끝내 좌절한다.
‘이선’과 ‘채리티’는 손바닥만큼 좁은 시골 마을에서 자유로이 상대를 탐색하는 연애 과정을 생략한 채 애정 없이 이성과 맺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런 조건에서 두 사람이 외지 출신의 ‘매티’와 ‘하니’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도 모른다. 20세기 초 뉴잉글랜드 농경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회적 좌절과 성적 고립을 그린 두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화산처럼 살아 있는 사랑을 향한 욕망 앞에서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두 주인공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 본문에서
데니스 이디는 야심만만한 아일랜드계 식료품 상인 마이클 이디의 아들이었다. 마이클은 비위를 잘 맞추고 또 뻔뻔한 방식으로 ‘약삭빠른’ 상술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스탁필드 주민에게 보여 준 사람이었다. 벽돌로 지은 그의 가게는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했다. 아들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 같았고, 그사이 똑같은 기술을 스탁필드의 처녀들을 정복하는 데 쓰고 있었다. (32쪽)
매티를 가끔 저녁에 외출시켜 주자고 아내가 처음 제안했을 때 이선은 농장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마을까지 왕복 3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데 불만을 품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스탁필드에서 밤마다 즐거운 파티가 벌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단계에 이르렀다. (33쪽)
매티와 함께 있을 때 말고는 한 번도 즐거워 본 일이 없는 그에게 지금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녀의 무관심을 똑똑히 입증해 주는 것 같았다. 같이 춤추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이선을 대할 때 언제나 저녁노을을 받고 있는 유리창처럼 보이던 그 얼굴이었다. 어리석게도 그녀가 자신을 위해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세 가지 몸짓도 눈에 띄었다. (36쪽)
이런 달콤한 정신적 교감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때는 바로 두 사람이 농가를 향해 함께 밤길을 걷는 동안이었다. 그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흥에 예민했다. 도중에 그만둔 학업이 이런 감수성에 형체를 부여했다. 심지어 가장 불행한 순간에도 하늘과 벌판은 그에게 깊고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 감정이 그것을 불러일으킨 아름다움을 슬픔으로 가린 채 마음속에 소리 없는 아픔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 말고 또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 애처로운 특권의 유일한 희생자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34쪽)
말라비틀어진 넝쿨 한 줄기가 상갓집 문 앞에 매다는 검은 상장 리본처럼 현관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만약 진짜 저것이 지나를 위한 것이라면…….’ 하는 생각이 이선의 뇌리에 번쩍 스쳐 갔다. 그러더니 아내가 침실에 누워 입을 살짝 벌리고 틀니를 침대 옆 컵에 넣어 둔 채 잠든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51쪽)
장례가 끝난 뒤에 지나가 떠날 차비를 하는 것을 보고 이선은 농장에 혼자 남게 된다는 근거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지 못한 채 지나에게 자기 집에 계속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가끔 그는 어머니가 겨울이 아니라 봄에만 돌아가셨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67쪽)
‘내일 이 시간쯤이면 아내가 저 의자에 앉아 흔들흔들하고 있겠지.’ 이선은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꿈속을 헤매고 있었던 거야. 오늘이 우리가 단둘이 앉아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구나.’ 이렇게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마치 마취제를 투여받은 뒤 다시 의식을 되찾을 때처럼 고통스러웠다. (89쪽)
“맷, 난 손발이 꽁꽁 묶였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선 아저씨, 가끔 제게 편지해 주세요.”
“아, 편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손을 뻗어 너를 만지고 싶어.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또 너를 보살피고 싶단 말이야. 네가 아플 때, 네가 외로울 때 같이 있고 싶어.” (143쪽)
프롤로그 7
이선 프롬 28
에필로그 156
작품 해설 164
작가 연보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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