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17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17, 한국 문학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레즈비언 딸의 부모이자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혐오와 배제의 세계와 마주한
엄마의 성장소설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쓰는 작가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딸에 대하여』는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인 ‘나’와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이 경제적 이유로 동거를 시작한다. 못내 외면하고 싶은 딸애의 사생활 앞에 ‘노출’된 엄마와 세상과 불화하는 삶이 일상이 되어 버린 딸. 이들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며 엄마의 일상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김혜진은 힘없는 이들의 소리 없는 고통을 ‘대상화하는 바깥의 시선이 아니라 직시하는 내부의 시선’으로, ‘무뚝뚝한 뚝심의 언어’로 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성을 인정받아 온 작가다. 홈리스 연인의 사랑을 그린 『중앙역』은 바닥없는 밑바닥 인생의 고달픔을 건조하고 미니멀한 문장으로 표현해 새로운 감각의 ‘가난한 노래’를 완성했고, 소외된 청춘들의 출구 없는 인생을 다룬 소설집 『어비』는 “사회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단단한 마음”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김준성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신작 『딸에 대하여』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하지만 성소수자, 무연고자 등 우리 사회 약한 고리를 타깃으로 작동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날선 언어와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구현하며 우리 내면의 이중 잣대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한편 ‘퀴어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최선의 이해’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의 한계와 가능성이 서로 갈등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타인을 향한 시선을 다루는 김혜진만의 성과라 할 만하다.
■엄마의 이야기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전직 초등학교 교사. 남편은 병환으로 사망.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며 딸과 딸의 동성 연인과 한 집에 살고 있다. 일찍이 딸을 돌보기 위해 교사 직업을 그만두고 도배장이, 유치원 통학 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에서 음식 만들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끝없는 노동 속에서 살아 왔다. 딸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 주리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토록 예기치 못한 삶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작품 내내 엄마는 자신에 대해, 딸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인생에 대해, 독백을 멈추지 않는다.
■그린과 레인의 이야기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상 예외인 건데.”
그린과 레인은 화자의 딸과 딸의 연인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7년 동안 교제한 사이로, 그린은 현재 대학교 시간 강사다. 동료 강사를 일방적으로 해직한 대학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맞서느라 어느덧 세계와 불화하는 법, 세계를 거부하는 법에 익숙해진 투쟁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선입견과 편견에 갇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은 이들의 이야기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젠의 이야기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화자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노인. 젊은 날 해외에서 공부하며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다 이제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다. “젊은 날의 그 귀한 힘과 정성, 마음과 시간”을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에게 “함부러 나눠”주고 지금은 충분한 돈을 내고 요양원에 들어왔으나 가족도 없는 치매 노인인 탓에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값싼 요양원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평생을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데 헌신한 삶이지만 정작 누구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젠의 비참한 노후. 그리고 젠에게 곧잘 자신을 투영하는 ‘나’. 이는 ‘늙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자리할 수 있는 위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줄거리
외동딸을 둔 엄마인 ‘나’는 딸이 살던 집에서 쫓겨 날 처지에 처하자 딸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고, 딸은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한 집에서 딸의 연인과 마주하는 것도 모자라 딸은 동성애 문제로 대학에서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시위에 나서고, 급기야 함께 시위하는 사람들마저 집을 드나든다. ‘나’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이 거리에서 시위하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인생을 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분노와 미움은 딸의 연인을 향한다.
한편 노인요양병원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나’는 담당 환자인 젠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병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젠을 돌본다. 하지만 요양소는 가족도 없고 의식도 불분명한 젠을 저렴한 병원으로 옮겨 이익을 남길 생각뿐이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나’는 입장을 요구받고, ‘나’의 고민은 깊어져만 가는데……
■추천사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퀴어가 어떻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담론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이 소설은 담론을 가로지른다. 대학의 지식 노동자로 살지만 제대로 생존하기 어려운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은 칠레 출신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딸에게 쓴 편지 『파울라』에서처럼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한밤중에 다들 두려움에 떨며 숲을 가로지를까 말까 논의하는 사이 혼자 도주해 숲을 건넌 한 어린아이의 이미지처럼, 『딸에 대하여』는 대단히 앞서가는 소설이고 대담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죄인 것처럼 생각하는 엄마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그린과 레인도 다들 여성이고, 우리가 지금껏 기다려온 소설도 이런 여성들의 서사가 아니었는지. -강영숙(소설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 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본문 발췌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32쪽)
“이 애들은 유식하고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주먹을 쓰는 대신 주먹보다 강한 걸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뺏긴 줄도 모르고, 당한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거겠지.” (46쪽)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66쪽)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68쪽)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107쪽)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너무나도 분명한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129쪽)
딸에 대하여
작가의 말
작품 해설_실은, 어머니에 대하여 /김신현경(여성학자)
독자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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