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헤치고

원제 Under the Net

아이리스 머독 | 옮김 유종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5월 8일 | ISBN 978-89-374-6178-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25 · 464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영국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세기의 지성
아이리스 머독의 첫 번째 소설

말뿐인 이론과 언어의 그물로 뒤덮인 세상
나와 타인이 공존하는 진정한 삶을 찾아간 한 남자의 희극적 모험기
장폴 사르트르와 가깝게 교유했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플라톤주의의 도덕 이론을 연구했던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 『사르트르―낭만적인 합리주의자 사르트르』(1953), 『선의 지고성』(1970), 『도덕 지침으로서의 형이상학』(1992) 등의 탁월한 철학서를 집필한 세기의 지성 머독은 또한 훌륭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모두 26편의 소설을 쓴 그는 자신의 사상을 소설 속 세계로 창조했다. 지성과 위트, 고도의 진지함 그리고 인간관계에 내재된 긴장과 복잡성에 대한 정교한 분석은 머독을 현대 영국의 일급 작가로 올려놓았다. (머독은 『바다, 바다(The Sea, the Sea)』(1978)로 부커 상을, 『성과 속의 사랑 기계(The Sacred and Profane Love Machine)』(1974) 로 휘트브레드 상을, 『검은 왕자(The Black Prince)』(1973)로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받았다.)
이번에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 178번으로 소개하는 『그물을 헤치고』는 아이리스 머독의 첫 번째 소설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번역은 연세대 특임교수를 역임한 유종호가 맡았다.
▶머독의 소설에서 사회는 각자가 우연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풍요하고 모호하며 복잡한 환경으로 제시된다. ―유종호(「작품 해설」 중에서)

▶나는 나를 사실주의 작가로 본다. 나는 진짜 사람들과 진짜 살아 있는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리스 머독

▶이 책에서 독자는 소설가로서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한 지성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머독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큼이나 확실하게 우리에게 대안적인 세계를 보여 준다. ―《선데이 타임스》

편집자 리뷰

◆ 줄거리 ◆
20세기 런던. 번역일이나 하며 입에 풀칠을 하는 작가 지망생 제이크 도너휴는 잘생긴 외모를 내세워 여자들 집에 얹혀사는 뻔뻔한 인사이다. 어느 날 그와 그의 친구 핀은 얹혀살던 여자에게 진짜 애인이 생기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디에 빌붙어 볼까 궁리를 하던 중 제이크는 옛 애인 애너를 다시 만나 그녀의 여동생인 유명 영화배우 새디의 집에서 지내는 데 성공한다. 새디의 집에서 머물며 그녀에게 치근대는 남자를 막아 주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그런데 그 치근대는 남자가 바로 옛날 자신이 알고 지내던 친구 휴고임을 안 제이크는 망설이게 된다. 예전에 휴고의 생각을 훔쳐 자기 것인 양 책을 발표하고 나서 양심이 불편해 그와 연락을 끊었던 것이다. 이제 운명처럼 다시 그와 조우하면서, 제이크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옛 애인 애너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난다.

철학자가 쓴, 유쾌하고 다이내믹한 소설
― 희극적 비전, 견고한 서사, 능란한 구성과 인물 묘사, 도덕 문제에 대한 끈질긴 관심
철학도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란 말을 들으면 독자들은 곧 난삽한 관념 소설이나 사변적 수기를 연상하기가 쉽다. 그러나 다행히도 또 신통하게도 머독은 이러한 우울한 예상을 뒤엎어 준다. 강아지 납치, 휴고와의 해후, 연설회에서의 충돌, 혁명 기념일의 파리, 심야의 병원 탈주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쉴 새 없이 다채로운 사건들이 일어나니, 독자는 긴장과 호기심을 놓을 틈이 없다.
이는 머독 자신의 소설관에서 연유한 것으로, 그 소설관은 그의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머독은 영어로 된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인 『사르트르―낭만적 합리주의자』에서 『구토』를 사르트르의 철학적 신화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데 있어 사르트르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끈기 있게 해명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경험한 패배와 상실의 고뇌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극작가로서의 사르트르를 인정하는 대신에 소설가로서의 사르트르는 몹시 인색하게 규정한 것으로, 우수한 소설을 쓰려면 살아 있는 인간관계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 유종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제이크나 핀, 파격적인 휴고, 과격파 레프티, 희화화된 데이브, 도통한 듯한 팅컴 부인, 반속과 통속의 애너와 새디 등 모든 작중 인물들이 신선하고도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문체는 경묘하면서도 정치한데 그 속을 깔끔한 서정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 제이크가 파리로 가서 파리와 문답하는 장면이나 맥덜린의 봉을 놓고 상상의 날개를 펴는 장면 등은 발랄하고 세련된 시정(詩情)을 얻고 있어 일품의 산문시로 승화되어 있다. 독자들은 진정한 작가를 지향하게 된 제이크나 시계 제작공으로 자족하겠다는 휴고를 다시 대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머독의 소설에서] 현실은 개인이 타인의 존재와 타인의 경험의 타당성을 승인함으로써 비로소 파악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개인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통해서 자유를 획득한다. 사랑은 개인들로 하여금 타인과 떨어져 있음을 이해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머독의 소설에서 사회는 각자가 우연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풍요하고 모호하며 복잡한 환경으로 제시된다. 또 사사로운 인간관계의 상호 작용이 희극의 풍요한 원인이자 원천이 되어 있다. 희극적 비전, 견고한 서사, 능란한 구성과 인물 묘사, 도덕 문제에 대한 끈질긴 관심과 정신적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긍정이 머독을 영국 사회 소설의 전통 속에 자리 잡아 주면서 일급의 현대 영국 작가로 올려놓고 있다는 것이 비평적 정설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작가인 머독이 소설가의 특권인 허구 조성에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면서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뜻밖의 놀라운 국면들을 찾아낸 덕분에, 철학적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사색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인간들의 풍요로운 세계를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핍진하게’ 담을 수 있었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풍요로운 세계
―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둘러싼 모험
소설의 주인공 제이크는 매사를,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인물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때문에 잇달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제이크가 보기에 모두 예기치 못한 것들이 된다. 이렇게 언뜻 평범하고 무사해 보이는 일상세계의 저변에서 작가는 풍요한 또 하나의 낯선 세계를 펼쳐 보인다.
단적인 예로, 제이크는 옛 애인 애너를 다시 만나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아니 전보다 더욱 깊어졌음을 느끼며 그녀를 갈망한다. 그러나 우연히 재회한 휴고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제이크는 그것이 당연히 애너일 거라고 생각한다. 애너는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질 만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가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으로 휴고는 애너의 동생 새디를 연모하고 있었다. 제이크가 보기에는 경박하고 인정머리 없을 것 같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제이크와 휴고, 애너, 새디 네 사람의 사랑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제이크는 애너를, 애너는 휴고를, 휴고는 새디를, 새디는 제이크를 사랑하는 사랑의 숨바꼭질은 머독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유머러스한 상황은, 제이크가 애초에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네 사람의 관계를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희극적 효과를 발휘한다.
번역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작업하는 작품의 문학성을 폄하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훤하다고 자부하면서 만사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정치적 신념은 없지 않다고 하나 의견을 표명하거나 정치적 행위를 하는 데는 소극적인 ‘지식인’의 모습, 이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크의 모습인 동시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 본위로만 살아가던 제이크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모험들에 휘말린 끝에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를 깨닫고 마침내 제대로 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언어와 이론의 그물을 헤치고 나서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진정한 삶
―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진실
작품의 제목인 ‘그물을 헤치고‘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휴고와 나눈 대화들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인 『말문을 막는 것(The Silencer)』에서 나온 것이다. 제이크와 휴고는 제약 회사의 감기약 실험에 실험 대상자로 참여해 연구소 기숙사에 만난 사이다. 제이크는 휴고의 화술과 인품과 사상에 매혹되었고 두 사람은 때로 밤을 새워가며 토론을 벌였다. 퇴원 후 제이크는 휴고와 나눈 대화를 자료로 해서 『말문을 막는 것』이란 대화체의 책을 써서 출판한다.
제이크가 매료된 휴고의 사상, 즉 『말문을 막는 것』에 ‘도용’한 휴고의 사상이란, ‘언어란 그 자체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연장’이며, ‘이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모두 도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론과 일반론에서 멀어지려는 운동이 곧 진리에 가까워지는 운동이오. 이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모두 도피요. 우리는 상황 그 자체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하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이오. 이를테면 그물을 헤치고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아무리 기를 써도 이만하면 됐다는 정도로는 결코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오. (본문 중에서)

바로 이 대목에서 철학자 머독의 면모가 확인된다. 머독은 인간의 실재는 개념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활동으로는 포착할 수 없으며 오직 행위를 통해서만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진실에 접할 수 있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모델로 한 인물, 휴고
작중 인물인 휴고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모델로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휴고는 비트겐슈타인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다. 오스트리아 산업계의 거물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점, 1911년에 영국에 건너와 러셀 아래서 철학 공부를 했으나 1차 대전 중 오스트리아군에서 복무한 후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소박한 금욕주의 생활에 헌신한 점, 재산을 형제 및 친척들에게 양도한 후 철학을 포기한 것, 그 후 초등학교 교사, 건축사, 수도원 정원사로 일했다는 이력이 휴고의 그것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현대 분석 철학의 원조라는 그의 두 저서 『논리 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의 경구적 문체는 『말문을 막는 것』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언어로 읽는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

이 소설은, 1957년 평론으로 등단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안목과 정치한 문장, 깊이 있는 분석을 발휘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 온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손을 거쳐 한국에 소개되었다.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기 위해 원문의 생략과 과도한 윤문도 불사하는 근래의 번역 풍토나, 개성 없는 번역문들이 넘쳐나는 외국문학 시장을 생각해 볼 때, 개성적인 문체와 유려한 우리말 구사로 작품에 풍미를 더하는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또 한 권의 소설을 번역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 옮긴이 유종호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7년 《문학예술》에 평론 「불모의 도식」, 「언어의 유곡」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문학과 현실』,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시 읽기의 방법』 등 꾸준히 평론집을 발표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해 왔다. 공주사범대, 인하대,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연세대 문과대학 특임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퇴직하였다. 현대문학상, 서울문화예술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은관 문화훈장, 인촌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유종호 전집』(전5권) 외에 『나의 해방 전후 1940~1949』,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파리대왕』, 『이솝 우화집』, 『제인 에어』(전2권) 등이 있다.

목차

그물을 헤치고   9

작품 해설   443
작가 연보   452

작가 소개

아이리스 머독

20세기 영국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작가. 19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런던으로 이주했다. 1938~1942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고전문학과 고대사, 철학을 공부하고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뉴넘 칼리지에서 계속해서 철학을 공부했다. 1948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세인트 앤즈 칼리지에서 교편을 잡아 15년간 철학을 강의했다.

1953년 영어로 된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 『사르트르―낭만적 합리주의자』를 발표하고, 이후 「선의 지고성」을 비롯한 탁월한 철학적 저술들을 쓴 머독은 1954년에 첫 번째 소설 『그물을 헤치고』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의 재능까지 발휘하기 시작한다. 1995년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세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는 『종』, 『잘려진 머리』, 『일각수』, 『검은 왕자』 등 25편의 소설을 더 발표했다. 예술, 도덕, 진실, 자유 그리고 선 사이의 관계를 일관되게 탐구한 머독의 소설들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블랙 유머와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을 활용해 살아 있는 인간들의 일상 세계를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르트르와 비트겐슈타인, 플라톤 등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프루스트, 셰익스피어 등을 열심히 읽었던 머독은 지식인 중상 계급의 일상을 날카롭게 보여 주었고, 이 작품들로 부커 상과 휘트브레드 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머독은 1999년 앓고 있던 알츠하이머병의 증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남편 존 베일리가 쓴 회고록 『아이리스』가 주디 덴치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유종호 옮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공주사범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2006년 연세대학교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써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한국근대시사』, 『나의 해방 전후』,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등이 있고 역서로 『파리대왕』, 『제인 에어』, 『그물을 헤치고』, 『미메시스』(공역)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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