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하일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4년 7월 14일 | ISBN 978-89-374-8920-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5 · 312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현대판 삼국유사, 새로운 질마재 신화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신비로운 고장 단양(丹陽)

열두 살 소년이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본 원형(原型)의 세계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소설을 끊임없이 창조해 온 하일지 문학의 진수

 

1990년대 한국 문단의 ‘사건’이라 할 『경마장 가는 길』을 비롯한 경마장 시리즈의 작가 하일지가 열두 번째 장편소설 『누나』를 펴냈다. 2012년 『손님』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누나』는 “현대판 삼국유사”, “새로운 질마재 신화”라 할 만한 놀라운 작품이다.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천진난만하게 그려 냈다. 그는 소년의 눈에 비친 신비로운 세계, 전설, 신화, 동화로 가득한 세계를, 설화와 구비문학의 형식을 차용하여 그려 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신비로운 세계를 섬세하게 재현해 내며, 작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토속적인 방언과 구어를 활용하여 한국인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는 세계를 충실히 구현해 냈다. 하일지 작가는 언제나 새로운 소설적 실험을 통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해 왔다. 이번 소설에서는 ‘서술 행위’ 자체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실험을 시도했다. 열두 살 소년의 눈에 이 세상은 온통 신비로운 세계, 전설과 신화와 설화와 동화로 가득한 세계다. 그 세계는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실’한 세계다. 소년의 순수하고 천진한 시선, 감칠맛 나는 대사, 넘치는 유머 사이로 진한 페이소스가 흐른다. 그러한 소년의 슬픔과 애환에 독자는 깊이 동조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

1990년대 하일지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거대한 전환점을 보여 주었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가차 없이 폭로하고 인간 심리의 출구 없는 상황을 거리낌 없이 그려 낸 다섯 편의 ‘경마장’ 시리즈를 통해 하일지는 문단과 독자를 충격에 빠뜨렸고, 이후 한국 문학의 진로를 전향시켰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진술』, 『우주피스 공화국』, 『손님』에 이르기까지 지난 25년 동안 그가 치열하게 추구해 온 실험적인 문학 세계는 우리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소설은 점점 더 빛나고 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놀랄 만한 작품을 들고 왔다. 『누나』는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신비로운 고장 ‘단양(丹陽)’을 배경으로, 열두 살 소년이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본 원형(原型)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하일지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미리 구상을 하지 않는다. 일단 첫 문장이 떠오르면 거기에 이어 두 번째 문장, 세 번째 문장을 쓰는 방식이다. 대개 그의 첫 문장은 자신의 시 구절에서 시작된다. 『누나』의 첫 문장 역시 그의 시집 『내 서랍 속 제비들』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다.

 

새벽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우체국 앞 상수리나무도, 향교 앞 은행나무도, 신작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나무들은 휘휘 소리까지 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흡사 밤늦도록 휘파람을 불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부랑자들 같았다. 나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밤이면 나는 으레 오줌을 쌌다.

 

문학평론가 이영준 교수는 이 작품을 일컬어 “현대판 삼국유사”라 했으며, 장석주 시인은 “새로운 질마재 신화”라 칭할 만큼, 이 소설은 열두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신비로운 세계, 전설, 신화, 동화로 가득한 세계를, 설화와 구비문학의 형식을 빌려 그려 냈다. 이 소설 속에는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걸어 다니는가 하면, 처녀가 늙은 떡갈나무에게 시집을 가고, 소가 학교에 가고, 동네 처녀가 물고기에게 강간을 당한다.

소설 속 배경인 충북 단양은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충청도와 경상도, 강원도의 경계 지역인 이곳은 ‘단양(丹陽)’이라는 이름처럼 햇살 가득한 신비로운 고장으로, 붉은 태양, 붉은 땅, 붉은 노을과 어우러지는 단양8경의 비경을 자랑한다. 특히 온달 장군이 하룻밤 만에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온달 산성은 『경마장 가는 길』의 모티브가 될 만큼, 단양은 하일지 문학의 원류이자 고향이다. 이러한 단양의 신비로움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누나』 속 전설과 신화와 동화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를 섬세하게 재현해 내며, 작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토속적인 방언과 구어를 활용하여 한국인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는 세계를 충실히 구현해 냈다.

 

● 믿을 수 없는 수다쟁이 화자의 탄생 

하일지 작가는 언제나 새로운 소설적 실험을 통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해 왔다. 기존 소설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가는 작법은 일반적인 소설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그동안 하일지의 소설 속 화자들은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을 보여 주었다. 기존의 한국 소설들이 작가가 화자의 이름을 빌려 소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해, 하일지 작가는 화자의 개입을 극도로 억제하는 서술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형용사 및 유추, 은유, 작가의 임의적 판단이나 느낌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카메라로 피사체를 포착하듯이 치밀하고 집요하게 객관적인 묘사를 해 왔다. 화자가, 더 나아가서는 작가가 작품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카메라 렌즈처럼 사건의 추이를 따라가 그대로 보여 주기만 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그런 그의 소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전작 『손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누나』를 통해 본격화되었다.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이용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던 화자에서, 서정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 자꾸 늘어놓는 바보에 가까우리만치 천진하고 수다스러운 화자로의 변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화자가 소설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음으로써 오히려 작가와 화자의 불일치를 강렬하게 환기시켜 독자로 하여금 도저히 작가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서술 행위’ 자체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러한 서술 행위를 통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지껄일 수밖에 없는 화자의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열두 살 소년의 눈에 이 세상은 온통 신비로운 세계, 전설과 신화와 설화와 동화로 가득한 세계다. 그 세계는 ‘사실’은 아닐지라도, ‘진실’한 세계다. 소년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시선, 감칠맛 나는 대사, 넘치는 유머 사이로 진한 페이소스가 흐른다. 열두 살 소년의 슬픔과 애환에 독자는 깊이 동조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하일지의 문학은 독자에게 어떠한 진실도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교양과 지식을 주거나,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깨우치려 들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는 ‘작가의 말’도 ‘작품 해설’도 없다. 그저 독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그의 소설을 읽기를, 그리고 그들 자신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워, 그렇게 갱신된 감각을 통해 삶의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일지 작가는 누구보다 잘 쓰는 작가가 아닌, 나밖에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의 소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새로운 이유다.

 

● 본문에서

“그 집은 왜 그렇게 가난해?”

어느 날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너무 착해서 그렇대.”

누나가 대답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착한 사람은 왜 가난해지는 거야?”

누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대답을 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옛날에 우리가 처음 이 마을로 들어왔을 땐 정말이지 먹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했는데, 그때 허표네는 끓여 먹으라고 좁쌀 한 되를 퍼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착한 사람은 그렇게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퍼 주니 가난해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절대 착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다시 누나에게 물었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

누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남이야 죽든 말든 신경 안 쓰면 되겠지 뭐.”

“그거야 뭐 쉽네.”

“그렇지 뭐.” ―22~23쪽

 

하루 세 끼 밥을 거르지 않고 먹게 하기 위하여 정말 아버지는 등에 땀이 나도록 일했다. 낮에는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어두워지면 장작 한 짐을 지게에 지고 읍내로 갔다. 여관집이나 도갓집이나 약국집에다 넘기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나무 지게를 지고 어둠 속으로 떠나면 우리는 조죽을 먹었다.

좁쌀 한 줌에 소금 한 숟가락을 퍼 넣고 멀겋게 끓인 조죽은 정말 맛이 없었다. 숟가락으로 떠 기울여 보며 건더기 하나 남지 않고 모두 주르르 흘러내렸다. 맹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맹물 같은 조죽을 저녁마다 끓여 내는 것은 계모가 장리 먹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멀건 조죽을 떠먹고 있노라면 때때로 나는 이것도 음식이라고 매일 저녁 만들어 주는 계모에 대하여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나도 이복동생들도 그리고 계모 자신도 그걸 먹었으니까 말이다.

그 멀건 조죽 한 그릇을 비우고 누워 있으면 때때로 설움이 밀려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조죽만 먹다 보면 나도 머지않아 허도처럼 병들어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러운 생각도 잠시, 그보다도 나무를 지고 어둠 속으로 떠난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31~32쪽

 

누나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딱하게 여기고 있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이 산촌에 처박혀 줄줄이 낳아 놓는 이복동생들을 업어 키우고, 부엌일을 하고, 이 산 저 산 점심밥을 날라다 주고, 빨래를 하고 하는 일들이 고달프기는 할 것이다. 여름에 개울물이 불어 징검다리가 물에 잠기는 날이면 학교에 가는 나와 나의 이복동생을 업어 위태로운 물살을 헤치고 개울을 건네주는 것도 누나의 일이었다. 봄이 되면 먼 산에 눈이 녹아 갑자기 개울물이 불어 징검다리가 잠기는데, 그 물은 정말이지 살을 도려내는 듯이 차가웠다.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그 차가운 물을 헤치고 나와 나의 이복동생을 건네주는 것도 누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누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단지 일이 고달프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이 고달픈 것도 고달픈 거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누나를 힘들게 했다. 누나의 이런 딱한 처지를 그러나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3~74쪽

 

백자리에 사는 소두영네 늙은 암소는 소두영 삼남매, 두영이 두식이 두희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 처음에 소는 막내 두희를 따라 1학년 교실 안까지 들어갔다. 소가 교실 안까지 들어오자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1학년 담임 조신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상의했다. 교장 선생님은 1학년 교실로 가 소가 교실 안까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까닭에 대하여 소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소는 몹시 미안해하는 표정이 되어 후다닥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학교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라는 것을 소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소가 교실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니, 소두영네 소는 백자리 소라서 확실히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것이다. 상리나 하리 소라면 약아빠져서 절대 남의 웃음거리가 될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우리 남천 소만 해도 그렇다. 상하리 소들처럼 약아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례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96쪽

 

“난 나무들이 걸어 다니는 걸 봤어.”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말했다. 기염이는 신중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봤다면 그건 맞을 거야.”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다른 사람도 나무가 걸어 다니는 걸 봤을까 하는 거야. 넌 그걸 봤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기염이가 말했다.

“아니, 난 아직 못 봤어.”

이렇게 말한 기염이는 잠시 후 덧붙였다.

“그렇지만 내가 못 봤다고 해서 네가 본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 ―177쪽

작가 소개

하일지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리모주 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경마장 가는 길』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에서 생긴 일』, 『위험한 알리바이』,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새』, 『진술』, 『우주피스 공화국』, 『손님』, 『누나』, 영화소설 『마노 카비나의 추억』,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 Blue Meditation of the Clocks』, 『내 서랍 속 제비들 Les Hirondelles dans mon tiroir』, 이론서 『소설의 거리에 관한 하나의 이론』, 철학서 『하일지의 ‘나’를 찾아서』 등이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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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소년의 세상은 다양한 상상력과 충격과…
황정수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