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1999년 7월 12일 | ISBN 89-374-0324-2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48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 하일지의 신작, 독자를 기묘한 환상으로 이끌며 신비한 독서 체험을 제공하는 미술적 사실주의. A는 문득 자신의 몸에서 예사롭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팔이 저리고, 다리가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 하면 몸뚱이라는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굽어보았는데, 그 순간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로등 불빛이 쏟아지고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그는 어느 틈엔가 한 마리의 커다란 검은 새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편집자 리뷰

90년대 한국문학의 새로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하나인 하일지의 신작 장편 『새』가 출간되었다.
 
90년대 초반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이 나왔을 때, 한국문학의 대지는 급격한 지각 변동을 겪었다. 지각 변동의 표면에는 우리에겐 퍽이나 낯선 \’누보로망\’이라는 개념의 도입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신세대 문학의 등장과 새로운 소설 쓰기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 이후 무려 5편이나 되는 \’경마장\’ 연작을 통해서 산업사회 모순 속에 떠도는 현대인의 상을 그려낸 하일지는, 역시 이 시기에 같이 등장한 장정일, 이인화, 박일문 등과 함께 현대문학의 문제작가로 떠오른다. 구세대의 나태함을 꾸짖는 듯한 이들의 소설 쓰기는 때론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신 신세대 작가들(김영하,송경아,백민석 등)과 더불어 한국 현대문학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위험한 알리바이』 이후 4년 만에 발표하는『새』는 \’경마장 시리즈\’의 소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90년대 초반, 경마장 시리즈로 \’천민자본주의 한국의 일상 속의 부조리함\’을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의식 저층에 자리잡은 다양한 욕망/꿈들을 탐색\’한다. 즉, 전자가 드러내려는 궁극적 의미가 \’나를 둘러싼 세계(타자)의 부조리함 혹은 암울함\’이었다면, 후자에서는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작가는, 때로는 환상적 묘사로, 때로는 섬세한 심리 묘사로, 때로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후기산업사회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지친 현대인의 자아정체성을 그려 낸다.
『새』에서는 전통소설과 다른 양식상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건들은 인과율에 지배되지 않고 우연히 전개되며, 시간과 공간은 중첩 혹은 넘나들며, 인물의 아이덴티티는 정합해야 한다는 강박에 따르지 않는다. 사실주의(인과율)가 작품(텍스트)를 지배하는 것이 않는다. \’사실주의\’라는 낡은 그물망 대신에, 새로운 그물망(텍스트 사실주의 구축)을 짜 인간 심리의 제 양상을 그려 내 보이겠다는 의도이다. 여기에 의식의 저층을 탐구하기 위한 섬세한 심리 이미지 구축, 마술적/환상적 사실주의 묘사를 더한다. 궁극적으로 전통소설의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텍스트 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이 소설은 그의 \’경마장 시리즈\’와 함께 한국 소설에 새로운 기법을 가져온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새』의 기본 골격은 현대 한국의 한 평범한 남자(A)가 어떻게(왜) 실종되었는가를 다룬 소설이다. 그 남자는 모든 사건을 우연히 겪게 되며, A를 제외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미궁Labyrinth에 빠져든다. A는 현실에서는 실종되었으며, 환상(꿈) 속에서는 다른 삶을 산다. 그 미궁의 인물과 사건, 환경에 의해 A는 점점 자기의 자아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된다. 한때 환상 속의 다른 인물이 되어 낯선 환경에서의 또다른 인생을 살기도 한다. 그렇지만, A는 결국 자신이 원래 살던 곳에서 \’실종\’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A는 자신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도록 모든 미궁들을 해결해 내지만, A는 갑자기 \’새\’가 되고 만다.
 
 
 
*줄거리 
한 평범한 남자가 어느 날 실종된다면…… 16년 동안 근무했던 증권회사에서 해직당한 A는, 어느 날 \’신고산타령\’를 부르며 길을 가다가, 공중전화 부스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처럼 생긴 크고 검은 새를 보게 된다. 그후 새는 A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서는 A를 놀래키기도, 공포에 질리게 하기도 한다. 며칠 후, 도쿄호텔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새와 부딪친 A는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현실/환상을 넘나들며 모든 사건을 우연히 겪게 되고…… A는 \’도쿄호텔 빌딩\’을 들렀다 나와서 길을 가던 도중 한 어린 소녀와 만난다. 그 소녀는, 정부(情夫)와 짜고 자기의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3억이라는 보험금을 타내 갖고 있다. A는 그 소녀의 부탁으로 장님 남동생을 소녀에게 데려와 주기로 한다. 대신, A는 소녀에게 많은 돈은 보관하기 어려우므로 동생을 데려오는 대로 은행에 예금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블랙 버드\’라는 술집에서 정충식 씨를 찾아 \’새가 날아온다. 검은 새가 날아온다.\’라는 암호를 대면 동생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A는 그 말대로 정충식을 찾는다.
자기 자신을 빼놓고는 주변 모든 인물/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그렇지만 자기가 정충식이라고 자처하는 한 여자는(그녀의 실제 이름은 박은하이다) A를 \’상무\’에게로 데려간다. \’상무\’는 A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는데, 기차역에서 \’지팡이\’를 들고 어떤 사람과 접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A는 뭔가 미궁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지만,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암호는 역시 \’새가 날아온다. 검은 새가 날아온다.\’
A는 점점 현실 속의 자기를 잃어 가며(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며)…… 기차역에서 접선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A는 정희라는 여자(정희는 A의 직장 부하직원이자 애인인 김지영의 친구이다.)와 만난다. 정희의 얘기를 듣는 동안 A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혼동을 겪게 되고, 결국 A는 정희가 자신의 애인인지, 김지영이 애인인지 헷갈리게 된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인물에 둘러싸여 사는 또다른 인생을 맛보지만…… 정희와 헤어지고 난 후, 드디어 접선해야 할 남자(중절모의 사내)를 만나지만, 그 사람은 A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남천\’이라는 도시로 데려간다. \’남천\’에서의 그는 한 아리따운 여자의 남편이자, \’남천\’의 세도 있는 집안의 후계자로 되어 있다. A는 집사인 \’중절모의 사내\’에게, 또 \’남천\’에서의 아내에게, 자신은 이곳 사람이 아니며 그들이 믿는 그 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모두 이를 믿지 않는다. 할 수 없이, A는 \’남천의 A\’ 행세를 하게 된다. A의 가짜 행세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A는 탄로 나지 않고 남천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늙은 장님이 나타난다. 그는 A가 가짜임을 알고 있으며, A에게 \’남천\’에서 빠져나오는 길(도쿄호텔 빌딩)을 가르쳐 준다.
A는 결국 자기 자신이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장님의 안내로 \’남천\’에서 빠져나온 A는 드디어 집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A의 가족들은 A를 알아보지 못하고, A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특히, A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예전에 박은하라는 여자와 찾아갔던 \’상무\’라는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 가족들에게서 쫓겨난 A는 노부모가 사시는 중곡동에 찾아가지만, 노부모 역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또, 그의 애인 김지영을 찾아가지만, 김지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친구인 정희가 그를 자기 애인이라고 말한다. 그 집에서도 쫓겨나와 지하철의 노숙자들 틈에 낀 A는, 그들의 얘기를 듣다가 흠칫 놀란다. 바로 그들의 삶이, 열에 아홉은, A의 체험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본래대로 되돌릴 수 있도록 모든 미궁을 해결하지만…… 지하철역에서 하룻밤 노숙하고 난 A는, 혹시나 해서 도쿄호텔 빌딩을 찾아간다. 그 앞에서 A는 한 장님 소년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 장님 소년이 자신을 이토록 헤매게 만든 그 소녀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소년을 누나에게로 데려갈 수 있었다. 소녀는 A와의 강압적인 약속 때문에 돈을 은행에 예금하였고, 그들은 곧 헤어진다. 헤어져서 다시 집으로 향하던 A 앞에 신문 호외가 떨어진다. \’은행 지불 정지 선언.\’ 곧 A는 어린 소녀에게 은행에다 돈을 예금하라고 강압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불과 한 시간 후에 은행들이 파산 선고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고집스럽게 예금하라고 권한 것이다.
A의 몸은 새로 변하고 만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이 A의 몸에서는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난다. 팔이 저리고, 다리가 오그라들며, 몸뚱어리는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자신의 모습을 굽어보니, 어느 틈엔가 커다란 검은 새로 변한 것이다. 너무나 당황한 A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무섭고 암담하여 처량한 생각이 난다. 자신의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모습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공중전화 부스를 지나가는 한 사십대 중반의 사내를 보게 된다. 흥얼흥얼 \’신고산타령\’을 부르며 가고 있던 그 남자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뒤를 돌아봤을 때, A는 당황하여 푸드득 날개를 치며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그 모습에 그 남자가 흠칫 놀라며 공포에 질리자, A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무 죄 없는 그 남자에게 적당히 사과라도 하려고 그 사내를 따라간다.
 
 
 
작가는 이 소설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후기」를 덧붙여놓았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생산해 놓은 소설들을 돌아보면 소설이란 크든 작든 나름나름으로 명백한 하나의 의미를 구축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모든 것은 명백했다. 그것은 흡사 정물화처럼 안정된 구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늙은 어부들의 낡은 그물로는 도저히 건져 올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심원한 바다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참으로 진귀한 어족들을 잡아 올리려면 그 엉성한 의미의 그물은 진작에 포기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상투적인 그물망\’에 포획될 수 없는 인간사의 제 양상을 포획하기 위해, 소설문학의 낡은 율법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어겨 나간다. 이러한 태도 혹은 방법론에 의해 탄생한 것이 \’경마장 시리즈\’였고, 이 책 『새』 역시 그러한 의미의 적극적 창작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목차

마침내 새가 A의 이마를 부딪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A는 길을 잃어버리다 A는 낯선 여인의 품에 안겨 잠들기에 이르다 장님이 A에게 길을 가르쳐주다 A는 자신의 실종을 알게 되다 마침내 A는 한 마리 새가 되다
작가 후기

작가 소개

하일지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리모주 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경마장 가는 길』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을 위하여』, 『경마장의 오리나무』, 『경마장에서 생긴 일』, 『위험한 알리바이』,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새』, 『진술』, 『우주피스 공화국』, 『손님』, 『누나』, 영화소설 『마노 카비나의 추억』, 시집 『시계들의 푸른 명상 Blue Meditation of the Clocks』, 『내 서랍 속 제비들 Les Hirondelles dans mon tiroir』, 이론서 『소설의 거리에 관한 하나의 이론』, 철학서 『하일지의 ‘나’를 찾아서』 등이 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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