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섹스2

원제 MIDDLESEX

제프리 유제니디스 | 옮김 이화연, 송은주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1월 25일 | ISBN 89-374-8039-5

패키지 변형판 152x223 · 384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2003년 퓰리처상 문학 부문 수상작. 한 해 동안 30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게놈 시대를 여는 새로운 소설.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년 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 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다시 한 번 남자아이로 태어났다.”

편집자 리뷰


14년 동안 여성으로 자란 칼리오페는 어느 날 자신이 남성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된다. 5알파환원효소결핍증후군. 남녀를 모두 살아 낸 그리스 신화의 티레시아스, 혹은 헤르모디토스를 닮은 칼리오페. 그녀의 “변신 이야기”는 할머니의 죄의식과 맞물린 집안의 비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비로운 그리스 가족의 대서사시는 폐허가 된 올림포스 산 위에서 꽃피는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클라리넷 세레나데로 맺는 에로틱한 사랑을 지나, 소녀들의 통과의례와 같은 칼리의 낭만적인 성적 모험에 이른다. 롤러코스터를 탄 변형된 유전자의 시간 여행은 3대를 걸쳐 칼(리오페)의 몸에 종착하지만, 그(녀)의 오디세이는 끝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아름다운 여성이기를 갈망했고 나중에는 사회적으로도 완전한 남성이기를 꿈꾸지만 좌절과 슬픔을 겪는다. 약자와 소수에 대한 따듯한 시선, 차이가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꿈꾸는 칼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경쾌하게 이어진다. <미들섹스>는 성과 젠더를 포함하여 근친결혼, 인종 차별, 약소민족, 사회생물학적 결정론 등 현대 사회의 쟁점을 독창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 MIDDLESEX: 정체성 혼란, 우리 자신의 이야기▶ 경이롭고 풍성한 이야기, 야심 찬 소설. 아름다운 성공작이다. ―살만 루시디
“미들섹스middlesex”는 참으로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트랜스젠더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조선 시대 야사에 등장하는 사방지(舍方知)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가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애꿎은 상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든다.…칼리오페는 ‘5알파환원효소결핍증’이라는 희귀한 유전인자를 안고 태어난다. 이 유전자는 염색체가 XY인 아이에게서 여성의 성기를 닮은 기형적인 형태의 생식기로 발현되지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칼리오페는 여자로 양육되었으면서도 남자의 염색체를 가진, 남자로 살아가면서도 여자의 감성을 지닌 ‘미들-섹스’적인 인간으로 타고난 것이다.(<옮긴이의 말>) 칼리오페의 성별은 태어나기 전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딸을 원했던 레프티와 테시 부부는 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의 조언을 따라 딸을 “만든다”. 그러나 한 번도 성 감별에서 틀린 적이 없었던 데스데모나는 며느리 테시의 배 위에 은수저를 올려놓고 점을 친 결과 아들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아들 레프티는 딸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면서 “그게 과학이에요, 엄마.”라고 대답한다. “미들섹스”는 주인공 칼리가 사춘기를 보내게 되는 디트로이트의 한 주택 단지 이름이다. 이 제목은 성 정체성의 혼란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 과학, 구세대와 신세대,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혼란을 암시한다. 옮긴이는 주인공 칼리를 보편적인 인간의 대명사로 해석한다. “칼리오페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아우른 인류를 상징하고,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에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오늘날 인류 문명의 중심인 미국을 본거지로 살아가는 ‘미들-문화’, ‘미들-인류’적인 인물이다.”양성인간의 이야기는 언뜻 우리와 상관없는 삶 같아 보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현실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 주제를 파고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양성인간을 소재로 택한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동떨어지거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미들섹스>를 쓰기 위해 난 내 청소년기의 기억을 꺼냈다.” 일반적으로 성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은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칼리는 전혀 유별난 캐릭터가 아니다. <미들섹스>의 칼리는 우리에게도 친근한 그리스 특유의 가족애와 긴밀한 유대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내 의도는 독자가 내 책을 읽고 특수한 상황을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미들섹스>에서 칼리오페(여자)가 칼(남자)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내가 그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내가 그토록 많은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바로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이해되기를 원했기 때문이고, 티레시아스처럼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 20세기 젠더 위기:환경 결정론, 사회생물학적 결정론, 유전자 맹신론 비판
열네 살의 칼리는 엄마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하지도 않는 월경을 한 것처럼 탐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판판한 가슴을 패드를 넣은 브래지어로 부풀린다. 어느 날 하키 공에 맞아 응급실에 실려 간 칼리는 묘한 진단을 받고 뉴욕에 있는 성 정체성 클리닉을 찾게 된다. 진단을 맡은 루스 박사는 섹스 칼럼니스트로서 인기 높은 의사이며, 교육 환경이 성 정체성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는 칼리의 염색체가 XY임을 숨기고 칼리에게 여성이 되는 성형수술을 시행하려고 한다. 한편 칼리는 루스 박사의 진료실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들을 듣고는 도서관을 찾는다. 칼리가 대사전을 펼치고 따라간 실마리는 “요도하열”→“환관”→“양성인간”→“괴물”에 이르고는 충격에 휩싸인다.(<웹스터 사전에서 나를 찾아내다>) 결국 자신이 유전자적으로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칼리는 그토록 딸을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출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랑자로 지내기도 하고, 핍쇼에서 다양한 부류의 간성(間性) 인간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독자적인 모험을 감행한다. 저자는 칼리의 성적 혼란을 통해 환경 결정론, 사회생물학적 결정론, 유전자 맹신론 등을 모두 비판한다. 루스의 성 정체성 이론이 1970년대 초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유니섹스 스타일이 인기였으니까. 인격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는 환경이며, 아이들은 이제 새로 써넣어야 할 빈 석판 같은 존재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겪은 일도 당시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겪고 있던 움직임의 반영일 뿐이었다.…1970년대에는 한동안 성차(性差)가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그때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진화론적 생물학이라고 불린 것이 그것이다. 그 영향으로 남자는 사냥꾼으로, 여자는 채집자로 다시 분리되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를 형성하는 건 양육이 아니었다. 그건 자연이 하는 일이었다.…오늘날 텔레비전이나 잡지를 보면 진화론적 생물학을 단순화한 이론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왜 남자들은 의사소통에 서툰 것일까?(사냥을 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하니까.) 왜 여자들은 그렇게 의사소통에 능할까?(과일을 따러 나가면 서로 큰 소리로 불러야 하니까.)…이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다. 이제 똑같이 되는 데 싫증이 난 남자들과 여자들은 다시 달라지고 싶어 한다.…그러니 루스 박사의 이론이 1990년대 들어 공격을 받게 된 것도 역시 놀랄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텅 빈 석판이 아니었다. 모든 신생아들은 이미 유전자와 진화에 의해 각인된 채 태어났다. 나의 삶은 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어떤 의미로는 그 논쟁의 해답이었다. 처음에 내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루스 박사는 일생일대의 발견을 놓쳤다는 아쉬움에 절망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마도 내가 도망친 이유를 알게 된 후, 내가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니라 반대로 뒤집는 증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내가 조용히 있어 주길 바랐다.(<헤르마프로디토스>)
■ 현대의 삶 속에서 신선하게 되살아난 그리스 신화, 유쾌하게 들려주는 비극▶ 이전의 진지한 소설에서 그토록 젠더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남성 작가는 상상하기 힘들다.―Publisher\’s Weekly
올림포스 산 위에서 맺는 남매 간의 사랑은 제우스와 헤라를 생각나게 한다. 한편 칼리의 성 정체성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살아간다는 점에서 티레시아스를 닮았으며 또한 남성으로 살면서도 여성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닮았다. 저자는 어릴 적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티레시아스를 읽고는 “남녀 성을 모두 경험한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티레시아스는 교미하고 있는 한 쌍의 뱀에게 지팡이를 던졌더니 여자로 변했다. 7년 후에 같은 뱀을 보고 또 지팡이를 던졌더니 다시 남자로 돌아왔다. 한편 제우스와 헤라는 어느 성이 더 섹스를 즐기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데, 흥미롭게도 제우스는 여성 쪽이라고 했고, 헤라는 반대로 남성 쪽이라고 했다. 결국 티레시아스가 호출되었고, 그의 대답으로 헤라가 졌다. 열 받은 헤라는 티레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었지만, 티레시아스는 후에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년인데, 헤르마프로디토스에게 반한 한 요정이 그와 영원히 결합하게 해 달라고 신들에게 간청하여 반은 남성, 반은 여성인 존재가 탄생했다.) 또한 주인공 “칼리오페”는 아홉 명의 뮤즈 중에서 “서사시의 수호신”답게 가슴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시로 만든다. 이것은 모두 전지(全知)와 관련 있다. 저자는 주인공 칼리에게 코믹한 방식으로 이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그러니까 칼리는 불가능한 것을 아는 능력을 받았다. 칼리는 아마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가족사를 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남성으로서 여성의 감성을 그리는 데 있어서 저자는 “남자와 여자로서 우리 각각의 경험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기본적인 신념”을 따랐다. 소설가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모두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누구나 양성인간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칼리가 라커룸에서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던 사춘기 에피소드는 양성인간만 겪는 경험이 아니라, 남녀 모두가 겪는 사춘기 경험이다. 이처럼 저자는 ?미들섹스?에서 양성인간이라는 허구의 상황 속에 독특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모든 독자에게서 공감대를 얻어낸다. 이 책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현실적인 유머 감각이다. “작가는 때로는 천진난만하게, 때로는 능청스럽기 짝이 없게 독창적이고도 풍부한 유머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어떤 비극적인 순간일지라도 한 걸음 떨어진 초연함과 여유,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우스갯소리로 한 꺼풀 씌워 놓는다. 심지어 칼리가 가출한 뒤 백방으로 딸을 찾으려고 애쓰던 아버지가 거짓 유괴의 음모에 걸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까지도 작가는 문학적인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유머러스한 비극을 그려 내고 있다.”(<옮긴이의 말>)
■ 20세기를 마감하는 역사 오디세이▶ 20세기 현대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남성과 여성, 약자와 강자, 흑인과 백인, 구세계와 신세계, 은수저로 대변되는 전통과 현대 과학 간의 격차.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긴장과 투쟁. ―《뉴욕타임스》
1920년대 노동자들의 삶, 흑인 인권 운동의 한 획이자 말콤X가 속했던 ‘이슬람 동포’, 금주법 시대의 밀주 산업, 1970년대 부촌 그로스포인트의 사립학교 라커룸 풍경까지. 현금을 주지 않고는 그리스계 가족이 집을 살 수 없는 부촌 그로스포인트라는 지역 사회의 초상.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듀카키스에 대한 코믹한 터치. 고향을 잊지 못하는 할머니, 미국인이 되고자 하는 열렬한 동화주의자인 밀턴, 그리고 그리스에 대해 가 보지도 못한 칼리까지 3대의 다양한 시선이 담겨 있다.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디트로이트는 포디즘Fordism을 낳은 자동차 도시로서 20세기 산업화의 중심지이자, 마돈나와 에미넴을 낳은 도시이면서 인종 폭동으로 파괴된 도시이기도 하다. 즉 미국 역사의 주요 쟁점들이 모두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에 녹아 있는 것이다. 한편 1920년대에서 시작되는 가족사는 각 시대를 대변하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준다. 터키의 지배를 받는 스미르나에서 양잠을 치는 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남매 데스데모나와 레프티는 자신들도 모르게 은밀한 사랑에 빠져들다가 마침내 전화(戰火)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미국행 배 위에서 둘은 근친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어 마치 자신들을 속이려는 듯 배 위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되어 결혼한다. 레프티에게 데스데모나는 코르셋만 입으면 언제나 가슴 설레게 만드는 새로운 존재였다. 가슴 조이며 비밀스러운 사랑을 품고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데스데모나 커플과 달리 아들 밀턴은 대담한 사랑으로 빠져든다. 밀턴은 어느 날 새침데기 육촌의 맨발을 보고 그녀에게 반한다. 밀턴은 그녀의 무릎, 목과 쇄골, 가슴, 점점 깊은 곳에다 클라리넷을 바짝 대고 세레나데를 불어 젖히며 에로틱한 사랑을 즐긴다. 겁에 질린 데스데모나가 근친 관계의 고리를 끊고자 노력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화는 이 둘을 오히려 더 가깝게 묶어 준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칼리는 여학교 단짝만 보면 부뉴엘의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자꾸 빠져든다. 칼리는 제롬과 낭만적인 성적 모험을 감행하지만 한편으로는 “모호한 대상”과의 육체적인 탐험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다른 여학생들과 다르며, 그것은 다리 사이에서 자라기 시작한 예민한 크로커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가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1920년대까지 문학에 비친 영국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되살려 낸 역사물이라면,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는 터키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여 포드 시대, 경제 대공황 등을 거쳐 살아남은 한 유전자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 낸 역사물이다. 솔 벨로의 <오기 마치의 모험>이 시카고를 배경으로 20세기를 헤쳐 나가는 가난한 유대계 청년을 그린 피카레스크 소설이라면,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는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21세기의 성 정체성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그리스계 소녀(소년)의 성장 소설이다.
■ 사춘기에서 성인이 되는 변신이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칼리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겪는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그것은 사춘기에서 성인이 되는 변신이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제프리 유제니디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칼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혼란스러웠던 청소년기의 모습이다. 간성(間性) 인간이 현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러한 운명은 보기 드문 비극이며 상처 깊은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 비극적인 운명을 성 정체성에 국한하지 않고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는 보편적인 주제로 승화한다. 칼리가 안착하는 곳은 바로 “자유의지”다. 나는 그 어떤 이론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이론은 물론이고 루스의 이론에도. 나의 심리 구조는 인터섹스intersex 운동에서 인기를 얻었던 본질주의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다루곤 하던 이른바 가성 양성인간과도 다른 게, 나는 소녀로 있을 때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남자들 틈에 있으면 좀 불편하다. 욕망에 이끌려 나는 다른 편으로 넘나들었다. 욕망과 너무나도 생생한 내 육체 때문에. 20세기 들어, 유전학은 우리의 세포에 고대 그리스의 운명 개념을 부여했다. 이제 막 시작된 신세기에 발견된 사실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우리 몸속에 묻혀 있는 유전 정보는 한심할 정도로 초라하다. 20만 개는 될 줄 알았는데, 인간의 유전자는 고작 3만 개뿐이다. 생쥐보다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낯설고 새로운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슬아슬 흐릿한 밑그림으로 남았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것, 자유의지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은 우리에게 뇌를 주었고,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비로소 뇌에 정신을 담는다.(<헤르마프로디토스>)저자는 유전자적인 결정론이 물론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미들섹스>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자유의지를 찾아 주려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운명”이라는 것이 현대에 와서는 “유전자”라는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생쥐보다도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저자는 “뭔가 다른 것이 작용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라고 강조한다.
■ 신비로운 그리스 가족의 아름다운 대서사시▶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가 말하는 젠더, 가족, 현대사 ―《뉴요커》
이 소설은 한 양성인간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가족 로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 프랑스 수녀원의 한 양성인간 얘기를 읽었는데 정말 멋진 스토리였고 뭔가 매력적인 구석이 많았다. 의학적인 미스터리, 자기 변신과 운명적인 열정… 또래 여학생을 사랑하면서 자신이 양성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얘기. 그런데 멜로드라마에 불과했고, 해부학적인 언급이 없는 데 아쉬워서 내가 직접 써 보기로 했다. 그래서 양성인간에 대해 연구했고, 마침내 알맞은 소재로 찾은 것이 ‘5알파환원효소결핍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의 현저한 특징은 근친이 흔한 외떨어진 집단 안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터키의 지배 아래 있던 소아시아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그리스계의 내 조부모님들은 어땠을까? 내 가족사를 허구적으로 재생해 볼까? 여기서 나는 가족사를 다룬 대서사시를 쓰되 유전자가 3대에 걸쳐 내려오다가 한 소녀의 몸에서 정체를 드러내어 그 소녀가 변신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들섹스>는 뿌리와 뿌리 없음에 대한 얘기다. 밀턴은 부모님의 고향인 소아시아와 조상의 문화인 그리스어를 잊고 살아가지만, 칼리의 유전자는 그리스 조상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소설은 “전승”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유전자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것들도 모두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동기, 시나리오, 심지어 운명까지도.” 저자는 실타래처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비유를 자주 내비친다. 칼리는 유전자의 힘을 통해 과거의 지속성을 배운다. 한편 터키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는 약소민족으로서의 삶은 한국의 정서와도 맥을 같이하며, 세계의 경제 대국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삶 역시 한국인의 경험과 통한다. 옮긴이는 이 소설이 한국 독자에게 주는 감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터키에 얹혀사는 그리스인들의 암울한 현실과 참혹한 전쟁, 수십만 명이 희생된 스미르나의 대화재, 그리고 미국에서의 경제 대공황, 흑인 폭동…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많은 순간들이 나오지만 작가는 마치 지나간 역사의 한 장면을 이웃집 할머니에게서 듣는 것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낸다. 우리에게 무척 생소한 이야기이면서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언젠가 본 것 같은 느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뛰어난 문학성이란 바로 이러한 보편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칼리의 혼란은 비단 성과 젠더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 학교, 지역 사회, 국가에 대한 혼란을 대변하며, 가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족 밖으로 뛰어나왔던 칼리의 모험은 한국 가정의 현실과도 크게 닿아 있다.
■ 교묘한 시점 변화, 클래식한 서술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
<미들섹스>는 이제 마흔한 살의 남성으로 살아가는 칼의 1인칭 전지적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시점이 교묘하고도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클래식하면서 예스러운 목소리는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주인공이다. 1인칭 화자의 경우는 보통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을 얘기할 수 있는데, 저자는 다양한 시점의 공존이 바로 가장 어려운 문제였고, 이 두꺼운 책을 쓰는 데 8년이나 걸린 이유라고 설명한다. “1인칭 전지적 시점을 만드는 데 2년이 걸렸다. 칼리의 변신이 낯설지 않고 친근한 이야기로 다가왔으면 했기 때문에 1인칭 시점이 꼭 필요했다. ‘나’라는 인칭대명사로 얘기하고 싶었다. 또한 우리는 모두 그, 혹은 그녀 이전에 ‘나’라는 시각이 작용했다. 하지만 조부모, 부모 얘기의 경우에는 1인칭 시점으로서는 그들이 느끼는 것을 말할 수 없다. 그건 건조한 전개와 관음증 같은 분위기가 날 것이다. 그래서 3인칭 시점으로 옮겨갈 수 있는 1인칭 시점을 창조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우선 나 스스로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 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글을 써 보았다.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이다가 마침내 1인칭과 3인칭 둘 다 가능한 화자를 만들어 냈고, 나중에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칼의 얘기가 지어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칼로서는 알 수 없는 얘기를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상황을 창조했다.” 1인칭 전지적 시점은 또한 성경과 같은 종교적인 문헌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미스터리에 싸인 목소리야말로 저널리즘과 다른 문학만이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성경 속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지혜로 가득하고, 마치 마술에 걸린 듯 빨려들면서 귀 기울여야 할 것만 같은 목소리다. 난 이렇게 화자의 목소리를 추적할 수 없는 책을 좋아한다. 그것은 문학만의 독특한 목소리다.”

♥♥♥ 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
1960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으며 열여덟 살까지 그로스포인트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계 2세이고 어머니는 영국-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에는 인도 캘커타에서 테레사 수녀를 도우면서 함께 일했다. 자신의 천직을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이후 소설 창작에만 열중한 유제니디스는 1988년 첫 단편집을 출간했고, 2002년 문예지에 발표한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에게 주는 상인 “아가 칸Aga Khan Prize”을 받았다.《뉴요커》 등은 유제니디스를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첫 장편소설 Virgin Suicides(1993)의 성공으로 유제니디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얻었고, 이 작품은 뛰어난 극적 구성력 덕분에 곧 영화화되었다. <미들섹스>는 출간 전부터 빅뉴스가 되면서 아마존 소설 부분 10위권 안에 머물렀고,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유제니디스는 현재 부인과 딸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목차

지중해식 식이 요법 울브렛, 유일한 목격자 좀 더 감상적으로 모호한 대상 사랑에 빠진 티레시아스 살과 피 벽에 걸린 총
4부 신비스러운 음문 웹스터 사전에서 나를 찾아보다 서쪽으로 가라, 젊은이여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젠더 위기 헤르마프로디토스 자동차 비행 종착역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제프리 유제니디스

1960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계 이민 2세인 아버지와 영국-아일랜드계 어머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86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년 후인 1988년 첫 단편집을 출간했다. 1991년 권위 있는 문예 계간지 《더 패리스 리뷰 The Paris Review》에 『처녀들, 자살하다』의 일부를 발표해, 그해 그 잡지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아가 칸 상(Aga Khan Prize)을 받았다. 첫 장편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는 1993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도서관 협회(ALA)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까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작품으로 유제니디스는 1993년 화이팅 작가 상(Whiting Writers’ Award), 1995년 해럴드 D. 버셀 기념상(Harold D. Vursell Memorial Award)을 수상하였으며, 구겐하임 재단과 전미 예술 재단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소피아 코폴라 감독,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200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미들섹스』로 2003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시카고에 살고 있으며, 2007년 가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강의할 예정이다.

이화연 옮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SBS, KBS 등에서 방송 작가, 번역 작가 및 리포터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작품으로 『다크니스』, 『미들섹스』(공역), 『처녀들, 자살하다』 등이 있다.

송은주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미들섹스』, 『위키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이성과 감성』, 『클림트』, 『헨리 포드』, 『공포의 헬멧』, 『레오나르도의 유혹』, 『종이로 만든 사람들』, 『집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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