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 상 수상 작가 애트우드의 대표작

고양이 눈 1

원제 Cat̓ s Eye

마거릿 애트우드 | 옮김 차은정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3년 10월 24일 | ISBN 978-89-374-6424-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56쪽 | 가격 15,000원

수상/추천: 부커 상

책소개

캐나다 현대 문학의 거장, 부커 상 수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유년기 상처를 새기며 진정한 ‘고양이 눈’을 완성시킨 예술가의 성장 소설

새 문화에 편입된 어린 일레인의 고통을 통해 미세 권력에 투영된 사회 구조 탐색

 

 

▶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소설. ─ 《더 타임스》

▶ 위대한 업적, 긴장감 넘치면서도 온화한 책. ─ 《마리클레르》

▶ 그레이엄 그린이나 윌리엄 골딩 이후 학교 폭력과 피해자 사이의 관계를 이토록 강력하게 포착한 적은 없었다. (……) 어린 소녀들이 애트우드의 권력 게임에서 절묘하게 싸운다. ─ 《리스너》

 

편집자 리뷰

■ 고양이 눈, 푸른빛 구슬을 통해 만난 행복하고 잔혹한 시절

 

“나는 코딜리어에게 팔을 뻗치고, 몸을 굽히고, 손을 펴 내게 무기가 없음을 보여 준다. 
내가 말한다. ‘괜찮아, 이제 집에 가도 된단다.’” ― 「고양이 눈」에서

 

권위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재치 있는 환상 소설을 펴내며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여성 작가로 평가받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고양이 눈』이 세계문학전집 424, 425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애트우드의 대표작인 『고양이 눈』은 화가 일레인 리슬리의 성장을 그려 낸 ‘예술가 소설’이다. 변형된 작가의 자아인 일레인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에서 애트우드는 1930년대 말 문화의 불모지였던 캐나다에서 출생한 여성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예술적 형상화의 문제, 시간의 문제, 용서와 치유의 문제를 다룬다. 제목인 ‘고양이 눈’은 유년기 유희의 대상이자,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어린 일레인을 지켜 주는 부적이며, 잃어버린 과거를 망각에서 되살려 삶 전체를 보게 만드는 제삼의 눈이자, 잃은 것, 부서진 것들을 되살리고 결합해 주는 예술의 상징이다. 애트우드는 이전 문학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녀들 간의 갈등을 작품 중심에 놓아 그것을 당대 사회를 들여다보는 렌즈로 사용한다. 여자아이들의 문화에 새로 편입된 일레인의 낯선 시선을 통해 친한 친구들 사이의 미세 권력에 투영된 사회 구조를 탐색한다. 즉 일레인을 희생자로 만드는 소녀들의 잔인성에 스며든 당시 토론토 백인 중산층 사회의 관습과 종교와 성차별을 보여 준다.

 

 

개인전을 위해 고향인 토론토로 돌아간 중견 화가 일레인은 ‘물속을 헤엄치듯, 시간의 심연을 통과하여’ 유년의 기억과 만난다.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떠돌던 기억, 토론토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사귀게 된 여자 친구들, 채찍을 들고 다니던 여선생, 코딜리어로부터 매일같이 받았던 독설과 모욕, 습관처럼 살갗을 벗겨 내 피가 나고 부르트던 발…… 사라지지 않고 남아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추억을 일레인은 조심스레 더듬는다. 하지만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코딜리어가 주도하는 잔인한 학대의 기억은 결국 눈 오는 겨울 밤, 얼어붙은 강가에 홀로 남겨지던 끔찍한 상처에 가 닿는다.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일레인과 코딜리어의 관계는 뒤바뀌고, 이번에는 일레인이 코딜리어에게 언어 폭력을 가하고 위태로운 친구를 외면한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 다시 고향에 온 일레인은 마지막까지 코딜리어가 전시회장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코딜리어는 오지 않고, 일레인은 어린 시절 자신이 얼어 죽을 뻔한 다리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딜리어의 환영을 본다. 그 옛날의 자기처럼 다리 밑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소녀. 그 순간 일레인은 깨닫는다. 코딜리어 역시 자신과 똑같은 “아픔, 외로움, 두려움, 아이의 연약함과 미숙함, 그리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일레인이 코딜리어에게 손을 내민다. 과연 두 사람은 그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고양이 눈』은 유년기의 어두운 기억, 상처와 다시 맞닥뜨리는 한 여성을 통해 시간의 의미, 용서와 화해를 통한 치유의 문제를 뜨겁게 탐색하는 작품이다. 애트우드는 잉거 숄과의 인터뷰에서, 『고양이 눈』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에서 사라진 것들에게 문학적 고향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문화사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꼼꼼하게 과거를 복원하는 그녀의 글쓰기는 이제는 없어진 사물들, 사라진 관습, 죽어 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불러 모아 상상적 고향으로 귀환시키려는 시도다. 상실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향을 잃은 것들을 집으로 인도해 가는 애트우드의 손길은 따스하다.

 

■ 코딜리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악몽, 잔인성에 스민 시대의 악

 

2차 세계대전 막바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북쪽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던 여덟 살 소녀 일레인은 여느 여자 아이들과는 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원피스를 입고 얌전히 교회를 다닐 때, 일레인은 오빠와 함께 벌레를 잡고 병정놀이를 하며 ‘학교’와 ‘여자 친구들’이란 것을 동경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레인 가족이 토론토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이 ‘다름’은 곧 코딜리어를 필두로 한 또래 아이들의 ‘배척’과 ‘따돌림’으로 이어진다. 코딜리어의 독설과 비난에 시달리는 일레인은 급기야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표정은 어떤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스스로 ‘어딘가 잘못된 아이’가 아닌지 고민하게 된 어느 날, 일레인은 자신의 발의 살갗을 벗겨 내기 시작한다. 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벗겨 낸 후, 양말을 신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통을 참으며 걷는다. ‘고통’을 통해 자신이 ‘존재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레인이 코딜리어로부터 벗어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기절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절한 날, 일레인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느낀다. ‘기절’은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장소, 보기 싫지만 곁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윽고 일레인은 자신이 원할 때면 기절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기에 이른다.

 

“나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장소들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기절은 샛길로 내려서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의 몸으로부터, 시간으로부터 다른 시간 안으로, 내려서는 것. 깨어나 보면 그 후의 시간이다.  시간은 나 없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1권 305쪽)

 

어느 겨울밤, 코딜리어가 일레인의 모자를 낚아채 다리 아래로 던져 버린다. 모자를 가지러 간 일레인은 반쯤 얼어붙은 강에 빠져 버리고 코딜리어를 비롯한 친구들은 일레인을 남겨 두고 도망친다. 추위에 떨며 점차 밀려드는 졸음을 견디던 일레인은 한 여인의 실루엣이 공중을 걸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다. 일레인은 그 환영이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한다. 일레인에게 있어 성모 마리아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기독교(당시 캐나다 중산층 집안의 풍경)와는 상반되는, 여성 주체적 존재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일레인은 드디어 코딜리어에게서 도망칠 수 있게 된다.

 

여성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부각시킨다는 것을 이유로 『고양이 눈』이 반여성주의적 작품이라고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그렇다면 남성들 간의 갈등을 그려 내면 반남성주의가 되는가? 애트우드는 반문한다. 실제로 애트우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1981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페미니즘은 너무나 광범위한 단어라서 사실 아무런 의미를 담지 못하며, 때로는 특정 작가들을 편협하게 규정하고 무시해 버리는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여성을 그려 내고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는 면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지만, 여성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나 그들만의 연대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거부한다는 것. 『고양이 눈』에서 애트우드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 스며든 억압적인 관습과 편협한 교육, 타 종교에 대한 차별적 시설과 성차별이다. 토론토에 정착한 일레인 가족이 공공연히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이들의 생활 방식이 1940-1950년대의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토론토 중산층의 행동 양식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이턴 카탈로그를 오려 붙이고 종이 인형을 갖고 노는 자신들의 사소한 놀이조차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스미스 부인은 여자아이들로부터 일레인이 괴롭힘을 받는 것이 이교도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방관한다.

 

■ 1940~1990년대 캐나다 풍경의 완벽한 재현, 그리고 여성 예술가의 자화상

 

애트우드가 캐나다 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최초의 캐나다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애트우드가 캐나다 문학의 특성, 캐나다적 경험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양이 눈』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일레인의 성장은 캐나다의 정치, 문화적 성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린 일레인의 눈에 비친 캐나다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 권위적인 가장, 카디건을 걸치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것이 미덕인 부인들, 채찍을 들고 다니던 엄격한 여선생, 제국주의적 역사 수업, 남학생용과 여학생용으로 구분된 출입문 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일레인이 한 여자로서, 예술가로서 성장해 갈수록 캐나다 사회의 모습도 점차 변모해 간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1980년대 후반부에 이르는 동안 캐나다는 대영 제국의 변방적 국가에서 보다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영국계와 프랑스계 이민자들의 국가에서 다민족, 다문화적 국가로, 그리고 성 역할 구분이 확실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바뀌었다. 또한 여성의 평등권을 법적으로 명시했으며 특정 인종과 국민을 배제하던 차별적 이민 정책도 보다 포괄적이고 공평한 이민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일레인의 성장과 더불어, 현재 시점으로 진행되는 그녀의 전시회는 이 작품에 또 다른 깊이와 재미를 더해 주는 요소다. 여성 예술가로서 일레인의 삶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가지고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애트우드는 일레인이 ‘여성’ 예술가라는 점에 무게를 싣는다. 일레인은 캐나다에서는 가히 최초로 페미니즘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동정녀 마리아 작품과 스미스 부인 작품은 전부 전시회에 포함되었다. 나는 스미스 부인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지만 조디는 모두 전시하기 원했다. “이것은 반(反) 관능적 여자 모습이에요.” 
조디는 말한다. “왜 항상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하는가? 그와 달리 늙어 가는 여자의 신체가 동정적으로 그려진 것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녀는 보다 과장된 언어를 동원하여 이런 글을 카탈로그에 싣는다.“(2권 269쪽)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일레인 자신이 ‘의식적으로’ 페미니즘적 작품을 만들거나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레인은 어린 시절 자신을 이단아 취급하며 상처를 준 스미스 부인, 모욕과 독설을 서슴지 않던 코딜리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를 임신시키고 떠나가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들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일레인은 단지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한 과거의 기억들을 그려 낼 뿐이다. 이 때,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려는 한 여성 예술가의 시도는 곧 페미니즘적 행위로 인식되어 버리는 것이다.

 

■ 집으로 가는 길, 집을 찾기 위한 하나의 여정

 

일레인과 코딜리어는 반목하고 배반하지만, 궁극적으로 보자면 서로를 반영해 주면서 각자를 완성시켜 주는 반쪽이 되는 상보적 관계다. 일레인은 코딜리어 초상화에 「반쪽 얼굴」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코딜리어가 자신의 반쪽이었다는 깨달음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반쪽 얼굴」과 반대로 「고양이 눈」이라는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현재 얼굴 반쪽만 등장한다. 화면의 나머지는 자신이 볼 수 없는 후면의 거울에 비추인 젊었을 때의 머리 뒤쪽과 유년 시절 친구 세 명으로 채워진다. 실제로 반쪽 얼굴만 그린 자화상에서 나머지 반쪽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여자 친구들인 것이다. 그래서 일레인은 토론토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코딜리어와의 재회를 꿈꾼다. 자신에게 비추어진 코딜리어의 모습을 들려주고, 코딜리어 편에서 바라본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파편화된 자아를 통합시켜 완성해 주기 위해서다.

 

일레인의 초기 작품들 역시 현재 시제로 복원된 과거와 같다.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잃어버린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이라서 그것들은 모든 맥락에서 절연되어 있으며, 일레인은 그 사물들과 관련된 자신의 영상을 전혀 떠올릴 수 없다. 낡은 여행용 트렁크에서 우연히 고양이 눈 구슬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고 나서 그 사물들이 불안하고 조바심에 가득 찼던 유년 시절의 물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회고전에서 과거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본 후에 그것이 망각 속에 소실된 사물과 삶들을 되살리려는 시도였음을 깨닫는다.

 

어떤 의미에서 일레인의 삶은 집을 찾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가는 그녀의 여정은 예술적 행로와 궤를 같이한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뿌리 없이 살 때, 읽기 첵에 나온 말뚝 울타리와 하얀 커튼이 있는 집은 일레인에게 집에 대한 하나의 이상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토론토에서 마주친 새로운 집은 책 속의 집과 거리가 멀다. 실망스러운 토론토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밴쿠버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집이다. 그러나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라고 말하며 밴쿠버를 새로운 집으로 받아들이고 이제까지 집이었던 토론토를 “아무것도 아닌 곳(nowhere)”으로 규정짓는다. 그렇다고 해서 토론토와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레인을 계속 따라다니는 코딜리어의 목소리는 일레인을 무의 어두움 속으로 계속 밀어 넣는다.

 

일레인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과거와 화해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밴쿠버로 가는 길의 풍경이 유년기 유랑적 삶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일레인의 미래로의 여정은 과거에 대한 회고, 지난 길을 되돌아가 보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회고전에서 자신의 그림들, 자신이 구축한 시간들을 다시 둘러보는 일레인은 복수를 위해 그렸던 스미스 부인의 눈, “독선적이고 돼지 같고 철사 테 안에서 잘난 체하는 눈”에서 불확실성과 우울과 과도한 의무에 짓눌린 불행한 이의 눈을 발견한다. 스미스 부인 역시 작은 곳에서 도시로 온, 과거의 일레인과 같은 난민이었던 것이다. 밴쿠버에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은 두 할머니의 천진난만한 우정을 보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 갈등과 괴로움 없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였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미래, 영원히 상실된 코딜리어와의 조우를 애도한다. 더 나이 들고 더 강해지고, 돌아갈 진짜 집이 있는 자신과 달리 코딜리어는 아직 과거의 시간에 갇혀 차가운 협곡에서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홉 살 코딜리어의 수치심, 아픔, 외로움, 두려움을 이해한 일레인은 과거의 친구에게 평안을 기원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괜찮아. 이제 집에 가도 된단다.”

 

 

■ 본문 중에서

 

“고양이 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슬이다. 그 구슬을 따게 되면 나는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꺼내 들고 빛에 비추어 돌려 보며 점검한다. 고양이 눈은 진짜 눈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고양이 눈 같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존재의 눈처럼 생겼다. 라디오에 달린 녹색 눈처럼, 먼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눈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푸른색이다. 나는 그것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내 빨간 플라스틱 손가방에 넣어 둔다. 다른 고양이 눈은 위험을 감수하며 목표물로 내놓지만 이것은 예외다.”(1권 117쪽)

 

“그들은 나를 향해 뛰어오지 않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마치 우리가 새로 온 사람들인 것처럼, 우리가 여기에 살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 번째 여자아이가 그들과 함께 있다. 나는 별다른 예감 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다.”(1권 127-128쪽)

 

“그럼, 저어, 페미니즘은 어떻게 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페미니스트 화가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말한다.

“그러게 정말,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정책이니 강령이니 하는 거, 고립된 집단 같은 건 싫어해요. 어쨌든 나는 페미니즘을 만들어 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당신은 그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젊어요. 그러니 그런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내가 말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것은 당신에게 의미가 없다는 건가요?” 그녀가 묻는다.

“나는 여자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내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남자들은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나요?” 안드리아는 간교하게 묻는다. 그녀는 내 뒷조사를 했고, 마녀와 악령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보았던 것이다.

나는 반문한다. “어떤 남자들이요? 모든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만일 사람들이 어떤 남자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남자이기 때문은 아니죠.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에요.”(1권 163-164쪽)

 

“나는 다른 해의 생일들,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생일들은 기억할 수 있지만 이 생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생일 파티가, 내 생애 처음으로 진짜 파티가 벌어졌을 것이다. 다른 해의 생일에 누가 왔겠는가? 촛불과 소원 빌기와 먹다가 발견하도록 기름종이로 싼 25센트와 10센트짜리 동전들을 심어 놓은 케이크와 선물이 있었을 것이다. 코딜리어, 그레이스, 캐럴도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게 남긴 자취는 생일 파티 자체, 다른 사람들의 생일도 아닌 내 생일 파티에 대한 막연한 공포뿐이다.”(1권 196쪽)

 

“코딜리어가 내게 그렇게 위세를 부리던, 그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기, 나는 발의 살갗을 벗겨 내곤 했다. 주로 자야 할 밤에 그런 짓을 했다. 내 발은 버섯 껍질처럼 차갑고 약간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했다. 발을 위로 젖히고 가장 두꺼운 바닥 쪽 가장자리를 이로 물어뜯어 작은 상처를 냈다. 그런 다음, 물어뜯어 봐야 통증이 없어서 절대 물어뜯지 않는 손톱으로 길쭉하게 살갗을 벗겨 냈다. 나는 반대쪽 엄지발가락도 똑같이 벗겨 낸 후 발바닥 앞쪽의 둥근 부분과 발꿈치를 벗겨 냈다. 피가 나올 때까지 계속했다.”(1권 206쪽)

 

“그레이스와 캐럴, 특히 코딜리어가 어김없이 정류장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일단 집을 나서면 그들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들은 통학 버스를 탄다. 버스 안에서 코딜리어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똑바로 서!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캐럴은 나와 같은 반이고, 내가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코딜리어에게 보고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1권 216쪽)

“나는 요양원까지 코딜리어를 바래다준다. “다시 만나러 올게.” 내가 말한다. 그러고 싶지만, 정말 다시 올 가능성은 적다. ‘그녀는 괜찮을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도 그녀는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이후에나아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광고를 쳐다본다. 맥주, 초콜릿 바, 한 마리 새로 변신한 브래지어. 나는 안도한 척한다. 나는 가볍고, 자유롭다.“(2권 290쪽)

 

“한 달, 두 달, 세 달이 흘러 나는 코딜리어에게 꽃무늬가 많아 글 쓸 자리가 별로 없는 편지지에 편지를 쓴다. 나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이 편지지를 샀다. (……) 그러나 내 편지는 주소 불명이라는 글자가 갈겨쓰여 돌아온다. 나는 이 글씨체가 혹시 가장한 코딜리어의 필체가 아닌지 알아내려고 여러 각도에서 꼼꼼히 살펴본다. 이것이 코딜리어의 필체가 아니고 그녀가 더 이상 요양원에 살지 않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2권 291쪽)

 

“무언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가방을 열고 내 푸른 고양이 눈을 꺼낸다. “구슬이구나!” 어머니는 아이와 같은 환희를 보인다. “스티븐이 모으던 그 많은 구슬 기억하니?” “예.” 나는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구슬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내 삶 전체를 본다.“(2권 355쪽)

 

“나는 내가 창조한 시간에 둘러싸여 전시실을 걷는다.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단지 흐릿한 무엇, 우리가 살아가는 움직이는 경계선이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며, 파도처럼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2권 373쪽)

 

“이제 완전한 밤이다. 맑고, 달이 없고, 별로 가득 찬 밤. 별들은 한때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영원하지 않고, 우리가 생각했던 곳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소리라면 수백만 년 전 일어난 것의 메아리일 것이다. 숫자로 만들어진 단어. 공허의 한가운데서 반짝이는, 빛의 메아리. 그것은 오래된 빛이다. 그렇게 풍부하지는 않다. 그러나 선명하게 보기에는 충분하다.”(2권 393-394쪽)

목차

[1권]

 

1부 철제 폐

1장 19

2장 21

 

2부 은종이

3장 33

4장 48

5장 58

6장 64

7장 69

 

3부 제국의 블루머

8장 79

9장 87

10장 95

11장 103

12장 111

13장 119

14장 129

15장 141

 

4부 벨라도나

16장 153

17장 166

18장 173

19장 185

20장 192

 

5부 탈수기

21장 201

22장 210

23장 219

24장 230

25장 239

26장 246

27장 253

 

6부 고양이 눈

28장 267

29장 276

30장 283

31장 289

32장 300

 

7부 영원한 도움을 주시는 우리 성모님

33장 313

34장 317

35장 327

36장 337

 

 

[2권]

 

8부 반쪽 얼굴

37장 13

38장 18

39장 28

40장 41

 

9부 나병

41장 59

42장 64

43장 75

44장 88

45장 106

46장 111

 

10부 실물화

47장 125

48장 136

49장 144

 

50장 150

51장 159

52장 166

53장 174

54장 187

55장 195

 

11부 추락하는 여자

56장 205

57장 213

58장 226

59장 235

60장 245

61장 252

62장 266

63장 281

 

12부 한쪽 날개

64장 295

65장 306

66장 316

 

13부 피코초

67장 333

68장 338

69장 346

70장 356

 

14부 통일장 이론

71장 363

72장 375

73장 382

 

15부 다리

74장 387

75장 392

 

작품 해설 395

작가 연보 407

 

작가 소개

마거릿 애트우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애트우드의 가족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가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어울릴 친구가 별로 없었던 애트우드에게는 독서가 유일한 놀이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토론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스물한 살에 첫 시집 『서클 게임』을 출간했으며, 이 시집으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했다. 이후 여성의 사회 활동과 결혼 등을 소재로 1969년 첫 장편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를 발표하였고, 장편 소설 『떠오름』으로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 『오릭스와 크레이크』(2003), 『홍수의 해』(2009), 『미친 아담』(2013) 등이 있으며, 2000년 발표한 『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통해 페미니즘 작가로도 평가받는 동시에,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토론토 요크 대학교, 뉴욕 대학교 등에서 작문과 영문학과 문예 창작을 가르쳤고, 현제 국제사면위원회, 캐나다 작가협회, 민권운동연합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토론토 예술상, 아서 클라크 상, 미국 PEN 협회 평생 공로상, 독일도서전 평화상, 프란츠 카프카 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 『증언들』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이후 『도덕적 혼란』(2020), 『숲속의 늙은 아이들』(2023) 등 새로운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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