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돈과 빚을 다르게 생각할 때다 역사와 고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돈의 본질 빚 없는 세상을 꿈꾸는 아주 특별한 상상

돈을 다시 생각한다

인간, 돈, 빚에 대한 다섯 강의

원제 PAYBACK (DEBT AND THE SHADOW SIDE OF WEALTH)

마거릿 애트우드 | 옮김 공진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5월 10일 | ISBN 978-89-374-8215-1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224쪽 | 가격 13,000원

분야 논픽션

책소개

현재의 빚은 미래의 부를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멍에인가? 불과 몇 년 전까진 그랬다. 돈이 돈을 버는 이 시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빚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도약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는가? 더 큰 빚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가난은 끝없이 대물림되었다. 우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대박’을 꿈꾸며 빚을 또 다른 빚으로 ‘돌려막기’ 하는 악순환을 계속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돈, 그리고 악마처럼 끈질기게 들러붙은 빚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캐나다의 사회 비평가이자 유명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크리스마스 캐럴』, 『베니스의 상인』, 『허영의 시장』, 『마담 보바리』 등 세계의 고전들을 분석해 돈과 빚의 본질을 파헤치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 책은 계산기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하는 ‘돈의 문화학’을 통해 돈과 빚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인간, 그리고 돈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의 무거움이라는 진실에 다가간다.

편집자 리뷰

■ 빚이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정점을 찍었다. 1920년대 경제대공황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의 시작은 거품, 즉 ‘빚’이었다.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환상, 이것을 이용한 금융사들의 무책임한 파생상품들이 엄청난 악재를 가져왔다. 바로 그 시점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왜 우리가 이토록 많은 빚을 지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은 부채 관리, 수면 빚sleep debt, 국가 부채national debt, 또는 월별 예산을 관리하는 법 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돈을 빌려 그 돈을 불릴 수 있으므로 사실상 빚이 유익하다는 이야기도, 쇼핑 중독과 그에 대한 자기진단을 다루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내용은 서점이나 인터넷에 넘쳐 난다. (……) 그보다 이 책은 인간의(따라서 상상적인) 구조물로서 빚에 관한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그리고 격렬한 공포를 어떻게 반영하고 증폭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2003년 《네이처》에 발표된 프란스 드 발과 세라 브로스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숭이조차도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화를 내고 적극적으로 항의한다고 한다. 즉 지구에 사는 모든 종족에게는 ‘공평함’에 대한 본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평 감각’이 없다면 돈을 빌려 주고 빌리는 행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빌려 준 돈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마음 놓고 돈을 빌려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이 돈을 빌린 행위, 빌려 준 행위를 증명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한다. 얼마를 빌려 줬는지를 기록한 문서의 존재가 ‘빚 메커니즘’을 비로소 가능케 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 책의 가장 매혹적인 명제, ‘빚이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가 등장한다. 빚과 기록은 항상 함께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 애트우드의 견해다. 애트우드는 돈과 빚에서 파생한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로부터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왔다고 말하면서 『폭풍의 언덕』,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등을 인용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적인 위기가 아닌, 다양한 빚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위기를 논하고자 한다.
 
■ 소설의 주요 테마는 ‘사랑’이 아니다, 바로 ‘돈’이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 빅토리아조 소설의 중심 테마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19세기 빅토리아조 소설의 중심 테마는 ‘빚’이라고 생각한다.”
애트우드는 19세기 영국 고전에서 ‘빚의 플롯’을 발견했다. 19세기 영국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흥하고 계층 간 상하 이동이 빈번해진 격동기였다. 『오만과 편견』의 남자 주인공 다시가 베넷 집안의 미천한 신분 외에도 보잘것없는 재력 때문에 고민하는 대목, 베넷 부인이 사위들의 연 수입을 들먹이며 흥분하는 대목 등에서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충분히 드러난다. 이와 관련해 애트우드는 19세기 빅토리아조 소설을 파헤쳐 돈과 빚의 본질,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를 분석한다.
찰스 디킨스의 고전 『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떨까? 지금까지 스크루지 영감은 지독하게 못된 구두쇠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어 왔다. 하지만 애트우드는 사실 스크루지 영감의 가장 큰 죄는 고리대금업을 벌인 데에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스크루지 영감이 엄청나게 모은 돈을 쌓아 두기만 하고 쓰지 않아서 돌고 도는 돈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민폐’를 끼쳤다는 것이다. 그것이 스크루지 영감의 가장 큰 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어떨까?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위험한 계약을 맺은 안토니오는 주로 선량한 채무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애트우드는 안토니오가 살 1파운드라는 잔혹한 이자를 이용해 관용의 미덕을 저버리고 유대인 샤일록에게 복수하려 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일방적인 피해자’로 주로 그려지는 채무자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애트우드는 방대한 독서 이력을 활용해 고전 속에 숨어 있는 ‘빚의 플롯’들을 보여 준다. 빌린 돈을 불려서 부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허영의 시장』에 나오는 베키 샤프도,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에마 보바리도 그런 식으로 파멸해 갔다. 오히려 ‘빚의 하향 침투 이론’에 의해 한 채무자가 무너짐으로써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다른 사람들의 재정 상태도 파탄에 이를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이 거듭되면서 채권자와 채무자는 서로에게 불만을 품고 복수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조지 엘리엇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에 등장하는 털리버와 워켐 사이의 갈등 구조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 이렇듯 ‘빚의 악순환’이 이뤄지면서 인간은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 어떻게 빚지고 갚을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
 
돈을 빌렸지만 결국 갚지 못한다. 그 때문에 채권자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고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돈과 빚을 생각할 때 단순히 계산기만 두드리며 ‘공평 감각’에만 의존했다가는 이러한 복수의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살 1파운드라는 이자에 집착하다 망해 버린 샤일록이 그랬고, 빼앗긴 왕좌와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에 집착하던 햄릿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빚을 건설적으로 청산하는 법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고, 단순히 ‘눈에는 눈’ 법칙만 추종했다.
그렇다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애트우드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해답을 찾는다.
 
넬슨 만델라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가 많은 박해를 받고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부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마침내 풀려났다. 그는 감옥 문을 나서기전까지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할 것이며, 그러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왜일까? 그러지 않으면 복수의 사슬에 속박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그가 몸이 붙은 그림자 쌍둥이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복수에 대한 교정 수단은 정의가 아니라 용서다. “얼마나 많이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누군가가 나사렛 예수에게 물었다. 70번 곱하기 7번, 즉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환경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 왔던 애트우드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자연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음을 꼬집는다. 애트우드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이야기 방식을 차용해 현재의 스크루지 영감 같은 존재들이 자연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빚졌으며, 그것이 미래에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묘사한다. 많은 국가들은 개발에 필요한 돈을 자국 국민으로부터 세금 형식으로 빌리거나 이웃 국가로부터 차용해서 조달한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에게 수많은 빚을 지고 시작한 이 개발이 진정 엄청난 부를 안겨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의 방앗간은 천천히,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분쇄한답니다. 인류는 활과 화살을 비롯해 최초의 공업 기술을 발명한 그 순간, 파우스트의 거래를 한 겁니다. 인류가 천연자원과 보조를 맞춰 인구를 조정하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고 무제한으로 번식한 것도 바로 그때입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인구 성장을 부양하려고 천연자원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식량 공급을 늘렸습니다. 그러기 위해 점점 더 새롭고 복잡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제 인류에게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기계들이 있습니다. 인류의 기술 체계는 무엇이든 주문하는 것을 갈아 내는 방앗간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작동을 멈추는 법을 모릅니다. 완전히 효율적인 기술로 자연을 착취한 최종 결과는 생명이 없는 사막일 것입니다. 생산 공장들이 집어삼킨 탓에 모든 천연자원이 고갈할 것이며, 그 결과 자연에 무한한 빚을 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청산할 시간이 인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스크루지 영감에게 긍정적인 미래와 부정적인 미래를 모두 보여 준 미래의 유령이 남긴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빚을 제대로 청산한 희망적인 미래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뭔가를 빚지고 갚는 인간에게 달렸다. 마지막에 스크루지 영감이 깨달은 것처럼 우리에겐 ‘바로잡을 시간이 있다.’

목차

1장 정의의 여신은 왜 칼과 저울을 들고 있을까?
2장 빚,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
3장 돈, 사랑보다 더 뜨거운 쟁점
4장 빚진 자의 마지막 선택은 복수뿐일까?
5장 인간과 자연의 거래, 그리고 이제 갚아야 할 시간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마거릿 애트우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그녀의 가족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봄이면 북쪽 황야로 갔다가 가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어울릴 친구가 별로 없었던 애트우드에게는 독서가 유일한 놀이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토론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스물한 살에 첫 시집 『서클 게임』을 출간했으며, 이 시집으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했다. 이후 장편 소설 『떠오름』으로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인간 종말 리포트』(2003), 『홍수』(2009), 『미친 아담』(2013) 등이 있으며, 2000년 발표한 『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통해 페미니즘 작가로도 평가받는 동시에,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 넓게 다루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토론토 요크 대학교, 뉴욕 대학교 등에서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국제사면위원회, 캐나다 작가협회, 민권운동연합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토론토 예술상, 아서 클라크 상, 미국 PEN협회 평생공로상, 독일도서전 평화상, 프란츠 카프카 상 등을 수상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

공진호 옮김

뉴욕 시립대에서 영문학과 창작을 공부하였다. 현재 북부 뉴욕에 거주하며 번역과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드 니로의 게임』, 『교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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