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원제 Difference et Repetition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4년 3월 20일 | ISBN 89-374-1613-1
패키지 신국판 152x225mm · 712쪽 | 가격 30,000원
분야 현대사상의 모험 13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그리고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프랑스의 유일한 철학 정신’ 질 들뢰즈의 주저(主著)인 『차이와 반복』이 민음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들뢰즈의 국가박사 학위 논문으로 처음 세상에 공개된 지 36년 만의 일이다. 그 내용의 방대함과 난해함 때문에 좀처럼 번역에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던 이 책은 김상환 교수(서울대학교 철학과)라는 최상의 적임자를 만나 적확하고도 수려한 우리말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한국 독자들은 들뢰즈 사상의 뿌리이자 현대 프랑스 철학의 원천 가운데 하나와 조우하는 행복한 경험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1970년,《비평Critique》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대한 푸코의 서평을 실었다. 이 서평에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문구가 등장한다. “아마 언젠가는 들뢰즈의 세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들뢰즈라는 이름은 푸코, 데리다, 알튀세, 리오타르 등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의 맨 윗줄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일생 동안 3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남겼으며, 특히 영화론이나 가타리와 함께 저술한 대작들은 서양 철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명성은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그의 저작 대부분이 이미 우리말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독자들이 들뢰즈 사상의 진면목을 만나기까지는 무려 3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철학자 들뢰즈의 저작들 전체를 통해 뻗어나가는 풍요한 방사선들이 배태된 지점, 말하자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해당하는 들뢰즈의 대표작은 바로 『차이와 반복』이다.
차이 그리고 반복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
원래 들뢰즈의 국가박사 학위 청구 논문이었던 『차이와 반복』은 처음 출간될 무렵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푸코를 비롯한 당대의 평자들은 이 저서를 사상사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동료에게 보내는 주례사도, 출판사를 위한 상업적 포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감탄사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희귀한 재능과 열정, 초인적인 훈련과 시적 영감이 어우러진 참신한 감각의 철학적 기획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헤겔과 덩치를 겨루고 하이데거보다 멀리 이르고자 하며 니체의 반플라톤주의적 전회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렇게 완성된 기획은 데리다의 해체론적 차이의 철학과 대조할 만한 구축론적 차이의 철학을 이루고, 그 구축의 규모와 정교함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족히 넘본다. 이 작품을 통해 구현된 철학자 들뢰즈의 모습은 철학적 전통 전체의 산맥과 형세를 뒤바꿔놓는 거인, 당대의 학문과 예술을 망라하는 종합적 체계의 설계자, 최고의 지혜를 꿈꾸는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 철학의 등장은 고전적 형이상학의 부활에 해당한다. 이는 이른바 ‘독단적’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적 해체론 이후 협소한 인식론에 몰두해온 서양 철학의 주류에서 볼 때는, 심지어 데리다적 해체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퇴보이자 예외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해체론적 전통이 도달한 일정한 지점에서 새로운 높이의 형이상학을 펼쳐내고, 이를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명명했다. 이 경험론은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감춰져온 철학사의 보고들을 들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학자와 자연과학자들과 대화하면서, 또한 화가, 소설가, 시인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는 단순한 지적 과시도, 산발적이고 우연한 연상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또 세계를 해석하는 가장 초보적인 도식이나 코드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나 예술과 다르지 않다. 다만 형이상학자는 합리적 언어에 기대어 세계의 총체적 그림을 그리는 종합자일 뿐이고, 그가 합리적 언어를 초월하는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 ―부정의 철학이 아닌 \’긍정의 철학\’을 위하여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 책에서 어떤 구도로 펼쳐지고 있는가? 어떤 도식을 끌어들일 때 그 복잡한 내용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집약할 수 있을까? 서양 철학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칸트의 초월론을 들뢰즈의 철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순수이성비판』은 감각을 다루는 감성론, 개념적 판단을 다루는 분석론, 초월적 이념의 세계를 다루는 변증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와 반복』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개념적 매개와 재현의 빈곤성을 고발하는 해체론적 분석론(1장)을 선보이고, 감각적 경험과 심미적 경험을 일거에 통합하는 새로운 감성론(5장)을 통해 칸트의 감성론을 극복하고 있다. 또 이념의 세계가 감성적 사태와 개념적 사태의 실질적 발생 원천임을 말하는 새로운 변증론(4장)을 통해 칸트의 변증론은 물론이고 헤겔의 변증법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길을 걷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새로운 분석론, 감성론, 변증론은 포괄적이고도 견고하게 짜여가는 새로운 시간론과 맞물리면서 근대적 전통의 토대 개념을 해체하는 현대적 토대론(2장) 안에서 종합되고, 나아가 근대적 사유 개념을 대체하는 특이한 인식론(3장) 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감성론, 분석론, 변증론, 토대론, 인식론 등을 세부로 거느리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념적 세계를 개념적 세계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세계 속에 둔다. 개념적 세계의 저편은 감성적 차원 안에 내재하고, 따라서 감성적인 것은 이미 개념적인 것보다 우월한 셈이다.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 들뢰즈에게서 감성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이미 정신적이고, 처음부터 이상적인 요소를 머금고 있다. 물질은 이미 물질 이상의 물질, 정신적인 물질, 개념 이상의 물질이다. 이념적 함량 운동과 이어져 있는 감성이나 물질을 들뢰즈는 강도(强度, intensit)라 부르는데,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런 강도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칸트와 니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베르그손마저도 강도적인 것을 질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는 질과 양의 이항대립에 선행하는 초월론적 사태이자 자신이 낳은 질과 양들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초월적 사태이다. 강도는 현실적 대상의 경험에 선행할 뿐 아니라 그 경험과 대상의 생성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초월론적이고, 재현적 사유와 개념적 매개를 깨뜨리는 힘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초월적이다. 강도는 결코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재현할 수 없는 어떤 불가능한 사태이고, 이 불가능한 사태는 사유 주체를 역설감과 지극한 수동성에 빠뜨리는 어떤 마주침의 대상이다.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부른 이유는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결국 초월적이자 초월론적 지위에 있는 이 강도적 사태를 염두에 둔 명칭이다. 철학이 강도적 사태에 궁극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강도적 사태가 존재자의 직접적 발생 원인이자 사유와 인식의 참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강도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족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들뢰즈가 ‘즉자적 차이’, ‘차이 그 자체’라 부르는 것은 개념 안에 정돈된 차이도, 개념으로 묶이지 않는 잡다성도, 이념 안에서 꿈틀대는 부차모순이나 미분적 차이도 아니다. 그것은 개념적 차이도 이념적 차이도 아닌 강도적 차이일 뿐이다. 이 강도적 차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순수한 차이’고, 들뢰즈의 반복 이론도 이 순수한 차이(발산과 탈중심화)에 상응하는 반복(전치와 위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의 존재론은 물론이고 이와 함께 가는 차이론, 반복론, 인식론, 토대론, 시간론, 주체론, 교육론 등도 강도론의 주위를 맴돈다. 들뢰즈의 인식론과 토대론을 형성하는 용어들도 모두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배경으로 하며, 이 책 2장에서 토대론과 함께 펼쳐지는 시간론과 수동적 종합 이론 전체도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지반으로 하고 있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긍정의 철학이라고 말하길 즐겼다. 그 긍정은 강도적 차이가 일으키는 종합을 일컫는다. 칸트 식의 이념적 종합이 문제틀을 정립한다는 의미에서 실증적이라면, 강도적 종합은 그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해결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긍정이란 정확히 강도적 차이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명’의 사태인 것이다. 이 작품이 어떤 체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적 체계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이 책은 인체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가령 서론(「반복과 차이」)은 머리이고, 1장(「차이 그 자체」)과 2장(「대자적 반복」)은 두 팔이다. 또 3장(「사유의 이미지」)은 가슴에, 4장(「차이의 이념적 종합」)과 5장(「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은 배에, 결론(「차이와 반복」)은 두 다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책의 앞부분이나 뒷부분만을 읽는다면 들뢰즈 철학의 외양은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내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체에 대한 숙독과 이해가 필요하다.
내용과 형식의 강도(强度)적 통합 ―들뢰즈의 \”철학 극장\”
이 작품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특이한 면모를 보여준다. 데카르트나 루소의 저작들은 발견의 순서와 분석의 절차를 따르고, 스피노자나 칸트의 저작들은 논리적 순서와 종합의 절차를 따른다. 하지만 들뢰즈는 여기서 이도저도 아닌 제3의 길을 따르고 있다. 철학 책의 구조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차이와 반복』의 경우 구조는 단순히 그 체계뿐만 아니라 내용에까지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이 책이 따르고 있는 것은 강도적 종합의 순서이다. 이미 서론에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 들어와 안-주름들을 만들고, 각각의 부분들마다 전체의 내용이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을 처음 여는 독자는 첫 대목부터 어떤 주름운동 속에 놓여 있는 재빠른 문장들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모호한 개념들이 혼잡하게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기 십상이다. 머리말에서 들뢰즈는 이 책은 결론만 잘 읽어도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결론은 분명 이 책 전체의 주요 내용을 반복하고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반복의 유희를 이해하고 거기서 펼쳐지는 주름운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앞부분들에 대한 독서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푸코의 지적처럼 이 책은 각 부분들마다 매번 새로운 장면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철학 극장”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런 비유는 각 부분들이 어떤 완결된 줄거리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서 전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하지만 각기 완결된 부분이나 계열들이 어떻게 짝을 맺고 공명하는지, 그런 공명을 가져오는 우발점은 어디에 있으며, 그 우발점에서 시작된 ‘강요된 운동’은 어떻게 그 계열들 밖으로 넘치는지 등을 헤아릴 때만 우리는 이 책을 완전히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반역이 아니다 ―한국 인문학 번역서의 전범(典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은 개념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사태, 능동적으로 구성되지 않고 명석 판명하게 표상되지 않는 사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재현 이하의 사태는 언어의 잠재력을 극단적으로 실현하는 고도의 문체에 대해서만 자신이 드러날 기회를 허락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내용과 그것을 말하는 방식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가 공들여 고안해낸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는 그것들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로 통합한다. 이 책에서 구사된 들뢰즈의 문체는 간결하며 강렬하고, 자유자재로 속도를 통제하며, 통상적인 독서에 요구되는 몇 배의 집중과 밀착을 필요로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문체는 어떤 난해의 장벽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내용 자체를 포기할 구실로 삼기 십상인데, 그럴수록 옮기는 이의 과제와 의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민음사에서 처음 『차이와 반복』의 한국어 판을 출간키로 결정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번역자를 물색했으나 대부분이 고사하였고 몇 사람은 실제로 번역에 뛰어들었으나 얼마 못 가 손을 들었다. 자칫 이 땅에 발 딛지 못할 뻔했던 『차이와 반복』이 우리 독자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상환 교수(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공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 프랑스 철학 연구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빼어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인물인 김상환 교수는 2000년 가을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해 3년 반 동안 퇴고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결실을 낳았다. 그동안 번역보다는 연구와 저작 집필에 힘써온 그는 원전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없이 부실한 번역서가 양산되고 있는 한국 인문학 번역계의 풍토를 경계하며, 훌륭한 번역서 한 권은 저서 한 권에 못지않다는 신념과 희생적인 노력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문법의 차이가 너무 큰 외국어일 경우 문체상의 생동감을 옮긴다는 것은, 명쾌한 수준에서 우리말의 활력을 되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는 들뢰즈의 이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들뢰즈의 원문이 전해주는 신선한 충격과 강렬한 에너지를 최대한 살리려 애썼으며 때로는 시를 번역하는 기분으로 원래의 문법적 구조마저 무시하는 과감한 의역(意譯)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의 독서 경험을 반영하는 역주 수백여 개가 추가되었다. 또한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해제에서는 동양의 태극문(太極紋)으로써 들뢰즈의 존재론을 풀어나가며 독창적인 해석을 전개한다. 이는 전체의 내용을 개괄하는 간단한 지도로 삼기에 손색이 없는 것으로, 이 두꺼운 저작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이다.
들뢰즈의 세기
\”니체 이후 우리는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ㅡ 질 들뢰즈 질 들뢰즈는 동시대의 어떤 철학자와도 달랐다. 르몽드 지의 언급처럼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반역의 철학자이다. 들뢰즈는 언제나 기존의 철학적 사조나 학파의 외곽을 맴돌았고, 철저히 자유인이고자 했다. 그는 유목민이다. 그에게 들어맞을 법한 딱지를 붙여놓으면 그는 이미 이를 비웃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후였다. 단지 철학을 학습하고 해석했던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정지와 경직을 경계했으며, 미래를 창조하고자 했던 철학자적 열정이야말로 그의 철학의 원동력이었다. 다른 철학자의 이론에 의거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그의 신념은 항상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자 했던 들뢰즈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철학은 스피노자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적 계보의 연장선에 서 있으며, 이원론적인 모든 휴머니즘의 종말을 고하고 내재성의 철학의 도래를 선언하고자 한 일련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철학사 전체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편하고 당대의 급진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철학의 변형을 꾀했다는 점에서 들뢰즈는 20세기의 헤겔이라 할 수 있다. 『차이와 반복』은 협소한 전공에 매몰되기 쉬운 오늘날의 연구 풍토에서도 새로운 철학은 여전히 학문들 간의 경계를 뒤흔들 만한 역량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어떤 이는 철학과 수학이 만나는 대목에 경탄하고 어떤 이는 시와 문학작품들을 자유로이 끌어들이는 대목에 찬사를 보낸다. 사실 철학이 인간 사유의 범위를 개척하고 확장해가는 전위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철학은 보통 다른 분야에서 이미 성취된 사유의 높이를 다시 따라잡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왔다. 오늘날에도 정신분석학은 물론이고 인접 학문과 예술은 기존의 인식론적 범주들이나 존재론적 구도로서는 해명하기 힘든 대단히 복잡한 현장에서 씨름하고 있다. 이미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현실 자체, 이 현실의 핵을 이루는 자본-기술의 결합체는 웬만한 철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변신한 지 오래다. 그만큼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사변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6년 만에 한국 땅에 다다른 이 책이 현실이 일으키는 가파른 관념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때때로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질 들뢰즈 Gilles Deleuze(1925~1995)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파리 8대학에서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87년 은퇴했다. 일찍부터 철학사를 해석하는 뛰어난 역량과 독특한 관점을 인정받았다. 근대적 이성의 재검토라는 1960년대의 큰 흐름 속에서 서구 사상의 2대 전통인 경험론과 관념론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하는 시도를 보여주었으며, 현대 학문과 예술에 철학적 깊이를 더하는 활발한 작업을 통해 철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1968년에 발표된 본서 『차이와 반복』에서는 해체론적 전통이 도달한 일정한 높이 위에서 고전적 형이상학을 부활시켰으며, 1972년에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저술한 『안티 오이디푸스』를 통해 기존의 정신분석에 반기를 들고 니체적 시각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통합하여 20세기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주요 저서로는 『니체와 철학』, 『칸트의 비판철학』, 『베르그손주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의미의 논리』, 『천 개의 고원』, 『감각의 논리』, 『영화 1.운동-이미지』, 『영화 2.시간-이미지』, 『푸코』,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옮긴이 김상환(金上煥)
1960년생. 연세대 철학과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데카르트적 코기토와 비데카르트적 코기토」(1991)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해체론 시대의 철학』(1996),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1999),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김수영론』(2000),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공저, 2000),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2002), 『라깡의 재탄생』(편저, 2002) 등이 있으며, 그밖에 데카르트와 데리다에 관련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머리말 서론 : 반복과 차이 1. 차이 그 자체 2. 대자적 반복 3. 사유의 이미지 4. 차이의 이념적 종합 5.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결론 : 차이와 반복 참고 문헌 들뢰즈 연보 옮긴이 해체 – 들뢰즈 존재론의 기본 구도 찾아보기
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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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을 긍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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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 2015.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