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평범하고 지겹다. 고작 일상 속에 갇힌 채 생을 마감할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 밖으로의 모험에서 구원을 꿈꾼다.하지만 일상이 피할 수 없는 본래적인 조건이라면, 오히려 구원은 일상 안에 ‘애초에 미리’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상이 구원이다.”
지루한 일상을 모험의 장소로 만드는 책지겹고 심심한 것이 일상이다. 일상 안에는 나날의 힘겨운 노동, 진정한 소통을 가장한 의미 없는 잡담의 과잉, 사랑에 대한 설레는 예감으로 시작해서 몇 번의 섹스로 끝나고 마는 씁쓸한 만남, 불면과 이른 기상(起床)의 괴로움, 식탐, 과음과 후회가 가득하다. 일상은 지옥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을 찾아 일상 밖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일상 밖으로 떠난 곳은 어디인가? 세상 저편의 어떤 낙원인가? 아니, 여전히 그곳은 일상이다. 마치 여행자가 그의 짐가방을 버리지 못하듯,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난 방랑객이 끝끝내 그의 그림자만은 끌고 다니듯, 우리는 언제나 하는 수 없이 일상을 끌고 다닌다. 먹고 자고 잡담하고, 자질구레한 일들로 시간을 빼앗기는 그런 삶, 일상적 삶 말이다. 이런 일상은 권태라는 세균이 득실거리는, 구원과는 가장 거리가 먼 세계인가? 우리는 먹고, 자고, 사랑하며, 아이를 낳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이라는 지평을 구원과 상반되는 추락으로 치부해 버려야 할 것인가? 반대로, 먹고, 자고, 연애하고, 출산하는 것이 혐오의 대상이나 개선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본래적인 조건이라면, 오히려 구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 안에 ‘애초에 미리’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즉 구원은 언제나 이미 제자리에, 즉 우리의 일상 안에 있었던 구원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 숨겨진 이러한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철학과 문학의 행복한 만남 그런데 이 책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들만을 통해서, 일상 안의 구원을 탐색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일상사(日常事)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낱말들의 인도를 받는 방식으로 쓰였다. 소통, 잠, 악마, 자기기만, 유령, 관상술, 얼굴, 패션, 웰빙, 이름, 분열증적 삶, 애무로서의 글쓰기, 화해와 해방을 향한 글쓰기, 노스탤지어, 외국인, 춤, 예언 등등 일상을 기술하는 개별적인 낱말들을 화두 삼아 이 책은 진행된다. 이런 화두들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저자의 역량이 발휘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풍부한 철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수많은 문학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화두들에 접근하고 있다. 왜 문학인가? 가령 우리는 일상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통계나 앙케트 조사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임의적인 원칙들에 근거한 통계 자료나 앙케트 조사는,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원칙들만큼이나 임의적인 세계의 초상화만을 그려나갈 뿐이다. 오로지 아무런 준비된 원칙도 학문도 논리도 없는, 삶에 대한 원초적 경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문학만이 일상에 종이 한 장의 간극도 없이 밀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문학 작품의 분석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문학비평적 맥락에서 읽힐 수 있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철학적 개념들이 문학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가를 성공적으로 보이는 ‘철학적 문학 비평’의 영역을 이 책은 열어 보여 준다.(덧붙이면, 저자는 우리 문단에서 오래전부터, 독특한 철학적 문학 비평으로 이목을 끌어왔다.) 이 책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철학자로는, 눈에 띄는 대로 꼽아보더라도, 들뢰즈, 데리다, 레비나스, 블랑쇼, 사르트르, 칸트, 스피노자, 니체 등이 있으며, 예술가로는, 셰익스피어, 괴테, 프루스트, 토마스 만, 카프카, 보르헤스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철학과 문학은 만나는가? 전부 15편의 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가령 일상의 「소통」 문제를 다룰 땐, 레비나스의 ‘말함’에 관한 이론과 토마스 핀천의 소설 『49호 품목의 경매』가 만난다. 「자기기만」의 문제를 다룰 땐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와 폴 오스터의 소설 『거대한 괴물』이 만난다. 「분열증의 문학」에서는 기상천외하게도 질 들뢰즈의 『앙띠오이디푸스』의 분열증 개념을 통해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분열증을 진단한다. 또 「웰빙」 같은 오늘날의 지대한 관심사를 다루는 글에선 데리다의 ‘먹기’ 이론과 투르니에의 소설이 만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철학과 문학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호 침투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보여 준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문학을 통해 생동감을 얻게 된 철학 이야기이자, 철학적 개념들을 통해 그 비밀이 파헤쳐진 문학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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