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서 존재자로

원제 De l’existence a l’existant

에마뉘엘 레비나스 | 옮김 서동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3년 3월 28일 | ISBN 89-374-1611-5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22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타자를 통한 구원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레비나스가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려는 계획 아래 ‘통일적인 단일한 작품’으로 완성한 세 권 중 하나로, 레비나스가 직접 쓴 저작으로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쓴 이 책은, 타자를 동일자(나)로 환원하려는 서양 존재론의 전체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인간이 타인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상실하고, 타인을 자신의 지배 아래 종속시키기 위해 전체주의적인 이념을 강요하는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물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ㆍ경제적인 비판이나 휴머니즘적인 대안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닌, 서양 철학의 바탕에서 유래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 책에서 레비나스는 주체의 계산과 규정 아래 환원되지 않는 ‘타자의 얼굴’을 말하면서, 이 ‘무한한’ 타자를 통한 나의 초월을, ‘윤리적 책임’이 곧 ‘구원’이 되는 순간을 말한다. 이러한 독특한 사상을 통해서 철학의 하위 분과로서의 윤리학이 아닌 ‘제1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을 보여주는 이 책은, 다시 포성(砲聲)과 초연(硝煙)이 드리운 이 세계에서 ‘타자’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편집자 리뷰

1. 전쟁의 시대, 타자를 이야기한다
드디어 전쟁이 터졌다. 명분도 없는 전쟁이 수많은 반대를 무시하고 시작되고야 만 것이다. 그것이 미국 내의 소수 권력 집단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으킨 것이든, 미국이라는 오만한 패권 제국의 왜곡된 민족 감정에 의해 일어난 것이든, 혹은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논리로 세계 체제가 공고화되는 과정이든, 이 전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전쟁으로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면서, 이 ‘예견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적개심만을 품고 있는 전쟁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이런 식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익숙하지 말아야 할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타인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서 ‘다름’을 수용치 못하고 인정치 못하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결벽증, 이러한 차이 공포증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안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타자’의 무게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돌려왔는가? 이제 한평생 ‘타자성’에 대해 성찰했던 레비나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전쟁이 덮고 있던 하나의 얼굴, 서양 철학이 외면해 온 ‘타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2. 동일자에서 타자로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2차 대전 당시 레비나스가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포로수용소(스탈라그)에서 쓴 것이다. 발표될 기약조차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서구 존재론을 극복할 새로운 방안을 구상한 이 원고는, 그 일부가 1947년에야 장 발이 주관한 철학 잡지≪되칼리옹≫에 발표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완전한 원고가 책으로 간행되게 된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것들, 가령 ‘잠’, ‘권태’, ‘사랑’, ‘예술 작품’ 등에 대한 매우 정치한 분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구체적인 분석들은 지엽적인 흥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자의 존재 구조를 밝히고 인간의 ‘구원’을 모색하기 위한 전체 기획의 일부로 작성된 것이다. 레비나스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타자의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학계와 문학계에 새로운 화두로 부각되고 있으며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주요 쟁점인 ‘타자’ 문제의 최초의 발원지이자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바로 레비나스인 것이다(초기 데리다의 ‘흔적’ 개념, 최근 데리다의 ‘환대성’ 개념 역시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에 빚을 지고 있다). 서양 근대의 주체 개념은, 타자를 비롯한 외부 대상을 주체의 ‘계산’과 ‘규정’ 아래 놓는 ‘지배력’을 본질로 한다. 즉 타자는 그 자체로가 아니라, 오로지 주체의 측정과 계산에 종속된 형태로만 나타날 수 있었다. 서양 근대 과학의 승리 뒤에는, 그리고 흑인과 동양인과 인디언과 에스키모를 현미경 밑에서 연구하고 박제로 만들고 지배했던 서양의 시선 뒤에는, 바로 타자를 대상화하는 주체의 폭력적인 계산적 힘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반면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은 철저히 주체의 계산과 규정(한정)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어떤 식으로도 주체의 능력이 지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타자의 얼굴은 한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정되지 않음의 이념, 즉 ‘무한’의 이념을 현시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을 통해 ‘무한에 대한 욕망’, 즉 ‘초월’에 대한 욕망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초월이 가능한지 보자. 나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유한자이다. 그러나 내가 한정할 수 없는, 즉 무한자인 타인을 나 자신의 삶보다 더 염려한다면, 이미 그 타인의 삶은 나의 삶 이상으로 ‘나의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인의 삶은 내가 규정할 수 없는 무한이 아닌가? 따라서 이 무한한 삶을 나의 것처럼 아끼고 돌보는 나는 이미 무한한 시간을 나의 것으로 소유한 자, 곧 ‘영생’을 얻은 자이다. 이런 식으로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나의 ‘구원’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한다. 이렇듯, 이제까지 서양의 존재론이 ‘나’ 중심의 이기적인 철학, ‘나’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지배하는 “전쟁의 철학”이었다면, 레비나스는 이러한 존재론을 극복하고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성 속에서 궁극적으로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평화의 철학’을 설파한다.
3. 번역에 대해서
레비나스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기존의 독일 현상학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수립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행간에 하이데거, 후설 등의 철학에 대한 예리한 비판들이 수도 없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러한 비판 및 레비나스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사용하는 많은 어려운 개념과 이론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유의할 주요 개념, 다른 외국 번역판과 비교한 용어 번역 등을 자세하게 주로 달았고, ‘레비나스-하이데거-우리말 개념 대조표’,「레비나스 연보」등을 부록으로 넣었다. 레비나스의 전체 사상을 개괄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해설한 「옮긴이 해제」도 독자들이 이 책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4.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누구인가?
현대 철학자 가운데 레비나스만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의 삶은 유럽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축약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투아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레비나스는 러시아 혁명과 톨스토이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라, 열일곱 살 되던 해에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철학을 공부하게 된다. 거기에서, 얼마 전 타계한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를 만나게 되고, 이후 이들은 평생 동안 서로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우정을 나눈다(국내에 번역되기도 한 블랑쇼의『문학적 공간』에는 곳곳에서 레비나스의 영향이 드러나며, 또 레비나스는『모리스 블랑쇼에 대해서』라는 비평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레비나스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만남은, 몇 년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에링(J. Hering) 교수의 소개로 프라이부르크로 가게 된 레비나스는 당시 유럽 최고의 철학자인 후설과 하이데거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후설은 당시 한 편지에서 “아주 뛰어난 리투아니아 학생이 내게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상학의 대가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뒤 레비나스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에 현상학을 최초로 소개한다. 사르트르도 레비나스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게걸스럽게 읽어내려 갔다.”사르트르는 이를 계기로 현상학에 입문할 수 있었다. 이후 레비나스를 진정 독창적인 철학적 성찰로 이끈 것은 2차 세계 대전 체험이었다. 유대인이던 레비나스는 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리투아니아에 두고 온 가족들을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잃는다. 당시 이미 프랑스로 귀화하여 참전하고 있던 레비나스는 개전 직후 포로가 되는 바람에 다행히 유태인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전쟁 포로로 다루어져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은 레비나스에게“왜 2000년 동안이나 기독교의 복음을 배운 유럽이 극악한 살육이라는 악마의 꾐에 빠져들었는가? 타자를 경시하는 그러한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ㆍ경제적인 측면보다는 궁극적으로 서구 존재론의 근본 구조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서구 존재론 전체를‘전쟁의 철학’으로 규정하고, 타인의 타자성을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상하고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번에 번역된『존재에서 존재자로』는 이러한 레비나스의 철학적 성찰 중 가장 중요한 결실 가운데 하나이다.
서동욱
옮긴이 서동욱은 서강대 철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들뢰즈, 레비나스 등의 프랑스 철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세계의 문학≫과 ≪상상≫ 봄호에 각각 시와 비평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 저서로『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공저),『라깡의 재탄생』(공저), 논문으로「들뢰즈에 대한 오해들」,「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책임성」, 옮긴 책으로『칸트의 비판철학』(들뢰즈),『프루스트와 기호들』(들뢰즈) 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 서울예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이는 유럽에서 레비나스 연구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가장 수준 높은 연구물들을 생산하고 있는 루뱅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존재에서 존재자로』의 번역에 착수하게 되었다.

목차

서문 제2판 서문 제3판 서문 서론 1 존재와 순간의 관계   1 존재와의 관계   2 피로와 순간 2 세계   1 지향들   2 빛 3 세계 없는 존재   1 이국 정서   2 존재자 없는 존재 4 자기 정립   1 불면   2 자리 잡기     1) 의식과 무의식     2) 여기     3) 잠과 장소     4) 현재와 자기 정립     5) 현재와 시간     6) 현재와 \’나\’     7) 현재와 자리     8) 자기 정립의 의미     9) 자기 정립과 자유   3 시간을 향해서     1) 실체로서의 \’자아\’와 인식     2) 동일화 및 자기에의 결부로서의 \’자아\’     3) 자유의 사유와 시간     4) 속죄의 시간과 정의의 시간     5) \’나\’와 시간     6) 시간과 타자     7) 타자와 함께함과 타자와 얼굴을 마주 대함 결론 부록  번역어에 대해서   레비나스 연보―생애와 작품   옮긴이 해제―타인과 초월

작가 소개

에마뉘엘 레비나스

리투아니아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서양의 존재론 전체를 비판적으로 문제 삼고,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내세우는 독특한 타자성의 철학으로 현대 철학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후설과 하이데거 밑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 이들을 최초로 소개했으며, 유명한 다보스 회의에서는 현상학을 옹호하는 등 초기엔 현상학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무한을 향한 초월의 욕망을 밝혀냄으로써 현대 철학의 가장 전위적이고 대담한 입장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주요 저서로 「시간과 타자」, 「전체성과 무한」, 「어려운 자유」 등이 있다.

서동욱 옮김

서강대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벨기에 루뱅 대학 철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세계의 문학>과 <상상>의 봄호에 각각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저서로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시집으로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이 있으며, 「들뢰즈에 대한 오해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책임성」등의 논문과 비평을 발표했다. 옮긴 책으로는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철학」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 서울예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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