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서동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9년 9월 30일 | ISBN 978-89-374-0774-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40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묵시록적 종말의 표정을 탐색해 온 시인 서동욱,
그가 그리는 사랑과 종말이 뒤섞인 처연한 우주 서사,
단 한 번뿐인 첫사랑, 그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다

종말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그리며 줄곧 묵시록적 종말의 표정을 탐색해 온 시인 서동욱의 두 번째 시집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최근 한국 철학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신예 철학자이자 치열한 비평을 통해 젊은 시인들의 강력한 지지자로 떠오른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시인은 첫 시집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을 펴낸 후 10년 만에 새로운 시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사랑과 종말이 뒤섞인 처연한 ‘우주 서사’를 통해 죽음, 사랑 등 진부하고 상투적인 관념을 블랙홀, 우주선, 외계인 등과 결합시켜 신선하고 새로운 시어로 탈바꿈시켰다. 이렇게 우주적인 상상력으로 확장된 사랑의 시는 서정성을 뛰어넘는 초서정성을 빚어 내며 그로써 시인은 인간 생애의 희비극성을 그려 낸다.

편집자 리뷰

■ 우주적인 상상력, 그 초서정성으로 인간 생애의 희비극을 그려 내다
 
  “현란한 포즈의 언어로 이미지의 교란만을 일삼는 일부의 시적 경향에서 훌쩍 비켜나 있으며, 매우 실험적인 인식의 포에지를 펼친다. 시와 예술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열정이 세계 인식의 정당한 방법과 깊이와 조응할 때 빚어질 수 있는 시의 새로운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문학평론가 우찬제)라는 찬사를 받은 서동욱의 두 번째 시집『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에서 그는 불길한 묵시론적 종말의 분위기로 가득 찬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리며, 인식을 억압하는 숨은 권력을 까발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우주로 그 발을 넓혀,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외계의 사랑’을 노래한다. 하나하나 다채로운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시들은 서로서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사랑과 종말이 뒤섞인 처연한 우주 서사는 이 시집의 서시 격인 첫 시에서부터 예고된다.

이윽고
심장에 얹은 손 아래서는
램프에 불이 들어온 것 같은
따스한 기운
임종의 시간
얻은 것 다 두고 사라져 가며
마음과 머리가 겨울 강처럼 텅 빌 때에도
손안에 조약돌처럼 들고 있을 그
짧은 감촉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우주선의 창문처럼
죽어가는 이들의 눈은
캄캄하고
                                                                          —「입맞춤」 전문

도대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이 시집은 아직 탄생하지 않은 태아에서부터 이야기를 꾸며 나간다.(「산부인과 초음파」) 산부인과 초음파에 포착된 태아는 자신이 누리던 평온한 죽음을 방해한 생명이 싫다. 그래서 무덤 같은 자궁 속에 숨어 자신에게 들어오려는 생명에 맞서 싸우다 결국 항복한 채 세상 바깥으로 쫓겨 나간다. 비관적 삶을 몸소 구현한 자들, 그러니까 스물일곱 살에 죽은 염세적인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나(「비광 또는 이하의 마지막 날들」), 마흔여섯 살에 자살한 배우 장국영(「장국영」)이 시집에 출몰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러한 파멸의 정점에 이른 예술가들을 통해 시인은 그들이 화해하지 못한 우리 세계의 잔인함의 여러 국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기에 다시 우주인들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가 이어진다. 코믹한 B급 SF와 낭만적 사랑 이야기가 결합된 서사는 염세와 우울과 절망과 사악함의 정서와 함께 이 시집의 수레를 끌고 가는 말들이다.

(……) 고아가 된 나는 조용히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태양계 최후의 별처럼 포장마차는 은은한 빛으로 밤을 밝히고, 그런데 포장마차 장막을 걷으며 꿈만같이 고교 시절의 그녀가 들어서는 것이다 겨우 공격을 피한 듯 이마에 작은 멍 자국을 가진 채. 그녀는 아직 살아 있는 지구 짐승의 신호처럼 하얀 수증기를 뱉으며 말한다 나도 한잔 줄래? 힘없이 주저앉는, 이제는 희귀종이 된 지구인에게 나는 말없이 따라 주었다 남편은 도망치지 못했어, 그러곤 운다 헌령고교에서 쫓겨나던 마지막 날처럼. 지구상의 최후 한 잔이 비워졌을 때 그녀는 졸음을 못 이기고 어깨에 기대 온다 나는 지구인의 마지막 단잠을 지키며, 지구방위대를 박살 내고 하늘을 가르는 오색 광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름답구나. 가지 않을 거지? 잠결에도 그녀는 팔을 붙잡는다 겨드랑이가 너무 따뜻했고, 나는 가지 않을 거였다……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에서
  
  이와 같은 시에서 그의 우주적인 상상력은 새로운 서정적 미학의 세계를 보여 준다. 우주는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이례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며, 이 이야기에 실려 이별과 아픔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사건이 흘러간다. 우주와 사랑은 인간의 운명이 처한 좌표의 두 축을 이루는데, 그 좌표 안에서 인생을 소모하는 인간의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냉소하는 이 세계의 차가움이 목도된다. 그렇게 ‘우주’와 ‘먼지’, 우주 서사와 인간 생애의 희비극의 결합은 운명의 슬픔과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들었는데
시계 유리에 동그랗게 떠 있는 하늘
범선의 돛대처럼 초침은
저녁 구름 위를 천천히 떠가고
시계를 보려고 손목을 들었는데
시계는 간데없고
저무는 하늘의 풍경 주위로
반짝거리며 나타나
회전하는 수억 개의 톱니바퀴

째깍거리고―
째깍거리고―
젊은 인간이 애통해 울고, 이 슬픔을 기억해야지, 수없이 되뇌지만 기쁨도 슬픔도 사라지고 곧 울음의 기억도 잊어버려, 그를 울게 만든 사람과 지금 방금 옷깃이 스친 줄도 모르고 무심히 지나쳐 길을 건넌다 그 보행자가 길을 또 건너고 건너고 또 여러 번 울다가 점점 종이 위에 그린 멈춘 시계 같은 얼굴이 되어 그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마침내 길 위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러고 나서 또

언젠가 멈출 시계 같은
다른 보행자들의 슬픔을 반짝이는 초침으로 밀고 가며 계속
우주는 째깍거리고
우주는 째깍거리고
시계들은 애통해 울고
별들은 톱니를 맞춘다
                                          —「우주는 째깍거리고 별들은 톱니를 맞춘다」 전문

■ 작품 해설 중에서
 
이 시집의 이미지들은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한순간, 순간의 우주성을 발견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신체적 감각을 우주적인 상상적 차원으로 쏘아 올린다. 손과 손의 혈관의 궤도는 지구 하나가 태어나고 행성 하나가 오가는 그런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의 상상적 전이는 신체적 사건을 우주적 사건으로 만든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신체적 감각의 \’쿵쿵거림\’을 극대화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사건이 속해 있는 아득한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 상상은 서정적이기보다는, \’초\’서정적이다. 사랑의 사건은 몸의 사건이지만, 사랑은 이미 \’외계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수정 구슬은 어떻게 이 상투적인 지구의 질서를 어지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이광호(문학평론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 추천의 말
 
가차 없이 사랑과 이별하는 언어들, 희망이 사라진 사막 같은 별에서 환멸과 절망을 중얼거리는 언어들, 벌거벗은 말의 슬픈 자해, 그리고 고독 속으로 찾아오는 거대한 침묵. 서동욱의 시는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을 선회하는 우주선처럼 우리를 긴장시킨다.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 영원히 사라지는 블랙홀의 경계에 극도로 불안한 언어들을 데려다 놓는 것이다. 갑자기 삶이 절박해지고 추억이 절박해지고 사랑이 다시 절박해진다. 첫사랑은 그렇다. 허무의 윤회 속에서 또 다른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사랑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시집이 묻는 것은 이런 희망의 문제, 발신자도 신호 음도 없는 희망에 대한 탐색이자 종말의 예감 속에서의 죽음에 대한 야유, 타락에 대한 분노, 병든 세계에서 병든 자의 울부짖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과 싸워야 하는 그 끔찍한 고통은 욥을 생각나게 한다. — 최승호(시인)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니, 첫사랑은 어째서 우주전쟁 중에 이루어지는 것일까? 서동욱이 뼈와 가죽과 미지근한 지방질로 채워진 인간의 생애를 희비극적인 우주 서사에 겹쳐 놓았을 때, 나는 거기서 어떤 불가피함을 보았던 것 같다. 우주와 먼지가 한 권의 시집 안에서 공존할 때 그것은 불가피하게 슬픔과 아이러니와 희비극의 상상력을 요청할 것이다. 그제야 무거움과 가벼움, 종말과 탄생, 신화와 현대, 비관과 연민, 사랑과 분노 들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무수한 이질 혼재 속에서 삶의 내부를 흘러갈 것이다. 그것들을 끌어안고 뒹구는 시인은 이미 사유의 바깥으로 나와 울고 웃는 자이다. 나는 이 시집의 어딘가에서 차고 쓸쓸한 바닥에 앉아 있는 처연한 시인의 표정을 보았던 것 같다. 이미 어떤 비유도 개념도 아닌 저 어둡고 캄캄한 밤하늘 아래서, 그는 진심으로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을 희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장욱(시인, 조선대 문창과 교수)

목차

입맞춤
비광 또는 이하의 마지막 날들
산부인과 초음파
슈퍼맨의 비애―귤껍데기 탄생 설화
사춘기
장국영
생은 문자 저편에
새우소년
나의 미용사
가을, 담쟁이
베개 속의 거울 또는 하하하
한밤중의 냉장고
어항의 수면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사랑의 겨울
연애편지
겨울의 연애시
환타신

사람의 몸
겨울밤, 전기밥통
외계인 애인
타이의 불상
후일담
이별의 노래
분노에 대하여
마음도 영혼도 없이, 때로 예쁜 인형같이
알코올중독
우주는 째깍거리고 별들은 톱니를 맞춘다
이별 뒤에
새벽의 여배우
고인 물
왕은 죽어간다
과오의 본질
행방불명
기쁜 젊은 날
괴로왕―또는 금홍이가 마흔을 넘겼다면
주점의 문을 밀며
캔디
잃어버린 중국집
시장길 여관 또는 존재의 저편
뇌―또는 김수영의 마지막 날
가자―2009년 1월
십 년
라헬의 언니 또는 야곱의 아내, 그리고 연애의 끝
부부
은행나무
밥집 대나무
내가 그린 내 얼굴 하나
배고 낳고 죽는 것들에 대하여
임종의 한순간

작품 해설/이광호
외계의 사랑

작가 소개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벨기에 루뱅 대학 철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세계의 문학>과 <상상>의 봄호에 각각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저서로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시집으로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이 있으며, 「들뢰즈에 대한 오해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책임성」등의 논문과 비평을 발표했다. 옮긴 책으로는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철학」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 서울예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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