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눈>이 출간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로 망명했던 시인 ‘카’는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12년만에 고향 터키로 돌아온다. 카는 터키 동북부 국경 지역의 카르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녀들의 연쇄 자살 사건과 시장 선거를 취재하라는 임무를 받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과 경찰청장, 신문사 소장, 시장 후보, 쿠르드인 교주, 이슬람 신학생, 지명 수배된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작가의 오랫동안의 관심사였던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과 갈등이라는 주제는 <눈>에서 보다 진화한 형태로 나타난다. <눈>의 섬세한 내러티브를 이끄는 주체는 카이지만, 그가 남긴 비망록, 서신과 대화를 통해 카의 행적을 추적하고 전체 이야기를 짜 맞추는 작중 화자는 소설가이자 카의 친구로 등장하는 오르한 파묵이다. 게다가 갈등 구조가 일관성없이 변화무쌍하다. 현재의 당면한 역사를 고민하면서 써 내려간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문명 간의 갈들과 현재의 터키가 안고 있는 종교적·정치적·사회적 딜레마들을 문학적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해 놓았다. 동시에 예술과 인생의 본질을 탐색한다. 2004년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사흘 낮, 사흘 밤, 눈 속에 갇힌 카르스에서 일어난 일정치 사건에 얽혀 들어 독일로 망명했던 과거의 반정부 운동가이자 시인 ‘카(Ka)’는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12년만에 고향 이스탄불로 돌아온다. 터키 동북부 국경 지역의 카르스(Kars)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녀들의 연쇄 자살 사건과 시장 선거를 취재하라는 임무를 받고 폭설(Kar)을 헤치며 그곳에 도착한 카는, 마을 사람들과 경찰청장, 신문사 소장, 시장 후보, 쿠르드인 교주, 이슬람 신학고등학교 학생, 지명 수배된 테러리스트 등을 만난다. 한편 그가 카르스에 가기로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계기인 옛사랑 이펙과의 재회 이후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 카의 눈앞에서, 교내 ‘히잡’ 착용을 금해 한 여학생을 자살로 몰아넣은 교육원장이 살해된다. 자신 앞에 닥쳐오는 낯선 사태들을 카가 미처 납득하기도 전, 눈 덮인 카르스 밤하늘에 총성이 울리고 쿠데타가 일어난다.망상에 빠진 저명한 연극배우 수나이 자임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쿠르드인들을 쓸어 버리려고 일으킨 군사 쿠데타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카르스의 모두를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과정에 테러리스트 라지베르트와 정부 측 스파이 Z. 데미르콜, 경찰과 언론, 히잡을 쓴 소녀들의 리더이자 이펙의 여동생인 카디페가 끼어들어 소설은 한층 복잡하고 풍성한 결을 이룬다. 케말주의자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도 아니고 카르스인도 아닌 무신론자 카는 국외자라는 그 이유 때문에 카르스에서의 쿠데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 개입하게 되고, 카의 사랑과 쿠데타, 카르스 모두의 행방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야기의 힘’―내러티브와 플롯이 주는 매혹오랫동안 파묵의 관심사였던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과 갈등이라는 주제는 『눈』에서 보다 진화한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현대화를 지향하는 케말주의자(우파)와 그에 저항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좌파)가 있고, 히잡을 벗느니 자살을 택하는 여학생들과 교칙을 고수하려는 학교가 있다. 서양의 모더니즘 시를 찬양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며, 카르스의 가난한 현지인들과 대도시 이스탄불의 부르주아,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테러리스트와 경찰, 군부와 언론, 쿠데타 세력과 민중, 사랑에 빠진 남과 여가 있다. 이처럼 『눈』의 갈등 구조는 몇 개의 수식으로 정리되지 않을 만큼 까다롭고 변화무쌍하다. 앞에서 말한 대립항들은 서로 대응하지 않으며 일관되지도 않는다. 케말주의자라고 해서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고, 누구도 누구의 편이 아니다. 등장인물 각각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히잡을 쓰고 벗으며, 쿠데타를 반기거나 꺼린다. 뿐만 아니라 쿠데타의 주모자인 수나이의 본업은 (역설적이게도) 예술가이다. 파묵은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심리 묘사를 통해 인간사의 복잡한 단면을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나간다.이는 남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는 이펙을 사랑하지만 카디페에게도 매력을 느끼고, 이펙은 카에게 끌리면서도 전남편 무흐타르와 한때 애인이었던 라지베르트에게 마음이 쓰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 투쟁 전선의 동지인 라지베르트와 카디페는 연인 사이이다. 전작들에서 입증된 바 있는 1급 연애소설가로서 파묵이 지닌 재능은 『눈』에서도 빛을 발한다. 연애(사랑이 아니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변덕스럽고 괴팍하며 도취적인 ‘연애 심리’는 파묵의 손끝 아래서 낱낱이 해부되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이런 섬세한 감정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눈』에 여느 통속적인 연애소설들과는 변별되는 가치를 부여하는 대목이다.지나간 사랑과 지금의 사랑, 참말과 거짓말, 배신과 질투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군상들이 역사의 장강 위로 작은 점이 되어 흘러간다. ‘작가’ 파묵은 ‘화자’ 파묵의 입을 빌어 묻는다. “타인의 고통과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자신보다 더 깊은 고통, 결핍, 압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우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2권 58쪽) 몇 겹의 층위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불협화의 구조 위로, 인간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비극이 드리운다.『눈』의 섬세한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카이지만, 그가 남긴 시와 비망록, 서신과 대화를 통해 카의 행적을 추적하고 전체 이야기를 짜 맞추는 작중 화자는 소설가이자 카의 친구로 등장하는 오르한 파묵이다. 소설가의 천성이 그렇듯 파묵은 신(神)처럼 이야기 중간 중간 끼어들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길게 설명하고 , 심지어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통제한다. 이야기 안에서 카는 시를 쓰고, 이야기 밖에서 파묵은 소설을 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창작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눈』의 진짜 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창작과,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들려주는 이야기들(네집과 파즐이 쓰는 공상과학소설, 라지베르트가 들려주는 「뤼스템과 수흐랍」이야기 등)에까지 이르면, 이 책은 더 이상 카와 카르스, 눈에 관한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한 소설가의 자기 증명 내지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애정 고백이 되어버린다.
1.카르스를 향하여 2.외떨어진 마을들 3.가난과 역사 4.카와 이펙, 예니 하얏 제과점에서 5.살인자와 피살자 사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 6.무흐타르의 슬픈 이야기 7.지구당 사무실, 경찰서 그리고 다시 거리에서 8.라지베르트와 뤼스템의 이야기 9.자살하고 싶지 않은 불신자 10.눈 그리고 행복 11.카, 교주 사데띤 에펜디와 함께 12.네 집의 슬픈 이야기 13.눈 속에서 카디페와의 산책 14.저녁 식탁에서 나눈, 사랑과 히잡 그리고 자살에 관한 대화 15.밀렛 극장에서 16.네집이 본 풍경과 카의 시 17.히잡을 불태운 소녀에 대한 연극 18.무대에서의 혁명 19.혁명의 밤 20.밤 그리고 아침 21.카, 춥고 끔찍한 방에서 22.수나이 자임의 군대 경력과 연극 경력 23.수나이와 함게 사령부에서 24.육각형 눈송이 25.카와 카디페, 호텔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