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층의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소설

아소무아르(목로주점) 2

원제 LʼAssommoir

에밀 졸라 | 옮김 윤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4년 4월 29일 | ISBN 978-89-374-6442-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7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나는 고발한다’로 표상된 행동하는 지성, 루공 마카르 총서를 완성한 에밀 졸라

 

‘아소무아르’에서 독주를 마시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동자의 삶 조명

 

“직업상 주어진 더러움의 한가운데서 주고받은 그날의 깊숙한 키스야말로

두 사람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첫 추락이었다.”

 

 

▶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졌다.

─ 아나톨 프랑스의 조사(弔辭)

편집자 리뷰

■ 아소무아르(목로주점), 빈민층의 삶 묘사한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 행동하는 지성 에밀 졸라의 위대한 작품 『아소무아르(목로주점)』가 세계문학전집 441, 442번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졸라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제르미날』이 노동자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이라면, 『아소무아르』는 서민층과 빈민층의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겐 ‘목로주점’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아소무아르』의 이야기는 “일할 수 있고, 먹을 것이 있고, 몸 누일 자리”만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꿈을 지닌 제르베즈의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7장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봉쾨르 여관에서 가난에 시달리다 버림받은 제르베즈가 세탁소 주인이 되기까지의 상승 과정을, 후반부는 그녀가 가난과 술에 절어 비참한 죽음을 맞기까지의 하강 과정을 그린다. 이 책의 제목인 ‘아소무아르’는 시문 벽을 따라 난 외곽 대로 중 샤펠 대로와 이어진 로슈슈아르 대로가 푸아소니에 거리와 만나는 모퉁이에 위치한 술집의 이름이다. 원래 ‘아소무아르(assommoir)’는 ‘때려눕히다’라는 뜻의 동사 assommer에서 파생된 용어로, 때려서 죽일 수 있는 몽둥이, 혹은 ‘사람을 때려눕힐 정도로 힘든 일’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중엽 파리의 벨빌 지역에 가난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알코올로 사람을 때려눕히는 곳’이라는 뜻의 아소무아르라는 이름의 술집이 처음 생긴 뒤 많은 술집이 같은 이름을 내걸었고, 졸라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19세기 말에는 ‘값싼 술집’, ‘선술집’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목로주점’으로 번역되어 온 이 제목은 무엇보다 독주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죽어 가게 될 인물들의 삶을 예고한다.

 

파리 푸아소니에르 시문의 왼쪽, 샤펠 대로에 자리한 봉쾨르 여관 창문에서 제르베즈는 새벽 2시까지 랑티에를 기다렸다. 어제 저녁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간 랑티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르베즈는 술만 취하면 때리는 아버지 마카르를 피하려고 랑티에와 동거 후 열네 살에 첫애를, 열여덟 살에 둘째를 낳았다. 랑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돈을 들고 둘은 파리로 왔고, 몽마르트르 호텔에서 먹고 마시고 옷을 사며 법석을 떨다 두 달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결국 봉쾨르 여관으로 내몰린 두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이제 수중에 남은 건 빨래할 돈 4수뿐이다. 그런데 랑티에가 수상하다. 제르베즈가 빨래하러 온 세탁장에 아이 둘이 열쇠를 들고 온 것이다. 제르베즈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아소무아르에서 독주를 마시는 순간 몰락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의 삶, 제르베즈의 슬픈 운명을 따라가 보자.

 

 

■ ‘루공 마카르 총서’를 통해 환경과 유전이 한 가족에 미치는 영향 조명

 

1867년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 『테레즈 라캥』으로 큰 소설을 거둔 졸라는 사회적, 자연적 혈연으로 연결된 한 가족사의 삶을 조명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계획하여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전 20권을 출간했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문학사에서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제1 제정과 왕정복고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재현하려 한 발자크의 『인간 희극』을 이어받았지만, 이어진 제2 공화국과 제2 제정 시대를 그려 내려 한 졸라의 시도는 이른바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재현하기보다는 과학적인 실험 작업이기를 바랐다. ‘제2 제정하 한 가족의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역사’라는 부제가 그러한 목표를 요약해 준다. 여기서 ‘한 가족’은 프랑스 남부 플라상(졸라가 자라난 엑상프로방스를 모델로 하는 가상의 지명이다.)에 사는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인을 통해 이어진 오 대에 걸친 루공가와 마카르가의 사람들을 말한다. 열여덟 살 때 부모가 사망하면서 혼자 남은 아델라이드 푸크는 정원사이던 루공과 결혼하여 아들 피에르 루공을 낳았고, 남편이 사망한 뒤에는 밀렵꾼 마카르와의 사이에서 아들 앙투안 마카르와 딸 위르실 마카르를 낳았다.(삼 대에서 위르실 마카르의 아들 프랑수아 무레가 피에르 루공의 딸 마르트 루공과 결혼한다.)

 

7권인 『아소무아르(목로주점)』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관계를 보면, 주인공 제르베즈는 앙투안 마카르의 딸이고, 제르베즈의 자식들 중 큰아들 클로드 랑티에와 그 아들 자크루이 랑티에는 『작품』(1886), 파리로 데려오지 않은 둘째 아들 자크 랑티에는 『인간 짐승』(1890), 막내 에티엔 랑티에는 『제르미날』(1885), 안나(나나) 쿠포는 『나나』(1880)의 주인공이다.(파리에 산다고 한 번 언급된 제르베즈의 언니는 『파리의 복부』(1873)에 나오는 크뉘의 아내 리자 크뉘 마카르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마지막 스무 번째 책인 『의사 파스칼』을 통해, 다시 말해 의사들의 시선을 통해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 이론을 완성한다. 총서의 부제에서 ‘사회적’과 ‘자연적’은 혈연으로 연결된 이 인물들이 ‘환경’과 ‘유전’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 주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환경은 대표작 『아소무아르』가 잘 보여 주듯 비참한 물질적 조건이 노동자들의 선의마저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통해 드러나고, 유전은 아델라이드의 신경증과 마카르가의 알코올 중독을 통해 드러난다.(심지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한 『제르미날』의 에티엔 랑티에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에는 조상들의 먼 옛날 술기운으로 충분”했다고 말한다.)

 

『아소무아르(목로주점)』의 문학적 의의는 무엇보다 졸라가 『실험 소설론』(1880)에서 제시한 문학론, 즉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 내야 한다는 소설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는 데 있다. 졸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소무아르』는 “변두리 지역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야기되는 한 노동자 가족의 숙명적인 타락”의 이야기다. 실제 졸라는 제르베즈와 쿠포가 원래 게으름뱅이, 주정뱅이가 아니라 ‘그렇게 되었다.’라고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적 억압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유전의 힘 때문이다.(제르베즈와 쿠포의 딸 나나의 이야기는 그러한 숙명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이 소설과 함께 파리의 하층민들은 처음으로 문학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들의 가난과 나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환호하던 독자들뿐 아니라 당사자인 노동 계급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아소무아르』의 ‘외설’은 또한 파리 변두리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비속어와 은어들을 포함한다.(그 낯선 어휘들 때문에 여전히 『아소무아르』의 많은 판본에는 어휘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항의로 신문 연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결국 19세기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아소무아르』의 세계는, 낯설고 충격적인 모든 소재가 그렇듯이, 두려움과 동시에 야릇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 동물에 가까운 노동자, 가난, 술, 게으름의 세계

 

노동자들이 먹잇감으로 그려진 『아소무아르』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둘러싼 기계들은 무서운 동물, 괴물로 그려진다. 산업 사회의 상징인 전능한 기계들은 언제든 인간-동물을 겁탈하고 삼킬 수 있는 괴물과 같은 존재다. 첫 장에서 이른 아침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묘사가 군중(troupe)이 아니라 짐승 떼(troupeau)로 그려지고, 파리라는 도시는 “입을 벌려 포부르푸아소니에르 거리로 사람들을 하나씩 집어삼키는” 포식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제르베즈를 위협하는 불길한 기운, 그 운명적인 힘은 또한 물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가난 속에서 술과 게으름으로 파멸해 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구트도르(황금 방울이라는 뜻이고, 원래는 그 지역의 포도밭에서 백포도주를 생산한 데서 나온 이름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의 거리를 주 무대로 하는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를 더욱 강조한다.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물은 염색장의 물감으로 물들어 있는 도랑처럼 늘 더럽고 불길한 물이다. 제르베즈의 결혼식 날 쏟아지던 소나기가 그렇듯이, 비 역시 하늘에서 내리는 불길한 물이다. 노동자들이 마시는 술은 어떤가. 몸속의 술은 “폭풍우 치는 날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흐르고, 증류기가 흘리는 알코올 땀은 술집 전체를 채우고 큰길로 흘러나가 파리라는 거대한 구멍을 채워 버릴 듯 위협한다.

 

이러한 물의 세계에서 습기 없는 곳, 청결한 곳은 곧 불이 지배하는 곳이다. 제르베즈가 더러움과 싸우는 장소, 세상의 더러움을 청소하고 습기를 없앨 수 있는 세탁소가 대표적이다. 또한 대장장이 구제의 방, 그리고 그의 일터인 철공소는 청결과 정화의 불을 상징한다. 사실상 구제는 제르베즈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제르베즈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푸른색 세탁소도, 구제의 신화적 힘이 지배하던 철공소도 그녀의 운명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이기지는 못한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랑티에를 세탁소 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된 제르베즈의 전락은 역시 랑티에의 유혹으로 술에 취해 버린 남편이 더럽혀 놓은 침대를 피해 집 안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곳”이던 랑티에의 침대를 받아들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소무아르』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루이 나폴레옹이 제2 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1850년이 소설의 초반부고, 그가 쿠데타를 통해 황제가 된 뒤 오스만 남작의 지휘로 시작된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이 파리 변두리 지역의 모습을 바꿔 놓던 1868년이 결말 부분이다. 『아소무아르』는 그 화려함의 그늘 뒤에서 비참하게 살아간 하층민들의 삶을 그린다. 파리 북쪽 변두리(이후 파리에 편입되어 현재는 18구에 해당한다.)에 살면서 일터인 파리를 오가는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노동의 착취에 따른 배고픔이라는 괴물을 가리는 가면일 뿐이며, 당대 부르주아들이 갈구하는 자유라는 정치적 이상 역시 배부른 위선일 뿐이다. 산업 자본주의의 힘을 상징하는 기계 역시, 손에 망치를 들고 힘과 기술로 나사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 구제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나사 제조기가 말해 주듯, 노동자들의 가장 위험한 적(敵)이다. 훗날 『제르미날』의광부 파업을 이끌게 될 에티엔 랑티에가 파리를 떠나는 날에 그 아버지가 “제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자는 노예가 아니”라고 역설하는 장면은 잔혹 희극에 가깝다.

 

 

■ 아소무아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삶들에 바쳐진 애도

 

사회 정의를 위해 평생 싸운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통해 노동자와 그들의 핍진한 삶을 조명하고, 간첩 누명을 쓴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내는 「나는 고발한다」(1898)라는 글을 발표하여 궁극적으로 그의 복권을 이루어 냄으로써 행동하는 지성인의 표상이 되었다. 1893년 루공 마카르 총서를 막 마무리한 오십 대 졸라의 삶은 프랑스 사회를 첨예한 갈등과 대결로 밀어 넣은 드레퓌스 사건(1894~1899)과 함께 큰 전기를 맞는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여명》 지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1898)로 인해 졸라는 프랑스 극우파들에게 비난과 협박을 받게 되고, 명예 훼손죄로 고발당해 재판도 받는다. 런던으로 망명했다가 드레퓌스의 무혐의가 확정된 뒤 귀국했지만,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공격에 시달렸다. 그래서 졸라가 1902년 파리 아파트에서 벽난로 가스에 중독되어 세상을 떠났을 때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심지어 누군가 자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드레퓌스 논쟁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후보했지만 ‘외설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 에밀 졸라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뜨렸고, 그의 장례식에는 광부들이 자신들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삼아 준 작품의 제목 “제르미날!”을 외치며 행진하기도 했다.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힌 그의 유해는 1908년 팡테옹으로 이장되었고, 메당의 집은 현재 졸라 박물관으로 쓰인다.

 

빈민 노동자들의 삶을 집약한 『아소무아르』는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추락하고 마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설은 그 추락이 ‘어쩔 수 없는’ 것,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첫 장에서 ‘착한 마음’이라는 뜻의 봉쾨르 여관 창가에 서서 자신의 삶이(짐승들이 살육당하는) 도축장과 (인간들이 죽어 나가는) 병원 사이를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막연한 예감에 전율하던 제르베즈는 결국 마지막 장에서 굶주림에 지쳐 거리를 헤매면서 그 도축장과 병원 사이를 “마지막 산책로”로 삼게 된다! 『아소무아르』의 세계는 구원의 성당 대신 아소무아르라는 흑(黑)미사의

성당이 버티고 선 세계이며, 구원의 노래 대신 ‘굶주림의 애가(哀歌)’가 퍼져 나가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를 그려 내는 화자의 목소리는 미로처럼 얽힌 자유 간접 화법을 통해 수많은 목소리들 사이에, 운명에 짓눌린 사람들의 신음, 추악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이들을 옭아맨 밧줄을 손에 든 힘들의 비웃음 소리 사이에 흩어져 있다.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어두운 늪을 그려 내는 『아소무아르』는 독자로 하여금 그 허우적거림을 환한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도록 강요하는 잔인한 소설이며, 그렇게 허우적거리다 결국 추락하고 마는 가련한 노동자의 삶들에 바치는 애도의 서사시다.

 

 

■ 본문 중에서

 

<1권>

 

“퍽! 퍽! 마르고가 빨래를 한다네……. 퍽! 퍽! 방망이질을 한다네……. 퍽! 퍽! 마음을 씻으러 가자꾸나……. 퍽! 퍽! 고통으로 새까매진 마음을…….”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건 네 몫이고, 이건 네 동생 몫, 이건 랑티에 몫……. 그 년놈들 만나거든 꼭 전해 주렴……. 자, 한 번 더! 이건 랑티에 몫, 이건 네 동생 몫, 이건 네 몫! 퍽! 퍽! 마르고가 빨래를 한다네. 퍽! 퍽! 방망이질을 한다네.”(49-50쪽)

 

콜롱브 영감의 아소무아르는 푸아소니에 거리와 로슈수아르 대로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었다. 간판에는 파란 글씨로 ‘증류주’라고만 쓰여 있었다. 입구에는 반으로 자른 술통들 안에 협죽도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입구 왼편으로 넓고 긴 카운터가 있고, 그 위로 가지런히 놓인 유리컵들, 술과 주석으로 만든 계량 용기들이 보였다.(58쪽)

 

“세상에! 난 정말 욕심 같은 거 없어요. 큰 걸 바라지도 않고요. 내가 꿈꾸는 건 그저 아무 일 없이 일하고, 먹을 게 떨어지지 않고, 몸 누일 수 있는 조금 깨끗한 구석 자리 하나만 있으면 돼요. 그러니까 침대 하나, 탁자 하나에 의자 두 개, 그거면 더 바라는 게 없어요. 아! 난 아이들을 키워 낼 거예요.(70쪽)

 

“아무리 그래도 당신도 가야 하는 길인걸……. 언젠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가게 될 거야…….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엔 데려다주면 고맙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지.”

결국 로리외 부부가 바주즈를 데려가기로 했다. 바주즈는 연신 딸꾹질을 해 대면서 뒤를 돌아보고 더듬거렸다.

“죽고 나면…… 그래…… 죽고 나면, 오래오래 아주 가는 거야…….”(153쪽)

 

쿠포는 제르베즈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르베즈도 체념했다. 빨래 더미의 냄새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면서 머리가 멍해졌고, 술 냄새가 밴 쿠포의 숨결도 싫지 않았다. 직업상 주어진 더러움의 한가운데서 주고받은 그날의 깊숙한 키스야말로 두 사람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첫 추락이었다.(233쪽)

 

제르베즈는 피부를 창백하게 만드는 그의 중독된 피 속에서 아소무아르의 독주를 알아보았다. (……) 제르베즈는 온몸에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절대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절

망감이 엄습하면서 심장을 도려내는 듯이 아팠고, 남자들을, 남편과 구제를, 그리고 랑티에를 떠올렸다.(309쪽)

 

쿠포 내외가 피로로 곯아떨어져 있는 동안 열린 창문으로 이웃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서는 날카로운 이빨로 밤새 거위의 뼈를 씹어 흔적 없이 끝내 버렸다.(370쪽)

 

<2권>

 

함께 달아날 생각을 하다니,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그런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고 상류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하기야! 노동자들이 결혼한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수작 거는 걸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정작 여자를 생드니까지도 데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려 했다.(43쪽)

 

쿠포는 쓰레기 더미에서, 벤치에서, 공터에서, 도랑 한가운데서, 그야말로 아무 데서나 잤다. 잠에서 깨어나면 전날의 술기운이 미처 빠지지 않은 채로 다시 술집의 덧문을 두드렸고, 크고 작은 술잔과 술병을 잔뜩 쌓아 두고 미친 듯이 퍼마셨다. 친구들을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끝없이 돌아다녔고, 집에 돌아올 때면 거리가 그의 눈앞에서 마치 춤추듯이 흔들거렸다.(63쪽)

 

제르베즈는 청결하고 모든 것이 정리된 구제네 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면서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곳에 자기의 올바른 삶의 한구석을 남겨 두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치 우리로 돌아가는 암소처럼 걸어서 가게까지 왔다.(88쪽)

 

“이런, 세상에! 그런 거구먼!” 바주즈 영감이 자기 허벅지를 치면서 말했다.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늙은 마나님이 죽었네.” 제르베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바주즈 영감은 제르베즈의 관을 들고 온 것이다.(122쪽)

 

제르베즈는 마르카데 거리의 작은 공원 구덩이 속에 쿠포 마나님만 묻고 온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것이 사라져 버렸다. 삶의 한 조각이, 가게가, 그리고 가게 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사라졌다. 다른 감정들도 모두 묻어 버렸다. 그랬다. 장식 하나 없이 헐벗은 벽이 눈에 들어오자 제르베즈는 마치 자기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133쪽)

 

아! 이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니! 세상에! 그녀는, 물론 알고 있었지만, 자산이 왜 이토록 의지력이 없는지 자책했다. 등 한번 떠밀렸을 뿐인데 어느새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술이 맛있다니! 술은 조금 매스꺼웠지만 또 조금은 달콤했다.(187-188쪽)

 

어머니도 술을 마시는 것이다! 제르베즈는 이제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콜롱브 영감의 술집으로 기꺼이 찾아갔다. 합석해서 같이 술을 얻어 마시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의 모습은 처음 술을 마시던 날 진저리를 치던 표정과 거리가 멀었다. 기꺼이 테이블에 앉아서 거나하게 들이켰고, 몇 시간이고 양팔을 괸 채 죽치고 있다가 눈이 풀린 몽롱한 얼굴로 일어섰다.(223쪽)

 

비르지니는 내일 치러야 하는, 하지만 어떻게 갚을지 막연한 청구서 두 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살이 붙어 기름이 번지르르한 랑티에는 부지런히 사탕을 먹고 또 그것을 땀으로 흘려보냈다. 그는 화려하게 치장한 계집애들을 향한 정열로, 거의 다 먹어 치워 파산 냄새가 풍기는 비르지니의 가게를 가득 채웠다. 그렇다. 이제 설탕에 조린 과자 몇 개와 보리 사탕 몇 개만 더 먹으면 푸아송네 가게도 끝장이었다.(257쪽)

 

제르베즈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슬프고 끔찍했다. 제르베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도 사랑해요, 구제 씨, 정말 사랑해요……. 오!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돼. 이젠 정말 갈게요. 구제 씨. 같이 있으면 우린 둘 다 괴로워서 죽어 버릴 거예요.”(305쪽)

 

저 살갗 아래에서 아소무아르의 독주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쿠포의 온몸이 독주에 절어 버렸다! 곡괭이질이 쿠포의 몸뚱이 전부를 쉬지 않고 흔들어 대면서 조각내고 결국 숨을 끊어 놓을 터였다.(334-335쪽)

 

“누구나 다 가는 거야. 먼저 가려고 밀치고 싸울 필요도 없지. 누구나 다 갈 수 있게 자리가 넉넉하거든. 먼저 가겠다고 서두르는 건 바보짓이야. 그래 봐야 더 늦어진다니까.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야. 그냥 즐겁게 하라는 거.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한번 제대로 생각해 봐. 처음엔 싫다고 했다가 나중엔 가고 싶어 했잖아? 그래도 기다려야 했지. 그래. 이제 됐어. 이제 원하는 대로 됐네. 즐겁게 갑시다!”(338쪽)

 

 

목차

[1권]

 

1장 7

2장 55

3장 103

4장 155

5장 205

6장 259

7장 311

 

[2권]

 

8장 7

9장 71

10장 135

11장 195

12장 259

13장 311

작품 해설 339

작가 연보 352

루공 마카르 가계도 362

 

 

작가 소개

에밀 졸라

프랑스에 귀화한 이탈리아인 토목기사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랑수아 졸라가 프로방스 지역에서 수도관 건설 일을 맡게 되면서 가족이 엑상프로방스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한 뒤에도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 덕분에 가난을 딛고 학업을 이어 가면서, 훗날 화가가 되는 폴 세잔을 비롯한 친구들과 교류했다. 열아홉 살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온 졸라는 출판사에 이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초기 작품들 중 대표작인 『테레즈 라캥』(1867)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썩은 문학” “포르노 같은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이후 졸라는 『루공 가의운명』(1871)부터 『파스칼 박사』(1893)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에 걸쳐 스무 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 그중 일곱 번째 책으로 1876년부터 신문에 연재되다 이듬해 책으로 출간된 『아소무아르(목로주점)』(1877)는 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었고(정확히 말하자면, 하층민의 삶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가 불러온 그 논란은 오히려 작품의 성공에 기여했다.), 그 덕분에 졸라가 매입한 파리 근교 메당의 집은 정기적으로 그곳에 모인 작가들의 작품집 『메당의 저녁』(1880)과 함께 자연주의 문학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하지만 1893년 루공 마카르 총서를 막 마무리한 오십 대 졸라의 삶은 프랑스 사회를 첨예한 갈등과 대결로 밀어 넣은 드레퓌스 사건(1894~1899년)과 함께 큰 전기를 맞게 된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로로르』지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1898)로 인해 졸라는 프랑스 극우파들에게 비난과 협박을 받았고, 결국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아야 했다. 런던으로 망명했다가 드레퓌스의 무혐의가 확정된 뒤 귀국했지만, 그런 뒤에도 수그러들지 않은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그가 1902년 파리 아파트에서 벽난로 가스에 중독되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독살설이 제기되었다.(심지어 누군가 자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드레퓌스 논쟁 이전에도 이미 열아홉 번이나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후보했지만 ‘외설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 에밀 졸라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트렸고, 그의 장례식에는 광부들이 자신들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삼아 준 작품의 제목 “제르미날!”을 외치며 행진하기도 했다.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힌 그의 유해는 1908년 팡테옹으로 이장되었고, 메당의 집은 현재 졸라 박물관으로 쓰인다.

 

윤진 옮김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자서전의 규약』(르죈), 『문학 생산의 이론을 위하여』(마슈레), 『사탄의 태양 아래』(베르나노스), 『위험한 관계』(라클로), 『페르디두르케』(곰브로비치), 『벨아미』(모파상), 『알렉시—은총의 일격』(유르스나르), 『주군의 여인』(코엔), 『루』(킴 투이), 『태평양을 막는 제방』(뒤라스), 『파리의 클로딘』(콜레트), 『에로스의 눈물』(바타유), 『알 수 없는 발신자』(프루스트), 『사소한 삶』(미숑), 『밤의 가스파르』(베르트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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