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1

원제 Germinal

에밀 졸라 | 옮김 강충권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11월 5일 | ISBN 978-89-374-6416-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5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왜 어떤 사람들은 빈궁한가? 왜 다른 사람들은 부유한가?

왜 빈궁한 사람들은 부유한 자들의 자리를 차지할 희망을

결코 갖지 못하고 그들의 발굽 아래 있는가?”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 에밀 졸라

사회 진보와 변혁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의지와 희망을 그린

졸라의 최고 걸작

 

▶ 방금 『제르미날』을 받아서 바로 읽기 시작했어. 50쪽을 읽었는데 정말 눈부신 작품이라고 생각해.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1885년 5월 28일)

 

▶ 『제르미날』은 작가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관에 바탕한 실증주의와 이상적인 정의 사회를 꿈꾸는 혁명 의식이 훌륭히 결합되어 있고, 아울러 그리스 신화와 종교상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신화적이고 서사시적인 상상력도 엿볼 수 있는 대작이다. ─강충권(「작품 해설」에서)

편집자 리뷰

에밀 졸라의 대표작 ‘루공 마카르 총서’ 스무 권 가운데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제르미날』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에밀 졸라는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이십여 년에 걸쳐 총 스무 권으로 구성된 ‘루공 마카르 총서’를 완성했다. 한 가족의 역사를 다룬 이 총서를 통해 에밀 졸라는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사회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총서의 열세 번째 소설로서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제르미날』은 일곱 번째 작품인 『목로주점』과 더불어 에밀 졸라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다.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목로주점』에서 파리 근교 하층민의 삶을 대담하고도 파격적으로 그려 내 세간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비판을 받기도 했던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에서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 탄광촌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집단의 삶, 그들의 비참한 생활 면면을 생생하게 담아내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제르미날』은 노동자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로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 관계와 계급 투쟁이 한 편의 웅장한 서사시처럼 그려진다. 그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지닌 강렬한 힘에 이끌려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거대하게 뻗어 내려간 검은 탄광을 배경으로 극한의 노동에 내몰린 광부들의 척박한 삶과 그 안에서 엇갈리는 젊은이들의 사랑, 광산 회사의 경영진과 주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들의 사치스런 생활과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는 처지까지 내몰리고 마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이 이루는 극명한 대비까지 에밀 졸라가 이 작품 속에서 엮어낸 세계는 그 치밀함과 생생함으로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번역가 강충권은 에밀 졸라 특유의 문체를 작품의 시대적 배경,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문학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원문에 충실하게 우리말로 옮겼다.

 

 

■ 노동자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 광부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

 

『제르미날』은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아들인 에티엔 랑티에가 프랑스 북부 탄광촌 몽수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나폴레옹 3세 치하 제2제정기인 1866년, 기계공으로 일하던 에티엔은 릴에서 상사의 따귀를 때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떠돌다 몽수에 이르고, 르 보뢰 탄광에서 선조부터 대대로 일해 온 마외 가족과 함께 광부로 일하게 된다. 에티엔은 첫날부터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마외의 딸 카트린에게 호감을 품지만 평소 그녀를 눈여겨보던 샤발에게 카트린을 빼앗기고, 카트린과 에티엔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광부들은 지하 554미터 깊이의 수갱에 내려가 비좁은 갱도에서 끔찍한 더위와 물벼락에 시달리며 석탄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짐승같이 일한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혹독하게 일하는데도 회사는 갱목을 제대로 대지 않았다는 둥 핑계를 대고 벌점을 매겨 임금을 제대로 쳐 주지 않는다. 줄어드는 임금에 탄광촌 사람들은 빚이 점점 늘어나고 고기는커녕 빵 부스러기조차 먹을 것이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에티엔은 혹독한 탄광 일에 충격받지만 곧 그는 가장 뛰어난 일꾼 중 하나가 되어 광부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게 되고, 그가 머무는 숙소에서 전직 광부였던 집주인 라스뇌르와 러시아에서 망명해 온 사회주의자인 하숙인 수바린과 교류하면서 사회주의와 노동 운동에 눈뜬다.

회사는 산업 위기로 인한 파산을 면하기 위해 광부들의 임금을 교묘하게 삭감하고, 그로 인해 탄광촌은 집집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 와중에 갱도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상황이 점점 악화된다.

선조들부터 대대로 탄광에서 일했고, 탄광에서 일하다 죽음을 맞았고, 그 자신들은 물론 앞으로 태어날 그들의 자식도 어린 나이부터 탄광에 내려가 일하다 종국에는 탄광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인 몽수 탄광촌 사람들의 삶이 종횡으로 펼쳐지면서, 마침내 에티엔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 모두의 앞날이 걸린 대대적인 파업이 일어난다.

 

 

■ 삶의 고통과 희망을 단단히 응축한 위대한 고전의 힘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을 쓰기 위해 스스로 탄광촌에 뛰어들어 현장을 조사했으며 수많은 문헌을 검토하고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탄광의 암울한 모습과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을 그토록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작품 속에 되살려 내면서도 그는 노동자들의 삶에서 ‘싹 트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 작품 제목인 ‘제르미날(Germinal)’이라는 말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화력의 일곱 번째 달로서 3월 21일부터 4월 19일까지의 한 달 동안을 가리키며, ‘싹(germe)이 나는 달’이라는 뜻이다. 에밀 졸라의 장례식 때 프랑스 북부 탄광 지역 광부 대표들이 “제르미날!”을 연호하며 장지까지 따라간 일은 이 작품이 그들에게, 더 나아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일터에서 죽음을 맞는 노동자들과 막대한 주식을 보유한 덕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도 부를 누리며 무위도식하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은 에밀 졸라가 『제르미날』을 통해 그리고자 했던 당시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제르미날』에는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강인한 의지와 새로운 희망이 ‘싹이 나는 달’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제르미날』은 이처럼 노동자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 뛰어난 노동 소설이나 단순히 노동 소설로만 규정 지을 수는 없다. 에티엔과 카트린, 샤발이 이루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 남녀의 사랑 또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온몸이 망가지도록 평생 일한 본모르 노인, 훌륭한 일꾼인 가장 마외와 일곱 자녀를 키우면서 강인하게 가족을 보살피는 꿋꿋한 라 마외드, 그리고 그녀의 어린 자녀들까지 이어지는 한 가족의 서사가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 또한 두 남자를 거느리고 사는 라 르바크와 갱내 총감독과 불륜 관계인 라 피에론, 외상을 주는 대가로 여자들을 탐하는 메그라 등 탄광촌 사람들의 빗나간 욕망을 보여 주기도 하며, 한없이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결국 불행한 사건을 맞이하고 마는 그레구아르 가족과 남모르게 고통을 품고 사는 엔보 씨 등 노동자의 반대편에 있는 부르주아 계급마저 나름의 슬픔을 지닌 인물로 세밀하게 그려 냄으로써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고통, 순수한 애정과 희생 등 인간 삶의 모습 전반을 단단히 응축해 담아냈다. 가슴 벅찬 감동과 함께 뜨거운 여운을, 미래에 대한 뭉클한 다짐을 남기는 『제르미날』은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힘을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 본문에서

 

* 이 헐벗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3월의 바람이 실어 오는 것은 굶주림의 비명이 아닐까? 돌풍이 미친 듯 불어 대면서 일거리를 없애고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 빈곤을 갖다주려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는 욕망과 보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어둠 속을 꿰뚫어 보려 애썼다. (1권 16쪽)

 

* 다른 일을 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그들은 대대로 그 일을 했다. 그의 아들 투생 마외도 지금 탄광에서 죽어라 일하고 있으며 탄광촌에 있는 그의 집 맞은편에서 살고 있는 그의 손자들과 일가붙이도 모두 마찬가지다. 노인들 다음에는 어린애들이 똑같은 사장을 위해 계속해 온 106년 동안의 채굴, 어떤가? 수많은 부르주아들은 자기네 가족사를 이렇게 잘 얘기할 수는 없을걸! (1권 21쪽)

 

*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 안에 쪼그려 앉았고 케이지는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더니 사 분이 될까 말까 싶은 사이에 다시 솟아 올라와 한 차분의 사람들을 또 집어삼켰다. 삼십 분 동안 수갱은 광부들이 내리는 광차 탑재대의 깊이에 따라 더 탐욕스런 혹은 덜 탐욕스런 아가리로 그렇게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항상 허기진 듯 민중 전체를 소화시킬 수 있는 그 거대한 창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수갱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지고 암흑은 죽어 있는 듯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조용하고 게걸스럽게 텅 빈 곳에서 올라왔다. (1권 45쪽)

 

* 이곳에 머물러야 하나? 그는 다시 망설임에 사로잡혔다. 큰길을 다니는 자유를,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라는 기쁨으로 참아 냈던 햇빛 아래 허기를 그리워하게 되니 불편한 심정이었다. 돌풍 가운데 폐석장에 도착한 이후 깜깜한 갱도에서 배를 깔고 지하에서 보낸 시간들까지 그는 그곳에서 수년간 산 느낌이었다. 그 일을 다시 하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그 일은 부당하고 너무나 힘들며, 눈멀고 짓눌리는 짐승이 되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들고일어났다. (1권 109쪽)

 

* 그때 에티엔은 갑자기 결심했다. 그는 저 위 탄광촌 입구에 있는 카트린의 맑은 눈을 다시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은 차라리 르 보뢰에서 불어오는 항거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지만 그는 고통을 겪고 싸우기 위해 탄광으로 다시 내려가고자 했다. 그리고 본모르가 언급하던 그 사람들을, 그리고 만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지도 못한 채 바친 살을 잔뜩 먹고 웅크리고 있는 신을 분노에 찬 채 생각했다. (1권 112쪽)

 

* 주가는 다시 오를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게 요지부동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 종교적인 신념에는 주식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섞여 있었는데, 그 주식은 한 세기 전부터 가족들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먹여 살려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기심으로 숭배해 마지않는, 그들에게 신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 가정의 은인으로, 그들을 게으름의 커다란 침대 속에 흔들어 재워 주고 진수성찬의 식탁에서 그들을 살찌워 주었다. 이것은 대대로 이어져 왔다. 운명을 의심함으로써 운명의 비위를 거스를 위험을 왜 무릅쓰겠는가? (…) 그들은 수많은 광부들, 즉 굶주린 자들이 대를 이어 가며 거의 매일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을 위해 채굴하는 땅속에 투자하는 드니에가 더 안전하다고 여겼다. (1권 122~123쪽)

 

* 빵 껍질 하나, 식료품 찌꺼기 하나, 갉아 먹을 뼈다귀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메그라가 그들에게 외상을 사절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라 피올렌의 부르주아들이 그들에게 백 수를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남자들과 딸아이가 수갱에서 돌아오면 어쨌든 뭘 먹어야 할 텐데. 불행하게도, 먹지 않고 사는 법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니. (1권 135쪽)

 

* 탄광촌 어디에서나 그런 난잡한 일이 벌어졌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들 모두 타락하여, 밤만 되면 헛간의 경사진 낮은 지붕 위에서, 그들 말로 하면 엉덩이를 까고 덤벼들었다. 여자 광차 운반부들은 대부분 레키야르나 밀밭까지 힘들게 가서 애를 만들지 않으면 거기서 첫 애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법은 없이 곧이어 결혼을 했고, 사내애들이 너무 일찍 그러기 시작하면 어머니들만 부아가 치밀 뿐이었다. 결혼한 아들은 가족에게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1권 157~158쪽)

 

* 카트린과 샤발이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은 누군가 그와 같이 자신들을 엿보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는 그녀의 귀 뒤에 키스하기 위해 그녀를 붙잡고 있었고 그녀는 웃음 짓게 하는 애무 속에 걸음이 다시 느려지기 시작했다. 뒤에 남아 있던 에티엔은 그들이 길을 가로막아서 화가 치밀었고, 보기만 해도 울화통이 터지는 이 광경을 그래도 지켜보면서 그들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침에 맹세했던 것, 즉 자신은 아직 그 누구의 애인도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다른 사람처럼 하지 않으려다 그녀를 빼앗긴 그 자신! 그리고 방금 코앞에서 그녀를 앗아가게 내버려 두었고, 그들을 쳐다보느라 치사하게 즐거워할 정도로 어리석었던 그 자신이란! (1권 202쪽)

 

* 노동자는 더 이상 견뎌 낼 수 없고 혁명은 가난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89년 혁명 이후 살찐 것은 부르주아들뿐이다. 그들은 너무나 게걸스럽게 먹어 살을 찌웠으며 노동자들이 핥아 먹을 음식 찌꺼기조차 남겨 놓지 않았다. 백 년 전부터 부와 행복이 놀랍게 성장하는 동안 노동자들이 합당한 몫을 받았는지 어디 누구든 말 좀 해 보실까? 노동자들은 자유롭다고 선언하면서 그들을 무시해 왔다. 그래, 굶어 죽을 자유는 있지. 노동자들은 이 굶어 죽을 자유를 자기 몫으로 살아 온 셈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들의 낡은 장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데, 나중에 배부르게 지낼 녀석들에게 표를 찍어줘 봐야 빵 그릇에 빵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안 돼,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내야 해. 법에 의해서든 우정 어린 이해에 의해 신사적으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모든 걸 불태우고 서로를 잡아먹으며 야만스럽게 이루어지든, 늙은이들은 그 사태를 보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분명 보게 될 거야. 또 다른 혁명으로서 이번에는 노동자 혁명, 즉 위로부터 아래까지 사회를 청소하고 더 깨끗하고 정의롭게 사회를 재건할 대변혁 없이는 이 세기가 끝날 수 없을 테니까. (1권 219~220쪽)

 

* 하지만 그녀도 점차 매력을 느꼈다. 상상력이 깨어나 이 희망의 멋진 세계로 들어가며 그녀는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이라도 슬픈 현실을 잊는 것은 그렇게 감미로웠던 것이다! 땅에 코를 박고 짐승들처럼 살 때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실컷 가지는 놀이를 할, 환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녀를 열광시키고 젊은이와 의견을 같이하게 만든 것은 정의에 대한 생각이었다. (1권 258쪽)

 

* 사장님, 동료들이 저를 선정한 것은 바로 제가 아무것도 비난받을 것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정된 것은 소란을 떠는 자들, 무질서를 조장하는 나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저희는 단지 정의만을 원하며, 굶어 죽을 지경인 처지에 지쳐 있습니다. 최소한 매일 빵이라도 먹으려면 조치를 취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1권 329쪽)

 

* 저희는 죽으려고 죽도록 일하기보다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죽기를 택하겠다는 것을 사장님께 말씀 드리러 온 겁니다. 그러면 피곤이라도 덜 수 있겠지요……. (1권 330쪽)

 

* 사람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지 몇 주일이 된 이래로 벌판 멀리서부터 탄광촌이 있음을 말해 주던 그 찌든 양파 냄새도 사라졌다. 이제 탄광촌에는 오래된 지하실 냄새와 아무것도 살지 않는 구덩이들의 습기만 남았다. 희미한 소리들이 스러져 갔고 눈물들을 삼켰으며 욕설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점점 무거워지는 침묵 속에 배고픈 잠이 다가오는 소리가, 침대에 쓰러져 가로누운 몸뚱이들이 텅 빈 배 속의 악몽에 짓눌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권 397쪽)

 

* 그의 파산은 확정적이었다. 비록 그가 케이블을 수리하고 불을 다시 붙인다 해도 어디서 사람들을 구해 올 것인가? 앞으로도 보름간 파업이 계속된다면 그는 파산이었다. 그리고 재난이 확실해진 가운데서도, 그는 몽수의 불한당들에게 더 이상 증오심도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공모한 결과이며 누대에 걸쳐 저질러 온 일반적인 과오라고 느꼈다. 그들은 분명 난폭한 자들이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며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난폭한 자들이었다. (2권 56쪽)

 

* 그것은, 이 세기말 피로 물든 어느 날 저녁 운명적으로 저들 모두를 휩쓸어 갈 것은 혁명의 붉은 환영이었다. 그렇다, 어느 날 저녁 놓여난 고삐 풀린 민중은 저렇게 길 위를 내달릴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부르주아들의 피로 흠뻑 젖을 것이고, 잘려 나간 머리들을 들고 다닐 것이며 부서진 금고의 금화를 뿌릴 것이다. 여자들은 부르짖을 것이고 남자들은 늑대들처럼 턱을 벌려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 똑같은 누더기 옷들, 두툼한 나막신들이 빚어내는 똑같은 천둥소리, 그리고 더러운 살갗에 역한 숨결을 지닌 채 끔찍하고 똑같은 무리가 그들 야만인들의 넘치는 충동으로 오래된 세계를 쓸어 버릴 것이다. (2권 89~90쪽)

 

* 어느 날 저녁에는 할아버지의 손수건을 이 수에 팔았다. 불쌍한 살림살이가 하나씩 팔려 가며 작별을 고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라 마외드는 마치 어느 집 대문 아래 어린애를 버리려고 데려가듯 남편이 오래전에 선물한 분홍색 마분지 상자를 치마폭에 싸 가지고 가서 판 것을 아직도 슬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맨몸뚱이였고 이제 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살점뿐이었는데, 그 살은 온통 상처투성이인 데다 너무 망가져서 아무도 동전 한 닢 쳐주지 않을 것이었다. (2권 151쪽)

 

* 그래, 내 열 손가락으로 그것들의 가죽을 벗길 거야………… 이제는 지긋지긋해, 암! 우리 차례가 왔어, 네가 바로 그런 말을 했었지…………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전의 모든 조상들이 우리가 겪는 일을 겪었고, 또 우리 아들들, 우리 아들들의 아들들이 다시 그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면 나는 미칠 것 같아. 나는 칼을 하나 집어 들겠어……. (2권 159쪽)

 

* 자네, 이해가 되나? 10만 프랑짜리 어마어마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되자, 아무 일도 안 하고 살겠다고 선언하면서 당장 국채를 매입한 마르세유의 그 모자 제조공들 말이야………… 그래, 이게 프랑스의 노동자인 자네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지. 보물을 파내서는 혼자 그걸로 먹고살려고 이기주의와 나태의 구석에 가서 숨는 것 말이야. 자네들이 부자들에게 고함을 쳐 봐야 소용없어. 자네들에게 행운이 찾아와서 돈이 생겨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줄 용기가 자네들한테는 없으니………… 자네들이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는 한, 부르주아들에 대한 자네들의 증오가 단지 그들 대신 자네들이 부르주아가 되려는 성난 욕구로부터 오는 한, 자네들은 결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어. (2권 169쪽)

 

* 왜 그런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숨이 가빴으며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이 빌어먹을 불행한 삶은 어째서 곧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이제 그녀는 자기 남자에게 따귀를 맞으며 쫓겨나고, 똑같이 굶주리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수프 한 그릇 달라고 할 수도 없으며, 주인 잃은 개처럼 진흙탕 길을 걸어 다니는 데 진저리가 났다. 사정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기억하는 한 오히려 나빠졌다. 그래서 그녀는 벽돌을 깨뜨렸고 모든 것을 쓸어 버리려는 단 한 가지 생각으로 그것들을 앞으로 던졌다. (2권 211쪽)

 

* 다윈이 옳았던 것인가? 세상은 종의 아름다움과 생존을 위하여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투쟁의 장에 불과한 것인가? 비록 그가 자신의 학식에 만족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문제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해 왔지만, 이러한 질문은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그런 의문을 말끔히 사라지게 했고 그를 매료시켰다. 처음 연설하게 될 때 이 이론에 대한 자신의 예전 주장을 다시 하려는 생각이었다. 한 계급이 먹혀야 한다면, 생명력이 가득하고 여전히 새로운 민중이 향락에 지쳐 버린 부르주아 계급을 잡아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피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다. 낡고 무너져 가는 국가들을 쇄신할 야만인들의 침입에 대한 기다림 가운데, 그는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혁명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이 다시 생겨났다. 그 진정한 혁명은 노동자의 혁명일 것이며, 그 혁명의 불길은 하늘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그가 바라보고 있는 저 떠오르는 태양의 붉은빛으로 세기의 종말을 불태우리라. (2권 353~354쪽)

목차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루공 마카르 가계도

작가 소개

에밀 졸라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엑상프로방스에서 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시절을 보냈다. 1858년 파리로 이주하여 생루이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대학입학자격고사에 실패한 후 학업을 포기하고 1862년 아셰트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면서 소설가, 기자 들과 친분을 쌓았다. 1867년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 『테레즈 라캥』으로 첫 성공을 거두었다. 생리학, 유전학, 사회학 등 실증 과학의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문학론, 실험 소설론 등을 주창하며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이 되었다. 한 가족사를 통해 제2제정기의 역사적 벽화를 그리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계획하여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전 20권을 출간했다. 졸라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목로주점』이 서민층과 빈민층의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소설이라면 『제르미날』은 노동자가 주인공인 최초의 소설로서 졸라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프랑스 북부 탄광의 파업을 소재로 노동과 자본의 대립 관계와 계급 투쟁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졸라는 평생 사회 정의를 제일의 가치로 삼았다. 간첩 누명을 쓴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내는 「나는 고발한다」(1898)라는 글을 발표하여 궁극적으로 그의 복권을 이루어 냄으로써 행동하는 지성인의 표상이 되었다. ‘루공 마카르 총서’를 완간한 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연작 시리즈를 발표하던 그는 1902년 원인 불명의 가스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1908년 그의 유해가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위인들을 기리는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강충권 옮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와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이다. 논문 「사르트르의 상상력 이론」, 「구조주의 연구」, 「장 주네의 『발코니』에서 사용된 비현실화의 기법」, 「사르트르의 무의 미학」, 「안느 에베르의 『흰가마우지』에 나타난 퀘벡인의 자화상」, 「아마두 쿠루마의 『독립 시절』에 나타나는 식민지 해방 후의 시대상」, 저서 『사르트르의 문학적 세계』(공저), 『카페 사르트르』(공저) 외, 옮긴 책으로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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