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말들

박이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1월 22일 | ISBN 978-89-374-8084-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10 · 148쪽 | 가격 8,500원

책소개

사유하는 석학 박이문 교수의 나, 나와 너, 나와 세상에 대한 사유
부서진 말들의 편린으로 지은, ‘존재’에 바치는 시집
 
한 줄의 시구에 현현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유, 단순하고 꾸밈없는 시어 너머로 펼쳐진 유장한 사상의 지층. 박이문 교수의 『부서진 말들』은 절제와 원숙함만이 빚어 낼 수 있는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를 보여 준다.
소르본 대학교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오늘날까지 세계 각국 유수의 대학에서 지적 탐구와 후학 양성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개진해 온 시대의 지성 박이문 교수는 수많은 명저를 남긴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한편, 평생을 통해 시를 창작해 온 시인이기도 하다. 특히 박이문 교수의 시인으로서의 이력은 그의 다른 이력들과 마찬가지로 유례없이 ‘세계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 해외 체류 시절 동안 영시집을 출간하고 독일어 번역 시집을 출간하는 등 실제 해외에서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이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되는 『부서진 말들』 역시, 그가 1993년 영시집으로 먼저 출간한 『Broken Words』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오랜 해외 생활에서 느낀 소회와 방랑의 정서가 돋보이는 서정시와 평생을 천착해 온 철학의 본질적 주제에 대한 성찰이 배어든 철학시, 그리고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관조가 빛나는 일련의 세태시까지, 각각 ‘INSIDE’, ‘OUTSIDE’, ‘SIDE BY SIDE’라는 제목의 장으로 나와 타인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그리고 있다.
어딘가에 존재할 완전함을 찾아 편린들 사이를 유랑해 온 영원한 에트랑제 박이문, 『부서진 말들』은 그가 만년에 도달한 ‘어느 완전함’을 엿볼 수 있는 시집이다.

편집자 리뷰

■ 해답을 추구하지 않은 시가 보여 주는 해답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평생 가르침과 연구에 힘쓰며 해답을 추구해 온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그러나 유독 시를 쓸 때만큼은 애써 해답을 구하지 않는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나아가 철학이 해결할 수 없는 생의 부조리를 노래하고 있다. 철학적 사색을 담은 시편에서조차 그는 철학 너머의 것들, 시만이 말할 수 있는 부정형의 것들을 말하는 데 집중한다. 심지어는 철학이 가져다준 모종의 절망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음성으로 토로하고 있다.
 
내가 나비의 꿈이라면
내가 나비를 꿈꾸고 있다면
내가 꿈을 꿈꾸고 있다면
 
깨어 있건 아니건
상관없다, 아무 상관도
당신이 바람에 시를 쓰는 동안에는
 
도대체 철학이 뭐란 말인가
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철학을 고찰함」
 
일생을 해답을 규명하며 철학에 바쳐 온 시인이 시를 통해 보여 주는 해답 이면, 철학 이후의 지평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견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이 시집이 보여 주는 모든 것들이 어둠이 “부처보다 현명한 것”(「지평을 넘어서」)이 되는 바로 그 지평에 서서 시인이 직접 바라본 풍경이기 때문이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세계를 향한 고요한 간원
캄보디아 난민 어린이의 크고 황량한 눈동자와 바그다드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흩뿌려진 죽은 병사의 연애편지. 부산 제5연대 군 병원의 악취 풍기는 병동과 휴전 협정 이후 말없이 누운 수백만의 시체 위에 선 38선. 그러나 이토록 아픈 세계를 시인의 눈은 다만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다. 고통스럽지만 결코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언제나 대답 없는 질문이 있고
언제나 해답 없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밤은 너무 어두워
나는 눈을 감는다
거기 없는 신을 보기 위해
-「한 무신론자의 기도」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있는 그대로 세상을 사랑하며 모두를 위해 “내가 믿지 않는 신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삶. 박이문 교수의 시를 통해 우리는 철학을 통해 세계를 알고, 또 시를 통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읽게 된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시인은 자신이 세상의 부조리를 밝히고 자기 존재의 부조리를 노래하는 부조리한 존재이지 그것을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정답’만 찾는 철학자의 삶을 떠나 ‘부조리’를 노래하는 부조리의 시인으로서 살게 된다. 그것이 아마도 박이문 교수가 철학자로 생활하면서도 시인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시를 쓰는 이유인 것 같다. 쉽고 명쾌한 논리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개진하는 그의 많은 저술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답 없는 시 쓰기를 철학하기보다도 더 힘들어하고 불평하면서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 한 명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기억되기보다는 한 명의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확신한다. 말년의 사르트르가 자신을 후세 사람들이 『구토』의 작가로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의 시적 열정이 꺼질 줄 모르는 것 또한 그에 연유한 것이리라.
-김치수(문학평론가 · 이화여대 명예교수)

작가 소개

박이문

1930년 출생, 본명은 박인희이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미국의 남가주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 시몬스 대학 철학과 교수, 마인츠 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고, 올해(2000년) 2월에 포항공대 교양학부 교수직을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몬스 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문학과 철학』,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 『철학의 여백』, 『자연, 인간, 언어』,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나의 출가』, Essais philosophiques et littéraires, Reality, Rationality and Value, Man, Language and Poetry 외 다수. 『나비의 꿈』,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울림의 空白』, Broken Words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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