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국내 첫 단편집
이상하고 아름답고 공포스러운 열 편의 기묘한 이야기
기묘하고 독창적인 토카르추크 월드에서 날아온 초대장!
“우리는 여전히 침팬지이자 고슴도치이고 낙엽송입니다. (……)
우리를 서로 분리시키는 것은 그저 작은 틈새, 존재의 미세한 균열일 뿐입니다.
우누스 문두스(Unus mundus). 세상은 하나이니까요.”
― 올가 토카르추크
#승객 #녹색_아이들 #병조림 #솔기 #방문 #실화(實話)
#심장 #트란스푸기움 #모든_성인의_산(山) #인간의_축일력(祝日曆)
*** 찬사들 ***
“초현실주의와 철학적 성찰이 결합된 독특한 소설집. 때로는 사이버펑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인 환경에서 전개되는
독창적인 단편들 속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 폴란드 최대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
“『기묘한 이야기들』은 독자의 시야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결국은 경이로움에 이르게 한다.
또한 급변하는 세상에서 현실이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초월하는지 보여 준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수많은 정교한 수식어를 동원해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독보적인 작가다.”
─ 폴란드 문화 포털 《문학의 소리》
“『기묘한 이야기들』에서 토카르추크는 우리의 상상 속에 관용적으로
자리 잡은 비유들을 문자로 재현해 낸다. 이미 익숙하고 길들여진 것들에
새로운 움직임을 부여함으로써 세상의 기이함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단지 일상적인 언어의 얇은 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 문학평론가 미하우 소빈스키
“토카르추크의 기묘함은 대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판타지나 사변 문학과의 장르적 연계를 통해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비정형적인 현실을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포착한다.”
─ 작가 마테우쉬 구르니아크
“『기묘한 이야기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음미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서 그 개념을 확장하여 읽을 때 더욱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을 통해 토카르추크는 이야기를 담는 형식이 단순히 서사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역설한다.”
─ 문학평론가 카밀 부이니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국내 첫 단편집
세상이 점점 더 기묘해지고 있다!
우리 시대 가장 기발하고 비범한 이야기꾼,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국내 첫 단편집 『기묘한 이야기들』(2018)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마지막 이야기들』(2004) 이후 십사 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으로 총 열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방랑자들』을 비롯하여 『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과 같은 장편 소설에서 짤막한 단편을 나열하는 미시 서사 기법을 도입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 온 토카르추크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단편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작가는 스웨덴 침공 시대의 볼히니아, 현대의 폴란드와 네덜란드, 스위스, 중국, 그리고 미래의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현실과 판타지, 익숙함과 기묘함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를 편안하고 안락한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기이하고 독창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문학평론가 카밀 부이니가 언급했듯이 『기묘한 이야기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음미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그 개념을 확장하여 다차원적인 관계성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더욱 흥미로운 책이다. 평소 토카르추크가 강조했듯이 “우리의 이야기들은 무한한 방식으로 서로를 불러올 수 있고, 그 속의 주인공들 또한 얼마든지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다정한 서술자』, 361~362쪽)이다. ‘기묘함’을 공통 분모로 각각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은연중에 연관되는지 그 연결 고리를 찾아보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얻는 또 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이 책의 중심 테마는 ‘기묘함’이다. 토카르추크는 주류에서 벗어나 지금껏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못했던 관점을 의식적으로 탐색하는 탈중심적인 자세, 기발하면서도 괴팍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벽(奇癖)’을 발휘하는 것이 문학의 새로운 소명임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신작을 쓸 때마다 새로운 형식과 문학적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토카르추크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에게 ‘우리 시대 가장 기발하고 비범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숙한 형식을 차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도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기벽을 소중히 가꾸고 탈중심을 지향하는 작가의 문학관이 있다. 이 소설집에서 기묘함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현실을 해체하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비합리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한다. 언뜻 보면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듯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있음 직한 이야기로 다가오면서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모순을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토카르추크의 손에 이끌려 괴상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의 인식을 초월하는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광대한지, 그에 비해 인간의 이해력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삶의 부조리를 수긍하게 되고, 논리와 이성 너머의 세계로 시야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
■ 기묘함의 매혹, 현실과 판타지가 만나는 접점
토카르추크의 기묘함은 대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초현실적인 요소가 도입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토카르추크 월드에서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진짜와 가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들이 천연덕스럽게 공존한다.
“문학은 일어난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 사이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탈(脫)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며 사람들은 문학이 일궈 낸 이 모호한 공간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이것이 문학의 본질입니다.” — 올가 토카르추크
『기묘한 이야기들』에서 토카르추크 월드는 기이하고 낯설고 불안정한 요소들이 현실과 충돌하는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각 이야기의 서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되지만, 독자를 점차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영역으로 이끈다. 책의 서막을 장식하는 「승객」의 공간적 배경은 비행기 좌석이지만, 외부 세계와 차단된 이곳에서 옆자리 승객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의 불안하고 두려운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이처럼 일상 속의 친밀한 대화나 여행, 업무, 방문 등 지극히 평범한 사건들이 서서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다층적이면서 불가해한, 때로는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전환은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독자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특별한 긴장이 유발된다. 일상을 감싸고 있던 피상적인 막이 벗겨지면 안온한 현실이 언제라도 낯설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돌변할 수 있다는 통렬한 깨달음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학술대회 참가를 위해 외국에 나갔다가 여권을 분실한 교수가 타인을 도우려다 오히려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실화(實話)」가 그 대표적인 예로, 세상이 우리의 예측과 통제를 벗어났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 인간과 자연, 타자에 대한 연민, 인간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
이 책에서 토카르추크는 개인적, 사회적 소외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룬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자의든 타의든 고립된 상태에 처해 있으며, 그들이 마주하는 기이한 사건들 또한 심리적 강박과 사회와의 단절을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소외감은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단절과 불안, 두려움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토카르추크는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기조 강연문에서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다정함”(『다정한 서술자』, 364쪽)에 대해 역설했다. 지금껏 작가가 쓴 작품들은 줄곧 중심 또는 주류에서 벗어나 소외된 존재들에게 저마다의 목소리를 부여해 왔고, 『기묘한 이야기들』 역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을 촉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열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묘하면서도 환상적인 요소는 장르적 스타일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중심에서 밀려난 비주류, 주변부를 떠도는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자연의 울타리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에코토피아를 지향해 온 토카르추크는 『기묘한 이야기들』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 특히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영향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트란스푸기움」은 다른 존재로 변모하길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되돌아보고, 지금껏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며 살아온 방식에 대해 각성을 유도한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침팬지이자 고슴도치이고 낙엽송”이라고 토카르추크는 역설한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본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언제든지 그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트란스푸기움」, 147쪽). 인간 본위의 인위적인 잣대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각 생명의 고유한 본성과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라는 당부로 읽힌다. 인터뷰에서 토카르추크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시도한 이 작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피력하면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하며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토카르추크 월드의 초대장을 전달하며
토카르추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유사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때로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종교에 의지하는가, 과학 기술의 발달은 유한한 인간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는가. 작가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독자를 혼돈에 빠트림으로써 스스로 고민하며 실존적 사유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도록 이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괴팍하고 이상하며, 평범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 힘들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들이 정서적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등장인물 중 대부분은 무력하고 나약하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묘한 이야기들』에서 어쩌면 가장 무섭고 두려운 대상은 인간이며, 가장 기묘하고 신비로운 대상 또한 인간이다. 토카르추크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의 특별하고도 기발한 사연을 그려 내면서 그들의 내면, 깊은 속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타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으로 세밀히 들여다본다. 토카르추크는 우리를 예기치 못한 수많은 질문 속으로 몰아넣으며, 때로는 놀라움을 선사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렇게 평소 겪지 못했던 낯설고 불편하고 미묘한 감정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마침내 경이로움에 이르게 된다.
“현실 세계의 변방, 기묘하고 독창적인 세계에서 발송된 토카르추크의 초대장을 한국의 독자들께 전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어느새 다섯 번째다. 이번 초대장에는 논리나 상식의 잣대를 벗어나 세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괴상하고 신비로운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우리네 삶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권유도 느껴진다. 그렇다. 안전하고 익숙한 세상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일상 속의 기묘함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 최성은(옮긴이)
■ 작품 소개
승객
어린 시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무서웠던 미지의 어떤 존재 때문에 밤마다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주인공은 성인이 된 지금은 아무런 두려움도 체감하지 못한다. 당시 부모님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바깥세상은 여기보다 훨씬 안전하단다.” 이 말이 예언이나 주문처럼 그에게서 두려움을 앗아간 것이다. 주인공은 내게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보고 있기에 존재한다.”
녹색 아이들
시대적 배경은 1656년. 스코틀랜드의 왕과 함께 우크라이나 르부프로 여행하던 사절단은 인간도 짐승도 아닌 이상한 생물체를 발견한다. 숲속에서 자라 식물을 연상시키는 초록빛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인간의 언어도 모르고, 대상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를 가진 이 ‘녹색 아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얀 카지미에시 국왕 폐하의 주치의 윌리엄 데이비슨은 볼히니아에서 겪은 이 괴상한 사건들을 기록한다.
병조림
오십이 넘었지만 자립은 꿈도 꾸지 않은 채, 연금 생활자인 노모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주인공.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남긴 건 현금도 주식도 아닌, 병에 넣어 밀봉한 각종 음식물뿐. 손끝 하나 까딱 않고 어머니에게 빌붙어 기생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영국과 폴란드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병을 차례차례 따서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병조림 안에서 점점 괴이한 것을 발견하는데, 심지어 2001년이라는 날짜가 붙어 있는 토마토 소스에 담겨진 스펀지도 있다. 오래된 병조림을 먹은 아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솔기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외롭게 지내던 노인 B. 언젠가부터 모든 종류의 솔기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양말에서 풀려 나온 솔기에서 시작된 견딜 수 없는 분노는 푸른색 얼룩을 남기던 볼펜이 갈색 얼룩을 남기는 것으로 이어지고, 우표 또한 네모가 아닌 동그란 모양으로 짜증을 유발한다. 그렇게 익숙하게 여기던 일상의 사물들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고, 세상은 점점 적응하기 힘든 곳으로 변해 간다. 통제력과 평정심을 잃어가는 노인에게 설상가상 체력 저하와 질병까지 보태어진다. ‘노년기’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과 반응을 냉정하고 객관적이면서도 씁쓸한 시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방문
하나의 인물 ‘에곤(egon)’에서 갈라져 나온 네 개의 변종들이 가정에서 각기 다른 네 가지 역할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며 살아간다. 덕분에 가사일과 밭일과 육아 분담이 이루어져서 편안하다. 어느 날 집을 방문하겠다는 이웃의 연락을 받고 변종들은 당황한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에 끼어든 낯선 방문객.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나’와 내 변종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익살스럽고 기묘한 방법으로 21세기 가족의 새로운 유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동시에 단절된 가족 관계의 문제점을 풍자한 작품이다.
실화(實話)
네덜란드의 한 지하철역. 한 여자가 승강장에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돕지 않고 지나쳐 간다. 유일하게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 외국인 교수는 오히려 가해자로 의심을 받아 도망자 신세가 된다.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과학과 예술, 그리고 문학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했으나, 어느 순간 여권도 증명서도 사라지고, 언어 기능도 상실한 채 갑자기 한순간에 익명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여행을 떠나거나 낯선 곳을 방문할 때 이따금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착륙해 버린 듯한 당혹감과 두려움에 직면할 때가 있다. 인간의 이러한 심리를 정교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심장
중년 남성이 중국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뒤부터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주변 사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색채가 갑자기 강렬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장기 기증자의 눈(어쩌면 그의 뇌와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혼이 정화되는 기묘한 체험과 함께 자신이 품었던 의문이 실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트란스푸기움
비밀스러운 시술이 이뤄지는 숲으로 둘러싸인 의료 시설 트란스푸기움. 주인공인 레나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트란스푸기움에 가서 다른 생물체로 전환하는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가족은 큰 충격을 받고, 여동생은 레나타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그녀의 시술에 동행한다. 과연 미래에는 인성과 자연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 가능한 것일까? 인간이 동식물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는 이런 시술이 어쩌면 그동안 인간이 파괴를 일삼으며 단절을 자초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배경으로 한 퓨처리즘적인 경향의 소설이다.
모든 성인의 산(山)
암 말기인 나는 폴란드의 심리학자로서, 스위스 산중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십 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심리학 실험을 실시하게 된다.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되는 실험이지만 대신 거액의 보수를 보장받았다. 실험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인근의 한 수도원을 방문한 나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나이 많은 수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옛 순교성인들의 행적과 그들의 운명에 대한 여러 단서를 발견하고, 순교자들의 유골도 목격하게 된다. 나는 부패한 그들의 육신을 보며 그들이 겪은 수난과 고통, 시간의 엔트로피 작용에 대해 성찰한다. 과거 순교자들의 행적과 내가 현재에서 실행하고 있는 심리학 실험이 연결되면서, 신비주의적인 요소와 현실이 결합되는 가운데 스릴과 공포를 유발한다.
인간의 축일력(祝日曆)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에피소드이자 아홉 번째 이야기와 대구를 이루는 이 마지막 단편에서 토카르추크는 불멸을 향한 인간의 영원한 욕망을 포착한다. 가까운 미래가 그 배경이다. 미지의 신성한 존재(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神)일 수도 있다.)가 남긴 연약하고 병든 육체 모노디코스(Monodikos)가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죽음과 부활,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면서 생(生)과 사(死)의 그 가느다랗고 미세한 경계선을 넘나든다. 덕분에 인류는 삶과 죽음의 밸런스를 유지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토카르추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과 그들의 잔혹함을 일깨운다.
■ 본문 중에서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보고 있기에 존재한다.”(11쪽)
“그들의 꿈은 서로 공유되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가 무언가를 꿈꾸면 다른 사람이 머릿속에서 그것을 ‘보는’ 형식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겨울에는 살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따뜻한 봄날이 되면, 모두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피부가 건강한 초록빛으로 변할 때까지 온종일 창백한 몸을 달빛에 노출시킨다. 또한 동물들과도 소통하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는데, 고기를 먹지 않고 사냥도 하지 않으므로 동물들이 그들과 친구가 되어 도움을 준다. 심지어 동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니 그들은 자연을 잘 아는 지혜로운 자들임이 틀림없었다.”(43쪽)
“어디로 갈까? 어디로? 세상의 끝에 있는 무한한 원 속으로, 잎사귀의 그림자 너머로, 빛의 조각 너머로, 영원한
그림자 속으로.”(46쪽)
“창조하라! 그리고 살아가라! 이것은 중요한 조합이다. 그 밖에 다른 명제는 내게 필요치 않다.”(83쪽)
“야생의 세계. 인간이 없는 곳.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곳과 분리되었고,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스스로 변해야만 합니다. 내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역설이죠. 인간은 항상 자신만을 봅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인지적 관점이면서, 동시에 진화의 치명적인 오류이기도 합니다.”(144쪽)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 다른 존재들과 극적으로, 그리고 현저하게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죠. 그들은 ‘존재 속으로 던져졌다.’라고 말하며 절망과 고독을 이야기하고, 매사에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 즐깁니다. 단순한 차이점들을 극적으로 과장하는 거죠. 어째서 우리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간극이 다른 존재들 사이의 간극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쉽게 가정해 버리는 걸까요? 느껴지십니까? 당신과 저 낙엽송 사이의 간극이 낙엽송과 저기 있는 딱따구리 사이의 간극보다 더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유가 대체 뭐죠?”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요.”
여자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146-147쪽)
“변신은 결코 기계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트란스푸기움도 마찬가지죠. 그것은 유사성을 강조합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침팬지이자 고슴도치이고 낙엽송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그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것들과 분리시키는 간극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서로 분리시키는 것은 그저 작은 틈새, 존재의 미세한 균열일 뿐입니다. 우누스 문두스(Unus mundus). 세상은 하나이니까요.”(147-148쪽)
“여자의 눈에 비친 광경은 이러했다.
트란스푸기움 건물 쪽에서 뗏목 하나가 호수로 떠내려왔다. 사실 그것은 받침대에 가까웠다. 원격으로 조종되는 뗏목은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호수 저편, ‘심장’이라 불리는 곳을 향해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뗏목의 움직임과 흔들리는 물살의 자취만 보였지만, 하늘이 점점 밝아지며 수면에 반사되자 그들은 그녀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머리를 숙인 채 조각상처럼 고요히 서 있는 짐승. 늑대였다.
짐승은 잠시 그들이 서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어둠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167쪽)
“언젠가, 머지않아 나 또한 어떤 손길에 의해 내 몸의 모든 요소가 분해되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리라. 이것이야말로 최종적인 재활용이다.”(203쪽)
“나이 든 여성들에게는 마치 거대한 직물처럼 이야기로 세상을 덮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사소한 일들에 묵묵히 몰두하고 있는 다른 수녀들의 존재감은 그들을 진실의 보증인, 시간의 회계사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204쪽)
“나는 잠시 멈춰 달라고 부탁한 뒤,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 고분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햇볕에 말라 버린 유골과 거죽, 뼈의 잔해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어요. 뒤틀리고 반쯤 소화된 듯한 플라스틱 봉지들, 유명 브랜드의 선명한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 끈과 고무줄, 뚜껑, 조그만 일회용 컵들이었어요. 그 어떤 유기적인 소화액도 인간이 만든 고도의 화학 물질을 이겨 낼 수 없었습니다. 쓰레기를 삼킨 소들이 그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 위장에 지니고 있었던 거예요. 소들에게서 남겨진 잔해는 그것뿐이라는 거예요. 소의 몸뚱이는 곤충과 포식자들에게 곧바로 먹혀 사라집니다. 영원한 것만이 남는 거죠. 바로 쓰레기입니다.”(214쪽)
““클라라?”
마침내 내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내 이마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소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몇 초가 흐른 뒤에야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고는 내 눈과 귀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두 손을 내 심장 위에 올렸다. 바로 거기, 내가 그녀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던 곳에.“(219쪽)
”그는 모두가 그를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에 세상에 왔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재앙이 집과 공장, 병원뿐만 아니라 몇몇 개념들까지 파괴했을 때였다. 파괴의 단계를 완결한 것은 전쟁이었다. 위성들이 떨어질 때 그것들은 마치 지구를 겨냥한 포탄이나 칼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고, 단어가 없으니 사용할 수도 없었으며, 그래서 무의 단계로 사라져 가는 세상의 일부분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할 길이 없으니,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으니 잊혔다. 무존재(無存在), 존재하지 않음을 훈련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232-233쪽)
“세상이 인간에게 맞춰 만들어졌다면 왜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느끼는 걸까? 무엇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들이 두렵거나 부끄럽게 느껴질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엄격한 판단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세상은 왜 결핍으로 가득 차 있을까? 음식도 돈도 행복도 왜 항상 부족할까? 잔혹한 행위는 어째서 벌어지는 걸까? 그래야만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를 낯선 사람처럼 바라볼 수 있는 걸까? 보는 눈과 보이는 눈은 같은 눈일까?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모노디코스는 누구인가? 모노디코스는 선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그처럼 나약하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그 모든 일을 허용하는 걸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원받은 걸까?”(234-235쪽)
“전 세계가 바로 이러한 질서 위에 세워져 있어. 그는 불멸이고, 그의 죽음은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질서. 이유 없이 그냥 그런 거야. 만약 모노디코스가 없다면 혼돈이 세상을 지배할 거야. 예전에 딱 한 번 그렇게 된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시간이 돌아오기를 원치 않아. 평온한 삶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해.”(265쪽)
승객 7
녹색 아이들 12
병조림 48
솔기 59
방문 74
실화(實話) 96
심장 116
트란스푸기움 137
모든 성인의 산(山) 168
인간의 축일력(祝日曆) 220
옮긴이의 말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