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집, 밤의 집

원제 Dom dzienny, dom nocny

올가 토카르추크 | 옮김 이옥진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9월 18일 | ISBN 978-89-374-7990-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476쪽 | 가격 16,000원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책소개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02년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수상작

 

놀랍도록 독창적이다.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지혜가 충만하다.

실제 삶이 상상과, 꿈이 일상과, 과거가 현재와 절묘하게 섞여 있다.

―《옵저버》

 

예술이라는 보편적 언어로 만들어진 위대한 선물

―   토마시 타바코(저널리스트)

 

소설의 모든 요소가 밑바탕에 깔린 신념들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실제와 꿈 사이, 낮과 밤 사이의 경계는 유동적이며,

숨겨진 관계와 의미는 그저 감지할 수 있을 뿐.

―   《미주리 리뷰》

편집자 리뷰

■ 다시 떠오른 ‘별자리 소설’

    두 개의 집, 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의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에 이어 또다시 만나게 되는 ‘별자리 소설’ 『낮의 집 밤의 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특유의 내러티브 방식. 단편의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닌 모티브를 결합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며 마치 성좌와 같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카르추크는 『방랑자들』에서 ‘별자리 소설(Constellation novel)’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통해 문학과 철학 사이를 유랑하듯 넘나들며 관계 지향적인 사유를 강조한 바 있다.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가 『방랑자들』을 쓰기 십 년 전에 쓴 작품인 만큼 작가의 서사적 기법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 폴란드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며, 2002년에 권위 있는 문학상인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에 있는 작은 도시 노바루다. 그 도시에 접해 있는 피에트노 마을로 이주한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시간도 공간도 꿈처럼 이어져 있는 듯 살고 있는 마르타를 통해 나는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들, 그리고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파스칼리스, 한 다리는 체코 땅에 한 다리는 폴란드 땅에 걸친 채 죽어간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 등을 수집하게 되는데…….

 

『낮의 집 밤의 집』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 작은 마을 피에트노와 그 주변 지역인 ‘검은 숲’, 등산로, 노바루다, 밤비에지체, 쳉스토호바 및 브로츠와프다.(폴란드와 체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노바루다는 작가가 매년 여름마다 머무는 집필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물들의 기억은 2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성녀 쿰메르니스가 살던 옛적으로 가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동행인 R과 몇 달간 노바루다에 머물며 마을과 주변인을 관찰하고, 가발을 만드는 신비로운 이웃 마르타와 교류하며 끝없는 이야기 타래로 빠져든다. 시간적 정합성 없이 파편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사실과 전설이 얽혀 있는 이 단편들은 과연 무엇을 향해 흘러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가늠케 되고, 그 단서들을 통해 연결점들을 이어 나가게 된다. 성좌의 별들을 이어 줄 모티브는 무엇일까?

 

 

집, 자연, 꿈, 우주, 경험

 

『낮의 집 밤의 집』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주인공은 피에트노에 이주해 새로운 집에 거주하며 이웃을 만나고, 손님을 초대한다. 낮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의 공간인 집, 하지만 밤이 되면 주인공은 서서히 되살아나는 이 집의 숨소리를 듣는다. 주인공의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집은 마치 그의 내면과 같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지하실과 넓은 방, 1층과 다락방이 있는 건물로 상상한다. 집은 아무개 씨처럼 텅 비어 있기도 하고, 마렉 마렉과 에르고 숨처럼 괴물이 살면서 그 안에 함께 사는 이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집은 마르타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이 혼재된 비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속 노바루다는 현실과 꿈 사이에 멈춰 있는 세상이며, 영원히 비현실적인 장소이며,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다. 주인공은 마르타에게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321쪽)

 

언덕과 숲으로 둘러싸인 피에트노는 마치 살아 느끼는 존재와 같이 미스터리하게 묘사된다. 『낮의 집 밤의 집』에서는 ‘자연’ 또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원을 가꾸고 잔디를 깎거나 버섯을 따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일상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이다. 다른 하나는 접근하기 어렵고 꿈처럼 신비로운 자연이다. 주인공의 꿈에서 균사체가 되는 여성, 물속 괴물에 대한 아무개 씨의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존재의 영원함 또한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두 개의 집이 존재하듯 두 개의 자연 또한 공존해야 한다. 낮의 집은 밤의 집이 있기에 존재하고, 낮의 자연은 밤의 자연이 있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낮이 있어야 밤을 경험하듯이 이 모든 것에는 존재함의 이유가 있다.

 

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그 안에 하늘에서 산과 계곡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조명을 품고 있다. 지구 역시 빛을 발한다. 맨 뼈와 항아리의 광채처럼 차가운 회색빛의, 살짝 인광성이 도는 광채다. 이 희미한 빛은 낮에도, 달 밝은 밤에도, 조명이 밝게 켜진 도시와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어둠 속에서만 지구의 빛이 보인다. (261쪽)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자연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모티브는 ‘꿈’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기록하고 분석해 인터넷에 기록된 꿈과 비교한다. 주인공은 집과 마르타, 자신의 피부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은 주인공이 자신과 바깥세상을 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꿈의 모티브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이야기에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환상 중 하나에서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가 단지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218쪽)라고 고백한다. 삶을 꿈꾸는 사람,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낮의 집, 밤의 집이다. 그리고 우주다.

 

우주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주인공은 천제력을 관찰하고, R은 구름의 모양을 예측하고, 마르타는 하늘의 색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들이 관찰하는 대상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혜성과 월식이다. 보름달은 늑대 인간 에르고 숨을 미치게 하고, 프로스트를 괴롭힌다. 누군가에게 우주는 지식의 원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과 혼돈이 깃든 미지의 장소다. 마렉 마렉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나서고, 파스칼리스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행적을 좇으며 여성성의 비밀을 탐구하고, 레프는 예언의 힘을 발견하려 하고, 주인공은 마르타의 진정한 얼굴을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은 길을 잃고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잠시 머무는 방랑자들일 따름이니까.

 

(『낮의 집 밤의 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문학적 혼동을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패턴이 드러난다. 또한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운명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일상의 사소한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들과도 서로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우리의 논리적 현실이 형이상학적 실체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꿈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시도가 될 수 있을까? 마술과 같은 실제 현상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작가가 남겨 놓은 빈자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마도 가장 무의미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과 장소에도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존재

 

『낮의 집 밤의 집』은 누군가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경험은 폭넓고 방대하여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영역이 있고, 사실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기 불가능한 신비주의에 가까운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단편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꿈속과 같이 삶과 죽음. 행복과 절망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가 거주하는 집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꿈을 통해 경험하고, 누군가는 점괘나 우주에서 답을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대상이 되어 자신을 재발견한다. 그것은 자신의 낮의 집과 밥의 집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신의 낮의 자연과 밤의 자연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그것은 꿈을 꾸는 일이며, 삶을 꿈꾸는 사람과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다. 이 우주 안에서, 이 자연 안에서, 이 집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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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펴낸 토카르추크의 작품들

 

『방랑자들』 최성은 옮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작

2008년 폴란드 니케 문학상 수상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최성은 옮김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

2009년 실롱스키 바브진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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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의 집 밤의 집』 본문 중에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작과 끝에 관한 질문은 그 어떤 가치 있는 지식도 주지 못한다. (18쪽)

 

그리고 깨어났을 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장소를 인식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공간을 떠돌았을 뿐이었다. 오직 잠만이 옛것을 닫고 새것을 연다. 한 사람은 죽어 가고 다른 사람은 깨어난다. 하루하루 사이에 형태 없이 존재하는 이 어두운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 (55쪽)

 

이게 꿈을 믿지 말아야 할 증거는 아니라고 마침내 크리시아는 생각했다. 그것들은 언제나 어떤 의미가 있으며, 결코 틀리지 않는다. 현실 세계가 꿈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전화번호부는 거짓말을 하고, 기차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거리는 비슷하게 보이고, 도시 이름은 글자가 뒤섞이고,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다. 꿈만이 진짜다. (62쪽)

 

여행할 때는 스스로에게 조언하고, 자신이 이 세상과 잘 어울리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할 때 사람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인 양 결국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집에서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무엇과 싸울 필요도, 무엇을 성취할 필요도 없다. 철도 연결이나 열차시간표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기뻐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 말뚝에 스스로를 묶어 놔도 좋다. 그리고 그때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72쪽)

 

마르타는 자라나는 머리가 사람의 생각을 모은다고 말했다. 머리카락은 불분명한 입자의 형태로 생각을 축적한다. 그래서 만일 무언가를 잊어버렸거나, 변화하고 싶거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머리카락을 잘라서 땅에 묻어야 한다. (110쪽)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절반은 잠에 얽혀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잠에서 깰 때 다른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이런 방법으로 세계는 균형을 유지한다. 어느 날 밤 사람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것이고, 세상 모든 신문들의 글자가 뒤죽박죽이 될 것이고, 뱉어진 말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입속으로 밀어 넣으려 할 것이다. (……) 행성의 다른 쪽에서는 어둡고 유동적이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칙칙한 순간들이 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137쪽)

 

내가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내가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도 똑같이 두렵다. 내가 알고 있었고 지금 까지 이해하고 확실하다고 여겼던 어떤 일이 전혀 다른 이유로, 내가 의심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138쪽)

 

사람들이 “모든 것”, “항상”, “절대 없다”,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외부 세계에는 그런 일반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만일 누군가가 “항상”이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므로 그녀는 나에게 주의하라고 충고했다. (158쪽)

 

어떤 이유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중대한 사건의 끝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장 사소한 사건의 끝도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무언가를 상상하면 현실이 소진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반항적인 십 대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언제나 상상과 다르다. (247쪽)

 

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그 안에 하늘에서 산과 계곡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조명을 품고 있다. 지구 역시 빛을 발한다. 맨 뼈와 항아리의 광채처럼 차가운 회색빛의, 살짝 인광성이 도는 광채다. 이 희미한 빛은 낮에도, 달 밝은 밤에도, 조명이 밝게 켜진 도시와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어둠 속에서만 지구의 빛이 보인다. (261쪽)

 

하지만 말과 사물은 버섯과 자작나무 같은 공생의 공간을 형성한다. 말은 사물에서 자라고 그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무르익으며, 풍경에서 자랄 때 소리 내어 말할 준비가 이루어진다. (…) 이런 말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은 자신의 또 다른 의미를 활성화하고, 세상을 향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체 언어가 죽지 않는 한.

이것은 사람들도 분명히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도 장소와 분리되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이 된다. 그제야 비로소 그들이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마르타가 내게 충격을 준 어떤 말을 했을 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네가 너만의 장소를 찾으면,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거야.” (279-280쪽)

 

시원한 집에 앉아 차를 마시고 파이를 베어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얼마나 큰 인생의 달콤함인가. 그는 긴 문장을 곱씹으며 그 의미를 즐기고, 문득 그 속에 감춰진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에 놀라고, 직사각형 유리창을 바라보는 일을 즐겼다. (……) 종이 위의 글자 열들은 그의 눈과 이성, 사람 자체에 안식처를 제공한다. 세상은 이로 인해 발견되고 마음이 열리고 안전하다. (292쪽)

 

도공들은 영혼이야말로 몸에 꽂힌 칼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인생이라고 부르는 끊임없는 고통을 겪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몸을 소생시키는 동시에 죽인다. 왜냐하면 하루하루의 삶이 우리를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고통 받지 않을 것이다. 햇빛 속의 식물처럼, 양지바른 목장에서 방목하는 동물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속에는 영혼이 함께하고, 한때 바로 그의 존재의 시작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신의 광채를 바라보았던 영혼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어두워 보인다. 전체에서 갈기갈기 부서진 작은 조각이지만 이 전체를 기억해야 한다. 죽음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살아야 한다. 죽음을 맞았지만 살아남아야 하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다. (327~328쪽)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 세상을 이렇게 창조하셨다. (358쪽)

 

“죽음이 나쁘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죽어 가는 걸 완전히 그만두게 될 거야.” (363쪽)

 

나는 이미 아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 점점 더 많은 이미지와 몸짓, 연속되는 사건의 순서, 공기의 색깔과 냄새를 인식했다. 새로이 만나는 선물을 영원히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배우기를 멈춘 것처럼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이 지식은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것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그 지식을 사용할 수가 없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의문점은 지금까지 내가 어째서 그토록 분명한 질서를 보지 못했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생각과 사상, 수학 공식, 수학적 확률에서 내가 생각했던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자체에 존재했다. 세계의 축은 순간과 움직임, 몸짓의 반복적인 구성이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393-395쪽)

 

말은 해를 끼치고, 혼란을 부추기고, 명백한 것을 약화한다. 말을 하면 내 속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에는 단어가 부족한 법이다. (410-411쪽)

 

인생이 갈망이 될 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종이처럼 보이고,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러져 떨어진다. 모든 동작들과 모든 생각들 이 자신을 지켜보고, 각각의 감정은 시작되긴 하지만 결코 끝나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그리움의 대상조차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오직 그리움만 진짜이고, 중독성이 있다. 있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하고, 소유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져야 한다. 이런 상태는 물결치는 본성이며 자기 모순적이다. 이것은 인생의 정수이고 삶에 위배된다. 피부를 통해 근육과 뼈로 침투하여,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실존을 시작한다.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 존재의 근본이 고통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도 술에 취함으로써 당신 자신의 육체로부터, 심지어 당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아니면 몇 주 동안 계속 자면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서? 아니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431-432쪽)

목차

꿈 11

마르타 13

아무개 씨 20

라디오 노바루다 24

마렉 마렉 28

꿈 44

자동차의 날 48

아모스 50

완두콩 72

실러캔스 75

피에트노 가이드북 76

팽이버섯 78

버섯에 관하여 82

Ego dormio et cor meum vigilat 84

쇼나우의 쿰메르니스의 생애 87

가발 제작자 109

국경 114

혜성 116

성녀의 삶은 누가 썼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118

암탉과 수탉 134

꿈 138

인터넷에서 본 꿈 140

잊힌 것들 141

독일인들 143

페터 디에터 146

대황 154

우주 진화론 156

성녀의 삶은 누가 썼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159

편지 167

잔디 케이크 170

인터넷에서 본 꿈 178

천체력 179

불 181

성녀의 삶은 누가 썼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184

잔디 알레르기 192

프란츠 프로스트 194

그의 아내, 그의 아이 203

마르타, 그녀가 맞이할 죽음의 종류 209

냄새 212

「힐라리아」에 나오는

쿰메르니스의 환상 215

성체 축일 219

꿈 221

괴물 223

비 227

홍수 231

못 233

예언자 235

미스만치아 251

부차적 인간 253

백색 256

7월 보름달 258

듣기 261

성녀의 삶은 누가 썼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264

꿈 273

사워크림에 넣은 독그물버섯 275

무더위 277

말 279

에르고 숨 281

슬픔, 그리고 슬픔보다 더 나쁜 느낌 288

인터넷에서 본 두 개의 작은 꿈 297

머리 자르기 298

마르타가 유형을 창조하다 301

대저택 305

나의 저택 317

지붕 322

도공들 326

무너지는 숲 329

전기톱을 든 사람 331

에르고 숨 334

인생의 절반은 어둠 속에서 진행된다 340

버섯 347

성녀의 삶은 누가 썼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352

결말 358

알로에 360

모닥불 363

주 하느님께, 폴란드인들이 366

주석 접시 375

유모 377

도공들의 찬송가 381

보물 383

달리아 389

반복, 발견 392

그 남자와 그 여자 395

침묵 409

그 여자와 그 남자 411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R이 월식 직전에 물었다 433

월식 437

마르타의 각성 443

다락방, 정리 448

노바루다 451

설립자 453

구원 기계 458

“우리 가요.”라고 나는 말했다,

내일은 만성절이다 460

하늘로부터의 운세 463

 

옮긴이의 말 466

작가 소개

올가 토카르추크

1962년 1월 29일 폴란드 술레후프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칼 융의 사상과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다.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한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불멸을 향한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은 토카르추크 작품의 본질적 특징이다.

등단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관심과 호응을 받았으며, 첫 장편 『책의 인물들의 여정(Podróż ludzi księgi)』(1993)은 폴란드 출판인 협회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E.E.』(1995)와  『태고의 시간들(Prawiek i inne czasy)』(1996) 발표 이후 1997년에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짤막한 조각글들을 촘촘히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특유의 스타일은 『낮의 집, 밤의 집(Dom dzienny, dom nocny』(1998)으로 이어졌다. 이후 여행을 모티브로 한 100여 편의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방랑자들(Bieguni)』(2007)을 발표해 2008년 폴란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니케(Nike)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18년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전 세계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9년에 발표한 추리소설 『죽은 자들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Prowadź swój pług przez kości umarłych)』는 2017년에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흔적(Pokot)」으로 각색돼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이후 발표한 역사소설 『야고보서(Księgi Jakubowe)』(2014)로 또 한 번의 니케 상과 스웨덴의 쿨투르후세트 상을 받았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한림원은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옥진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고독과 친밀 사이』(공역)가 있고, 폴란드 희곡 『뉴욕 안티고네』, 『잠 못 이루는 밤에(원제: 바퀴벌레 사냥)』, 『이보나, 부르고뉴의 공주』 등에 번역과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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