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원제 Prowadź swój pług przez kości umarłych

올가 토카르추크 | 옮김 최성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9월 18일 | ISBN 978-89-374-7989-2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396쪽 | 가격 15,000원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책소개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고 있어. (……)

이건 그렇게 괴상한 이야기가 아니야.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

2009년 실롱스키 바브진 문학상 수상작

 

 

거침없는 실존적 스릴러 —《가디언》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찬란한 기묘함과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 《뉴욕 타임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책이다.

— 안느나 도비에그와(문학 평론가)

 

매혹적이고 철학적인 텍스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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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 쏟아진 찬사

 

이 작품이 폴란드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폴란드에서 정치적 나침반은 급격히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여성과 동물의 권리 수호는 뜨거운 화두다. (……) 뛰어난 지성과 무정부적 감성으로 무장한 작가가 쓴 이 책에는 스릴러와 코미디, 정치적 단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가디언》

 

이 책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삶과 죽음에 얽힌 심오한 비밀을 드러내 보이는 철학적 우화다.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찬란한 기묘함과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뉴욕타임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는 추리소설이고, 부분적으로는 동화다. 한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들보다 지나치게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매혹적이고 철학적인 텍스트다.

―《타임스》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번 작품은 기묘함과 독특함으로 가득하다. 블랙 유머에서부터 멜랑콜리한 정서,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책의 분위기가 시시각각 바뀌며, 고유한 개성을 구축한다. (……) 2018년 멘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방랑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현대 소설의 관습적 형식에 반기를 들고 있다.

―《키커스 리뷰》

 

괴상하면서, 통렬하게 웃기고, 위안을 안겨 주면서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은 독자의 마음을 특별한 자각으로 이끌어 준다. 영어로 번역된 그녀의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읽는 이를 심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묘하게 친근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연민에 대한 고찰과 상상을 초월한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가 여기에 있다.

―『Strange Bodies』의 저자 마르셀 서루

 

나는 이 씁쓸하고, 충분히 우울하면서, 철학적인 미스터리를 사랑한다. 존재의 기묘함이 번뜩이는, 너무도 강렬하면서, 끝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The End We Start From』의 저자 메건 헌터

 

가벼운 듯하지만, 반짝이는 영감으로 가득하고, 섬세하면서도 열정으로 가득한 책이다.

― 이탈리아 신문《가제타 디 만토바》

 

가벼운 문학적 형태에 위대한 철학적 소재를 접목시키는 빛나는 재능으로 인해 토카르추크는 움베르토 에코에 자주 비교되곤 했다. 이 소설이 그 대표적인 예다.

― 독일 신문《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편집자 리뷰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쓴 범죄 스릴러

    2017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흔적Pokot」의 원작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가 『방랑자들』을 발표한 지 일 년 만에 내놓은 범죄 스릴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일명 ‘별자리 소설’로서 곱씹어 읽어야 비로소 촘촘히 배치된 연결 고리가 보이는 『방랑자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단숨에 읽힌다. 범인이 누군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 대단원에서야 밝혀지는 스릴러 형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형적인 추리 소설물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스릴러의 경우 마지막에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를 핵심 반전으로 설정하고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데 무게중심이 쏠려 있지만, 이 작품은 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하찮은 인물이 공감과 연대를 통해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를 지켜 내려고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제목을 비롯하여 각 장 도입부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인용되어 있고, 본문에서도 그의 시구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점, 열네 점의 흑백 도판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도 여느 범죄 스릴러와 다르게 느껴지는 특징이다. 판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체는 생계를 위해 판각사로 일해야 했던 블레이크의 생애와 연결된다. 삽화를 그린 작가는 체코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야로미르 슈베이지크. 간결하고 단순한 터치로 대상의 특징을 절묘하게 묘사하는 그의 화풍에 매료된 토카르추크가 작업을 직접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폴란드와 체코 국경이라는 점, 폴란드 작가가 체코 화가에게 협업을 제안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가 매년 여름마다 머무는 집필 공간인 노바루다가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지대인 점도 무관치 않다.(노바루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 『낮의 집 밤의 집』의 배경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통해서 토카르추크는 ‘단편이나 조각 글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작가’라는 선입견을 탈피하고, 긴 호흡의 장편에서도 탁월한 문학성을 보여 주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채식주의,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온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폴란드 출신 거장 아그니에슈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 감독의 영화 「흔적(pokot)」의 원작이기도 하다. 토카르추크가 홀란드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하여 화제가 된 「흔적」은 2017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고, 2018년 52회 전미 비평가 협회로부터 특별상을 받았다. 이 책은 2009년 폴란드의 문학상인 실롱스키 바브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8월에 출간된 영어 번역본(Drive your plow over the bones of the dead)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 윌리엄 블레이크의 전승자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폴란드 외딴 고원에서 한때 교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두셰이코. 그와 유일하게 친분을 나누는 이웃은 괴짜와 중고 옷가게 점원 ‘기쁜 소식’,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번역하는 옛 제자 디오니시오스뿐이다. 어느 날 왕발의 기이한 죽음을 시작으로 마을에서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이어진다. 피해자들은 모두 동물 사냥과 연관되어 있고, 시신의 주변에는 어김없이 사슴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점성학 애호가인 두셰이코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의미심장한 문구를 읊조리며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는데…….

 

이웃에 사는 왕발이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살해된다는 섬뜩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이 소설의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1793) 중 「지옥의 격언」(1793)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다소 긴 이 작품 제목은 폴란드 출판사 편집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가 토카르추크가 끝까지 고수한 제목이라고 한다. 이유가 뭘까. 작가는 이 책의 출간 기념 언론 인터뷰(2009. 11. 5)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무 아름다운 시구(詩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한 줄의 문장이 바로 작품의 모토이자 메시지이고, 상징이자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산업 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경험한 뒤 당대 정치, 사회, 문화에 얽힌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시를 통해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지향했고, 자연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시도한 점에서 생태주의 예술가로 불린다. 인간을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생명의 존엄을 강조한 토카르추크가 블레이크의 시를 소설에 인용한 것은 필연적인 이유였을 듯하다. 토카르추크는 주인공 두셰이코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도 생전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간 노년의 블레이크 이미지를 참조했다고 한다. 주인공 두셰이코는 ‘모든 성인의 날’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초 블레이크의 시구를 쓸쓸히 읊조린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317쪽) 이 문장은 옮긴이의 말처럼 “다가오는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다독이는 한 인간의 고독한 독백이자 피폐해진 생의 한가운데서 어떻게든 버텨 보려는 안간힘”으로 읽힌다.

 

 

■ 작품 해독의 또 다른 열쇠는 점성학

    강조된 어휘를 통해 드러내는 절박한 외침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 점성학은 작품을 해독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점성학은 주인공 두셰이코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말과 행동의 원동력이며, 등장인물의 성격과 운명을 부연 설명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두셰이코는 ‘사냥 달력’을 발행해 특정한 시기에 특정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마을 사람들, 동물 사냥을 옹호하는 가톡릭교회, 권위적인 지방 경찰서, 모피를 불법으로 거래하는 농장 등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세력과 맞서며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두셰이코에게 점성학은 세상을 지배하는 기존 질서 및 종교에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자 신앙이 된다. 두셰이코는 점성학에 블레이크 철학을 연계하여 자신만의 가치를 완성시켜 나간다.

 

그 순간 진정한 분노, 감히 말하건대 신성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분노가 내 안에서 솟구쳤다. 펄펄 끓는 듯한 충격이 내 몸 어딘가에서 치밀어 올랐다. (……) 내 몸의 우주에서 작은 대폭발이 일어났고, 마치 중성자별처럼 내 안에서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95-96쪽)

 

아울러 독자는 소설 속에서 특정 단어들이 고딕체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인간, 동물, 식물, 밤, 땅거미, 고원, 분노 등과 같은 고딕체 어휘는 폴란드어 원문에서는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다. 토카르추크에 따르면, 이 표기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두셰이코의 언어를 다른 등장인물들의 언어로부터 분리시키고 차별화시키기 위한 장치다. 주인공이 자신만의 언어 공간 속에서 파토스를 수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주인공은 강조된 어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도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한다. 특히 두셰이코는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 단어 역시 강조되어 표현된다.

 

 

■ “문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공감과 유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문학은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게 만드는 가장 정제되고 정교한 형식입니다. 타인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잠시나마 자아를 벗어던진 채, 또 다른 ‘나’의 모습인 타자의 세계로 위대한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 인간은 실은 서로가 서로를 놀랍도록 닮은 존재라는 사실을 문학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쓰고 또 읽는 한 우리는 함께입니다.

― 올가 토카르추크 기고문 「두려워하지 마세요」(2016. 4. 23) 중에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는 채식주의,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 등 작가의 신념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토카르추크는 평소 여성이나 성 소수자의 인권, 난민 문제, 환경 오염, 동물 학살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작가는 그 상의 상금 일부로 브로츠와프에 ‘토카르추크 재단’을 설립했다. 폴란드의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고, 자연에 대한 범세계적 인식을 제고하며, 동물권 보장에 앞장서는 환경 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토카르추크는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기조 강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끝없는 분쟁, 책임 의식의 부재가 세상을 분열시켰고, 함부로 남용했고, 파괴했다. (……)

세상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심지어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다.

 

토카르추크는 세상을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단일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작지만 강력한 그 단일체의 일부이며, 생태계에서 인간은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인간과 동물의 상호 의존적인 공생 관계를 강조하는 작가는 문학이 인류가 처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메시지가 될 수 있고,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역대 수상자보다 젊은 나이인 쉰일곱 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카르추크는 수상 소감에서도 당당히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기에 젊은 수상자라는 사실이 더욱 기쁘다.”라고 밝힐 만큼 사회 운동가적 면모를 지닌 작가다. 그러한 작가의 신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문제작이 바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다. 토카르추크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이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 우주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들께 이 책을 권한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가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자신보다 더 힘없고 연약한 존재의 불행을 아파하고, 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굳게 믿는 토카르추크는 단호하게 말한다. “세상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거대한 그물망이며,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은 다른 존재와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고 있다.”라고.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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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펴낸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들

 

『방랑자들』 최성은 옮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작

2008년 폴란드 니케 문학상 수상작

 

『낮의 집 밤의 집』 이옥진 옮김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02년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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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본문 중에서

 

이 모든 것이 끔찍스러운 슬픔으로 사무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원이 빚어내는 흑백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슬픔이 세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픔은 모든 것의 본질 가운데에 있으며, 다섯 번째 원소이자 정수였다. (73쪽)

 

 

나는 고통이 빚어낸 유령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할 때마다 나는 목에서 사타구니까지 번쩍이는 지퍼를 채우고 있다가, 그것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내리는 상 상을 해 본다. 그러고는 팔에서 팔을 빼고, 다리에서 다리를 빼내고, 머리에서 머리를 떼어 낸다. 내 몸에서 몸을 빼내자, 그 거죽이 마치 낡은 옷처럼 내게서 흘러내린다. 그 안에 담겨 있던 나는 훨씬 더 연약하고 섬세하며 거의 투명하다. 나는 해파리처럼 희뿌연 우윳빛의 형광색 몸을 갖고 있다. (98쪽)

 

블레이크가 살아서 이 모든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주’에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곳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그곳에서 세상은 망가지지 않았고, 에덴동산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거기에서 인류는 어리석고 엄격하기만 한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마음과 직관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은 헛소리나 지껄이며, 자기가 이미 아는 것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라운 것들을 창조한다. 국가는 더이상 개인의 일상을 억압하는 족쇄를 채우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다. 개인은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의 톱니바퀴나 특정한 역할 수행자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124쪽)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148쪽)

 

동물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잔인하게 군다면 민주주의나 그 어떤 시스템도 소용이 없습니다. (148쪽)

 

인간이 동물을 지옥으로 내모는 순간, 온 세상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왜 다들 그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어째서 인간의 이성은 사소하고 이기적인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156쪽)

 

나쁜 꿈을 처리하는 오래된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대고 그 꿈을 큰 소리로 말한 다음,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이다. (161쪽)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여기서 뒷모습이란 게 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앞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어쩌면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은 일종의 쪽 문과도 같은 특별한 창구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축복을 받으며,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한 사람이란 결국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조화와 균형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165쪽)

 

경사진 구시가지 광장에 멈춰 서자 오가는 사람들과의 강렬한 유대감이 마치 파도처럼 내 안에 차올랐다. 이 사람들 모두가 내 형제이자 자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너무도 연약한 데다 필멸의 숙명을 타고난, 쉽게 파괴되는 존재다. (179쪽)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것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자 위에 행성의 배열, 나아가 우주 전체가 깃들어 있다. 온도계, 동전, 알루미늄 숟가락, 그리고 도자기 컵, 열쇠, 휴대폰, 종이 한 장과 펜, 내 회색빛 머리카락 중 하나의 원자에는 생명의 기원이, 그리고 세상에 그 시작을 부여한 우주적 재앙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208쪽)

 

세 마리의 동물이, 인류의 또 다른 종족이, 혹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생명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정원과 숲에 수많은 ‘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얼굴은 털로 덮여 있었다. 괴상한 짐승들. 나무에는 우리의 박쥐들이 둥지를 틀고 앉아 노 래를 불렀다. (232쪽)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

현명한 사람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250쪽)

 

인간의 정신은 우리가 진실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발달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로 하여금 그 메커니즘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신은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방어 체계다. 우리 뇌의 용량이 어마어마하다지만, 정신의 주된 임무는 정보를 걸러 내는 것이다. 지식의 무게를 모조리 짊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입자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310쪽)

 

우리는 왜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엉겅퀴에게는 생명권이 없는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는 또 어떤가? 꿀벌과 말벌, 잡초와 장미는?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못한지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구멍이 많고 휘어진 거목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수세기동안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그 나무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340)

 

중세 시대의 수도사이자 점성가가 자신의 천궁도를 보다가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별을 보며 미래를 읽는 것을 금지하기 전의 일이었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멩이에 맞아서 죽을 운명이었대. 그때부터 그는 수도사용 후드 아래에 항상 철모를 쓰고 다녔어. 어느 해 성(聖) 금요일 부활절 전의 금요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기억하기 위한 날에 그는 모처럼 후두와 함께 철모를 벗었어. 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성당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지. 바로 그때 그의 맨머리에 작은 조약돌이 떨어져서 가벼운 생채기를 냈어. 하지만 수도사는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했어. 그래서 주변을 말끔히 정리했고, 한 달 후에 세상을 떠났어.

모든 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야, 디지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아직 내게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는 걸. (372쪽)

목차

1 자, 모두 주목하세요 9

2 테스토스테론 자폐증 32

3 영원한 빛 55

4 999번째 죽음 70

5 빗속의 빛 92

6 작고 평범한 것들 119

7 푸들에게 한 연설 140

8 사자자리의 천왕성 162

9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것이 있다 193

10 머리대장 209

11 박쥐의 노래 226

12 추파카브라 251

13 한밤의 궁수 268

14 추락 292

15 위베르 성인 312

16 사진 345

17 처녀자리 362

 

작가의 말 374

옮긴이의 말 375

작가 소개

올가 토카르추크

1962년 1월 29일 폴란드 술레후프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칼 융의 사상과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다.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한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불멸을 향한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은 토카르추크 작품의 본질적 특징이다.

등단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관심과 호응을 받았으며, 첫 장편 『책의 인물들의 여정(Podróż ludzi księgi)』(1993)은 폴란드 출판인 협회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E.E.』(1995)와  『태고의 시간들(Prawiek i inne czasy)』(1996) 발표 이후 1997년에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했다.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짤막한 조각글들을 촘촘히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특유의 스타일은 『낮의 집, 밤의 집(Dom dzienny, dom nocny』(1998)으로 이어졌다. 이후 여행을 모티브로 한 100여 편의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방랑자들(Bieguni)』(2007)을 발표해 2008년 폴란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니케(Nike)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18년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전 세계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9년에 발표한 추리소설 『죽은 자들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Prowadź swój pług przez kości umarłych)』는 2017년에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흔적(Pokot)」으로 각색돼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이후 발표한 역사소설 『야고보서(Księgi Jakubowe)』(2014)로 또 한 번의 니케 상과 스웨덴의 쿨투르후세트 상을 받았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한림원은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최성은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거리 곳곳에서 문인의 동상과 기념관을 만날 수 있는 나라, 오랜 외세의 점령 속엥서도 문학을 구심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 왔고, 그래서 문학을 뜨겁게 사랑하는 나라인 폴란드를 ‘제2의 모국’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2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십자 기사 훈장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과 『태고의 시간들』을 비롯하여  『끝과 시작-쉼보르스카 시선집』과  『충분하다-쉼보르스카 유고시집』, 『쿠오 바디스』,  『코스모스』,  『흑단』,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등이 있으며,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과 『흡혈귀―김영하 단편선』,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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