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슬픈 언어로 써 내려간
어긋난 사랑의 순간들
독일 문학계가 고대한 문학적 신동
유디트 헤르만의 빛나는 데뷔작
휴고 발 상, 브레머 문학상, 클라이스트 문학상 수상작
“독일 현대 문학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책.”―《르 몽드》
“지금은 그 밤들이 내게 아주 소중했음이,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잃어버렸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냐」 중에서
“독일 문학이 고대했던 문학적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독일 작가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 후』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0번으로 출간되었다. 사랑과 상실, 고독과 희망을 한데 응축한 빛나는 단편 소설 아홉 편이 실린 이 작품집으로 작가는 1999년에 휴고 발 상과 브레머 문학상을, 2001년에 클라이스트 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독일에서 25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17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등 대중적으로도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유디트 헤르만은 지나간 과거에 분노하고 새로운 뭔가를 막연히 갈구하는 무기력한 젊은 세대의 슬픈 초상을 생생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담담한 분석과 암시를 통해 무언가를 짐작하고 붙잡고 싶게 만든다.
■ 간결한 문체로 담담하게 표현하기에 더욱 가슴 아픈 슬픔과 본질적인 고독
전화를 걸어 놓고 “여보세요.” 한마디를 던진 다음 이어지는 침묵. “나 슈타인이야. (중략) 그거 찾았다. (중략) 집! 그 집을 찾았다고.” 표제작 「여름 별장, 그 후」는 이런 느닷없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자인 ‘나’는 이 년 전에 “다른 사람들이 교제라고 표현했던” 관계를 슈타인과 맺은 적이 있지만, 그 무렵의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불쑥 등장한 슈타인 때문에 갑자기 지난날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택시 운전사였고 ‘나’는 그의 손님이었다. 집은 없지만 지나치게 잘생기고 옷도 잘 입었던 그는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녔고, 내 집에 머무른 기간은 고작 삼 주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가 지겨워졌다고 말했고 그는 고마웠다고 하며 집을 나갔다. 그런 그가 돌연 나타나 ‘내 집’을 찾았다며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화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 그리고 그에 얽힌 감정을 조용히 읊조린다. 거창하고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을 뿐 아니라 알 수 없는 여백으로 작품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말하지 않는 것, 보류해 두는 것, 암시만 하고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유디트 헤르만의 작품에 깔린 매력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 속 주인공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름 별장, 그 후」를 비롯해 「붉은 산호」, 「허리케인」, 「소냐」 등에서는 젊은 남녀의 사랑이 어긋나는 모습을 건조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어떤 끝」, 「헌터 톰슨 음악」, 「오데르 강의 이쪽」 등에서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거나 타인과의 소통을 피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다. 그들은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듯, 뭔가를 하려고 애써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듯 이상스러울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 산다. 내면에 들어 있는 무수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 채 상대 앞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은 물고기”처럼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지내고, 낯선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표현할 바를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일상은 억눌려 있고 감정은 어긋나 있고 결핍을 채울 방도는 없다.
외로움과 아픔을 껴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젊은 세대를 탁월하게 묘사해 낸 유디트 헤르만. 작품이 지독하게 슬프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작가는 “견디지 못할 만큼의 슬픔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순간 또한 숨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견딜 만한 슬픔과 은근히 숨어 있는 행복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크나큰 기쁨일 것이다.
■ “새로운 세대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독일 문학계의 신성 유디트 헤르만
유디트 헤르만은 1998년 첫 작품집 『여름 별장, 그 후』로 독일 문단의 유례없는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소통이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의 어긋난 사랑의 양상을 포착하는 재능, 극사실주의적이면서도 시적인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문체가 크게 호평받았고, 독일 문학계는 유디트 헤르만의 출현을 1990년대 독일 문학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으로 꼽았다.
1970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디트 헤르만은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연극과 음악에 몸담기도 했다. 저널리즘으로 진로를 바꾼 다음 미국 뉴욕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썼던 편지가 이 작품집의 모티프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독일로 돌아와 본격적인 창작에 몰두한 후 첫 책인 『여름 별장, 그 후』를 발표했고, 오 년 후 두 번째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으로 또다시 문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디트 헤르만은 이 작품집에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과 운명의 힘을 어떠한 환상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직시한다. 이처럼 어긋나고 분열된 인물들의 내면을 탐사하는 작가의 문체는 지극히 간결하면서도 몽환적이다. 군더더기 없는 단문의 병렬 어법은 무성 영화처럼 조용하면서도 강렬하다. 어느 인터뷰에서 “언어를 찾아내고 싶고, 그 언어로 세상과 교류하고 싶고, 그걸 창작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힌 작가는 등장인물을 애써 분석하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고 가만히 사실적으로 응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하여 결국 객관적 거리를 무너뜨리고 인물의 심리 속으로 깊숙하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데 성공한다. 이런 작가의 언어는 “기성세대에게 들어 본 적도 이해할 수도 없는, 대단히 낯선 것”, “새로운 세대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고, 독일의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새로운 여성 작가를 발견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수록 작품 소개
「붉은 산호」
‘나’에게는 증조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붉은 산호 팔찌가 있다. 젊은 시절, 증조할머니는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갔지만 언제나 바쁜 남편은 그녀를 외롭게 내버려 두었다. 빼어난 미인이었던 증조할머니 주변에는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는 남자들이 많았고, ‘나’의 붉은 산호 팔찌는 그 남자들 중 하나였던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가 준 것이었다. 이 소설은 증조할머니와 그녀의 남자들을 둘러싼 비극, 그리고 대를 넘어 이어진 비극적 운명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허리케인」
허리케인 경보가 내려져 있는 어느 섬을 방문한 노라와 크리스티네. 두 사람은 섬에 살고 있는 친구 카스파를 찾아 섬이라는 미지의 땅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섬에서 카스파의 친구인 캣을 만나고, 당장이라도 허리케인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네 사람 사이에도 미묘한 감정이 오간다. 크리스티네는 섬에 머무르는 동안 기어코 허리케인을 만나기를 바라고, 카스파는 이방인인 두 사람을 돌려보내려 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어긋나는 사랑의 순간을 사실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소냐」
‘나’는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긋나긋”한 소냐를 처음 만났다. 여자 친구인 베레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소냐는 조금도 예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고 소냐와의 관계는 일탈일 뿐이었다. 이 작품은 ‘나’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소냐, 그녀와 함께한 여름의 기억을 섬세하게 보여 준다.
「어떤 끝」
늦은 오후와 저녁 사이, 한적한 카페 안. 소피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그녀의 딸이자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나날을 회고한다. 그녀는 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을 담담하게 끄집어낸다. 순전히 주인공인 소피의 말과 행동만을 묘사해 더욱더 많은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강렬한 작품이다.
「발리 여인」
열정적인 크리스티아네가 사랑에 빠진 남자에겐 아내가 있었다. 발리 출신의 그 여자는 아주 작고 말랐고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었다. ‘나’는 ‘너’에게 그날 밤 그 신비로운 발리 여인과, ‘나’와 크리스티아네와 마르쿠스 베르너를 둘러싸고 벌어진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다. 미지의 대상인 ‘너’에게 일종의 하소연을 하는 듯한 형식의 작품으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여름 별장, 그 후」
이 년 전 불과 삼 주 동안 만났던 남자 슈타인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 온다. 일정한 거처 없이 이 여자 저 여자 집을 헤매던 그는 이제야 자신이 염원하던 “그 집”을 찾아 샀다며 함께 집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과 느닷없이 나타난 슈타인과의 현재적 만남이 교차하며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헌터 톰슨 음악」
헌터는 낡고 황폐한 워싱턴 제퍼슨 호텔의 장기 투숙객이다. 그는 프런트에서 매일 우편물이 왔는지 확인하지만, 그의 우편함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지루하게 흘러가는 그의 일상에 불현듯 한 소녀가 나타나 그가 듣는 음악이 뭔지 묻는다. 노인의 잔잔한 삶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녹음기를 도둑맞았다는 소녀를 위해 그는 사방팔방으로 녹음기를 찾아 나선다.
「카메라 옵스큐라」
“그 예술가는 아주 작다.” 마리보다 머리통이 세 개만큼이나 더 작을 듯한 그 예술가를 만난 날, 그녀는 그에게 키스를 했다. 이 작품은 외모로 먹고사는 아름다운 여자와 못생겼지만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유명해진 남자가 만나고 이상스럽게 끌리는 과정을 묘사한다. 감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그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유디트 헤르만 특유의 문체와 언어가 빛을 발한다.
「오데르 강의 이쪽」
오데르 강 주변에 사는 코베를링에게 어느 날 방문객이 찾아온다. 친구의 딸인 안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벤츠를 타고 등장해 폴란드에서 오는 길이라고, 돈이 다 떨어져서 신세를 지러 왔다고 말한다. 안나의 등장을 계기로 코베를링은 어쩔 수 없이 그 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조용한 일상을 깨뜨린 어린 커플과 마주하게 된다. 타인과의 소통을 피해 살아가는 사람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숨을 들이쉬었고, 손을 올렸다 다시 내렸고,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사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다만 나른하고 텅 비고 조용하기만 한 날들, 물속에 있는 물고기 같은 삶과 이유 없는 웃음이 뭐가 어떻단 말인가? 나는 내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그것이 내 삶을 힘들게 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애인 곁에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붉은 산호」 중에서
그녀는 눈도 그저 그랬고, 어쩌면 녹색이었고, 그다지 크지 않았고, 또 두 눈 사이가 너무 좁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성적인 것도, 수작을 거는 것도, 누군가를 녹일 듯한 것도 아니었지만,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진지하고도 도전적인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두 걸음 다가갔고, 그녀는 웃을 듯 말 듯 했다. 객실로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닫자, 난 거의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소냐」 중에서
그때는 행복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쉽고, 기억은 아름답게 덧칠되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 밤들은 그저 춥기만 했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그저 유쾌한 시간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밤들이 내게 아주 소중했음이,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잃어버렸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냐」 중에서
판자는 삐걱거렸고 담쟁이덩굴이 빛이란 빛은 금방 다 삼켜 버려서, 나는 짜증을 내며 덩굴을 한쪽으로 걷어치웠고, 그러자 슈타인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으로 나를 복도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는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고, 갑자기 그와의 접촉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고, 그의 작고 침침한 석유 등잔 불빛조차 놓치기 싫었다. 슈타인은 흥얼거렸고, 난 그를 따라갔다. ―「여름 별장, 그 후」 중에서
그 뒤로 매일같이 엽서가 왔다. 난 기다렸고, 하루라도 엽서가 오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했다. 늘 교회 그림이 있는 엽서였다. 짤막한 수수께끼 같은 글이 네다섯 줄 정도 적혀 있었는데,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슈타인은 자주 ‘네가 온다면…….’이라고 썼다. 그는 ‘와.’라고 쓰지는 않았다. 나는 ‘와.’라는 말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러면 그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름 별장, 그 후」 중에서
■ 『여름 별장, 그 후』에 쏟아진 찬사
▶ 지극히 간결한 문장으로 복잡한 인간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 수수께끼 같은 소설. —《디 차이트》
▶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 서사를 이끌어 가는 절묘한 솜씨,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고루 갖춘 작품. 오래 간직할 만하다. —《타임》
▶ 현대 독일 문학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책. 독자는 책장을 여는 순간 꼼짝없이 이야기에 사로잡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얻게 될 것이다. —《르 몽드》
▶ 평범한 일상에서 슬쩍 비껴나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꿰뚫어보듯 명징하게 묘사하는 소설. —《슈피겔》
▶ 유디트 헤르만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일상을 이야기해 나간다. 그런데 정작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혹은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반전이 침묵 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다. 그것은 대단히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기성세대에겐 들어 본 적도 이해할 수도 없는, 대단히 낯선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 —부르크하르트 슈핀넨
▶ 유디트 헤르만으로 독일 문학은 걸출한 신예 작가를 얻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붉은 산호
허리케인
소냐
어떤 끝
발리 여인
헌터 톰슨 음악
여름 별장, 그 후
카메라 옵스큐라
오데르 강의 이쪽
옮긴이의 말
독자 평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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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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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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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 2019.5.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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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 | 2015.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