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유령일 뿐

원제 Nichts als Gespenster

유디트 헤르만 | 옮김 박양규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5년 3월 6일 | ISBN 978-89-374-9071-2 [절판]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292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여행 중에 다가온 낯설고 긴장된 순간,

무의식중에 찾아온 삶의 전환점을

강렬하게 포착하는 이야기들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디트 헤르만의 두 번째 작품집

“유디트 헤르만은 침묵을 단어로 표현하는 법을 안다.”―《슈피겔》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뭐든지 시간이 필요한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어디로 가는 길인가」 중에서

편집자 리뷰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유디트 헤르만의 두 번째 단편 소설집 『단지 유령일 뿐』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 71번으로 출간되었다. 데뷔작 『여름 별장, 그 후』에서 다양한 이별로 슬퍼하고 아파하는 외로운 젊은 여성들을 다루었던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조금 더 성숙하고 연인도 있지만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힘들어하는 이들에 주목한다. 전작의 인물들이 특정 장소에 머물러 있고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식이었다면, 『단지 유령일 뿐』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미국, 프랑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체코, 노르웨이 등을 여행하게 되고 이국의 생경한 공기 속에서 모호한 감정 속으로 파고들며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간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아름답고 강렬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고유의 강점을 간직한 채 등장인물과 함께 성장하고 깊어진 작가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다.

 

 

■ 단절되고 공허한 관계로 인한 슬픔, 낯선 곳에서 새롭게 찾아낸 강렬한 삶의 의미

 

『단지 유령일 뿐』에 실린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행’이다. 표제작 「단지 유령일 뿐」에서 주인공 커플은 미국 동부 해안에서 서부 해안으로 횡단을 하다가 텍사스 오스틴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한다. 「차갑고도 푸른」의 주인공은 아이슬란드에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다가 베를린에서 온 친구들과 낭만적인 일주일을 보내고 「아쿠아 알타」의 주인공은 혼자 여행을 하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부모님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뚜쟁이」에서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인 두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체코의 휴양 도시 카를로비바리에서 요동치고 「루스(여자 친구들)」의 주인공은 가장 친한 친구의 옛 연인을 만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조용한 행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유디트 헤르만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행은 집중해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형식이고, 의식이 더 또렷해서 더 긴장된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전환점이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어쩌다 낯선 땅으로 떠나게 되고, 그저 알 수 없는 길을 걷거나 어딘지 모르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표면적으로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우울해하는 이들은 물리적으로 일상에서 거리를 둔 다음에야 비로소 강렬한 깨달음을 얻는다.

 

우연, 침묵, 무언의 의미심장함. 답은 대부분 말해지지 않은 것, 쓰이지 않은 행간에 들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대화는 눈빛과 몸짓으로 대신한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짓, 침묵, 응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거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전작 『여름 별장, 그 후』와 달리 『단지 유령일 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소한 행복을 포착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들은 사랑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오로라, 고요한 아침을 깨우는 시끌벅적한 이국의 풍경에 행복해한다. 작가는 당시 두 살이던 아들 프란츠에게 이 책을 헌정했는데, 그 변화가 작품 세계의 변화와 진보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긴장된 침묵 속에서 불현듯 맞이하는 순간, 그것이 인생 전체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설렘과 희망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수록 작품 소개

 

「루스(여자 친구들)」

‘나’는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연극배우인 루스와 오랜 친구 사이다. 극단 때문에 베를린을 떠나 독일의 작은 도시로 간 루스를 보기 위해 ‘나’는 길을 나선다. 루스가 머무르는 작은 도시에서 ‘나’는 루스가 사랑하는 남자 라울을 만난다. 루스와 나흘을 보낸 ‘나’는 파리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두려움이 엄습하자 베를린으로 돌아간다. 루스는 베를린의 ‘나’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라울과의 이별 소식을 전하고, 얼마 후 ‘나’는 라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라울을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나’는 ‘나’와 루스와의 관계, ‘나’와 라울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낯선 도시들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가 담담히 묘사된다.

 

「차갑고도 푸른」

빈에서 문예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요니나는 딸 수나, 남자 친구 마그누스와 함께 아이슬란드에 살면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한다. 그녀는 일 년 전, 마그누스의 베를린 유학 시절 친구인 이레네와 그녀의 친구 요나스가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을 때를 마치 어제 일처럼 회상한다. 관광객처럼 아이슬란드를 보며 감동할 수 없었던 요니나는 이레네와 요나스의 방문으로 난생처음 이방인의 눈으로 아이슬란드를 바라보게 된다. 광활한 설원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미묘한 감정 교류가 섬세하게 포착된다.

 

「아쿠아 알타」

서른 살 생일을 홀로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나’는 코르시카로 여행을 떠난다. 마침 같은 기간 여행 중인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한다. 낯선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부모님과의 만남에 ‘나’는 안심이 되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어색하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여행과 부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젊은이의 복잡한 심경을 그린다.

 

「뚜쟁이」

‘나’는 요하네스를 만나기 위해 체코의 휴양 도시 카를로비바리로 떠난다. ‘나’와 요하네스는 오랜 만남 끝에 연인도 친구도 아닌 이상한 관계에 이른 사이다. 요하네스가 사는 곳은 죽은 중국 여자가 살던 집이다. 이국적인 가구들로 채워진 그 집에서 ‘나’는 중국 여자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요하네스와 얽힌 기억들을 떠올린다. 요하네스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짙은 안개를 만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나’는 안개가 걷힌 후에 달라질 상황을 생각하며 행복을 느낀다.

 

「단지 유령일 뿐」

엘렌은 연인 펠릭스와 함께 미국을 횡단 중이다. 그들이 횡단하는 사막만큼이나 무료하고 새로울 것 없는 관계에 이른 엘렌과 펠릭스. 여행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대화는 점점 단절되어 간다. 네바다 오스틴을 지나던 중 그들은 우연히 호텔 인터내셔널 앞에 정차한다. 이곳에서 엘렌과 펠릭스는 하룻밤을 보내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호텔 인터내셔널의 깡마른 주인 애니, 플라스틱 카메라와 낡은 녹음기에 유령들의 흔적을 담으려고 애쓰는 유령 쫓는 여자, 어린애 같은 얼굴 표정에 빈틈없는 모습이 건장해 보이는 버디. 그날 밤 그들은 함께 당구를 치고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고 나서 헤어진다. 엘렌은 해가 바뀐 뒤에도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네바다 오스틴의 버디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와 펠릭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언젠가 버디에 대해, 그리고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의식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야코프는 ‘나’와 모든 것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보낸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페터, 사라, 미하, 미로슬라브와 함께 몰다우를 내려다보고 불꽃놀이를 하고 새해를 맞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황금의 도시 프라하와 베를린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다.

 

「아리 오스카르손에게 향한 사랑」

‘나’와 오언은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노르웨이 북단에 있는 도시 트롬쇠로 간다. 페스티벌은 취소되었으나 ‘나’와 오언은 구나르의 여관에 묵기로 하고, 그곳에서 그들은 카롤리네와 마틴을 만난다.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기도 하고 도시를 탐험하기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던 그들은 어느 밤에 열린 작은 파티에서 아리 오스카르손과 그의 아내 시카를 만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충동의 밤은 지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 되었지만 ‘나’는 오언과 함께 오로라를 보며 행복해한다.

 

 

■ 본문 중에서

 

나는 큰 소리로 “루스, 어쩌면 그건 이런 걸 거야. 넌 항상 너 자신을 찾으려 하고 늘 그렇듯 정말 너를 다시 찾게 되는데, 난 너와 반대로 나를 잃어버리길 원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길 원해. 그리고 그건 내가 여행할 때만 가능해. 또 가끔은 사랑을 받을 때도.”라고 말해 보았지만, 나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루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럴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야 할 것 같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낯설게 들렸다. ―「루스(여자 친구들)」 중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고 요니나는 생각한다. 마그누스, 사람은 아무것도 전혀 짐작할 수 없고,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해 놓아야 해, 또 최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여행은 사실 내게 어렵게 다가온다. 여행 떠나기 이삼 일 전부터 이유 없이 겁이 나고, 먼 곳이나 낯선 사람들, 그 모든 게 헛되고, 그곳이 내 방 창문에서 보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사 주 동안 낯선 나라에 머무는지, 다른 곳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지, 내게 유익한지를 생각하고, 어처구니없게도 이미 다 가 본 느낌마저 든다. 낯선 도시에서 안전하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내겐 거의 불가능하며, 차라리 호텔 방에 앉아 문을 잠그고 절대로 밖에 나가지 않는 게 낫다. ―「아쿠아 알타」 중에서

 

버디는 일 년에 담배를 한 번 피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놀라워하면서 깊이 빨았고, 그러곤 신중하게 연기를 뱉어 냈다. “너희들은 아이가 없으니까 잘 모를 거야. 아이에게 작은 운동화 한 켤레를 사 주는 게 어떤 건지를. 예를 들면 나이키 운동화.” (중략) “그건 말이야…….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정말 좋아. 운동화는 얼마나 작고 앙증맞은지, 그리고 완벽해. 성인 운동화를 그대로 완벽하게 축소해 놓았다고.” 그가 펠릭스를 보면서 “그렇지?”라고 묻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창이 깔려 있고 튼튼한 끈이 달린 파랗고 노란 신발이 작고 완벽한 신발통에 들어 있고, 그걸 사서 아이에게 신기는 거야. 아이가 그걸 신고 걷는다고. 그걸 신고 걸어. 그게 다야.” ―「단지 유령일 뿐」 중에서

 

우리는 자정쯤 몰다우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샴페인과 폭죽 그리고 시계조차도 없었다. 우리는 지나가는 해와 다가오는 해 사이에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흐라차니 위로 폭죽이 터지자 우리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았고, 우리도 껴안았다. “복 많이 받아, 페터.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뭐든지 시간이 필요한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난 이미 충분히 슬퍼.” “너도 복 많이 받아.” 하고 페터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중에서

 

 

■ 『단지 유령일 뿐』에 쏟아진 찬사

 

▶ 유디트 헤르만을 읽고 난 후, 나는 어딜 가나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경란(소설가)

 

▶ 아름다운 책이다. 마치 눈이 온 뒤의 쓸쓸한 오후처럼, 인생의 술잔을 들고 난 뒤 자정 넘어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아름답다. —《디 차이트》

 

▶ 또렷하고 탄력적이며 조용하다. 유디트 헤르만은 침묵을 단어로 표현하는 법을 아는 작가다. —《슈피겔》

목차

루스(여자 친구들)

차갑고도 푸른

아쿠아 알타

뚜쟁이

단지 유령일 뿐

어디로 가는 길인가

아리 오스카르손에게 향한 사랑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유디트 헤르만

1970년 독일 서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998년 발표한 데뷔작 『여름 별장, 그 후』는 극히 사실적이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문체로 소통이 단절된 인물들의 모습과 어긋난 양상의 사랑을 포착해 낸 작품집으로, 25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17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독일 문학이 고대했던 문학적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1999년 휴고 발 상과 브레머 문학상, 2001년에 클라이스트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은 여행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 일곱 편을 묶은 책으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파편화된 세계와 그들의 복잡한 내면을 잘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2007년에 독일에서 영화화되었다. 2009년에 발표한 『알리스』는 주인공이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며 느끼는 아픔과 고독을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써 내려간 소설로, 《슈피겔》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프리드리히 횔덜린 상을 받았다. 2014년 첫 번째 장편 소설 『모든 사랑의 시작』을 발표했으며 에리히프리트 상을 수상했다. 현재 베를린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박양규 옮김

계명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십여 년간 교사로 재직한 뒤 쾰른 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과 독일 문학을 전공했다. 계간 《동서문학》 신인상(번역 부문)을 수상했고, 옮긴 책으로는 『여름 별장, 그 후』, 『단지 유령일 뿐』, 『아빠는 전업주부』, 『할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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