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원제 DIE ANGST DES TORMANNS BEIM ELFMETER

페터 한트케 | 옮김 윤용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9년 12월 11일 | ISBN 978-89-374-6233-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148쪽 | 가격 8,000원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책소개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무질서한 전개, 무의미한 농담, 강박적인 말놀이로 그리는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독창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작품”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언어에 집중한 실험적 글쓰기로 새로운 문학 세계를 연 문제 작가 페터 한트케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가 초래한 극단적 범죄
무질서한 전개와 강박적인 말놀이로 그리는 소통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불안한 단면

▶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엘프리데 옐리네크
▶ 지난 십 년간 독일어로 쓰인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카를하인츠 보러(비평가)

편집자 리뷰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33)으로 출간되었다. 한트케는 보편적인 문학성에 반하는 실험적인 작품들로 항상 새로운 화두를 만들며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그의 소설은 통상적으로 ‘줄거리 없는 소설’이라 얘기되는데, 이 작품은 한트케가 1970년대 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때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석연찮게 실직하고 방황하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블로흐의 모습을 통해 소외와 단절의 현대 사회, 그 불안한 단면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인 빔 벤더스가 당시 이 작품을 영화화해 호평 속에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현대인,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
이전에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던 중 조금 늦게 출근한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지레짐작하고 작업장을 떠난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며 극장, 카페, 호텔 등을 무의미하게 전전한다. 그러던 중 얼굴을 익힌 극장의 매표원 아가씨를 쫓아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블로흐는 여자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끼다가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하고 묻는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한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국경 마을로 달아난 블로흐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자기를 향한 어떤 상징이나 신호일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린다.주인공 블로흐의 모습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지각이라는 정황만 가지고 자신을 향한 눈빛을 덜컥 해고 통지로 받아들이고, 사실 여부도 끝내 확인하지 않는 그의 사고와 대응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회하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동을 일으키고 쉽게 다툼에 휘말린다. 매표원 아가씨를 살해하는 동기도 불분명해 보인다. 그는 한때 외국으로 원정 경기를 다니며 팬들에게 사인 엽서를 부칠 만큼 유명한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공사장에서 이름 없는 인부로 일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경기를 보면서도 관중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유명 선수였던 과거의 자신과 무명 노동자인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상행동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받아들인 것도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그의 과잉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사장을 나온 그는 대낮의 화창한 거리에서 불안을 느끼며 어두운 극장, 카페로 숨어든다. 친구들과의 통화도 사람들과의 대화도 실패한다. 누구도 그의 존재를 규명해 주지 못한다. 블로흐가 여자를 살해한 것은 일하러 가지 않느냐는 그녀의 한마디가 제자리를 잃은 그의 불안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올 만큼 파괴적이다. 블로흐는 누구와도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다. 그는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만, 친구들과의 통화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처는 통화 내내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사람들과 나누는 모든 대화는 농담으로 치부되거나 엉뚱하게 곡해된다. 블로흐가 매표원 아가씨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도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짐작으로 넘겨 버리고 그와 무관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상대에게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 빛을 반사하듯 튕겨져 나오거나 맥락 없이 뒤엉켜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블로흐는 뮤직 박스의 음악이나 켜 놓고 보지 않는 텔레비전 소리같이 무의미한 기계음에서 안정을 느낀다. 자기 존재와 소통 방식을 잃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할수록 더 큰 고립감과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보상을 인간이 아닌 기계나 미디어에서 찾는 것이다.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중략)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손잡이를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본문 119쪽)

축구 경기 내내 골키퍼를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관중은 공을 차는 공격수나 공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실상 득점은 골대에서 이루어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가 골키퍼를 쳐다보게 되지만 관심은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관중들은 공이 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골키퍼는 다시 긴 시간 동안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 모든 관중이 공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는 공도 없이 이리저리 몸을 날린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처럼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채 문손잡이로 전락한 인간이 내보이는 불안의 단면들은 씁쓸하고 서글픈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적 낭만으로 덮지 않은 진실의 어두운 서정이다.
■ 범죄소설의 형식을 뒤엎고 인물과 독자의 불안을 일치시키는 역설적 범죄소설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사건이 발생하는 경위가 설명되고 범죄자와 추격자 사이에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며 결국 사건이 해결되어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범죄소설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범죄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한트케가 소설의 전통적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수법을 시도한 프랑스의 문학 사조인 누보로망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납득할 만한 사건의 인과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블로흐의 강박적인 이상행동과 인물들의 소통 불가로 인한 불안감은 고조되지만 사건 자체가 야기하는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소설이 전개될수록 살인 사건 자체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야기는 종결, 미결이 아니라, 사건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엉뚱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은 이렇게 범죄소설이면서 범죄소설의 형식에 철저히 반하는 방식으로 역설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주인공 블로흐가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 번씩 의식적으로 상기시키지 않으면 잊어버릴 정도로, 소설 속에서 살인 사건이 차지하는 자리는 희미하다.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도 자신이 살해한 여자 옆에서 태연히 잠을 자는가 하면 도주 중임을 거의 망각한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에 더 관심을 갖고 몰입한다. 그가 잔악하고 대담한 살인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블로흐는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불안과 강박에 시달린다. 다만 존재감과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자기 행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수시로 떠올리는 영화 속 장면이나 신문의 다른 기사들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 역시도 타자화하며 행위의 주체인 자신을 스스로 소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존재와 행위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된 블로흐는 자기와 무관한 사람이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쫓기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피해야 할 경찰이나 세관원에게 벙어리 학생의 실종 사건에 대해 열심히 묻고 다닌다. 엉뚱한 곳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소설은 살인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내재한 소외와 불안의 심상을 따라 무질서하게 펼쳐진다. 정황에 맞지 않는 언행,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 맥락 없는 대화 속 극단적인 말놀이와 농담,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뜻 모를 기호들은 블로흐가 느끼는 불안과 강박을 작품 전체와 일치시키며 매순간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고,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긋나 흐르는 이야기 전개는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예의 범죄소설이 일종의 충격에서 팽팽한 긴장을 지나 안도감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작품은 시종일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은 의심과 불안 가운데 독자를 버려 둔 채 허탈하게 끝나 버린다.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 역시 소설을 통해 작가와 소통하지 못하고 소외와 단절, 불안과 강박을 느끼는 또 한 명의 블로흐임을 서늘하게 비춰 보이는 것이다.

목차

차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9

작품 해설·121
작가 연보·131

작가 소개

페터 한트케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두 살도 못 돼 베를린으로 이사하는 등 성년이 되기까지 국경을 넘어 여러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첫소설 『말벌들』(1966)을 출간하면서 《47그룹》 회합에 참석하였고 논문「문학은 낭만적이다」, 희곡『관객모독』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967년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상>을 수상하였고 희곡 『카스파』(1968), 시 『내부 세계의 외부 세계의 내부 세계』(1969), 소설 『긴 이별에 대한 짧은 편지』(1972), 방송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인 바 있다. 1973년 <쉴러 상>, <뷔히너 상>을 수상하였으며 1987년에는 빔 벤더스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베를린 천사의 시Himmel über Berlin』를 썼다. 그밖에도 <오스트리아 국가상>, <브레멘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다.

윤용호 옮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페터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Selbstbiographischer Subjektivismus bei Peter Handke」, 「Peter Handke의 Franz Kafka 수용」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페터 한트케 연구』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독문학교수이다.

독자 리뷰(8)

독자 평점

3.7

북클럽회원 13명의 평가

한줄평

ㅋㅊㅋㄴㅇㅋㄴㅇㅊ

밑줄 친 문장

ㅋㅊㅋㅇㅊㅇㅋㅊ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120쪽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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