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스스로 천명한 대표작
족장의 가을
원제 EL OTOÑO DEL PATRIARCA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1년 2월 25일 | ISBN 978-89-374-6377-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08쪽 | 가격 14,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77 | 분야 세계문학전집 377, 외국 문학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스스로 천명한 대표작
권력과 고독의 연대기를 환상적 시어(詩語)에 담은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소설
1983년 국내 초역 이후 40여 년 만에 새로 번역한 완성판
▶ 『족장의 가을』은 나의 대표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중요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빈곤한 계층과 약자들의 편에 서서 서구의 경제적 착취와 국내의 압제에 강력하게 대항하고 있다.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한 독재자의 기괴한 200년 통치에 압축된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마술적 사실주의’를 창시하며 소설 위기론에 강력한 반기를 든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스스로 밝힌 대표작 『족장의 가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377번)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가장 빛나는 성취인『백년의 고독』(1967)에 쏟아진 전 세계 문학계의 찬사를 뒤로 하고, 8년간 오롯이 몰입한 끝에 완성한 대작이다. 『족장의 가을』은 권력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일생 천착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다른 어느 작품보다 ‘권력’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독재자들의 기행과 압제를 ‘족장’이라는 인물에 집약해 ‘독재자 소설’이라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카리브해에 자리 잡은 상상의 공화국, 그곳의 땅과 바다에 사는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짐승보다 늙은 족장이 있다. 전능하지만 고독하고, 저속하면서도 잔인하며 거의 멍청할 정도로 무신경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만큼은 비상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모두를 불신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매일 밤 관저를 돌아다니면서 자물쇠와 빗장을 걸어 잠그는 강박에 시달린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 벤디시온 알바라도의 죽음을 통해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맛보기도 하고, 그의 분신이자 대역인 파트리시오 아라고네스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계절인 ‘가을’을 맞이하며 ‘족장’이 돌아보는 수백 년에 걸친 통치의 파편들은 때로는 독재자 ‘나’의 목소리로, 때로는 독재 체제 아래서 고통 받았던 ‘우리’의 목소리로 재현되는데,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기존의 문법과 작법을 벗어나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교차시키며 카리브해 가상의 공화국을 배경으로 식민 시기에서 무정부와 독재, 다시 신식민주의로 이어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를 빠짐없이 짚어 나간다.
『족장의 가을』은 1975년 라틴 아메리카에 여러 독재 정권이 존재하던 시기에 출간됐다.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인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에서 밝혔듯, 서구의 시선에서 볼 때에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일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TV에 방영되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바꾸고, 갓난아이인 아들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눈에 보이는 아무 여자나 탐하고, 마체테를 든 원주민을 경비원으로 임명하고, 이상하리만큼 젖소와 수탉 등 가축에 대해 집착하는 ‘족장’의 기행. 이러한 기행들은 쿠바,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등에서 실재했던 독재자들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족장’이라는 하나의 인물에 투영하여 ‘비현실적’ 세계 속에 ‘실제’ 역사의 비극을 조명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독재자는 구체적인 한 사람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독재자의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 속의 독재자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라틴 아메리카의 전체 역사를 보여 주는 ‘신화적인 동물’ 역할을 한다. -「작품 해설」중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성취는 단순히 역사를 고발하고 독재의 아픔을 조명하는 단면적인 역사 소설로 읽힐 위험을 무릅쓰고 마술적인 세계관을 창조해 내는 시도에 있다. 독재자들의 기행을 모아 일체화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독재의 역사 자체가 현실 세계에서 과장되고 불합리하게 보이며 비인간적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서술로 펼쳐지는 독재자의 기행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은 독서와 역사의 한 시기를 관통하는 듯한 기시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독재자라는 첨예한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독재 체제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장광설에 빠질 위험이 크다. 하지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러한 위험을 극복하고 여러 얼굴을 지닌 독재자의 여러 상황과 심리적, 역사적 전개 과정을 다양한 화자의 목소리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라틴 아메리카 역사는 이런 다양한 목소리와 이름 없는 독재자의 대화로 재구성된다. 그러면서 독재 체제에 의해 수탈된 라틴 아메리카 국민의 역사는 왜곡되었으며,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독재가 역사를 대체했음을 암시한다. 즉 권력의 담론이 역사의 담론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작품 해설」중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가장 실험적이고 난해한 소설
40여 년 만에 구두점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
『족장의 가을』은 난해한 서술 구조, 모호한 시공간, 자유자재로 바뀌는 화자의 시점 등으로 이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가장 난해한 소설’ 혹은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소설 중 가장 어려운 작품’ 등의 평을 받았다. 특히 독재자의 죽음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은 72쪽 전체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서술된다. 쉼표와 쉼표로 연결되며 ‘겨울’을 향해 내달리는 마지막 장에서의 호흡과 흐름은 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과감한 문학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족장의 가을』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이 불러일으킨 전 세계 문학계의 찬사와 뜨거운 찬양 열기를 뒤로 한 채 8년간 몰두한 끝에 완성한 소설이다. 모두가 부엔디아 가문의 연대기와 같은 세계관을 기대하고 있을 때, 스스로 전작의 성취를 넘어서는 작품에 도전하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전작 『백년의 고독』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문학적 실험에 나섰다. 작가가 마치 독재자처럼 서술 권력을 붙잡고 단선적인 세계를 그리는 대신, 여러 화자가 여러 시공간에서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서술 방식을 시도하며 가장 실험적이고 난해하면서도 시와 같은 운율을 살리는 독자적인 서술 기법을 완성한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시적인 운율을 갖춘 문장들 속에서 독자 역시도 끊임없이 텍스트와 대화를 해야 한다. 한 번 읽은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조금 앞으로 건너뛰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호흡으로 작품을 읽어나간다면 이 실험적인 텍스트의 진면모에 다양한 방향에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집판은 1983년 한국어 초역 이후 절판되었던 『족장의 가을』을 40여 년 만에 번역하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와 서술 기법을 충실히 완역해 낸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옮긴이 송병선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는 오랜 시간『족장의 가을』의 세계를 오롯이 보전하는 번역을 위해 힘썼다. 쉼표와 마침표 등의 구두점 하나까지도 오롯이 원서를 존중하며 ‘시어(詩語)로 쓴 소설’ 이라 자칭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작품 전체에 구현한 운율과 리듬을 살려냈다. 또한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카리브해를 묘사하기 위해 쓴 카리브해 특유의 어휘와 그 의미 역시 충실히 옮겼다.
이런 점에서 『족장의 가을』은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희열의 텍스트’이다.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바르트는 이런 글 읽기의 체험을 ‘즐거움(plasir)’과 ‘희열(jouissance)’의 두 형태로 구분한다. ‘즐거움’의 텍스트는 문화에서 오고 문화와 단절되어 있지 않아 ‘글 읽기의 편안한 실천’을 허용하며, 우리를 행복감으로 채워 주는 그런 텍스트이다. 그것은 이성, 문화, 역사와 관계된 고전 작품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독자의 문화 지식이 많을수록 즐거움도 크다. 이에 반해 ‘희열’의 텍스트는 독자에게 안락한 독서를 제공하지 않은 채 독자의 역사적, 문화적, 심리적 토대나 자신의 취향에 관한 가치관과 언어관마저 흔들리게 하여 자아가 회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희열의 텍스트에서 즐거움은 산산조각이 나며, 언어와 문명은 파편화된다. 그것은 항상 “비어 있고, 움직이며, 예측 불허”인 텍스트다. 절대적으로 자동사인 그것은 어떤 목적성도 갖지 않으며, 모든 규범적인 것을 전복시키는 퇴폐적인 텍스트이다. 한마디로 말해 독자의 기대 지평선을 완전히 배반하는 작품이다. -「작품 해설」중에서
■ 본문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게 바로 잠들면서, 슬프고 쓰라린 그의 가을에 떨어지는 노란 잎사귀의 바스락거림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었는데, 그의 쓰라린 가을은 바로 그날 밤 학살의 붉은 달이 웅덩이를 이루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체들 속에서 영원히 시작되었다. -50쪽
네 정권이 쓰고 남은 돈을 안전한 장소에 묻어 두도록 해, 라고 충고했으며, 그곳은 그 말고는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곳이어야 하는데, 벼랑 위의 집에서 망각을 뜯어 먹고 배들의 작별 인사를 구걸하는 시시하기 이를 데 없는 불쌍한 대통령들처럼 뺑소니를 쳐서 나와야 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으며, 저 거울을 쳐다봐, 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자기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걱정 마세요, 어머니, 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요, 라는 마술적인 공식으로 그녀의 번민을 허물어뜨렸다. -87쪽
집권 첫날부터 그는 모든 시민이 동시에 쳐다보는 존재가 얼마나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혀는 돌처럼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으며, 죽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오자 자기 몸 전체를 드러내 아래에 있는 군중을 바라볼 용기를 결코 내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으며, -141쪽
멍청한 짓은 하지 말게, 청년, 조국은 살아 있어야 조국인 거야, 라고 말하고서, 책상에 놓았던 주먹을 펼쳤고, 손바닥에서 무언가를 보여 주었는데, 이 작은 색 구슬은 이것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누구에게나 색 구슬이지, 하지만 이것을 가진 사람만이 이걸 갖는 거야, 청년, 이게 바로 조국이네, -145쪽
그는 마지막 사랑을 끝낸 후에는 그 방을 떠났고, 사랑했던 방에서 급히 빠져나와 늙은 독신자의 침실 문간에 등불을 걸고는, 빗장 세 개를 걸었고 자물쇠 세 개를 잠갔으며 가로장 세 개를 지르고서,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는 또한 외롭게 물에 빠져 죽은 남자를 꿈꾸었듯이, 당신이 오기 이전에 매일 밤 그랬듯이 옷을 입은 채 혼자 바닥에 엎드려 누웠고, 소젖을 짠 다음 어둠의 야수 냄새를 풍기는 당신 방으로 돌아왔고, -256쪽
모든 걸 가져가도 좋지만, 내 창 문에서 바라보이는 바다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이 시간이 면 불타는 늪지처럼 보이는 바다를 이제 평소처럼 볼 수 없다면, 이 커다란 집에서 나 혼자 어떻게 살겠소, 깨진 창문으로 짖는 소리를 내면서 몰래 들어오는 12월의 바람이 없다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겠소, 등대의 초록색 섬광 같은 불빛을 보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살겠소, 나는 안개 자욱한 내 고지의 불모지를 떠났고, 군에 입대해 연방주의 전쟁 통 속에서 열병에 걸려 죽음으로 신음했소, 사전에 적힌 것처럼 내가 애국심에 불타서 그랬다고는 믿지 마시오, 그건 모험 정신 때문도 아니었고 연방주의자들의 원칙에 쥐뿔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어서는 더욱 아니었소. 그런 건 하느님이 자기의 성스러운 왕국에서나 갖고 있을 것이오, 절대 그런 게 아니오, 친애하는 윌슨 대사, 나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 그 모든 일을 했던 것이오, -270쪽
나초, 차라리 왜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설명해 보게, 라고 말했고, 그러자 호세 이그나시오 사엔스 델라 바라는 땀에 젖어 물렁물렁해진 셀룰로이드 옷깃을 단번에 떼어 버렸고, 바리톤 가수 같은 그의 얼굴은 얼이 나가 있었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라고 그는 대답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행복이 타다 남은 깜부기불입니다, 그래서 장군님은 그걸 느끼지 못하시는 겁니다, -320쪽
나는 이 어둠의 집을 배회하면서 생각하기를, 어머니, 좋았던 시절의 나의 어머니 벤디시온 알바라도여, 나를 도와주소서, 당신 망토 아래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내 신세가 어떤지 쳐다보소서, 그러면서 화려한 영광의 시절을 떠올릴 수도 없고, 그 시절을 즐길 수도 없으며, 그 시절에서 힘을 얻을 수도 없고, 계속해서 노년의 수렁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살아남을 수도 없다면, 그런 시절을 경험할 가치도 없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는데, 둘둘 만 작은 종이쪽지로 마개를 만들어 그것으로 기억의 구멍을 막아 보려는 순진한 시도를 감행했지만, 위대했던 시절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 기억의 구멍으로 어김없이 빠져나갔으며, -350쪽
족장의 가을 7
작품 해설 365
작가 연보 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