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홀든은 좋은 학교로 소문난 펜시 예비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당한다. 사춘기 소년 홀든은 부모 몰래 학교 기숙사를 나와 방황한다. 학창 시절에 겪는 일탈의 이야기를 한 남자 학생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연애와 성, 사람과의 관계와 같은 일정 시기에 겪는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든다. 의식의 흐름대로, 직설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감정 파악이 쉽지만 살이 많이 붙어있는 느낌이다.

 

그 시절 우상이 되는 외적으로 잘난 아이들, 그것은 스트래들레이터라는 친구로 나타난다. 그는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는 기숙사에서 퇴출 결정된 홀든에게 작문 숙제를 대신해달라고 하는 위치에 있었다. 스트래들레이터가 홀든의 어릴 적 친구였던 제인 갤러거와 만났다는 말을 들은 뒤, 계속해서 신경쓰인 홀든은 그와 제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궁하다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주먹다짐을 한다.

 

홀든은 예정보다 일찍 기숙사에서 짐을 싸고 나온다. 호텔에 가서 여자와 잠을 잘까 생각한다. 미성년자인 것이 들통나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콜라를 마시며 호텔의 여자들과 춤추고 논다. 엘리베이터 보이에 의해 매춘부를 부르는데, 정작 관계를 갖진 못하고 그들에게 돈만 뜯기게 된다. 자신을 때린 남자를 총으로 쏘는 상상만 하고 그냥 목숨을 끊고 싶은 기분만 느낀다. 찌질함 그 자체다.

 

쫄보였다. 스스로도 쫄보라고 느꼈다. 우울하고 비참했다. 그의 여자관계도 비참했다. 항상 여자애들이 그만두라고 하면 정말로 그만뒀다. 더 나아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불러 데이트를 한 샐리에게마저 무례를 범하고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주사까지 부린다. 동경하던 제인 갤러거 생각을 했지만 용기 내어 그에게 제대로 전화하지도 못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아니, 뭔지 알겠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홀든은 세상을 가식 덩어리로 보고 싫어했다. 다양한 쇼나 영화들도 가식으로 여겼고 그것을 보며 우는 사람조차 가식적으로 여겼다. 일반적인 작품들을 역겹고 지루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특이하게도 위대한 개츠비는 엄청 좋아했다. 그는 개츠비의 삶을 동경한 것처럼 보인다. 한 번쯤은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나. 누군가는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는 방황 생활을 하면서 거의 유일한 집안 친구였던 여동생 피비를 계속해서 생각했고, 결국 그녀에게 간다.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피비의 방으로 들어간다. 피비는 홀든이 퇴출당한 것을 알게 되고 홀든에게 화를 내지만, 이내 홀든의 처지를 알게 되고 자신이 받은 크리스마스 용돈을 홀든에게 준다. 홀든은 운다. 피비는 그를 안아준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피비의 말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말한다.

어쨌든 나는 그 모든 어린 꼬마들이 호밀밭이나 그런 커다란 밭에서 어떤 놀이를 하는 모습을 계속 그려 봐. 어린 꼬마 수천 명, 주위에 아무도 없고 ㅡ 그러니까 어른은 없고 ㅡ 나를 빼면.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있어. 만일 꼬마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낸가 모두 붙잡아야 해 ㅡ 그러니까 고마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고 마구 달리면 내가 어딘가에서 나가 꼬마를 붙잡는 거야. 그게 내가 온종일 하는 일이야. 나는 그냥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런 노릇을 하는 거지. 나도 그게 미쳤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게 내가 진짜로 되고 싶은 유일한 거야. 나도 그게 미쳤다는 거 알아

260p

피비가 나오는 연극을 보러 다시 온다 말하고 집을 나오지만, 이내 서부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 결심을 하게 되고, 피비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온다. 피비는 여행 가방을 가져와 함께 갈 거라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홀든은 피비에게 모진 말을 하지만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피비와 함께 동물원에 간다.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비는 벤치에서 비를 맞는다. 피비는 회전목마를 타고 자신은 비를 맞는 이 상황, 그 자체로 행복함을 느낀다.

내 말은 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할 건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답, 모른다

316p

그렇다. 어디까지나 삶은 부딪혀 봐야 하는 것이다.

 

택시 기사가 “그쪽이 물고기라면 ‘어머니 자연’이 그쪽을 돌봐줘”라 말했던 것처럼, 세상의 어느 손길이 한 개인을 키워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여기서 성장하는 나를 느끼거나 신과 같은 존재를 느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면의 여러 개의 욕망들, 내면의 여러 자아가 질주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전에 잡아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한 아이가 자라나기 위해선 응원자, 지원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좋은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좋은 선생이, 때론 가족 혹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홀든의 여동생 피비같이 나를 믿어주는, 순수한 믿음이라 말 할 수 있다.

홀든의 마음을 누군가는 한때, 혹은 지금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감정들에 공감하기 보다 어떤 벽에 튕겨져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가식이라 느끼는 것. 그저 감정들을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는 시절이 있다. 삶의 의미라는 것이 튕겨 나오다가도 홀든이 수녀의 바구니를 생각한 것처럼 어느 순간에 삶의 어떤 긍정적 의미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리도 묘한 게 사람 마음이다.

 

홀든의 심리는 안틀리니 선생과 ‘구두 표현’ 과목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매우 잘 나타난다.

하지만 제 말은 많은 경우에 자기한테 가장 관심이 있지 않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가장 관심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거예요. (…) 저는 어떤 사람이 뭔가에 흥분할 때가 좋아요.(…) 그러니까 그 선생님은 늘 동일하고 단순하게 만들라는 말만 해요. (…) 누가 단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고 통일할 수는 없다는 거죠.

277p

삶의 어떤 의미는 핵심을 꽂는다고 흡수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서서히 많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일들을 겪다 보면 핵심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만약 더 나아간다면 그 핵심에 대해 골몰히 생각한다. 홀든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의 규율과 개성이 부딪히는 그 시기는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그것이 청소년 시기의 전유물이라고 볼 순 없으리라. 우리는 항상 세상과 마주하고 부딪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나면 몽글몽글하게 뭉뚱그려져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 정돈하기 위해 일부러 도구를 만들어 낸다. 물론 이는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하고 날카롭게 바라보기 위해,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냥 그대로도 괜찮은 것, 해부되지 않고 뒤엉켜 있는 상태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주위를 배회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으로 나아가 처음부터 해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된다.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일까. 아니,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안틀리니 선생의 “인간 행동에 혼란을 느끼고 겁을 먹고 심지어 그걸 역겨워한 사람이 네가 처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은, 누구나 이 과정을 겪어 왔음을, 이 역겨움이란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 소화해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인간 행동이 수학 문제의 답처럼 간명히 내려진다면 그때부턴 인간 행동이 아니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 속의 악마를 느끼며 새로운 세계로 열어나갔듯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은 악마의 세상 속에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커져가는 정신의 크기만큼 성격을 입혀줘야 한다는 안틀리니 선생의 말에선 정신세계의 확장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우린 나이만으로 어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인간의 정신과 모습을 마주하며 정신이 커져나갈 것이다. 그 커져나가는 과정엔 나의 결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하는 것이다. 홀든은 많은 것들이 역겹거나 가식적이라고 해도 자신과 만났던, 인연이 있었던 이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저 너무나도 인간적인 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것은 모든 게 늘 바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 유일하게 달라지는 건 우리다

186p

기억될 그 시절들을 기억하며, 영원한 기억의 지평선 속 한켠에서 손 흔들고 있을, 그때의 나를 기억하며, 변해가는 나는 슬픔이 아닌 성장을 느끼며, 언젠간 마음의 고향이 될 나의 삶을 위해서.

 

이 세상 사춘기의 열병을 겪고 있는 이들, 감정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