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줄래요? – 황승택

다시 말해 줄래요? – 황승택

민음사 유튜브에서 언급된 책. 꽤 예전 콘텐츠였는데 계속 읽고 싶어 마음에 담아두다가 도서관에서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를 통해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장애와 사회적 편견, 평등하지 않은 접근성 등에 대해 살펴본 경험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이보그가 되다가 보다 전문적이고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면,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쉽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입문용(표현이 적절한가?)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SF소설에서도 장애를 가진 기계와 장비가 많이 등장하고 주류에 속하지 않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사회적 변화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만큼 의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민음사를 통해 책의 표지디자인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책의 표지…계속 다시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 불쑥불쑥 나는 청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부적격자가 된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예전의 나와 달라진 건 한시적으로 소시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신체 기능 장애였지만 생존을 따지는 치료를 하던 항암 치료 과정보다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업무는 전력을 다해도 함락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 비장애인의 청력을 기준으로 한 ARS와 상담원 통화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 따라서 장애와 질병을 당사자와 가족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개인적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장애나 질병은 사회 구성원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도 최대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경게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직업을 포함한 포괄적 사회안전망 구축은 필수다.

- 나에게 주문을 건다. “다시 말해 줄래요?” 이 말은 내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의사를 더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의 정중하고 격식 있는 요청이다.

- 하지만 합리적으로 보이는 구성원 편익 대신 배려가 우선되는 문화도 있다. 미국 도로에서 적용되는 스쿨버스 ‘절대 우선’ 법칙이다.

- 어떤 표현에 소수자 혐오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대단한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할수록 인권 감수성이 높다는 평판을 얻고, 세상을 바꾼다는 보람과 은근한 도덕적 우월감을 누린다. 반면 여기서 체계적 회의주의를 주장해 봐야 꼰대나 소시오패스처럼 비칠 뿐이다. 문제 제기에 회의적인 사람은 침묵하고, 동의하는 사람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소수가 다수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규정은 자기실현적인 면이 있다. ‘이 단어는 혐오 표현’이라고 누군가 선언하면 그다음부터 그 단어는 실제로 혐오스럽게 들린다. (장강명 – 중앙일보. 깜깜이라는 말은 혐오 표현인가)

- “광고 주인공 가족들이 수어를 배워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주인공이 ‘말하고 들을 수 있기를’바라는 행동을 하는 건 수어가 구어와 동일한 지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 전형적인 청능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청각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매끄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어눌한 목소리와 수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사회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 내가 비장애인의 청력을 기본으로 설계된 사회 시스템에서 주변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또렷이 상기시켰다.

- 1년에 한 번 정도 귀를 일부러 집에 놓고 오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신체 기능 일부의 손상이 노동력의 절대적인 상실을 의미하지도 않고 장애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내 직장 동료가 될 수 있음을 환기하는 작은 일탈이, 장애 없는 신체가 직장 생활의 필요조건처럼 되어 버린 장애 비친화적인 한국의 기업 환경에 내가 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작은 균열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