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읽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내 나이 스무 살에 만난 ‘유리알유희’ 다.
어찌나 힘들고 어렵게 읽었던지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고 분위기와 마지막 장면만 기억에 남았는데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는 내내 유리알유희의 쉬운 버전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승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
동네를 대표할 만한 영특한 학생이 있었다.
교장선생님과 목사님은 동네 대표로 상급학교 진학 시험을 보는 영특한 학생을 위해 밤낮없이 뒷바라지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이지만 어른들의 기대에 발맞춰 낚시도 친구도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한스 기벤라트.
가끔 두통이 찾아오지만 견딜 수 있었고 그렇게 공부해서 2등으로 시험을 통과한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한스는 여전히 최우등생을 목표로 공부한다.
여전히 어울릴 친구는 없었지만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는 우수학생.
그러나 그도 청소년기로 접어들었으니 우정이 필요했고 의리도 알아버린다.
한스의 둘도 없는 친구는,
적당히 공부해도 알 건 다 알아버리고 선생님들에게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헤르만.
헤르만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을 바라보는 학우와 선생님들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끼는 한스.
끝내 신경쇠약 증상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교육의 필요성.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내 삶을 나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르침과 참 스승의 부재가 빚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
내가 어쩌지 못하는 수레바퀴 아래서, 굴러는 가되 빠져나오지 못하는 청춘의 모습이 답답하다.
1906년에 쓰인 작품이라는데 2020년 청춘의 삶이 그 때와 다르지 않음에 참담하다.
보다 나은(무엇이 보다 나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직업에 대한 열망,
제도 안에서 순응하는 모습이 받는 특혜,
‘너를 위해서’ 라는 이름으로 스승과 부모가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수레바퀴 아래서.
스승과 부모의 자격으로 나를 돌아보게 만든 고마운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