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는 토마스라는 외과의사에 자신을 투영하여 1968년 8월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조국 보헤미아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회귀의 신화는 부정의 논법을 통해,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란 하나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그 인생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인간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해도 그 잔혹과 아름다움이란 것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9p

토마스는 이혼 과정에서 전처와 부모와의 연합과 토마스와 갈등으로 그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두움,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긍정과 부정의 극단적 양분이 유치할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이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12p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진격하는 소련의 탱크에 맞서는 시민은 촬영하는 것으로 나오는 여주인공 테레사와 외과의사이지만 잡지사에 공산주의의 지배에 대한 반대되는 기사를 게재하여 체코의 경찰로부터 기사를 철회하라는 회유를 받고 유리창 닦기로 전락하고 나중에는 시골로 낙향하는 토마스.

화가로서 체코의 불안함에 인접국가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사비나.

14살 때 교회에서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청년공산당에 가입시켜 버린다.

그녀의 작품은 체코를 가엽게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인기를 얻는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 발생했던 모든 범죄는 은밀한 그늘 속에 가려져 자행되었다. 50만 명에 달하는 리투아니아인의 수용소 수감,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 학살, 크리미아의 타르타르족 멸종등, 이 모든 것은 사진의 증거가 없으니 머지않아 꾸며낸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린다. 반면 1968년 소련의 체코슬라바키아 침공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어 세계 도처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78p

토마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상기했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줄 몰랐었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그는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토마스는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203p

소설을 읽고 난 후 작가가 던지는 자기연민으로부터 출발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유를 박탈당한 어려운 시기를 몸소 겪고 그 시기의 회상으로 작성한 소설은 저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일기를 소설을 나타낸 듯하다.

중반 이후의 체코인의 지식인들의 삶은 영화 “타인의 삶”을 참고하면 잘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