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가짜로 바뀌었다고 믿는 한 남자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뒤쫓는 그의 험난한 여정
《뉴요커》 선정 ‘미국 문단을 이끌 40세 이하 젊은 신인 작가 20인’
《뉴욕 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살롱닷컴 올해의 10대 도서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기는 한가? 얼굴도, 목소리도, 성격도 그때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인생을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과거의 연인이, 현재의 배우자가 지독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심지어 낯선 것을 넘어서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자신의 아내가 그녀와 똑같이 생긴 ‘가짜’로 바뀌었다고 믿고 ‘진짜’ 아내를 찾아 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40번)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뉴요커》 선정 ‘미국 문단을 이끌 40세 이하 대표적 신인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린 리브카 갈첸은 다양한 과학적 요소들을 활용한 실험적 소설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을 통해 토머스 핀천, 보르헤스 등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 갈첸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진짜 아내를 잃어버린 중년 남자의 불안정한 심리를 기상학 등과 연관해서 세심하게 묘사한 독특한 사랑 이야기이자 심리소설이다. 오십 대 정신과 의사 레오 리벤슈타인은 가짜 아내의 등장과 스스로 날씨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병 환자의 실종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진짜 아내를 되찾기 위해 일련의 현상과 배후의 비밀을 분석해 나간다. 2008년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살롱닷컴’ 올해의 10대 도서 등에 선정되었다.
■ 소설은 게임이다―실마리를 찾아 미궁을 빠져나가는 심리 여행
처음부터 레오는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온 여자가 ‘가짜’라고 굳게 믿는다. 진짜 레마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진짜 레마만큼 예쁘지 않다거나 진짜 레마보다 침착하고 무심하다거나 하는 근거를 늘어놓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레오의 ‘주관’이 인지해 낸 ‘객관적 증거’일 따름이다.
사실 이러한 확신은 레오가 평소에 아내를 의심하고 있었기에 비롯한 것처럼 보인다. 레마는 레오에 비해 “너무 젊은” 데다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이고 어쩌면 그 몰래 딴 남자를 만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레마가 자신을 떠나 버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전제 아래 ‘레마와 똑같이 생긴 가짜 아내의 등장’이라는 현상(혹은 인지)이 발생했고, 아내가 떠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레오는 레마만큼 아름다운 가짜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사랑하는 진짜 아내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레오가 가짜 레마를 밀어내면서 진짜 아내를 찾아 헤맬수록, 그 과정에서 온갖 정신분석학적, 물리학적, 기상학적 증거를 열거할수록 의구심은 점점 커져 간다. 레오 옆에 있는 여자는 정말 가짜일까? 설사 레오 옆에 있는 여자가 진짜라 해도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결국 가짜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물고 늘어지며 분석하는 레오가 혹시 미친 사람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결국 사랑의 불안정성과 마음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은 명료한 해답을 구하려는 소설이 아니라 끝없는 질문을 유도하는 소설이며, 그러하기에 더더욱 흥미롭게 읽으면서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 토머스 핀천과 보르헤스를 잇는 포스터모더니즘 소설의 21세기 신경향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이 출간된 후 《옵서버》는 갈첸을 “토머스 핀천의 후계자.”라고 평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소설에는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에 바치는 듯한 오마주가 등장한다. 레오의 환자 하비는 자신이 ‘기상 조절 임무’를 맡은 왕립 기상학회 비밀 요원으로, 날씨를 통제해 이익을 챙기는 집단 ‘49인의 양자학 창시자’를 저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제49호 품목의 경매』에는 정부의 공식 우편제도를 거부하고 지하 우편제도를 이용하는 집단 ‘트리스테로’가 나오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트리스테로 우표는 경매 품목 제49호로 분류된다. 『제49호 품목의 경매』의 주인공 에디파가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추적해 나가는 것처럼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의 주인공 레오도 무수한 평행 세계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진짜 아내를 추적한다. 또 핀천이 소설에서 엔트로피 이론을 활용한 것처럼 갈첸도 도플러효과 같은 과학 이론을 훌륭한 소재로 이용한다.
갈첸은 토머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에 나오는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를 단순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핀천의 문학적 접근 방식을 독창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핀천과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핀천이 『제49호 품목의 경매』에서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인간 소외 문제를 지적했다면, 갈첸은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에서 ‘사랑’과 ‘관계’에 대해 고뇌하는 21세기 현대인의 문제를 문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차별화된 새로운 세계를 이 소설 속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
갈첸은 또 다른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가 보르헤스의 후계자로 비견되기도 한다. 자신이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고 시간과 공간이 아주 생소하게 느껴지는 형이상학적 체험, 즉 ‘보르헤스적 주제’가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보르헤스가 『보르헤스와 나』에서 메타적 관점으로 올라가 자기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이중화한 것처럼, 갈첸은 이 소설에서 레오가 자신의 아내를 ‘진짜’와 ‘가짜’라는 이중으로 인식하도록 설정했다. 또 ‘환상적 사실주의’ 기법을 활용해 작가의 체험이나 역사적 사실을 소설 속에 녹여 냈다. ‘아르헨티나 실종자들을 기리는 추모 광고’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 아래 민간인들이 희생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이고, 레오와 레마가 처음 만난 ‘헝가리안 페이스트리 숍’은 실제로 갈첸이 자주 찾는 뉴욕의 커피숍이며, 본문에 인용된 츠비 갈첸의 가족사진은 실제로 리브카 갈첸의 가족사진이다. 이 때문에 갈첸은 보르헤스의 문학적 장치를 적용하고 확장해 새로운 면모를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진짜 아내를 잃어버렸다고 믿는 남자의 불안한 독백,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
“아내와 똑같이 생긴 가짜가 나타났다. 내가 사랑하는 진짜 아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의 도입부는 독자를 익숙한 미스터리의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하지만 책장을 계속 넘겨보라. 이 소설이 ‘진짜 레마의 행방과 가짜 레마의 비밀’을 푸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아내를 진짜와 가짜로 양분해서 인식하는 오십 대 남자의 마음속 비밀’을 푸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인 레오는 이상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고 이상한 방식으로 진짜 레마를 추적해 나간다. 그는 스스로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병 환자 하비의 실종과 진짜 레마의 실종을 연관해서 이 현상을 기상학적이고 물리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왜곡된 인식을 이용해 현실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도플러효과 및 도플러레이더 이론과, “모델들에 오류를 도입함으로써 더 신뢰할 만한 예측을 얻어 낼 수 있다.”라는 기상학자 츠비 갈첸의 주장을 활용한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츠비 갈첸은 실제로 1994년에 죽은 리브카 갈첸의 아버지이며, 모든 기상학 논문도 그녀의 아버지가 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것은 ‘사라진 아내 혹은 가짜 아내의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분석의 주체인 ‘레오의 진실’ 그리고 그가 품은 의문에 의문을 품게 된다.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은 카그라스(Capgras) 증후군(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는 망상에 빠지는 정신병)에 걸린 오십 대 남자의 일그러진 정신세계를 낱낱이 묘사한 작품이다. 다니엘 파울 슈레버 판사의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Denkwürdigkeiten eines Nervenkranken)』에서 모티브를 얻은 갈첸은 아내가 가짜로 바뀌었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고독과 불안, 절망을 이 소설에 생생하게 담았다. 어떤 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무의식 속의 광기, 그것은 현대인의 정신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 요소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중년 정신과 의사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에 비해 너무 어리고 예쁘고 매력적인 아내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는 레오처럼, 많은 현대인들도 무수히 많은 감정을 무의식 속에 감춰 둔 채 살다가 어느 순간 미쳐 버리곤 한다. 갈첸은 아내를 가짜로 인식하는 레오의 광기를 수면 위로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사랑’과 ‘관계’에 목말하는 현대인의 정신세계를 재현해 냈다.
진짜 아내를 찾기 위해 고도화된 현대인들의 집결지인 뉴욕을 떠나, 정신분석가들이 넘쳐나고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나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무의식’의 땅 파타고니아까지 간 레오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의문을 던지는 결말을 통해 독자들은 가까운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외면한 채 무감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예민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에 쏟아진 찬사
▶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 블랙코미디, 심리 스릴러, 그리고 뒤틀린 마음의 혼란스러운 초상화. —《뉴욕 타임스》
▶ 진정한 서스펜스. 리브카 갈첸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작가이다. —《이코노미스트》
▶ 이 작품은 단순히 광기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광기가 불러일으키는 폭력성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레오의 불안정한 상태는 평범한 우리 자신의 정신세계와 너무나 닮았다. —살롱닷컴
▶ 훌륭한 데뷔작. 굉장히 흥미롭다. 갈첸은 기상학이라는 소재를 풍부하게 활용했으며, 감정,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할 때 생기는 분노를 해석하는 관점을 확장해 주었다. ―《가디언》
■ 줄거리
어느 날 오십대 정신과 의사 레오 리벤슈타인이 평소처럼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어떤 여자가 낯선 개와 함께 앉아 있다. 그 여자는 분명히 레오의 아내 레마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의 아내는 아니다. 진짜 레마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여자는 길에서 개를 주워 왔다. 게다가 그녀는 진짜 레마보다 늙은 듯하고(웃지 않을 때에도 눈가에 잔주름이 보였다.) 진짜 레마만큼 예쁘지도 않다. 그 여자가 진짜 아내가 아니라는 레오의 직감을 모든 정황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레마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레오는 가짜 아내가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 하비가 실종된 후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자신이 날씨를 통제하는 왕립 기상학회 비밀 요원이라 믿는 하비는 기상 조절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어딘가로 불쑥 사라지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레마는 하비를 뉴욕에 묶어 두기 위해 작은 연극을 하자고 제안했다. 레오가 왕립 기상학회 고위급 요원 츠비 갈첸의 지령을 하비에게 전달하는 척해서, 하비가 뉴욕 근처에서만 기상 조절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비, 왕립 기상학회, 츠비 갈첸, 레마의 도플 갱어, 사라진 진짜 레마, 이 모든 것들이 얽혀 있다고 생각한 레오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츠비 갈첸의 기상학 논문들을 분석하다가, 그 논문이 처음 발표된 곳이자 레마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로 한다.
레오는 그곳에서 레마의 어머니 마그다를 만나 자신을 ‘레마 남편의 친구’라고 소개해 버린다. 그는 ‘레오와 레마 부부의 친구’ 행세를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레마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한편 갑작스레 사라진 레오를 찾아 헤매던 가짜 레마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쫓아오고, 레오는 그녀를 피해 또다시 ‘무의식’의 땅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과연 그곳에서는 진짜 레마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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