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원제 La tyrannie de la communication

이냐시오 라모네 | 옮김 원윤수, 박성창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0년 10월 10일 | ISBN 89-374-2704-4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198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신문과 잡지, 텔레비전에 대한 다각도의 예리한 진단을 통해, 지금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비판하고 21세기 정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리뷰

텔레비전 이미지가 언론을 지배한다 ― 진실된 신문을 만들기 위하여뉴스, 기자, 커뮤니케이션 ― 21세기 정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실제 횡포일 수도 있고 어느덧 형성된 문화적 권력에 의한 상징폭력일 수도 있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후자 쪽이다. 저자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이 책에서 신문과 잡지, 텔레비전에 대한 다각도의 예리한 진단을 통해, 지금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비판하고 21세기 정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보도 행태들은 단순히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세계 시장 체제와 텔레비전 중심의 거대 미디어들에 휩쓸리는 언론 시스템 전체의 문제이다. 뿐만아니라 즉각성과 순간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환경은 기존 언론매체의 한계를 넘어서 문제를 확장해 왔다. 라모네는 프랑스의 대표적 정론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으로, 정력적인 언론 활동을 펼쳐왔으며 국내에도 여러 차례 글이 소개된 바 있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단단하고 평이한 문체로 씌어진 이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깊이 있는 분석력으로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지식인들 가운데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열독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 책의 역자들인 원윤수와 박성창 역시 이 잡지와 라모네의 애독자들이다. 이들은 특히 진실의 보도라는 변함없는 언론의 사명에 진지한 관심을 유도할 필요를 느끼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미래적 비전도 함께 담고 있는 이 책을 선택하여 번역하게 되었다. 뉴스의 종말? 그리고 구세주!오늘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판매 부진과 불신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존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사이버 공간의 만남은 둘 다에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론지나 상업지나 모두 과잉 상품화되어 이윤 논리에 지배당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의 엄청난 확산은 오히려 숨돌릴 틈을 안 주고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인터넷이라는 발빠른 매체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도 기존의 언론은 점점 더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뉴스를 실을 수밖에 없게 된다. 판매촉진을 위해 과잉정서를 부추기고 미확인 소문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지면화시키면서 난관에 봉착한 미디어들은 이제 일종의 구세주를 열망하게 되었는데, 어떤 실제적으로 과격한 일을 벌이지는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전세계적 수준의 담론을 지니고 있는 인물(성녀 데레사, 다이애나, 클린턴, 호나우두 같이)을 뉴스의 제1소재로 선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에 대한 매혹, 미디어에 대한 의혹과거에 팽배했던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주로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디어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 통치자들에게 유리하게만 작동되질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일방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불거진 언론에 대한 두번째 의혹은, 일련의 가짜 뉴스 스캔들(걸프전, 루마니아 티모소라, 소말리아 등)이었다. 이러한 불신의 사태는 정보의 진실성에 덜 민감한 기업체 출신 경영주들 아래서 더 심각해져 갔다.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무엇보다 심각한 경향 중 하나는 뉴스가 점점 조사의 저널리즘이 아닌 폭로의 저널리즘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이미지가 뉴스를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신문이 폭로라는 선정적 글쓰기를 통해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에 대한 현혹은 점점 더 감정적인 면에 호소하게 된다.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현장의 생중계 이미지라는 현란함은 시청자에게 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별다른 내용을 전달해 주고 있지 못하다. 마치 운동 경기의 중계처럼, 이미지들의 나열만이 중요해진다. 더이상 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장에 있는 이미지만을 보여주면 그것은 사실로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는 점점 더 화려하게 짜맞춰진 <쇼>가 되어간다. 권력은 이제 기자의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신 이미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이미지가 없으면 현실도 없기 때문이다(포클랜드 전쟁, 그레나다 침략, 파나마 침공, 보스니아 전쟁). 또한 민주적인 검열은 정보의 삭제, 금지가 아니라 정보의 과잉, 포화를 통해 이뤄진다. 몇몇 선정적인 이슈들이 언론에 병풍을 치고 나면, 정말로 중요한 사실들은 그 뒤에 가려지거나 관심을 벗어나게 된다. 오늘날 기자가 된다는 것은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더 이상 뉴스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에게로 찾아오는 정보들을 처리하기에도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미디어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뉴스를 생산하며 그 진실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체계 속에서 기자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해 간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폭발적 증대는 누구라도 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기업의 광고와 로비 또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잠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을 하면 할수록 더 적은 정보를 전달하게 되며 더 많이 정보를 왜곡하게 된다는 역설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직업기자의 고유한 권한과 의무는 무엇인가? 미디어들은 더 이상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미디어 자체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은 미디어가 끊임없이 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비판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오히려 이제서야 기자는, 사건 현장의 증언자일 뿐 아니라 진정한 책임감을 가진 분석자이자 중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사실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직접 발벗고 나서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사태의 수혜자(피해자)인 독자와 시청자들이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공적 사명감과 더불어 냉철한 지성을 갖춰야 한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혼동하면 안 된다. 각 미디어를 판단하고 오락거리와 정보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는 아무런 노력없이 거실 쇼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얻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 돈, 관심의 일부분을 바치는 생산적 활동을 통해서야,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시민은 민주주의적 삶에 현명하게 참여할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목차

옮긴이의 글1. 미디어의 구세주2. 의혹의 시대 3. 언론. 권력. 그리고 민주주의4. 오늘날 기자가 된다는 것은 5. 텔레비젼 뉴스의 종말을 향하여?6. 시체간음증 환자 텔레비젼 7. 세 개의 미디어 신화8. 새로운 제국들 결론.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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