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한국의 페미니즘 고전 읽기

나혜석 | 엮음 장영은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8년 3월 5일 | ISBN 978-89-374-3675-8

패키지 반양장 · 46판 128x188mm · 336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100년을 앞서간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아름다운 투쟁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영페미니스트를 위한 새로운 나혜석 선집

 

★ 추천의 글

“우리가 비판 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 나혜석의 이 말은 나를 나대로 살게 하는 용기를 준다.

― 정희진(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나 또한 그녀처럼 용감해질 수 있을까. 우리 또한 그녀처럼 위험천만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천재에 대한 뒤늦은 애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시대에 더욱 환하게 빛나는 원조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여전히 싱그러운 출사표로 읽히기를 바란다.

― 정여울(작가,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저자)

 

나혜석은 일찍이 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일찍이 말했음을 자신의 손으로 분명히 밝혀 두었다. 그를 알아내는 데 다른 이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여성의 역사는 도통 새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남긴 글로 그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 이민경(페미니스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

편집자 리뷰

■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사회적 실천’

한국 근대 페미니즘 작가 나혜석의 페미니즘 걸작선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열일곱 편의 소설, 논설, 수필, 대담을 가려 뽑고 현대어로 순화한 이 책은 나혜석의 삶을 나혜석 자신의 글로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보다 나은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가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해설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나혜석의 논설은(논설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인터뷰 역시) 지금 영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보아도 전혀 낡지 않았다. 약 100여 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은밀하고 사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남자는 칼자루를 쥔 셈이요, 여자는 칼날을 쥔 셈이니 남자 하는 데 따라 여자에게만 상처를 줄 뿐이지. 고약한 제도야, 지금은 계급 전쟁 시대지만 미구에 남녀 전쟁이 날 것이야. 그리고 다시 여존남비시대가 오면 그 사회제도는 여성 중심이 될 것이야. 무엇이든지 고정해 있지 않고 순환하니까.”

―서문 중에서 (9쪽)

 

상대자의 불품행을 논할진대 자기 자신이 청백할 것이 당연한 일이거든 남자라는 명목하에 이성과 놀고 자도 관계없다는 당당한 권리를 가졌으니 사회제도도 제도려니와 몰상식한 태도에는 웃음이 나왔나이다. 마치 어린애들 장난 모양으로 너 그러니 나도 이러겠다는 행동에 지나지 아니했사외다.

―「이혼 고백장」에서 (178쪽)

 

그녀가 이혼 이후에 쓴 수기인 「이혼 고백장」에서 보듯이, 나혜석은 자기 생애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혜석은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또한 나혜석은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실천이라고 믿었다. 단편 소설 「어머니와 딸」에서 나혜석이 지닌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공부를 하면 무엇을 전문하겠어?/ 문학이요./ 문학? 좋지./ 어렵지요?/ 어렵기야 어렵지만 잘만 하면 좋지. 영애는 독서를 많이 해서 문학을 하면 좋을 터이야.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는 것이 사는 맛이 있으니까. 좋은 창작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쁜 것이 없는 것이야.

―「어머니와 딸」에서 (80쪽)

 

 

■ 페미라이터 나혜석의 글과 삶, 100년을 앞서가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黃鈺)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218쪽)

 

나혜석이 밝힌 바와 같이 그녀는 당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희대의 스캔들에 휩싸여 35세에 이혼한 후 고된 말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글을 남겼으며,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당시 많은 이들을 자극한 사건은 외도와 이혼 사건이었다. 남편 김우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나혜석이 최린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1930년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나혜석의 기구하고도 억울한 이혼 과정은 그가 생전에 일부 번역하기도 한 희곡 『인형의 집』과 거울의 상처럼 닮아 있다. 헨리크 입센의 로라도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빌린 돈이 화근이 되어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고 이혼당했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대중잡지 《삼천리》에 당대 조선이 가진 정조 관념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신생활에 들면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 후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분노와 혐오의 표적이 된 그녀는 식민지 조선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듯하다. 1938년 8월 이후 더 이상 글을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유족과 관련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 원고를 “쌓은 높이가 적어도 50센티미터는” 되었지만, “원고더미가 다락에 쌓여만 있다가 6·25 전쟁이 나면서 난리 통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가족의 냉대 속에 신산한 삶 그러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나혜석이 남긴 글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녀의 생애를 몰락 혹은 파국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나혜석은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패배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통도 그녀에게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무서워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할지라도 염려없이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 나혜석의 말은 옳다. 이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 보려 한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

―장영은, 서문 중에서 (12~13쪽)

 

 

■ 책의 구성: 신여성 나혜석이 남긴 논설, 소설, 인터뷰, 대담

이 책은 5부로 구성하였다. 1부에는 소설을, 나머지 부에는 논설, 수필, 인터뷰, 대담을 가려 뽑았다.

1부에는 나혜석의 가장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와 나혜석의 문학관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단편 「어머니와 딸」을 실었다. 특히 「경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문학으로, 여성 지식인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와 인습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혜석의 모습이 담겨 있다. 2부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쓴 글을 가려 뽑았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즘 논설인 「이상적 부인」은 ‘현모양처는 그야말로 세속적 가치에 그칠 뿐 결코 이상적인 여성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온양유순이라는 개념 또한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는 글이다. 나혜석이 김우영과 결혼 생활 중에 발표한 「부처(夫妻) 간의 문답」에는 남편 김우영과의 대화를 공개했다. 또한 인터뷰 ‘우애 결혼, 시험 결혼’에서는 이혼의 비극을 막기 위해 시험결혼이 필요하며, 시험결혼 기간 동안에는 산아제한이 필요하다는 전위적인 결혼을 소개하고 있다. 3부에는 나혜석이 이혼 이후에 발표한 조선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신생활에 들면서」를 실었다. 4부에는 나혜석의 페미니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기존의 모성 통념에 반하는 글을 모았다. 모성 신화를 부정하는 논설 「모 된 감상기」는 당시에는 물론 현재로서도 급진적인 페미니즘 논설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5부에는 나혜석의 정치의식을 담은 글과 근대 신여성의 직업관에 대한 글을 모았다.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과 함께 이광수, 김기진, 김억 이렇게 네 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목차

서문_장영은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의 탄생

 

1부 최초의 근대 여성 문학

경희

어머니와 딸

 

2부 연애와 결혼

독신 여성의 정조론

이상적 부인

부처(夫妻) 간의 문답

우애 결혼, 시험 결혼

 

3부 사랑과 이혼

이혼 고백장

신생활에 들면서

 

4부 모성과 육아

모(母) 된 감상기

백결생(百結生)에게 답함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

 

5부 정치와 삶

나혜석 신문 조서

나의 여교원 시대

회화와 조선 여자

내가 서울 여시장 된다면?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주(註)

추천의 글_이민경  여성이 직접 기록한 역사

작가 소개

나혜석

소설가이자 화가, 독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했다. 1914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했고, 1918년에는 도쿄 여자유학생 친목회 잡지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이후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듬해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한 후 1921년 만삭의 몸으로 국내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23년에는 모성 신화를 부정하는 논설 「모 된 감상기」를 발표했다. 1927년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나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는데, 그때 만난 최린과의 연애 사건이 문제가 되어 35세에 이혼했다. 이혼 이후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림과 글을 놓지 않았다. 1948년 서울 시립자제원에서 무연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 갔다.

장영은 엮음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 중이다.

독자 리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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