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문학상

시대의 거부로 이어진 자유와 치열한 양심의 시인 김수영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은,제1회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제2회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제3회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비롯하여,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그리고 1990년대의 유하 <세운 상가 키드의 사랑>,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에게 활발한 시작 활동의 장을 열어주었다.2006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은 기성 시인은 물론 미등단의 예비 시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놓기로 하였다. 넘치는 패기와 신선한 개성으로 한국 시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많은 시인들의 관심과 응모를 바란다.

당선작 「건축」 외 51편, 박참새

 

시리즈 민음의 시 319 | 박참새
출간일 2023년 12월 15일

 

투고된 많은 양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우수했다. 앞부분만 읽고 배제할 만한 태작이 거의 없을 만큼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도를 지니고 있었다. 현대적인 감수성을 시적 언어에 정착시키는 능력과 실험적인 대담함으로 눈길을 끄는 시들이 다수였다. 물론 깊은 사유를 거치지 않고 너무 일찍 튀어나와 버린 말들의 향연이 시의 감성을 오히려 축소시키는 경향도 눈에 띄었다. 청춘의 시들을 읽으며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 본심에서 거론된 6인의 투고작은 모두 당선작이 될 만큼 놀라운 개성과 참신한 상상력과 완성도를 지닌 것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박참새의 투고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참새의 시는 난해한 듯하지만 꼭 필요한 이미지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질적인 언어들을 풍성하게 불러내 과감하게 한 화폭에 담아내는 언어적 배짱도 매력 있게 다가왔다. 얼핏 도전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 도전이 오히려 시의 정도를 강조하는 듯한 역설로 다가왔다.
한 편 한 편이 각기 다른 드라마처럼 읽히는 점도 좋았다. 박참새의 시는 편편이 다양한 경향, 음가, 감성,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가진 게 많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문 형식의 작품들보다는 짧은 작품들이 더 흡인력이 있었다. 수상을 축하하며 빛나는 세계들을 더 많이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허연(시인)


 

구애됨이 없이 얼마나 말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직면하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시를 쓰는 것이 오히려 말을 가두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하는 까닭이다. 말의 해방을 원하지만 말을 한쪽으로, 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때, 시가 시인에게 속하게 된다. 말을 풀어놓아서, 시가 시인에게로 흘러가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참새 시인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방향에의 거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시인에게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는다. 의미나 사유의 윤곽이 형성되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윤곽을 따르지 않고, 방향을 버린 전면적인 언어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그토록 많은 나와 너와 우리들, 당신, 여자, 남자, 언니 들이 혼재한다. 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어들은 무차별적으로 충돌하는, 모순된 행위를 살포한다. 그들의 행위는 반복과 부정, 순환, 회귀를 통해 눈앞에서 잉여를, 현재형으로 시현한다. 그토록 자주 실행되는 취소 역시 이 잉여를 부풀린다. 페이지를 뒤덮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활화산 같은 언어이다. 그리고 이 흘러넘침을 통해서 말은 활성화되기에 이른다. 말이 살아 있는, 활성화된 말의 세계가 그의 시다. 결국 시인은 언어로 남는다. 시인이 어떤 말을 쓰느냐,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느냐가 시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수명(시인, 문학평론가)


 

시 작품도 그렇고 시론도 그렇고 ‘문맥이 통하는’ 단계에서 ‘작품이 되는’ 단계로 옮겨 서야 한다고, 1966년 한 해의 시단을 돌아보는 글에서 김수영은 말한 바 있다. 여기서 김수영은 세칭 ‘참여파’에게는, 현실 극복을 주장하는 것은 좋으나 “우리 사회의 암”인 언론 자유가 없다는 것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소위 ‘예술파’에게는 ‘내용’ 제거만을 내세우지, 작품상으로나 이론상으로 자기들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말을 빼놓지 않고 있다. 요즘 말로 ‘뼈 때리는’ 촌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략 60년 전의 일이다. 언론 자유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라거나 기화요초 만발한 시단에 시론과 개성이 없다고 토로하면서 그와 같은 요청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세 종류의 시적 경향이 눈에 띄었다. 첫째, ‘나와 당신의 이야기’, 다정하지만 내밀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밀란 쿤데라가 작중인물인 사비나를 통해서 말할 때의 내밀성 말이다. 다정한 일기와 집요한 내밀함은 유사할 것조차 없다. 엽편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3인칭 시점의 이야기 구성도 종종 눈에 띈다. 자기동일성은 그 자체로 성취가 될 수 있지만 많은 젊은 시인들에게는 있어 주는 것으로만 충분한, 그래서 절기에도 찾지 않는 원적과도 같은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와 외국어 명사와 특정되지 않은 시공간에서의 지리한 사건들이 모두 사고실험에 값하는 것은 아니다. SF와 판타지도 빈번해졌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는 흥미롭지만 그럴수록 ‘실재에의 열정’이 그리워질 때도 많았다.
당선작을 선정하기까지 짧지 않은 논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건축」 외 51편은 처음부터 가장 눈에 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선은 다수를 차지하는 형식적 파격이 전면화된 작품들 사이 사이에 보이는 짧은 시편들의 단단함 때문이었다. 예컨대 「전부」와 같은 짤막한 시편에 담긴 반전은 문맥이 통하는 단계에서 작품이 되는 단계로의 8부 능선을 넘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실험을 전경화시킨 작품들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문장 역시 시적 리듬감과 말의 맛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단지 낱낱의 파격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시집 전체를 통독했을 때 그려지는 지향점이 명료하게 드러나 보였다. 확산적이지만 틀림없이 중심을 보유한 묶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묶음 안에서는 산문적으로 명기되지 않은 자신만의 시론을 지시하고 있다. 김수영이라는 이름의 상에 값하는 당선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강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