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흔해서 너무 슬픈 이야기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나, 나도……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김지영 씨는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데에 비하면 남편이 열거한 것들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다.

 

대현이 지영에게 회사 그만 두더라도 본인이 책임질테니, 돈 벌라는 말 안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여자는 누군가에게 부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정 부분은 경제적 수익을 위해 일하는 것도 있지만,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다. 여자도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법. 누군가의 아내 혹은 누군가의 엄마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그 우리에 가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여자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게 된다. 결혼하는 것도, 출산하는 것도, 양육하는 것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남자는 ‘커리어 vs. 가족(결혼, 출삭, 육아)’에서 양자택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여자는 끊임없이 그 고민을 안고 산다. 이 현실을 이해해달라는 것인데, 그리고 이는 분명 성차별이기에 이를 바꾸자는 것인데, 이게 왜 그렇게도 힘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