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르다. 각자의 삶을 향해 길을 갈뿐이다.
수레바퀴 아래 달팽이가 있다. 내가 그 달팽이라면 어떤 삶을 살까?
불과 3년 전만해도 누군가 내게 와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할때, 나는 너무나 쉽게 ‘너의 입장을 이해해. 너의 마음을 이해해”라는 말을 했다. 부끄럽게도 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자만했고, 착각했다. 이제 “널 이해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공감할 뿐이다.
여기에 수레바퀴 아래서 방황하는 달팽이 한 소년을 소개하고 싶다.
한스 기벤라트! 헤르만 하일너!
정확하게 말하자면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1. 슈바르츠발트의 천재
슈바르츠발트에서는 천재도, 교양도, 지식이 없어도 그럭 저럭 잘 살 수 있는 곳. 특출난 게 없는 이 동네에 한스가 있다. 마을의 자랑이며, 기대주이며, 교사들과 교장선생, 목사,친구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특별한 존재.
수줍고 소심하고 튀지 않는 아이가 영특함을 발휘하면서 한스는 시험공부를 시작한다. 3년동안이나 기르던 토끼와 토끼집은 빼앗겼고, 좋아하던 낚시는 금지되었다. 어린시절부터 한스에게 기쁨을 주었던 모든 것은 빼앗겼고, 신학교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목표에 주입당하고 꿈꾸게 된다.
<그때에 그는 학교나 시험,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뛰어 넘어 보다 놓은 존재의 영역을 꿈꾸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뺨이 두툼하고 평범한 학교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더 나은 존재라는…> p.24.
어린시절 친구들도 이제 없다. 그들보다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 그리고 마울브론신학교입학시험에 2등으로 합격한다. 한스는 신학교에서도 다른 학우들보다 앞서기 위해서 야망과 인내심으로 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자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2. 신학교의 사명
<소년의 내면에는 거칠고 야만적인 무질서의 요소가 숨어있다. 먼저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그것은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꽃이다. 먼저 그것을 밟아 꺼버려야 한다. …… 원시림의 나무를 베고, 깨끗이 치우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하듯이 학교 또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기본 원칙에 따라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잠재된 개성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 p.72.
헤세의 전체주의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3. 천재 헤르만 하일너와의 만남
자기만의 사고와 언어, 관점, 감정을 즐기며 살아가는 우울한 음유시인. 헤세의 신학교때 모습이 하일너를 통해 나타난다. 어쩌면 헤세 자신의 두가지 모습이 하일너와 한스이며, 이 둘의 입맞춤은 표면적으로는 교제이지만, 이는 두가지 모습의 헤세의 만남,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된다.
<하일너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원했던 것이다.> p.118.
헤세가 4세때 선교사였던 헤세의 엄마는 ‘이 4살의 아이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지력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듯이, 헤세의 말에 귀기울여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무관심때문은 아닌듯하다. 천재였기 때문에, 천재가 감당하기엔 시대가, 교육이, 제도가 너무나 큰 장애물이었던게 아닐까?
<이 기인과의 우정이 한스를 지치게 만들었고, 때묻지 않는 자아의 순수한 존재를 병들게 했다.> p.120.
하일너의 비행으로 인해 학교는 하일너를 징계했고, 한스는 하일너를 배신했다. 하지만 이내 고통스러운 한스의 삶은 다시금 하일너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 교제한다.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자 교장선생은 한스를 부른다. 열심히 공부하라면서 이런 말을 한다.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p.146.
교장선생은 아끼던 학생의 추락을 볼 수 없어 끝없이 회유하고 권면하지만, 한스는 하일너에게 감염되었고, 모범생에 우등생인 한스는 성적이 떨어지게 되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4. 신학교 중도탈락
하일너가 신학교를 탈출하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만끽하며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마치 비좁은 새장에서 빠져나온 한 마리 새처럼 팔다리를 쭉 뻗어보았다……… 하일너는 적어도 지긋지긋한 수도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며 자신의 의지가 그 어떤 지시나 금지령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교장 선생에게 보여준 것이다.> p.167.
위 구절에서는 데미안의 구절이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데미안 p.123.
붙잡혀 오지만, 이내 퇴학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다. 홀론 남겨진 한스의 학교 생활과 건강은 피폐해진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고통스러웠을까! 그는 철저하게 혼자다. 결국 방학 전에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제 기벤라트는 더 이상 학생들의 무리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문둥병자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p.169.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p.172.
참으로 와닿았던 문장이었다. 헤세의 분노의 감정, 상처받은 지난날을 고스란히 한스를 통해 토해내고 있다. 실제로 헤세는 신학교를 도망 나왔다가 퇴학을 당한다. 하일너처럼. 헤세의 이면에는 한스도 있었던 것이다.
5. 고향에서의 투쟁
헤세는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 즉 끊임없이 자신을 이해하려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중에서.
끊임없는 내면의 대화를 시도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은 40대에 쓴 데미안이다.
하지만, 30이 되기 전에 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고향에서 사귄 친구도 없었고, 외롭고 방황했다. 위로자의 가면을 쓰고 온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계획을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어린시절을 동경하고 동심의 아름다운 시절을 향해 줄달음쳤다. 하지만,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p.187.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 p.207
6. 꺼진 불장난 그리고….
죽음을 위로자로 삼던 한스에게 봄날의 향기같은 엠마가 나타난다. 다시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겨나고, 다른 친구들처럼 살아지게 되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엠마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뜰때, 자신이 엠마에게는 놀이게감이었음을 알게되고, 이미 떠나버린 엠마가 그리워 더 깊은 고통과 절망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한스는 결국 강물에서 발견이 된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수 없지만, 한스의 죽음은 많은 사람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5세의 헤세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그의 영혼은 죽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스의 모습을 보면서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이해받지 못했기에,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고자, 그 의미를 알고자 노력했으리라 생각된다. 신경쇠약 혹은 신경과민이라 하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보여지고,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물들이 문학작품으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히틀러의 나치에 반대하였고, 인도주의의 입장과 자유를 추구했기에, 한때는 독일에서 헤세의 작품이 판매금지가 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와 가치를 글로써, 표현함으로서, 헤세의 주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상처받은 영혼이 쓴 <수레바퀴 아래서>와 상처를 딛고 성숙해진 헤세가 쓴<데미안>. 읽을수록 헤세와 그의 작품이 더욱 궁금해진다. 작가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직도 상처의 흔적이 있는 나의 영혼을 깨닫게 해주고 위로하게 해준 헤세의 손을 잡아본다. 내 영혼의 손과 나를 필요로 하는 자들의 친구로서 손을 내밀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