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너의 길을 걸어가라

<햄릿>은 아버지 햄릿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통한 모습부터 보여 준다. 햄릿 왕은 궁궐 정원에서 잠을 자다 독사에 물려 죽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왕이 서거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삼촌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왕의 자리도 삼촌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 햄릿은 삶의 의욕을 잃고 크게 상심한 채 방황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어머니를 저주하게 된다.

햄릿   오, 너무나 더럽고 더러운 이 육신이

허물어져 녹아내려 이슬로 화하거나,

영원하신 주님께서 자살금지 법칙을

굳혀놓지 않았으며, 오 하느님! 하느님!

이 세상 만사가 내게는 얼마나 지겹고,

맥빠지고, 단조롭고, 쓸데없이 보이는가!

역겹다, 아 역겨워, 세상은 잡초투성이

퇴락하는 정원, 본성이 조잡한 것들이

꽉 채우고 있구나. 이 지경에 이르다니!

    

……

  

쓰라려 불그레한 그녀의 눈에서

가장 부정한 눈물의 소금기가 가시기도 전에

결혼했어 – 오 최악의 속도로다!

그렇게 민첩하게 상피붙을 이불 속에 뛰어들어!

이건 좋지 않고, 좋게 될 수도 없는 일.

허나 가슴아 터져라, 입은 닫아야 하니까.

 

p.24~25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죽음은 젊은 햄릿 왕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술 마시고, 괴로워하며 어머니와 삼촌을 저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이 햄릿 왕자의 친구 허레이쇼 앞에 나타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유령은 곧 햄릿에게도 찾아온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을 만난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살해했다고 고해바친 유령은 햄릿왕자에게 자기를 복수하라 명한다. 피 끓는 분노를 느낀 햄릿 왕자는 처음엔 순순히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이내 그 유령이 진정 아버지의 혼령인지, 아니면 자기를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려고 나타난 지옥의 사자인지 의심한다. 그럴수록 햄릿의 괴로움은 커지고, 그 안에서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가–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

p.94~95

햄릿은 ‘비밀’을 알아버린 자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짐은 더욱 무겁고, 갈등은 배가 되었다. 고심 끝에 왕자는 클로디어스가 저지른 살인을 똑같이 재현하는 연극을 왕과 왕비 앞에서 상연하기로 결심한다. 클로디어스의 반응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햄릿은 이 ‘연극 안의 연극’에 ‘쥐덫’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연극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클로디어스는 공연장을 황급히 떠나 버리고, 이를 본 햄릿 왕자는 그의 유죄를 확신한다. 곧이어 햄릿은 홀로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발견한다. 하늘이 준 기회였지만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는다. 기도하다 클로디어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곧바로 천국으로 갈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햄릿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결국 모든 상황은 비극으로 내닫는다. 왕비 내실 커튼 뒤에서 인기척을 낸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칼에 맞아 죽고, 옛 연인 오필리어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는 순식간에 가족을 둘이나 잃고 격분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주지 않는 클로디어스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클로디어스는 간교한 말로 레어티스를 꾀어 그의 분노와 칼끝이 햄릿을 향하게 한다. 햄릿과 레어티스의 시합 도중 무심결에 아들 햄릿의 음료를 마신 거트루드가 숨을 거둔다. 레어티스와 햄릿은 둘 다 독을 바른 검에 찔려 치명상을 입는다. 시합 동중에 칼이 한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레어티스의 온 몸에도 급속도로 독이 퍼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인다. 영국에서 온 사신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처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준다. 햄릿이 바꿔 친 편지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충직한 허레이쇼는 자결하여 햄릿 왕자의 뒤를 따르려 한다. 그러나 햄릿은 그에게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해 달란 부탁을 남긴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르틴브라스가 왕국의 새로운 영도자가 되어 피로 물든 덴마크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 덴마크는 새로운 왕과 국가의 독립을 맞바꾸었다.

햄릿의 마지막 결단은 결국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덴마크의 젊은 왕자는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으로 인해 현실에서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비열하고 저속한 삼촌을 미워하면서도 저항할 힘을 기르지 못했다. 그런 햄릿 앞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고 사라졌다. 이젠 햄릿이 이 모든 상황 앞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떨치고 나가야 할 것인가 고민했어야 했다. 그가 고민한 것은 복수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잘못된 비리를 해결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갚을 것인가 새로운 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든 왕이 된 삼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아버지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말과 자신의 나약함, 갈등속에 갇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갔다. <햄릿>은 결말은 끔찍한 비극이다. 살아남은 자 없이 모두가 칼에 죽고, 독에 죽고, 물에 빠져 죽는다.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햄릿, 즉 젊은 세대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안락한 환경과 지식은 젊은 세대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새로운 길을 닦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쌓아올린 것에서 다시 출발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악행과 불행이 아들의 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과 그 세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고민과 갈등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왕관과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삼촌을 치고 무너진 자신의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고,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의 고민 말이다. 그리고 선택한 삶에 대해 행동하며 나아가야 한다.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감당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 세대의 유령과 마주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에 낙담하지 말아야한다. 이 시대의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때 그 길에서 만난 우리의 유령과 씨름하고 갈등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햄릿만의 왕국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햄릿,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너의 길을 걸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