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가지의 이야기로 각각의 단편들은 묘하게 유기적이 느낌을 준다. 이 책으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접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으셨던 분들이 굉장히 평이한 문체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라고 해서 뭔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나 보구나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난 그렇지 않았다. 빨리 읽는 듯 그렇지 않는 듯 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쭉 읽는 느낌보다는 그냥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난 대중음악을 좋아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오늘 하루종일 생각나는 보아의 옆사람이다. 하지만 녹턴이 조용한 밤과 같은 서정적인 음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소설 녹턴은 들고 돌아다니며 읽는 것보다 집에 노래 한곡 틀어놓고 평온한 상태에서 읽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책 속의 인물들은 남들이 말하는 그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다들 자기의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있다. 뛰어난 음악가가 되지도 못했고 내 연주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희망차지 않게 나이을 먹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던 중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그러한 일들 때문에 조금 희망차게 나이를 먹어갈 것 같은 이야기다. 그 모든 고리는 바로 ‘음악’이다.
총 다섯편의 이야기들이 다른듯 비슷한건 우리의 삶 또한 다른듯 비슷하기 때문이다.
읽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나는 이야기는 크루너였다.
크루너에서는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마지막 세레나데를 부르는 남편을 도와 기타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그려낸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의무처럼 새 시작을 거부한다. 젊지 않다는 이유에서. 난 이게 참 싫다. 그래서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두 사람을 왠지 이해 할 것만 같다. 해가 지고 약간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게 끝은 아니
다. 밤이 오는 시작인 것이다.
아참, 참고로 이 책의 타이틀인 녹턴에서 인상적인 것은 결국 두 남녀는 붕대를 푼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모르는 두 사람이 얼굴도 보지 못한채 둘 만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을 만든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그 인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른다. 다만 좋은 결과만 좋은 것이다. 이 두사람은 얼굴도 모른채 만났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다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인정해준 한 사람을 만나게 된거다. 아주 우연한 이유로. 그래서 미묘해 질 뻔도 했지만 두사람은 마지막 변한 얼굴을 보지 못한채 헤어진다. 딱 그 기억만 남도록.
온 힘을 다했던 젊은 날이 지나도 젊은 날과 같은 일들은 생긴다. 그 때도 우리는 젊었을 때 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과 똑같은 행동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동안의 많은 경험과 생각들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젊은 날 보다 더 깊은 행동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아주 작은 희망도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그 무언가, 음악,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더 깊어지게 하니까…
사실 별로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희망이란 단어보다는 지속하는 삶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들도 그들 각자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라는 말을 전달 받은 느낌이다.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