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17~60세 | 출간일 2013년 10월 11일
  • 처음 읽는 작가다. 그녀의 다른 책이 한 권 정도는 집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시간이 지난 책에는 손길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재난 여행을 설계하는 주인공의 직업 때문이다. 이미 다른 소설 등에서 재난지나 폐허를 여행 상품화한 것을 읽은 적이 있기에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일본 소설에 가끔 폐허 마니아들이 등장하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와 직원이 주인공인 경우는 처음이다. 소개글에 나온 몇 가지 정보가 아주 흥미로웠다.

     

    주인공 이름은 고요나다. 요나란 이름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요나가 떠올랐다. 이 둘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직업은 여행설계사다. 여행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재난당한 곳. 현실에서 이런 상품을 판다면 아마 사람들의 비난을 엄청 받을 것이다. 물론 뒤로는 이곳을 가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어느 날 그녀의 업무가 바뀌고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불쾌감보다 불안감이 먼저 온다. 그에게 성추행 당한 사람들이 짤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불확실은 그 무엇보다 그녀를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여행사 이름은 정글이다. 그냥 지은 이름일까? 이름처럼 이 여행사는 강자존의 세계다. 성추행을 규탄한 사람들이 오히려 처분 받는다. 기업 문화는 사내 연애를 장려한다. 화목한 외양 속에는 누군가의 피와 땀이 깔려 있다. 적자생존이라고 했던가. 회사가 바라는 인재로 자라지 못한 사람은 언제 짤릴지 모른다. 이것은 대부분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정글은 더 심해 보인다. 그리고 여행 상품의 경우 금방 그 실적이 드러난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상품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여행지 사람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다. 이 소설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표를 던진 그녀에게 성추행 상사가 제안 하나 한다. 한 달 동안 회사 여행지 중 한 곳을 선택해 둘러본 후 보고서 한 장을 제출하면 출장으로 처리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선택한 곳이 무이다. 사막에 싱크홀이 생긴 것 때문에 재난 여행지로 발탁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제 그 수명이 다되었다. 볼거리가 거의 없다. 그녀와 함께 간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큰 리조트는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다. 몰락한 여행지의 풍경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녀가 적어낼 조사서의 내용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통의 재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요나는 이 순간을 놓친다. 바로 기차 속 화장실 때문이다. 분리된 열차는 그녀를 두고 떠났다. 돈도 여권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홀로 남겨졌다. 이 순간 그녀에게 조그만 도움의 손길이 온다. 리조트 매니저다. 요나의 정체를 처음에 몰랐는데 정글의 직원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 완전히 바뀐다. 적극적으로 이 여행 상품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요나 기준으로 볼 때 상품의 가치가 없는 곳이다. 이때 놀랍고 무시무시한 계획을 듣게 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이 없다면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카프카가 떠올랐다. 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장면 때문이다. 폴은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할수록 멀어진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가장 첨예한 모습이다. 공정 무역을 내세우고 그 지역의 경제를 앞세우지만 실제 모든 이익의 주체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본이다. 무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본 앞에 하나의 부품이 되어 소모되어진다. 결국에는 요나도.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설정과 계획도 결국 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도 무력해지는 반전은 놀랍다. 이 반전으로 처음의 욕망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고개를 들고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자본이고 인간들의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