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강렬한 피라미드의 모습은 없지만…

연령 15세 이상 | 출간일 2013년 10월 4일
  •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 <파리대왕>이다. 그 이후 많은 수상작품들을 읽었지만 이 책처럼 강렬한 재미를 준 책이 거의 없다. 아마 그 당시 10대였던 나의 감성과 모험 소설적 전개가 나를 순간적으로 사로잡은 모양이다. 이 인상은 골딩의 소설에 대한 하나의 선입견을 만들어주었다. 강렬하고 원시적인 뭔가가 있을 것이란. 하지만 이 소설은 소개글에서 나온 것처럼 자전적 소설이다. 영국 계급 문제를 경쾌하고 날카롭게 형상화했다는 평가가 같이 눈길을 끈다. 제목에서 풍기는 강한 계급구조가 먼저 눈길을 끄는데 생각보다 소설에서 이 구조가 강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나의 독법과 이해도가 낮은 탓도 있겠지만.

     

    모두 세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첫 에피소드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이모젠의 결혼 소식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이비란 여자가 나타난다. 남자 친구 보비의 차가 연못에 빠진 것이다. 이 차의 원래 주인은 다른 에피소드에 나오게 되는 바운스 양이다. 몰래 훔쳐 타고 둘이 데이트를 한 것이다. 그러다 사고가 나자 도움을 요청했다. 이 방문이 환상 속 여인에서 현실 속 욕망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올리버에게 욕망의 불꽃과 질투의 꽃이 핀 것이다. 의사의 아들인 보비에게 뒤쳐져 있던 그에게 그를 넘어설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이비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단순한 욕망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빚어낼 현실의 무거움도 같이 보여준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학생이 된 올리버가 스틸본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 생긴다. 이 마을에서 몇 년만에 다시 오페라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한 번 열리고 나면 내부 갈등 때문에 2~3년은 그냥 흘러가는 공연이다. 올리버가 여기서 바이올린을 잠시 연주하기로 한다. 엄마의 추천과 열정이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의 연주는 훌룡하지만 무대 위 주인공들은 이모젠과 그녀의 남편은 성량이 부족하다. 소리를 죽여야 한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 전문 연출가가 등장한다. 에벌린이다. 공연을 잘 되게 하기 위해 고용되었지만 부족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주연으로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이 공연이 아니다. 에벌린을 통해 이 작은 마음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허상이 밖으로 표출되게 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모젠에 대한 실체를 올리버가 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중년이 된 올리버가 등장한다. 그는 스틸본의 헨리에게서 어릴 때 자신의 음악 선생이었던 바운스 양의 죽음을 듣게 된다. 자연스럽게 무덤으로 발걸음이 옮겨지고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야기는 빠져든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한 여자의 외로운 삶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관음증과 위선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것은 올리버의 엄마가 아들을 행성 탐사선처럼 이용했던 에피소드에서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웨일스 출신 정비사 헨리의 등장은 소문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일이 된다. 바운스 양과 헨리를 둘러싼 소문은 바운스 양의 외모와 행동을 통해 알려지고, 주변 사람은 탐욕스럽게 이 소식과 소문을 퍼 나른다.

     

    자전적 소설은 성장 소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성장은 세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첫 에피소드가 이비에게 자신의 미래가 발목 잡힐지 모른다는 공포와 욕망의 충돌로 표현되어진다. 이 욕망이 아버지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공포와 패배감과 비참한 속에서 사그라진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모젠의 실체를 깨닫지만 그가 속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축하를 받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결코 이 사회의 문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적정한 대가 이상을 치를 마음이 없음을 깨닫고 단호하게 자신의 현실 속으로 진입한다. 처음에 이 장면을 읽을 때만 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시 읽으니 그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작품 해설의 도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