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 김혼비

민음사 패밀리데이 때 산 이후에, 늦게도 펼폈다. [아무튼 술]을 읽고 김혼비 작가님의 매력에 빠졌고, 이 책도 펼치게 되었는데… 아니 축구 이야기에 인생이 담겨있다. 여성으로서 운동장 한 구석에서 피구, 발야구만 하는 사회의 이야기부터 더 잘하고 잘해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 ‘팀’으로 생기는 갈등, 죽음, 업으로의 축구 그리고 피땀눈물…

책이라는 건, 읽을 수록 나의 삶과 일상에도 대입해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반면 책을 읽을수록 내가 무지했던 분야, 혹은 사회가 무지하거나 무시했던 분야를 알아가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기도 하다.
우아했고 호쾌했던 여자축구 이야기. 나는 어디에 땀을 흘려볼까?라는 고민을 하고 멋진 언니들 틈에서 땀 뻘뻘 흘려보고 싶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도 찔금, 울컥하기도 하고, 웃긴 문장을 소리내서 읽어보기도 하고(모기, 그리고 1어시스트 1골… 진짜 작가님 너무 재밌잖아요?) 축구에 관심도 갖고. 어서 찾아봐야지, 땀 흘리며 몰두해볼 무언가를.

- 피치 위에서도 피치 밖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오해를 만들고 오해를 하고 오해로 억울해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어떤 오해는 나를 한 발 나아가게 한다.
- 내가 미안한 기색을 보이면 언니들은 “야, 넌 이제 세 돌 막 지난 축구 꼬맹이야. 꼬맹이들이 자라면서 시끄럽고 말썽 많은 건 당연하잖아. 클 때까지 어른들이 그 과정을 조금씩 나눠가지는 게 맞지.”, “미안하면 빨리 쑥쑥 커!”라며 별 소릴 다 듣겠다는 투로 말을 건넸지만, 그럴 때마다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바뀌며 더 미안해졌다. 미안한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과 미안할 일이 줄어드는 것 중 뭐가 더 먼저일까.
- 역시 체력하면 빠질 수 없는 AC밀란 수비수 가투소는 그걸 두고 “박지성은 끈질기기가 마치 모기 같았다.”라고 극찬했다는데, 나는 체력이 모기 같아서 망했다. 체력 자체가 이미 총체적으로 문제인 주제에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니 어쩌니 했다니 내 잔머리들이 깔깔대고 웃을 일이다.
- 이렇게 시니어 팀과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다 보니, 여기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다음의 경우가 파생되는데, 바로 시니어 팀의 선수들은…… 돌아가신다는 것이다. 한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은 늦은 밤, 누군가 온 힘을 실어 찬 코너킥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 사실 나는 경조사에 단체로 돈을 걷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의 같은 사건이 사람들에게 가닿을 때는 제 각각 다른 모양의 그릇이 된다. 모양 따라 흘러 담기는 마음도 다르고 그걸 세상에 내미는 방식도 다르다. 아무것도 안 담겨서 내밀 게 없는 사람도 있다.
-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부재를 누군가에게 미안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강자라는 것을. 미안할 수 없는, 누구도 그 미안함이 필요 없는 입장도 어딘가에는 늘 있으니까.
-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처럼 상대편에게 연달아 공격권을 내주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 때 이제 막 축구 시작하는 애가 기죽을까 봐 위로하기 위한 칭찬이 아닌, 진짜 플레이 그 자체로 칭찬받은 것은. 다들 진심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대로 계속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팀을 위해서. 내 발끝에 팀원들의 기대가 실렸다. 입단 이래 처음으로. 아주 작은 기대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