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마음으로 – 임선우

단편들이 묶인 소설집. 처음에는 귀여운 표지와 제목에 눈이 갔고, 민음사TV나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되면서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현실과 비현실(혹은 상상) 사이에서 현실이 아주 진하게 녹아있던 책. 처음에 상상했던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기 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책으로 남는다. 완벽하게 해피, 세드엔딩은 없지만 그 끝이 해피엔딩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서 무거웠다. 돌아보니 행복한 등장인물이 없었던 책.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던 책.
유령의 마음으로, 빛이 나지 않아요, 여름은 물빛처럼, 낯선 밤에 우리는, 집에 가서 자야지, 동면하는 남자,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커튼콜,연장전, 라스트팡. 총 8개의 소설이 담겨있다.

유령의 마음으로
-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유령의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자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 나는 언니 보러 여기에 오는 거야. 빵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 ……얼마 전에 언니가 추워지면서 유령이 나타났다길래 며칠 동안 창문을 열어 놓고 잤어. 너무 외로우니까 유령이라도 생겼으면 했는데. 유령은 안 나타나고 감기만 걸렸어.

빛이 나지 않아요
-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이번에는 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 나는 구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응. 구가 대답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 다시 노래하려고. 오늘 서울로 돌아갈거야. ……그렇게 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낯선 밤에 우리는
- 오늘은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며칠 전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출산 후 3년 만에 복귀한 코미디언이 집을 공개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데, 식탁 모서리마다 붙여진 보호대가 눈에 들어왔다. 원목 식탁에 붙은 샛노랗고 동그란 보호대들. 나는 인터뷰가 다 끝날 때까지 그것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생각한 것이다. 저런 것들이 있는 삶이라면 조금 더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 아시겠죠? 느닷없이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뭘요? 제가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천장이 뚫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