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서 데미안의 새로운 견해와 자기가 지금껏 진리라고 믿어온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믿음 사이의 괴리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싱클레어의 고민은 사실 우리 모두가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충분히 느껴온 것들이다. 어릴 때는 마냥 옳은 것을 배우고 그 후에는 당연히 옳은 것을 옳다고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또 그 후에는 여러 사상과 견해 중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 의해, 그리고 피스토리우스, 또는 자기 자신에 의해 그 과정을 거치고 성장하는 과정에 이입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도 끝없이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고 내면의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작은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데미안』은 읽은 후 잊고 지내다가도 이따금 머릿속에서 치고 올라오며 나를 이끄는 힘과 같은 책이다.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데미안』의 모든 문장을 완벽히 이해하고, 알을 깨고 나갈 때까지는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데미안』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길잡이이다. 어딘가에는 삶에 대한 답을 모두 가르쳐주는 책도 분명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은 결코 완벽한 답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만 답으로 향하는 방향에 대해 조언하고 싱클레어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답을 찾도록 이끈다. 에밀 싱클레어에 자신을 투영하는 많은 청년들이 그 이끌림 끝에서 언젠가 답을 찾고 알을 깨고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