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무도 보지 못한 숲/조해진]

연령 15~60세 | 출간일 2013년 7월 19일

12년 전 3월 21일, 소년은 그날 이미 한 번 죽었다. 소년의 인적사항은 사망으로 처리돼 말소됐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소년은 정규교육 한 번 받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위조 서류 브로커로 활동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신용카드 등 정보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소년은 매일 누군가의 명의를 도용한다는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소년은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몇 달 전부터 M이라는 여자를 지켜본다. 그가 자신을 기억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멀게, 그에게 제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M을 맞닥뜨린 소년. M은 소년을 돌아봤고, 소년은 긴장한다. M은 소년을 기억할까?

고등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미수는 그 애도 분명 열여덟 살일 거라는 데 마음속 패를 던져 보았다. 빚쟁이인 어머니는 미수와 동생 현수를 삼촌 집에 맡기고 종적을 감췄다. 들리는 소문에는 일본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다행히 미수와 현수에게는 할머니가 있어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K시 기차역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영영 볼 수 없게 된 동생 현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서울 한 회사의 안내원으로 취직한 미수는 몇 달 전부터 집을 몰래 드나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정체를 헤어진 남자친구 윤일 것이라 추측한다. 한편, 평소와는 다르게 일찍 집으로 향하던 미수는 낯선 소년과 마주친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현수가 살아 있다면, 바로 그 나이였다.


순간, 나무가 울창한 숲 한가운데 자리한 호수 속에 발을 담근 채 조용히 소멸을 꿈꾸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미수는 걸음을 멈췄다. 그 사람은, 나였던가. 우연히 마주친 소년에게서 동생을 보고 다시금 동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미수. 평생을 도망치고 은둔하는 데 바쳐 어둠과 익숙한, 그리고 이번에는 외국으로 도주하기 위해 준비하는 소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책 뒷표지에도 적혀 있듯 청춘 가족 성장소설이라 그런 것일까. 가족, 특히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특히 더 공감이 갔다. 모든 일의 시작인 미수와 현수의 엄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삼촌, 그리고 조직의 우두머리까지. 어른들의 일에 희생된 미수와 현수, 그리고 소년이 불쌍했다.

날 좀 꺼내 줘. 속삭였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고 그 누구도 다가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미수와 소년은 모두 숲에 갇혀 있었다. 그 어느 공동체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만의 세계인 숲에서는 안전하다고 느꼈다. 숲은 그들에게 있어서 보금자리였다. 그 누구도 볼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그리고 그곳에서 미수는 현수를, 소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숲의 모든 곳에 깃들어 있었고, 시시각각 걸음을 옮기는 빛을 따라 한 줌씩 두 사람의 귓가로 흘러들었으니.

처음에는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처지와, 소년에게 있었던 2년 전 그 사건으로 평생을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없을, 이미 낙인 찍혀 버린 소년의 미래를 걱정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미수와 소년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해피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수와 소년, 둘의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듯 그들 앞에 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외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