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7.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787.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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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이전에 접하지 않았던 작품이니 다시 읽기에 해당하진 않지만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워낙 친숙하다 보니 마치 재독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개를 보면 ‘설득보다는 매혹을 원했던 프랑스 최고의 감성,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 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저 표현이 얼마나 그녀를 설명 하기에 알맞은 표현인가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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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저그런 로맨스물로 끝날 수도 있던 작품이다. 그런 그녀의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당연히 작품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완벽할 정도로 잘 지어진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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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되어야 하지, 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일까 라는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완독한 뒤에 저 제목을 보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뒤에 붙은 점 세 개가 말해주는 그 무수한 의미와 메세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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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인간에게 가장 복잡 미묘한 감정을 꼽으라면 나는 – 뿐만아니라 아마도 모두가 – 단연 ‘사랑’이라는 감정을 꼽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겠지만 사랑만큼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늘 신뢰를 바탕으로 헌신을 요구하며 자유를 박탈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평화속 사랑을 또는 사랑속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로마법의 신의성실의 원칙과 같이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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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야기속 로제는 사랑의 대가로 자유를 반납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로제가 끝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며 어제 오늘 할 것 없이 어울린 창녀들과의 사랑 놀음동안 그의 진정한 연인 폴은 일을 하며 엮이게 된 15세 연하의, 게다가 심하게 잘 생기고 머리도 좋으며 부유하고 늙은 엄마까지 둔 엄친아 시몽과 사랑에 빠진다. 마흔을 앞둔 그녀 폴과 이제 스물 다섯이된 청년 시몽의 사랑에 찬물을 끼얹은 건 언제나 사랑과 자유를 동시에 만끽하던 로제였다. 폴은 시몽과의 사랑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로제의 비행을 그저 모른척 지나가 주었고 항상 그렇듯 웃으며 돌아올 로제를 기다렸지만 식을 줄 모르는 그의 비행에 지친 것일까 결국 폴은 로제에게 바친 자유와 신뢰와 헌신을 시몽으로부터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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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헌신과 집착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인지 도무지 자신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시몽의 열렬한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색되어 가고, 결국 폴은 언제나 자유를 포기하지 않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중년의 로제와 헌신이 집착으로 변해가는 청년 시몽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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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스물 넷이라는 약관의 나이에 쓴 작품이지만, 10대 후반부터 생미셸 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렸고,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 식사였으며,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고, 문턱이 닳도록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 전액을 간단히 탕진했고,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한, 낭비와 알코올과 연애와 섹스와 속도와 도박과 약물에 ‘중독’된 그녀의 삶이 그녀의 문학을 압도한 격. (-P.153)

작품해설에서 발췌한 위의 글 만으로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해 기대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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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 나 역시 로맨스엔 관심이 없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제목 뒤에 붙은 점 세 개의 넓은 의미와 깊은 메세지를 느끼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근처 서점으로 달려가 프랑수아즈 사강과 만나보길 바란다.